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는 36가지 습관 - 아이의 좋은 습관을 위해 부모가 먼저 읽어야 할 가정교육 지침서
추이화팡.탕웨이훙 지음, 전인경 옮김 / 럭스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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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이라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갈수록 빡빡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으니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기가 무서워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낳아만 주면 자기 먹을 복은 타고 난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변한 것일까? 옛날처럼 줄줄이 아이를 낳지도 않고, 기껏해야 한둘만 낳고 보니 아이에게 더 얽매이는 것일까?

 

능력 없으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고 보니 돈 없고 빽 없어 힘든 시절을 겪은 우리네 부모들이 자녀들 교육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그렇다고 아이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챙겨 주고, 한군데라도 다칠세라 전전긍긍하고, 낯선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라고 하는 이들까지 이해되는 건 아니다. 거기다 무조건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외쳐대는 부모를 보면 도대체 당신이 부모 자격이 있냐고 퍼붓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언젠가,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아이가 학원을 다섯 개 이상 다니는 걸 보고 너무 안되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 엄마에게 왜 그렇게 애를 힘들게 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엄마는 도리어 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돈만 있으면 학원을 더 보내야지 한다. 그러면서 네가 아직 아이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애 낳고 나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란다. 그 말에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지 못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를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부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가 올바른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는 대신 아이 교육에만 매달리는 부모가 되고 싶진 않다. 절대 머리만 똑똑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기에 아이를 낳기 전, 수시로 자녀 교육에 관한 책들을 읽어 보며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이 책의 저자는 4가지 주제로 36가지의 습관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36가지의 습관을 들여다 보면 전혀 새로울 건 없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선생님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 오던, 잔소리라고만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정직하고 예의가 발라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예습, 복습을 잘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다. 이웃과 돕고 살아야 한다 등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려 보내며 마냥 귀찮게만 여겼었다. 부끄럽지만 어른들의 말에 귀 기울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때 어른들 말씀에 더욱 더 귀를 기울였다면 나의 인생이 조금은 변하지 않았을까 은근히 후회가 된다물론, 지금도 늦지 않았을거란 희망이 있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거란 자신감이 있으니 후회만 하고 있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꺼운 책이라 진도가 쉬이 나가지 않을거라 짐작했는데, 주변에서 흔히 겪는 일들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인들의 경험을 들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덮어두어야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는 게 힘들고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하는지 선뜻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수시로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아이를 나무라기 이전에 부모가 먼저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자녀 교육에 힘쓴다면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신세 타령은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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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달걀 샘터어린이문고 6
벼릿줄 지음, 안은진.노석미.이주윤.정지윤 그림 / 샘터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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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혼혈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이다. 그 당시 한 학년 위의 뽀얀 얼굴에 노란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꽤 잘생겼던 선배가 한명 있었는데, 그는 학교에서 이미 유명인이었다. 아마도 미국계 혼혈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창 미국 그룹인 뉴키즈 온더 블록에 심취해 있던 우리들에게 그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학교내 그의 별명은 튀밥이었는데, 혼혈을 뜻하는 튀기라는 단어에 머리 모양이 곱실곱실한 밥을 연상케 한다 하여 누군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는 그 별명에 그다지 괘의치 않았던 모양인데, 그를 남몰래 흠모하고 있던 나와 내 친구들은 크게 분노했다. 그리하여 그 선배에 관해서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놀려대던 남자 아이들과 항상 투닥거리곤 했다. 그렇게 그는 여자 아이들에겐 흠모의 대상이 되었고, 남자 아이들에겐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만약 그가 잘생긴 외모의 백인계 혼혈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우리들이 그를 흠모하였을까? 그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던 남자 아이들은 과연 그를 그냥 내버려뒀을까? 까만 달걀을 읽고 이런 물음을 던지고 나서야 혼혈에 대해 내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백인을 우월한 인종이라 여기며 동경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같은 유색인종이면서도 불구하고 흑인이나 가난한 나라에 사는 이들에 대해서는 경멸과 모멸에 찬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고는 하나, 이들의 피와 외모를 물려받은 아이들에 대해 고운 시선을 던지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중에서도 혼혈인이 많다보니 그들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편견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특정한 유명인에 대한 일시적 관심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까만 달걀에 나오는 다섯 아이들의 이야기만 살펴보더라도 그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필리핀 엄마의 시원찮은 발음에 창피한 아랑이, 까만 피부를 살구색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는 재현이, 베트남에서 외톨이로 지내다 아버지를 찾으로 한국으로 온 경주, 태국인 엄마의 외모를 닮아 튀기라 불리는 왕따 경민, 조센징이라 놀리는 일본을 피해 한국으로 왔지만 한국에서도 쪽바리라 놀림 받는 달이. 이 아이들은 우리들의 무심한 한마디 한마디에 눈물을 삼키고, 우리들의 안이한 행동 하나 하나에 설 곳을 잃어간다. 창피해야 하는 건 이 아이들이 아니라 그들을 차별하는 우리들이다.

국제화와 세계화를 외쳐대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국제 결혼이 많아졌지만 혼혈아에 대한 차별은 여전한 것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중적 행동에 슬며시 화가 난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래서 그들이 마음놓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꾸고, 혼혈아 대신 다문화가정 자녀, 온누리안 등으로 명칭을 바꾸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그들을 마땅찮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을 이방인처럼 대하는 아이들의 행동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잘못을 안다고 하더라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알고 있다는 거에만 그치지 말고 행동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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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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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달콤하지 않다는 걸 반어법으로 표현한 걸까? 아니면 정말 달달한 이야기일까? 나의 도시라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려는 걸까? 아니면… 이렇듯 사소한 의문에 매달려 있는 나를 권신아의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색감의 그림이 유혹하며 어서 책을 펼쳐 보라 재촉한다.

오은수는 옛 애인의 결혼식 날, 피가 거꾸로 치솟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리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같은 날 저녁, 친구들과 옛 남자친구의 결혼을 애도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두 번째 날벼락을 맞는다. 결국 그녀는 늘 함께였던 친구의 예상치 못한 결혼 선언에 무너져 내리고야 만다. 그녀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다. 자신의 인생에 ‘원나잇 스탠드’는 없다며 살아온 그녀였지만 파릇파릇한 24살의 청년 태오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 후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그와 연애라는 걸 시작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하지 못한다. 그래서였을거다. 맞선을 권하던 안이사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것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삶의 모태인 평범한 남자 김영수와 평범한 결혼을 위해 평범한 연애를 선택한 그녀였지만, 태오를 과감히 뿌리치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그녀는 결국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에 대항하지 못한 채 두근거림과 설레임을 느끼게 한 사랑 대신 안정적이고 평범한 미래를 선택한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진행된 그와 김영수의 결혼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세상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 안에 소속되지도 못한 채 그녀는 겉돌기만 한다. 연애와 결혼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고 있는 그녀는 우리 사회의 거친 단면을 보여준다. 오은수의 고민은 곧 나의 고민이며, 우리 모두의 고민일 수 밖에 없다. 때가 되면 학교를 가야 하고, 직장에 다녀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애를 나아야 한다. 나는 대체 그 '때'라는 것을 누가 정했으며, 왜 거기에 옭매여야 하는지 답답기만 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시인한다. 그들이 사회적인 통념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살얼음을 걷고 있듯이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사고 방식에 완전 동의할 수는 없을 듯싶다. 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을 때 안전하게 하자는 식의 섹스 규칙까지 세워 놓고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그녀들의 모습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의 세태에 그런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임을 부정하지는 않으니 이해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 나 역시 요즘 사람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테다. 하지만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한 행위 자체를 당연시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니 보수적이니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다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 전반에 걸친 섹스에 관한 노골적이고 솔직한 대화는 야하다는 느낌보다 유쾌하고 발랄한 수다를 듣는 것 같이 가볍다. 하지만 정이현의 글은 전혀 가볍지 않다. 여러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이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통념 속에서 사람들은 갈등하고 번뇌할 수 밖에 없음을,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인생은 흘러가기 마련임을 그녀는 역설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이 책도 어떠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세상과 타협을 하든, 대항을 하든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 가는대로 인생을 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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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아드 -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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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을 다녀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죽음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죽음이 뜻하는 수많은 의미에 대해 알게 됐고 또한 알아 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까마득한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아들에게 써 내려간 편지인 길리아드를 읽으며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함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안개가 조금은 걷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른 여섯 살의 제임스 목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는 평온한 모습으로 느지막이 얻은 일곱 살 난 아들에게 담담하면서도 애틋함이 묻어나는 문체로 진솔한 이야기를 건넨다. 할아버지부터 3대째 목사였던 집안의 내력, 온건한 평화주의자 아버지와 노예해방운동에 투신한 현실주의자인 할아버지간의 갈등을 통한 인종차별과 세대간의 극심한 대립, 아버지와 형의 종교적 갈등, 자신의 직업에 대한 고뇌와 갈등 등 가족간의 사랑, 갈등, 좌절과 희망의 이야기를 일기를 쓰듯 편안하게 들려준다. 그의 편지를 읽다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부하는 교훈적이고 지루한 이야기나 아들에게 바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그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어린 아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하루 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느끼게 해주며, 또한 자신과 가족이 저지른 지난 날의 과오를 어린 아들이 다시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아들이 이 세상을 지혜롭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해 주는 아버지의 훌륭한 가르침에 그의 아들이 된 양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줘라’ 는 말처럼 제임스 목사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며, 아들 스스로가 자신만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면서 아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탄탄한 토대를 마련해준다.

읽는 내내 마치 다른 사람의 고해성사를 듣는 듯한 엄숙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으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있는 상태라 그런지 책 읽는 속도는 상당히 더디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다 보니 쉽게 집중할 수 없을 뿐더러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차지하고서라도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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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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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분명 편안한 소파 위에서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책을 펼쳐 들었었는데… 꿈이라도 꾸고 있는걸까? 눈앞이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차는가 싶더니 푸르른 숲이 우거진 비포장길 위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여기가 어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길 양편에는 일반 집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사람은 커녕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동안 부지런히 길을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비포장길을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무심코 쳐다본 곳에 예전에 내가 즐겨 다니던 산책로가 있다. 낯익은 곳을 발견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걸음을 옮긴다. 쿵~, 내 몸이 순간 공중에서 정지하는가 싶더니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아픈 이마를 부여잡고 두리번거렸지만 대체 어디에 부딪힌 건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투명한 유리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두려움에 그곳으로 다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한참을 걸으니 맞은 편에서 물소수레를 끈 앳된 청년과 아이 둘이 걸어온다. 낯선 길로 들어선 후 처음 보는 사람이라 두려움 대신 반가움이 인다. 저기요~ 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안해 하는 나를 그저 스쳐 지나간다. 오기가 솟은 나는 뒤돌아 그들을 뒤쫓아가며 연신 말을 건넨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제서야 이 상황이 어렴풋이 이해 되기 시작한다.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니, 나오키상 후보작이니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야시를 읽던 중이었다. 책을 펼쳐듬과 동시에 다른 세계로 발을 내디디게 됐나 보다. 그렇다면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결국 주인공일게 뻔한 그들을 따라 가보기로 마음 먹는다. 줄곧 앞을 향해 걷기만 하는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청년의 이름이 렌이며 고도라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과, 길을 잃은 아이 둘을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출구를 함께 찾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을 따라다니며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지만 괴기스럽기도 한 경험을 하고 보니 내가 원래 있던 곳이 어디인지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조차 모호해졌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할 즈음 또 다른 세상이 다가왔다. 뭔가를 사지 않으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곳, 야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물건도, 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 -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약, 재능을 살 수 있는 약, 사람의 목 등 - 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 살 수도, 돈에 맞춰 선택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든 하나 이상의 물건을 사야 하고, 자신이 산 물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을 사야 할까? 늙지 않는 약? 살이 찌지 않는 약? 영원한 생명? 전부 구미를 당기는 것들뿐이라 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게다가 물건을 사기 위한 대가로 뭔가 내놓아야 하는데 내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떡한다? 아~ 아니다, 책 밖의 사람인 내가 굳이 물건을 살 필요는 없다. 이 책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돌아갈테지? 혼자 고민하고 있노라니 인간 아이를 파는 가게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자와 어린 남녀가 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오호라,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보네. 그들의 흥미진진한 흥정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 남자가 검을 빼든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순식간에 온 세상이 캄캄해진다.

다시 내가 속해 있는 세계로 돌아오니 책을 읽은건지, 꿈을 꾼건지 도저히 분간이 되지 않는다. 소름끼칠 정도의 기상 천외한 두 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놀라움과 안타까움, 거듭되는 반전에 혀를 내둘렀다. 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의 깔끔한 문체와 알찬 내용에 감탄도 절로 나왔다. 고도와 야시를 여행하는 동안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다.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 온 상상력에 날개가 돋힌 듯 여러가지 생각들이 밀려 들어와 읽는 내내 즐거움의 비명을 질러야 했다. 호러소설이라 하기엔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사연들이 많았지만, 그러한 것도 어쩌면 호러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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