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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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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치즘이라는 사상을 만들어낸 철학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문제적이다. 학문적, 역사적, 정치적으로 말이다.

 "철학적 지도자"를 자처했던 히틀러는 칸트, 헤겔, 실러, 피히테, 쇼펜하우어, 니체, 바그너의 사상을 짬뽕하여 나치즘을 만들었다. 유서 깊은 독일의 철학과 문학은 히틀러가 자신의 추악한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또한 실제로 칸트, 헤겔, 피히테, 바그너의 저작들에는 유대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드러나 있었다. 사회적 다윈주의를 수용한 헤켈, 귄터, 라가르데, 체임벌린 등은 노골적으로 게르만 인종의 우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히틀러와 나치 이론가들은 이들의 인종주의를 그대로 수용했다. 
 
 물론 히틀러 자신이 나치즘을 체계화할 만큼 철학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로젠베르크, 보임러, 크리크와 같은 철학자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모두 반유대주의를 신봉했고, 히틀러가 집권하고 나서는 독일의 학계에서 유대인 철학자들을 추방하는 데 앞장섰다. 1600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교수직에서 쫓겨났고, 그 빈 자리는 나치즘에 편승한 학자들이 차지했다. 나치에 동조한 철학자들 중에는 칼 슈미트와 마르틴 하이데거도 있었다. 슈미트와 하이데거는 보수적 사상은 가지고 있었지만, 원래는 나치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하고나자 나치당에 입당하고, 히틀러를 적극 지지하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제자이자 애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를 비롯해 많은 유대인 제자들과 친구들이 있었지만, 반유대주의자로 돌아섰다. 심지어 하이데거는 스승이었던 유대인 에드문드 후설이 교수직을 박탈당하자 절교를 선언했고,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스피노자를 비롯한 유대인 철학자들은 독일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배제되었다(정작 스피노자는 생전에 불신자라는 이유로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당했는데 말이다).

 수많은 유대인 철학자들이 프랑스, 혹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발터 벤야민, 테어도어 아도르노, 한나 아렌트, 막스 호르크하이머 등은 유명하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는 벤야민을 비롯한 망명자들과 이민자들을 "히틀러의 제5열"로 간주하여 수용소에 가두었다. 벤야민은 곧 풀려 났지만,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프랑스를 벗어나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하다가 피레네산맥에서 권총자살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아렌트는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채플린을 비롯한 헐리우드 배우들과 교류하던 아도르노는 미국에도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하는 파시즘과 반유대주의의 그림자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나치 철학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로젠베르크에게 교수형이 집행되었고, 주요 나치 철학자였던 보임러가 3년간 복역했을 뿐이었다. 한국에서는 독일의 과거청산을 일본의 과거청산과 비교하며 이상화하고 있는데, 적어도 나치 부역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듯하다.

 뉘른베르크 재판도 열렸고 연합국은 반나치 위원회를 설립해 노력도 했지만 독일인들이 직접 독일을 부흥시키는 작업을 넘겨받고 나서부터는 나치 부역자들의 과거 기록은 은폐되거나 세탁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표리부동한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부역 사실을 감추었고 부역 사실이 발각되더라도 지루하고 긴 법정 싸움으로 끌고 갔다. (341, 342)

 독일의 철학자들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치에 협력한 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협력을 강요당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몇몇 유대인 학자 그룹이 반발했지만, 독일 사회의 망각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1950년대에 동독과 서독의 대학에서는 과거에 나치당원이었던 사람들을 재임용하기 시작했"(346)던 것이다. 많은 나치 철학자들이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이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나치 철학자들 중에서도 거물이었던 하이데거와 슈미트는 전후에도 그 명성을 유지했다. 

 다른 나치 부역자들과 마찬가지로 슈미트는 자신의 역할과 나치 정권으로부터 받은 혜택을 실제보다 축소해서 얘기했다. 그는 법학자로서 제3제국을 위해 일해 달라는 강요를 받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가 쓴 나치 관련 출판물과 반유대주의적인 글의 양을 고려하면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협력했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348, 349)

 하이데거는 나치에 개입한 사실을 조작 축소했으며 유죄의 증거가 될 만한 저작과 강연을 정교하게 편집, 삭제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을 결백하고 관념적인 철학자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아렌트와 사르트르를 비롯해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은 하이데거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그의 천재성을 찬양했다. 하이데거는 자신이 끼친 피해에 대해 사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히틀러의 희생자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연민을 표명한 적도 없었다. (357)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철학자 개개인에 대한 일화나 전기들이 자세히 적혀 있어 흥미로웠다. 나치즘의 대두와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 상반된 선택을 한 철학자들, 예를 들어 하이데거와 아렌트, 슈미트와 후버의 일화를 보면,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유대인 학자들에게 망명과 잔류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말이다. 시대가 광기에 휩싸이고, 국가권력의 통제가 극단에 치달았을 때, 학자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시류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비단 나치스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나 군부독재 시대 한국의 학자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하이데거와 슈미트, 프레게 같은 나치 부역 철학자들이 오늘날에도 철학계에서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한다.

 영국과 유럽, 미국의 대학에서 슈미트와 하이데거의 사상이 전파되고 프레게가 교과목의 중심에 놓이는 상황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독일의 지적 유산에서 어두운 요소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많은 유대계 독일 철학자들이 주류 철학에서 소외받고 있는 것도 문제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배우고 있는 사상의 맥락을 감지하지 못하면서도 뭐가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과거 나치 연루 사실을 알게 되면 학생들은 그들에게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다. 철학은 '윤리학'에서 탄생했다. 그러한 이유로 철학자는 항상 철학의 불안한 궤적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376, 377)

 저자의 이러한 주장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작가와 작품은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라는 오래된 문제를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화사에 깊은 이력을 남긴 레니 리펜슈탈은 나치 프로파간다 영화 <의지의 승리>를 만든 극성 나치당원이었고, 노벨 문학상 작가 귄터 그라스 또한 나치 친위대에서 복무했던 경력이 문제가 되었다. 좀더 비근한 예로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일본 만화 작가나 애니메이션 성우의 "혐한" "넷우익" 발언이 알려지면서, 하루아침에 평판을 땅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작가와 작품은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옹호했다. 루소는 방탕한 성적 편력 끝에 낳은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다. 알튀세는 아내를 총으로 살해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알튀세의 사상을 모두 거부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가?

 과거 철학자들의 신념이나 행동에 윤리적 결함이 발견될 수는 있다. 이 책을 읽고 하이데거나 슈미트의 나치 경력을 옹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와 슈미트의 사상에 나치즘과 반유대주의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른 내용들도 있다. 하이데거와 슈미트의 행적을 근거로 하여 그들의 사상적 저작까지 단죄하는 것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저자가 하이데거와 슈미트의 행적뿐 아니라, 그들의 저작에 숨겨진 나치즘의 위험성을 지적했더라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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