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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김영하의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딱 한 권 읽은 그의 책이 내겐 특별함을 넘어 괴상함으로 다가와 더 이상 그의 글을 읽기 싫어졌다. 그렇게 그와 멀어졌다. 그러다 십 년 넘은 세월이 흘러 그를 티비에서 보게 되었다. 속칭 ‘알쓸신잡‘이라 불리던 그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 그날 저녁 여행지의 모처에서 토크쇼를 벌이는 형식이었다. 티비를 통해 본 작가 김영하는 의외였다. 편벽된 작가가 아니라 젠틀함을 넘어 박식함과 깊은 이해력, 심지어 나름의 통찰력까지 지닌 사람으로 보였다. 유시민 같은 달변가도 있었지만 프로그램 내에서는 김영하만의 색깔에 다른 이들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구축했다. 책 한 권으로 그를 평가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렇다고 바로 그의 다른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그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여행에 관심이 많다. 여행에 관한한 현재 한국은 춘추전국 시대라 할 만큼 많은 이들이 여행을 떠난다. 다양한 여행의 이유가 있는만큼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일까 서점에는 여행 관련 도서 코너가 따로 있고 인터넷 블로그에도 여행 정보가 넘친다. 여행과 관련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진 셈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여행의 의미를 말하라 하면 쉽게 못하겠다. 그것은 여행 자체에만 중심을 두었지 왜 떠나야만 하고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등 여행의 이유를 숙고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주는 유익을 굳이 되새기고 떠올릴 필요는 없다. 다만 누구든 그런 자신의 축적된 경험을 되돌아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이의 제기일 따름이다. 저자 김영하는 오랜 시간 많은 여행을 통해 느낀 자기 ‘여행의 이유‘를 이 책에 길게 서술했다. 물론 일목요연하게 내 여행의 이유는 이것이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이유와 사연이 있었을 터니 그에 맞게 9장으로 구분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김영하는 자신의 주전공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박식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박식의 내용들을 연결해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통찰한다. 이 책 역시 그런 점이 눈에 보인다. 나는 그의 이런 점을 좋아한다. 내가 가진 약점을 그를 통해 확인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여행은)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함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잇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 들이기로 한다.˝
이렇게 저자는 자신만의 여행의 의미를 정의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여행은 유의미해지고 내 인생의 중요한 밑천이 된다. 그냥 졸졸 따라다니다 먹고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관광과는 차원이 다르다. 발품 팔고 땀을 흘려서 얻은 경험치는 내 안에서 단단한 영역을 구축하고 미래를 위한 힘이 되어준다. 우리는 이것을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김영하의 여행론은 평범치 않다. 그의 여행 이력은 더욱 독특하다. 그의 어린 날의 경험들이 그를 색다른 여행자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묘한 공감을 일으킨다. 아니 그를 넘어 읽는 이를 저 멀리 떠나게끔 강하게 충동질하는 듯하다. 사진이라고는 달에서 찍은 지구 사진 딱 한 장 뿐인 이 여행론은 묘하게 여행 가라고 지그시 떠민다.
이제 자신의 여행을 되새겨 보자. 그리고 우리의 여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머리에 새겨보자. 그것은 단순히 어느 국가, 어느 도시로 떠나는 여행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는 경험일 수도 있다. 김영하의 매력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