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달걀 샘터어린이문고 6
벼릿줄 지음, 안은진.노석미.이주윤.정지윤 그림 / 샘터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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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혼혈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이다. 그 당시 한 학년 위의 뽀얀 얼굴에 노란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꽤 잘생겼던 선배가 한명 있었는데, 그는 학교에서 이미 유명인이었다. 아마도 미국계 혼혈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창 미국 그룹인 뉴키즈 온더 블록에 심취해 있던 우리들에게 그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학교내 그의 별명은 튀밥이었는데, 혼혈을 뜻하는 튀기라는 단어에 머리 모양이 곱실곱실한 밥을 연상케 한다 하여 누군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는 그 별명에 그다지 괘의치 않았던 모양인데, 그를 남몰래 흠모하고 있던 나와 내 친구들은 크게 분노했다. 그리하여 그 선배에 관해서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놀려대던 남자 아이들과 항상 투닥거리곤 했다. 그렇게 그는 여자 아이들에겐 흠모의 대상이 되었고, 남자 아이들에겐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만약 그가 잘생긴 외모의 백인계 혼혈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우리들이 그를 흠모하였을까? 그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던 남자 아이들은 과연 그를 그냥 내버려뒀을까? 까만 달걀을 읽고 이런 물음을 던지고 나서야 혼혈에 대해 내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백인을 우월한 인종이라 여기며 동경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같은 유색인종이면서도 불구하고 흑인이나 가난한 나라에 사는 이들에 대해서는 경멸과 모멸에 찬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고는 하나, 이들의 피와 외모를 물려받은 아이들에 대해 고운 시선을 던지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중에서도 혼혈인이 많다보니 그들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편견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특정한 유명인에 대한 일시적 관심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까만 달걀에 나오는 다섯 아이들의 이야기만 살펴보더라도 그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필리핀 엄마의 시원찮은 발음에 창피한 아랑이, 까만 피부를 살구색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는 재현이, 베트남에서 외톨이로 지내다 아버지를 찾으로 한국으로 온 경주, 태국인 엄마의 외모를 닮아 튀기라 불리는 왕따 경민, 조센징이라 놀리는 일본을 피해 한국으로 왔지만 한국에서도 쪽바리라 놀림 받는 달이. 이 아이들은 우리들의 무심한 한마디 한마디에 눈물을 삼키고, 우리들의 안이한 행동 하나 하나에 설 곳을 잃어간다. 창피해야 하는 건 이 아이들이 아니라 그들을 차별하는 우리들이다.

국제화와 세계화를 외쳐대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국제 결혼이 많아졌지만 혼혈아에 대한 차별은 여전한 것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중적 행동에 슬며시 화가 난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래서 그들이 마음놓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꾸고, 혼혈아 대신 다문화가정 자녀, 온누리안 등으로 명칭을 바꾸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그들을 마땅찮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을 이방인처럼 대하는 아이들의 행동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잘못을 안다고 하더라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알고 있다는 거에만 그치지 말고 행동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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