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눈여겨 읽는 책이 동화, 전설, 민담 같은 류들을 재해석한 것들이다.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도 재밌지만 그것을 다르게 읽으면 이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처럼 고지식하게 지면에 드러난 바만 취하는 사람은 쉽게 눈치 채지 못지만 곱씹어 읽어 이야기를 내면화한 이들에겐 드러내지 않은 속살이 보이는 것이다. 저자의 그런 능력을 부러워하며 책장을 넘겼다.왜 주인공들은 길을 떠나야했을까? 어느 지인이 그랬다. 당연하지 않냐고. 그는 그래야만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강변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 단순하고 모범적인 정답이다. 그렇다고 나는 이 주제를 그리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주인공의 험난한 경험과 그 의미만 눈여겨 보았지 그들의 길떠남은 주목하지 못했다. 이를 저자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길떠남이란 물리적으로 집 밖을 나서는 일일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주저앉지 말고 길을 찾아 움직이라는 것, 이리저리 재거나 눈치를 보지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삶을 찾아 나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예로 백설공주와 바리데기를 들고 있다. 나는 무릎을 쳤다. 백설공주는 위험하고 무서운 숲 속에 버려졌지만 혼자 힘으로 개척해 나갔다. 바리데기 역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거쳐가며 서천서역국에 도착하여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한 약수를 떠간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한 그들은 이미 동화 속 어린 공주의 이미지를 벗고 있다. 어떻게 동화와 민담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한편 장화와 홍련에 대해서는 큰 비판을 가한다. 그들은 길떠남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자란 장화와 홍련은 위기에 직면해서도 수동적이었다. 이런 비판은 아버지가 고이고이 키운 여우 누이에게도 적용된다. 아들을 불신한 아버지의 오판과 무한한 딸 사랑은 누이를 구미호처럼 키워낸 것이다. 이점에서 저자는 현대 부모들의 유별난 자식 사랑에도 문제가 있으며 옛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를 깨닳아야 한다고 말한다. ‘신동흔‘이라는 저자가 크게 눈에 들어온다.이 책의 주재료는 그림 형제의 동화와 우리나라의 전래 민담 그리고 세계 각지의 전설들이다. 이를 저자가 길떠남이라는 주제에 맞게 재구성하였다. 책은 매우 읽기 쉽고 현대적 재해석이라 할 정도로 이해하기 좋다. 다르지만 비슷한 면을 가진 책이 있다.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이다. 이 책 역시도 전래동화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책읽는 재미를 안겨주는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