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간 한국전쟁 -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
박찬승 지음 / 돌베개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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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그 속성상 많은 희생자를 낼 수밖에 없다. 물론 병법서에서 피흘리지 않고 이기는 전쟁을 최고로 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국전쟁 역시 엄청난 희생을 낳았으며 그 피해는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책마다 다른 한국 전쟁의 희생자 수를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군인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더 많다는 점이다. 왜일까?

‘총알받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일반 상식으로는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군인이야말로 최대 희생자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전쟁의 또 다른 비극이다. 군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있지만 민간인 상호 간에도 살해가 있었다. 동족상잔의 아픔은 전방 뿐만 아니라 후방에도 있었던 셈이다. 아니 오히려 후방에서 더 컸던 것을 아래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은 많지만 지역 단위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은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 따라서 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연구자들은 당시를 직접 겪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주장을 녹취할 수밖에 없었다. 구술사의 필요성은 이런 점에서 제기될 수 있다. 다만 그 증언자들이 이제 너무 연로하여 얼마 남지 않았은데다  많은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거나 상당히 주관적으로 변해 있다는 애로사항도 있다. 구술사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저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안고 현장에 직접 나가 증언을 녹취하고 관련 지역 자료들을 찾아 이 책을 완성하였다. 책상에 앉아 관련 사료만 뒤적이는 연구와는 다른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일반 상식과는 다른 결론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것은 한국 전쟁이 이념이나 사상의 대립으로 큰 희생을 본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 내에 여러 갈등이 내재해 있었고, 그 갈등을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기존의 갈등은 더욱 심각하게 폭발하였다는 것이다. 신분, 가문, 재산, 종교 등으로 인해 사회 갈등은 이미 지역 사회에 뿌리가 깊었다.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치며 이러한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해결되지 못한데서 한국전쟁의 또다른 비극은 막이 올랐다.

내재해 있던 갈등이 표면화되어 살인에 이르게 된 경위는 오히려 단순했다. 그 출발은 대부분 보도연맹은 학살에서 시작된다. 이러 인민군의 진주와 우익 과련자들에 대한 보복이 가해졌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군경이 마을을 회복하면 다시 부역자와 좌파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졌다. 군경에 의한 학살과 민간인들 상호간에 의한 학살도 심각했다. 이것은 현재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현지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반면 좋은 친족 관계나 상호 협력을 유지한 마을은 비극을 벗어났다. 좌우의 대립도 그곳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위기의 순간에서도 서로를 보호했다. 어쩌면 이런 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아야할지  모르겠다. 갈등은 분노를 폭발시킨다고 해결되지 않다는  점 말이다.

상당히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전쟁이 군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후방 민간인들 사이에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성 파괴와 인면수심의 일들이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음도 확인 가능하다. 그렇게 전쟁은 잔인하고 비열했다. 그런만큼 이땅에서 전쟁은 없어야겠고, 내면화된 일상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는 사회가 바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좋은 기준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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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2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nulp 2018-09-12 21:52   좋아요 1 | URL
네 한국전은 이념의 대리전이었죠. 하지만 이 책은 이념 이전에 마을 내에 있던 갈등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갈등이 한국전을 만나 더 크게 폭발한 내막을 조사한 겁니다. 갈등의 주체들 끼리 서로 죽이게 상처 입힌. 어쩌면 이념보다 인간사의 갈등이 학살의 더 큰 원인이었을지도. 아무튼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