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서의 역사 - 나의 서양사 편력기 대우휴먼사이언스 18
이영석 지음 / 아카넷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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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자신의 인생 역정과 그 과정에서 역사 연구가 어떻게 진척되어 왔는지 친절히 설명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삶으로서의 역사>라는 책의 제목이 와닿는다. 이 책을 통해 역사가 이영석의 개인적 삶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만, 그가 체계화한 ‘역사를 보는 눈‘을 배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학의 교과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점을 중심으로 독후 활동을 해보려 한다.

흔히 역사는 객관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역사는 상당히 주관적이고 역사 연구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전문 연구자는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인 완전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모던 역사는 의의가 있다. 저자는 이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연구 자세를 수정하는 담대함을 보인다. 세상에 완벽히 객관적일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으랴. 이 책에는 개인의 삶이 역사가 되고 또 그 역사는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1980년대에 저자는 왜 역사학(그것도 서양사)을 택했는지, 어떤 류의 책들을 읽었는지, 연구 자세는 어떠했는지를 통해 역사 연구의 주관성이 읽힌다. 역사 연구가 당대 사회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역사가 주관적이라 하면 거부감이 들지 모르겠으나 이는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인간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역사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연구자들의 부지런한 자세 때문 아닐까 싶다. 저자 이영석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개인적으로 한 번 강의를 들은 것이 전부(책은 4권 소장)지만 그는 성실한 연구자임에 분명하다. 저서와 논문의 숫자도 그렇지만 스스로 영국에서 1차 사료를 발굴하는 자세와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혼자 서양사를 연구하는 자세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게을러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도 그는 스스로를 독촉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런 점은 그가 연구자라는 점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존경의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임지현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떠올랐다. <삶으로서의 역사>에도 등장하는 임지현은 이영석과 동시대의 서양사학자로 그 역시도 치열한 연구와 남다른 시각으로 논쟁적인 글을 많이 써왔다. 그의 도발적(?) 주장들은 역사학계를 들쑤시기도 했지만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시원한 사이다처럼 다가왔다. 이에 비해 이영석의 글은 분석적이며 꼼꼼함이 두드러진다. 어느 누구의 글이 좋냐 나쁘냐 하는 그런 일차원적 구분은 아니다. 그저 연구자의 성향과 연구 자세가 드러나는 것일 뿐.
한편 이 책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특히 그의 연구 이력과 영국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서양사 전공자가 아니면 쉽게 다가서기 힘들다. 이점은 서양사가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아닐까 싶다. 나 같은 역사 전공자도 이런데 일반인들은 어떨까 싶다. 이점은 저자 역시 고민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원래 출판사에서는 저자에게 역사학 전공자들을 위한 책으로 써줄 것을 요청했으나 저자가 방향을 틀어 지금의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저자의 의도에 공감하면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한국 역사학자들이 쓴 역사학 입문서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실제 읽히는 책은 대부분 번역서들이다. 아직도 필독서의 반열에 올라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을 뛰어 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눈에 맞는 역사학 입문서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많은 학자들이 자신은 그런 정도의 역량이 못된다며 겸양해 하지만 이래서는 안될 듯하다.

역사가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배웠다. 그의 연구 자세를 통해 나는 어떻게 공부하고 사회(혹은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보다 저자를 더 알게 되었다는 점에 독서의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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