빗살무늬토기의 추억 - 문학동네 소설 2001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내게 김훈의 시작은 <칼의 노래>였다. 처음 보는 글쓰기 형태인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글의 무게가 읽는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주인공의 고뇌(혹은 작가의 문제의식)가 고스란히 독자인 내게 전해져 왔다. 이렇게 부담스러운 책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김훈의 글에 포섭되어 <현의 노래>, <공터에서>, <흑산>, <강산무진> 등등 그의 소설들을 섭렵했다. 그런데 도저히 그의 첫 작품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구할 수가 없었다. 물론 도서관에는 있었지만 애정하는 작가의 잭이니만큼 소장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 책의 구매는 10년 여가 연기되었다. 그 기다림은 결국 포기되었고 도서관을 찾았다.

문학잡지인 <문학동네>에 2회 연재된 김훈의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주인공의 생각을 에세이식으로 서술했다. 이런 서술 방식은 이후 그의 소설만의 확고한 형태가 되었다. 그만큼 무겁고 두껍다. 장편「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한 소방소장이 화재진압 과정에서 부하 소방관의 사고사를 계기로 부하의 삶을 되새기는 회고 형식의 글이다. 전문용어들이 툭툭 튀어나와 글읽기를 방해하는데 그것은 신문사 사회부 사건기자를 지낸 바 있는 작가의 체험과 관련 수험서 읽기 또한 지인의 경험에 따른 것이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저자 김훈만의 질긴 사유로써 사물의 본질을 파고드는 문장들이다. 그의 내밀한 묘사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것은 여성작가들의 섬세함과는 다른 결의 그만의 축성법이다.

˝질료의 죽음과 함께 불꽃도 죽는 것이어서, 그것들의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은 같은 축 위에 놓여 있었지만, 불은 타오름으로 질료를 죽였고 질료는 스러짐으로 불꽃을 타오르게 하다가 이윽고 저 자신의 죽음으로 불꽃을 죽이는 것이었다‘(11쪽)
˝불 속에서 살아서 뛰쳐나간 사람의 돈을 불 속에서 죽어버린 사람이 훔쳤다면 산 자에 의하여 문제가 제기될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다만 하나의 가설로서 접수될 수 있었을 뿐, 그 가설이 부딪치고 비벼져야 할 상대쪽이 죽고 없으므로 가설은 그저 떠도는 가설일 뿐이었다.˝(138쪽)

나는 이 문장들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이해가 안 되기도 했지만 이해하고서도 곱씹어야 문장의 맛이 살아났다. 그래서일까 장편이라 하기엔 다소 얇은 책이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이런 문장이 책 전체에 넘쳐난다. 분명 여기서 김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훈의 책의 또 다른 특징은 3인칭의 전지적 작가 시점이 없다. 이 책 역시도 그래서 1인칭의 흐름이 이어진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겉만 1인칭이지 실제로는 전시적 시점에서 모두를 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생긴다. 그것인 주인공이 주변인들을 설명하는 하는 대목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주변인의 과거사는 물론 생각, 관념 모든 것들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김훈이 좋다. 물론 다른 위대한 작가들도 많지만 김훈 역시도 자신만의 탄탄한 기반을 잘 구축했기 때문이다. 마흔 끝머리에 등단한 그지만 그만큼 탄탄한 내공의 바탕이 있어 지금에 이른 듯하다. 그의 첫 책을 나는 가장 마지막에 읽었다. 거기서 그의 원형을 발견했다는데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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