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이 되고 싶어 (0차원 에디션)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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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필력이란. 이 작품에 대한 혹평을 상당히 듣고 시작했는데 시작한 순간 새벽곀 깜빡 졸면서도 책장을 손에 쥐고 있을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그의 소설 주인공은 대부분 퀴어이며, 모든 주인공들이 마치 작가 자신의 자전적 캐릭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입체적이다.

유기하고 싶은 흑역사의 기억. 왜 하필 중2였으며, 왜 하필 모두가 들떠있던 시기였을까. 나는 왜 그렇게나 그를 좋아했을까.

싸이월드의 추억을 다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차마 로그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의 나는 자주 울었고 자주 사람을 만났으며 자주 글을 썼다. 그 솔직한 나의 흔적을 마주하는 것이 아직도 두렵다. 주인공은 누구나처럼 치열한 사춘기를 보내며 아파하고 희열을 느끼고 감춘다. 솔직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모두 아파했다.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일까. 이미 안정적인 상대와 가정을 이루고 충만한 사랑을 받고 있는 지금도 다른이의 목소리에 귀를 세우고 예민해져있진 않을까? 인간의 얼굴은 다양하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얼굴은 쌩얼로 보이는 풀메이크업 페이스다. 내 잡티를 간신히 가렸다 생각했는데 이를 헤집는 나를 꼭 닮은 존재는 외면하고 싶고 회피하고 싶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윤도의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다 했는데 작가는 비교적 친절하게 윤도의 감정을 기술해주었다. 해리는 윤도의 들키고싶지 않았던 민낯이었고 보답받지 못한 애정으로 인한 질투는 또다른 두 친구들의 민낯이었다. 확인하기조차 두려워 막연히 묻어두었던 흑역사를 마주할 때, 주인공은 과거의 내가 절절히 사랑했던 그가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나이다. 해리처럼 음습하고 꾸밈으로 점철되었으나 결코 감추지 못했던 마음을 꺼내 살짝 볕을 쬐어봤다.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내 아이는 해리나 윤도, 태리, 희영이 아닌 무늬나 태란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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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무늬는 참 건설적인 사람이었다. 의지만으로 쉽게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괴물조차 능숙하게 다뤄, 미래를 위한 재료로 삼을 줄 아는것, 십대에게서는 좀체 찾기 힘든 덕목이었다. 그것은 의지보다는 지능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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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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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써진 제목을 뻔히 보면서도 이상하게 나인티 피플이라 말하곤 했다. 읽어보니 주요 인물이 90명 쯤 나오는 소설인 것 같다. 정세랑 작가는 역시나 상황 설정이나 말을 끌고가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이런 형식의 글을 세 권 쯤 읽고 나니 재미난 숏폼 영상을 본 것 같았다. 긴 호흡의 소설에서 아쉬움을 느꼈던 적이 있어서 더 그런듯. 그래도 나는 정세랑 작가가 좋다.

쉰 다섯개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꿈틀댔다. 가난하고 험한 삶을 살다 가는 사람들, 무난하고 선한 삶을 살다 가는 사람들, 어쩌면 거주지나 직업, 이름마저도 이럴까. 이건 리얼리즘일까. 그렇지만 작위적이고 따뜻한 엔딩은 또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내 가슴에 남은 스토리나 주인공의 대사가 많고 많지만 이상하게도 허무하고 억울하게 죽거나 다쳐버린 사람들이 자꾸 기억난다. 가난하고 짐이 많았던 사람들. 승희나 헌영.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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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렇게 변하면 어쩌지? 엉뚱한 대상에게 화내는 사람으로?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지쳐서 변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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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페미니스트 납셨네."
"페미니스트를 욕으로 쓰는 것도 교양이 부족하다는 증거예요."

하품이 옮는 것처럼 강인함도 옮는다. 지지 않는 마음, 꺾이지 않는 마음, 그런 태도가 해바라기의 튼튼한 줄기처럼 옮겨 심겼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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