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뜰에서 거닐던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이 감동을 느낄 요소들이 분명히 있었으나 나는 서글펐다. 소네치카에게 구질구질한 생계의 짐을 지우고 예술 혼을 펼치는 가족에게, 유년부터 노년까지 군림하는 모친을 모시고 그에게서 가족을 지키려 애쓰다 죽음에 이르는 안나에게. 아무리 40년대생이 쓴 90년대 초반의 소설이지만 입이 썼다. 특히 소네치카는 애초에 남편과 동반자적 관계였지 예술혼을 존경해서 맺어진 것도 아니지 않나, 동업자의 배신에는 걔 잘되라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손절이 맞지 싶다. 결국 우울한 가정을 마지막까지 지키며 문학의 세계로 도피하는 소네치카 진정 슬프다. 가장 행복할 때 책은 왜 없는 것인가? 그나마 남편이 어린 애인을 뮤즈로 만든 작품들이 비싸게 팔렸다는 사실이 병아리 눈물만큼의 위안을 준다. 늙고 못된 남편의 사죄는 돈으로 하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