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효율은 일종의 예산budget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재무예산은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파악한다. 당신의 몸을 위한 예산 역시 이와 비슷하게 수분, 염분, 포도당과 같은 자원들을 얼마나 얻거나 잃었는지 파악한다. 수영이나 달리기처럼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위는 당신의 계좌에서 자원을 인출해가는 것과 같다. 먹거나 자는 것처럼 에너지를 보충하는 행위는 예금하는 것과 같다. 이는 단순화한 설명이지만 몸을 운영하려면 생물학적 자원이 필요하다는 핵심 개념을 잘 담아내고 있다. 당신이 취하는(또는 취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경제적 선택이다.
- P25

이러한 신체예산을 과학에서는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라고 한다. 알로스타시스란 몸에서 뭔가 필요할 때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동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을 뜻한다. - P27

인간의 뇌에 새로운 부분이란 없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다른 포유류의 뇌에도 들어 있으며, 다른 척추동물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발견으로 삼위일체의 뇌 가설의 진화적 토대는 흔들린다. - P47

그러니 당신에게는 도마뱀 뇌도 감정적인 야수의 뇌도 없다. 감정만 전담하는 변연계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이름부터가 잘못 붙여진 신피질은 새로 나타난 부분도 아니다. 많은 척추동물이 동일한 신경세포들을 발달시켰으며, 몇몇 동물의 경우 결정적 단계가 충분히 오래 지속되면서 이 세포들이 대뇌피질을 형성하는 것이다. 인간의 신피질, 대뇌피질, 또는 전전두피질이 이성rationality의 근원이라고 선언한다든가, 전두엽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이른바 감정적인 뇌 영역을 조절한다는 이야기에 관해 당신이 읽거나 들은 모든 것은 시대착오적이거나 한심할 정도로 정확하지 못하다. 삼위일체의 뇌라는 발상과 감정 및 충동과 이성 간의 싸움에 관한 서사는 현대의 신화, 근거 없는 통념이라 할 수 있다. - P49

우리의 뇌 네트워크는 항상 켜져 있다. 신경세포들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외부세계의 뭔가가 자신들을 켜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모든 신경세포는 ‘배선wiring’을 통해 서로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그들의 의사소통이 외부세계나 당신의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더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는 있지만, 이 의사소통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 P62

고도로 복잡한 인간의 뇌가 진화의 정점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기억해두라. 우리 뇌는 다만 우리가 거주하는 환경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 - P75

관심공유는 아이에게 환경의 어떤 부분이 중요하고 어떤 부분은 중요하지 않은지를 조금씩 가르친다. 그러면 아이의 뇌는 신체예산과 관련이 있는 것과 무시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자기 환경을 구성해갈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환경을 ‘적소niche’라고 부른다. 모든 동물에게는 자신의 적소가 있다. 세상을 감지하고 쓸모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신체예산을 조절하면서 자신의 적소를 만들어간다. 성인 인간은 거대한 적소를 갖고 있다. 아마도 생물들 중에서 가장 클 것이다. 당신의 적소는 인접한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과거 · 현재 ·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까지 포함한다. - P88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게 여러 세대에 걸쳐 빈곤이 지속될 때 사회는 너무 쉽게 유전자를 탓한다. 하지만 그 집단 아이들의 뇌는 빈곤에 의해 형성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P96

예술작품, 특히 추상미술은 인간의 뇌가 경험하는 것을 구성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입체파 그림을 보고 어떤 인간의 형태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뇌에 인간의 형태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 추상적인 요소를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화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예술가는 예술 창작 작업의 절반만 수행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머지 절반은 보는 사람의 뇌 안에 있다. (예술가와 철학자들은 이것을 ‘관람자의 몫beholder’s share’이라고 부른다.) - P108

신경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한다. 당신의 일상적 경험이란 외부 세계와 당신의 신체가 주는 제약을 받지만,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뇌가 구성하는 ‘주의 깊게 제어된 환기hallucination’라고 말이다. 물론 당신을 병원으로 보내야 할 종류의 환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모든 경험을 만들어내고 모든 행위를 안내하는 일상적인 환각이다. 이것은 뇌가 감각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상적인 방법이며, 당신은 이런 과정이 일어나는 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 P110

그렇다. 뇌는 당신이 인식하기 ‘전에’ 행동들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이는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선택을 통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가? 최소한 그렇게 보인다. 예를 들어 당신은 이 책을 열어서 글자들을 읽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뇌는 예측기관이다. 뇌는 당신의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을 기반으로 다음에 이루어질 일련의 행동을 개시하며, 이러한 일들은 당신의 인식 없이 이루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행동은 당신의 기억과 환경의 제어를 받는다. 이것이 당신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까? 누가 당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할까? - P116

어떤 행동이 자동화된 것은 당신의 뇌가 갖가지 행동을 개시하는 각기 다른 예측을 하도록 스스로 세부조정하고 가지치기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의 세상을 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자유의지의 한 형태다. 아니면 최소한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자기 자신을 노출시킬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행동이 자동화된 것은 당신의 뇌가 갖가지 행동을 개시하는 각기 다른 예측을 하도록 스스로 세부조정하고 가지치기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의 세상을 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자유의지의 한 형태다. 아니면 최소한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자기 자신을 노출시킬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책임’은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비극이나 그 결과로 경험하는 역경에 대한 책임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접할 모든 상황을 선택하지 못한다. 우울증, 불안증, 또는 그 외에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때로는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P121

신체예산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공감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때 우리 뇌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한다. 상대방과 사이가 가까울수록 우리 뇌는 상대방의 마음고생에 대해 더 효율적으로 예측한다. 마치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전체 과정이 명확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상대방에게 공감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배워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러려면 신체예산에서 더 많은 자원을 인출하게 되므로 우리는 불편해질 수 있다. - P130

신경계는 단지 거리뿐만 아니라 수세기 전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성경이나 쿠란 같은 고대 문헌에서 위로받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들에게서 신체예산을 지원받은 것이다. 책이나 영상, 팟캐스트는 당신에게 온기를 줄 수도 있고 소름 돋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단순히 말만으로도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물리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신경계를 빠르게 변경시킬 수 있다. - P132

말은 인체를 조절하는 도구다. 다른 사람의 말은 당신의 뇌 활동과 신체계통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당신의 말 역시 타인들에게 똑같은 영향을 끼친다. 그 효과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연결된 방식이다. - P134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당신을 모욕한다 해도 한 번이나 두 번, 심지어는 스무 번째까지도 당신의 뇌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몇 달간 지속적으로 언어폭력에 노출되어 신체예산이 계속해서 인출되는 환경에 살고 있다면 말은 실제로 뇌에 물리적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눈송이처럼 유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경계는 좋든 나쁘든 타인의 행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 P136

나는 인간의 마음이 백지상태blank slate여서 선천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우리 모두 환경이 하라는 대로 되어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또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뇌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며 하나의 보편적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종류의 마음이란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별개의 뇌 영역들로 구성된 가상의 뇌 구조, 주머니칼 브레인에서 만들어질 법한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가 아닌 세 번째 가능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다양한 종류의 마음을 구성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배선될 수 있는 기본 뇌 계획basic brain plan을 갖고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 P149

어떤 종류의 마음도 다른 어떤 마음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거나 나쁘지 않다. 다만 환경에 더 잘 적응한 변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마음에 관한 한 변이가 있는 것이 정상이다.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다수의 인간 본성을 말한다. 하나의 보편적인 마음이 있어야 인간이 하나의 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스스로를 연결시키는 매우 복잡한 두뇌뿐이다. - P160

사회적 현실은 또한 커다란 책임을 동반한다. 사회적 현실은 너무 강력해서 우리 유전자의 진화 속도와 과정을 바꿀 수 있다.
사회적 현실에서 정말 놀라운 점은 우리가 그것을 만든다는 사실을 종종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자신을 오해하고 사회적 현실을 물리적 현실로 착각해 온갖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모든 동물 종처럼 엄청나게 다양하다. 하지만 동물 왕국의 다른 부분들과 달리 우리는 이 변이들을 인종, 성별, 국적처럼 작은 상자들에 이름표를 붙여 정리해 넣는다. 이러한 이름표가 붙은 상자들은 사실상 우리가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취급한다.
이를테면 ‘인종‘이라는 개념에는 종종 피부색과 같은 신체적 특성들이 포함된다. 하지만 피부색이라는 요소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연속체이며, 색조 한 세트와 다른 세트 사이의 경계는 한 사회의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된다. 어떤 이들은 유전학에 호소해 그 경계를 정당화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피부색이 유전자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눈 색깔, 귀 크기, 발톱의 곡률 또한 마찬가지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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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악어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만 산다는 건 정말일까?

오렌지 나무 속에 들어 있는 햇빛을
오렌지들은 어떻게 분배할까?

소금의 이빨들은
쓰디쓴 입에서 나온 것일까?

검은 콘도르가 밤에
우리나라 위로 난다는 건 정말일까?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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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 최고의 독자는 작가 자신이 아닐까. 취향 강조, 호불호에 대한 과시적 자기암시의 반복, 자기방어적인 모두까기. 가장 질리는 건 옹졸한 냉소주의다(20대의 나였다면 열렬히 호응했겠지만). 우연히 잡지에서 읽게되는 토막글이라면 모를까, 한 권으로 모아놓은 글들은 전혀 즐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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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1-06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기방어적인 모두까지. ㅎㅎㅎ 좀 피곤한 독서가 되신 것 같다는 느낌. 저는 패스.

dollC 2021-11-06 17:19   좋아요 1 | URL
피곤한 독서가 딱 맞는 표현이네요😀 까는 건 좋지만 까이고 싶진 않아 핑계를 만드는 건 너무 궁색해 보였거든요.
 
데이비드 보위의 삶을 바꾼 100권의 책
존 오코넬 지음, 장호연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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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사놓고 챕터 세개도 못 읽었는데 번역서가 나왔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사전으로 더듬거리는 수고로움에 비한다면 비싼 책 값은 관대히 웃어 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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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26 1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돌씨님 저도 이책 찜!👆
데이빗 보위가
이토록 책을 많이 읽었다니!!

dollC 2021-10-26 12:06   좋아요 3 | URL
보위가 박학다식해서 무슨 주제건 대화에 막힘이 없었다고 하죠.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 같아요👍
 
아더 마인즈 - 문어, 바다, 그리고 의식의 기원
피터 고프리스미스 지음, 김수빈 옮김 / 이김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생명의 진화로 시작해 인간과 두족류의 신경계 진화 과정으로, 이어서 의식의 기원을 엿보다 환경문제로 마무리. 한 우물만 팠더라면 좋았을텐데. (이 책 덕분에 문어와 대왕갑오징어에 대한 애정이 싹트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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