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자도서] 순이삼촌 2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집에는 묵혀둔 책들이 많다. 다 내가 사둔 책들이다. 주로 충동구매로 우리집에 왔다가 주인의 버림을 받아(?) 구석 어딘가에 박혀 있다. 읽지 않고 오래두면 읽고픈 마음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순이 삼촌>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마주한 <순이 삼촌>은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우선은 외계어격인 제주도 방언의 역할이 그랬다. 제주도 친족간의 대화에 방언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니 충분히 이해했다. 그들이 서울 사투리 쓰는 게 더 어색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순이 삼촌>의 어려움은 문장이나 문체 때문이 아니라 그 내용이 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순이 삼촌의 기행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그 원인을 찾고자 하는 대화는 독자로 하려금 약 70년 전의 제주도를 떠올게 한다. 1948년 4월 3일에 시작된 사건. 거기에서 소설의 줄거리가 나온다. 한국전쟁 전 제주도는 육지로부터의 핍박과 멸시, 지독한 가난 외에도 군경에 의해 고립되어 있었다. 특히 한라산 지역이다. 좌익이니 빨갱이니 공산주의자니 하는 색깔 놀음에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순이 삼촌의 삶은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일 수 없었다.

지금 보면 지독한 트라우마에 고통받았을 삼촌이지만 사건 자체를 터부시해야 했던 사회적(국가적) 억압은 그녀를 더욱 병들게 했을 것이다. 이 책은 순이 삼촌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아픈 손가락을 되돌아보게 한다.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저자는 출판 당시의 험한 분위기에도 당당히 글을 썼다. 그리고 출판사 창비는 여기에 힘을 보탰다. <순이 삼촌>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다. 거짓을 가장한 진실이요 창작을 가장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순이 삼촌>은 힘을 가진 소설이다.

제주4.3사건의 상징 ‘동백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