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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2014월드컵에서 한국은 졸전 끝에 예선 탈락했지만, 그래도 월드컵 시즌인지라 신간추천페이퍼에 월드컵 관련 서적들, <축구의 세계사>와 <피파 마피아>이 추천되었다. 그 중 <피파 마피아>가 선정되었다. 얼마 전 서점에 가서 실물을 보니 <축구의 세계사>가 선정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가 48000원 짜리 책을 공짜로 받는 것이 송구스럽기도 하거니와 1200페이지짜리 두께에 압도당했다. 만약 그 책이 선정되었더라면 한 달 내내 <축구의 세계사>만 읽고 있을 뻔 했다.
6월 9일 출판된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 토마스 키스트너는 세월호 사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세월호 사고에 대해 외국인이 언급한 최초의 책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금권에만 눈이 먼 탐욕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경우, 어떤 참사가 빚어지는가 하는 점은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가 여실히 보여줍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침몰은 300여 명이 넘는 젊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이 불행한 사고로 한국은 정체성 위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중략) 인간의 경제는, 건전한 사회는 도대체 경쟁을 어느 선까지 감당해야 할까요? 기업과 사조직의 이해관계가 인간 본연의 욕구를 짓누르는 어처구니없음을 언제까지 좌시해야만 할까요? 그리고 '세월호'의 비극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익추구 집단과 감독관청이 이처럼 밀접하게 맞물릴 때 참극은 피할 수 없습니다. 독립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족벌경영이 판을 치면서 이해당사자끼리 서로 이익만 키워주는 부패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규제가 줄어들수록 돈벌이라는 탐욕에 제동을 걸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중략) 바로 그래서 오락산업의 가장 통제받지 않는 부문인 프로축구 역시 인간의 인생을 지배하는 권력과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받아서는 안 됩니다. (중략) 축구는 그저 스포츠 경제, 스폰서 경제, 정치 그리고 미디어의 힘으로 부풀려진 가죽 공을 둘러싼 비즈니스일 따름입니다. 모두 저마다 여기서 이득을 얻어내려 혈안이 되는! (8, 9)
규제받지 않은 경제권력의 탐욕이 만들어내는 문제라는 점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피파의 부정부패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파의 부패로 인해서 세월호참사처럼 직접적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으리라는 점에서 둘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다소 비약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세월호 참사의 원흉으로 소위 '관피아'가 지목되면서, 별안간 '철피아(철도마피아)' '해피아(해양마피아)' '언피아(언론마피아)' '학피아(학벌마피아)' 등 마피아 시리즈가 회자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마피아시리즈의 정점을 찍은 것이 '축피아(축협마피아)'다. 대한축구협회의 폐쇄적인 성격과 인맥주의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축피아'라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축피아라면, 보다 더 규모가 큰 국제축구연맹(FIFA) 또한 일종의 마피아라는 것이 저자의 비판이다.
이 책에는 18년째 피파 회장 자리에 있는 블라터를 중심으로 한 피파 인물들의 스캔들이 서술되어 있다. 온갖 협잡과 음모,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피파의 모습을 읽다보면 피파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FIFA나 IOC 같은 조직들이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순수하게 스포츠만을 추구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아디다스의 호르스트 다슬러는 올림픽과 월드컵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IOC의 회장에 사마란치를, FIFA의 회장에 아벨란제를 앉히는 데 성공했다. 이후 스포츠 대회는 자본의 전시장이 되었는데, FIFA 회장에 블라터가 취임하면서부터 그러한 경향은 가속화되었다. 아무도 블라터의 연봉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라고 하니 FIFA의 불투명성은 알 만하다.
사실 생소한 고유명사가 너무 많이 등장하고, 잘 모르는 여러 스캔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여 잘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냥 막연하게 'FIFA도 부정부패가 만연한 곳이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최근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에 대한 뇌물 의혹이 뉴스에 올랐는데, 이 책에도 자세한 내막이 나와 있다.
그런데 생소한 고유명사들 속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으니,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정몽준은 블라터 FIFA 회장의 강력한 반대파라고 한다. 그런데 2002 한일월드컵 개최에 얽힌 정몽준 회장의 활약 또한 적혀 있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에 주어진 것을 돌아보자. 축구라는 경로를 통해 자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 일본과의 공동 개최를 위해 싸운 정몽준은 정말 많은 것을 월드컵에 투자했다. (중략) 피파 회장 아벨란제는 일본의 단독 개최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다행스럽게도 정몽준은 아벨란제의 사위를 공략할 수 있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테이셰이라를 이용해 아벨란제를 움직이려 했다. 이렇게 해서 테이셰이라는 1995년 상파울루 출신의 사업 친구 조제 아빌라와 함께 자동차업계에 진출했다. CBF 회장이 '현대'라는 자동차 브랜드의 브라질 영업권을 따냈다. (중략)
한국과 일본은 서로 선물하는 일이 없다. 틈만 나면 서로 비난하고 매수를 일삼는다. 1999년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윌은 지원국 일본이 위원들에게 랩톱과 같은 값비싼 개인 선물들을 뿌렸다고 확인했다. (274, 275)
어? 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문제는 의혹이 개최만이 아니라 한국전 경기에 대해서도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2002년 8월 25일, 아시아월드컵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파는 이탈리아 검찰의 고소에 직면해야만 했다. 월드컵에서 심판을 맡았던 비론 모레노가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고의적으로 탈락시켰다는 게 고소장의 내용이었다. 주최국 한국과 맞섰던 이탈리아가 이 경기에서 1대 2로 패했기 때문이다. 모레노의 석연치 않은 판정을 보면 이 에콰도르 출신의 심판이 정말 개최국에 유리하게 휘슬을 불었다고 믿을 구석이 많다. (중략) 한국은 두 번이나 그런 모호한 심판 판정 덕을 보았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8강전에서 한국이 만난 상대는 스페인이다. 다시금 명백한 오심이 월드컵 개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실제로 이런 오심이 의도적인 것인지 하는 물음에는 누구도 확실한 답을 할 수 없다. (210, 211)
이런 얘기는 일본 넷우익들이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글은 피파를 오랜 세월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가 제3자적인 입장에서 쓴 글이다. 물론 저자의 분석이 어느 정도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그때 한국의 16강전, 8강전 경기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저자의 의혹이 정당한 것인지 판단할 전문지식도 없다. 2006, 2010, 2014년 월드컵의 2승 3무 5패라는 한국의 성적을 보면, 히딩크 감독의 능력 외에 개최국 버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하긴, 정몽준 명예회장도 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에서 "세계축구연맹(FIFA) 책임자가 ‘한국이 준결승에 올라간 건 정몽준이란 사람이 월드컵 축구심판을 전부 매수해서 한 것 아니냐’라고 하는데 내 능력이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농담삼아 이야기했다고 하는 걸 보면(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603500044), 한국 외 나라들의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오가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빨간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던 나로서는 한국의 4강신화가 이렇게 의혹으로서 논해지는 걸 보니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가 만들어낸 열광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서 냉정하게 본 월드컵은 어떤 모습일까? 책의 말미에는 월드컵 때문에 교육, 복지 예산이 삭감되는 데 반발하는 브라질 사람들의 월드컵 반대시위가 언급되어 있다. 비록 2002년의 한국에서는 월드컵에 대한 반성 대신 열광만이 있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은 2002년 월드컵이 가진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지성 선수의 은퇴와 홍명보 감독의 사퇴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