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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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니까 크리스마스 이야기 읽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읽었다. 매년 나홀로집에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던 기분으로. 냉소적인 연애 이야기의 달인 김금희 작가는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이라는 한국인다운 설정의 연애실패자들 연작을 썼다. 쓸쓸하고 외로운데 그게 자연스러운 등장인물들 사이에 생명과 온기가 있는 캐릭터들은 꽤 고군분투한다. 큰 소리로 웃고 아프다고 소리 지른다. 나는 아직도 뜨거운 사람들이 뭉클하다. 시끄럽고 부담스럽고 불편하지만 애틋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다.

이제 엔딩을 신경 쓰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이야기의 끝이 끝이 아님을 아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결혼도 육아도 이별도 끝이 아니다. 생의 어느 순간일 뿐.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서 끝이 궁금해진 작품이 있었다. 하바나 눈사람 클럽. 차에서 내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주찬성이었으면. 수 많은 첫사랑들이 나왔지만 그 첫사랑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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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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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세 개는 아니고 세 개 반.. 네 개는 아닌 듯해서.

대를 이은 여성의 이야기는 시선으로부터를 생각나게 하는데 심시선 여사의 통통 튀는 삶이 이후 자녀들의 삶을 다양하게 뻗어가게 하는 밑거름이 된 반면 밝은 밤의 여성들은 4대에 걸쳐 지지리도 박복하고 칙칙하다. 누구 하나 원하는대로 살지 않고 세간의 구설에 오르며 인내하며 살아간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같이 못난 남편들만 골랐던 매력적인 그녀들은 또 하나같이 딸 하나씩만 낳는다. 아직도 흔적을 채 지우지 못한 가부장의 세상에서 그녀들을 꼭 그리 그려야했을까. 아직도 드라마에선 고생하는 그녀들의 보상으로 유복하고 다정한 남편과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주는 시대인데.

그리고 역시나 최은영 작가는 관계 단절 묘사의 장인이시다. 다른 단편, 중편에서와 달리 장편에서는 단절의 이유를 설명해주고 삶이 너무 힘들어서인지 상실의 고통은 짧았으며 긴 생에 다시 해후한다. 나는 중단편의 이야기가 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나의 올해의 작가는 최은영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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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tripo 2023-12-2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 네 개로 수정. 홍학의 자리에 별 세 개를 주고 밝은 밤을 별 세 개를 줄 수는 없다. 내 기준 별 반 개 차이지만 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다. 북플은 별점 반 개도 만들어달라!

페넬로페 2023-12-28 19:01   좋아요 1 | URL
정말요
반개짜리 별점이 필요해요^^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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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이상적 남성은 진정 외계인 뿐인가.

사실 경민의 고백을 딱히 의심하지 않는 한아를 보고 이것은 sf가 아니라 판타지군 했다. 그런데 언젠가의 기억이 떠오르더라.

어떤 이의 지극한 사랑을 깨달았을 때, 이런 사랑을 받고 있음을 털어놓으니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 마음에 진지하게 응답할 당신을 찾아낸 것이 그의 능력이라 말해주었다. 그럴 사람을 찾아냈기에 온통 사랑할 수 있는 것임을. 경민이 우주에서 한아를 찾아내고 그것이 한아였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본 만화(아마도 유시진 작가)에서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같은 마음인 것은 ˝우주적인 이벤트˝라 했다. 그 우주적 이벤트를 기쁘게 읽은 기분이었다.
한아가 참 사랑스러웠다. 지구에서 한아만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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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내가 잃은 것은 기만을 버리지 못한 인간이었지만, 그가 잃은 건 그런 사랑이었다. 누가 더 많은 것을 잃었는지 경쟁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경쟁에서 나는 패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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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는 어떤 부끄러움을, 얼굴이 온통 붉어지고 어깨까지따끔거릴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시였다.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하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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