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음의 불편함>

에밀 시오랑. 이것은 그의 아포리즘, 그 만이 느끼고 알 수 있다. 

타인에게 전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쓰지 않으면 안되기에 쓰였으며, 특정한 대상을 알수 없는 -미지의 독자를 향한  글이다. 짧은 경구는 비관주의일수도 허무주의이거나 시처럼 읽혀질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막연함에 반대한다.
















<뉴요커의 조지 스타이너>


‘신랄한 간결함의 대가인 니콜라 드 샹포르는 한 줄 반짜리 경구를 보고 더 짧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경구, 아포리즘, 금언은 사고의 하이쿠다. 그것들은 최대한 적은 어휘에 예리한 통찰을 압축해 담고자 한다.’

p319


’여기서 핵심은 ‘손쉬운’이다. 시오랑의 통탄 전체에 그런 불길한 ‘용이함’이 있다. 인간의 ‘타락’과 ‘부패’를 고매하게 비난하는 데는 일관된 분석적 사고도, 명확한 논지도 필요 없다. 내가 인용한 문장들은 쓰기도 쉬웠고, 신탁과 같은 어두운 분노로 작가를 ‘우쭐하게’ 만든다.‘

p326


조지 스타이너의 여러 글 중 에밀 시오랑의 챕터가 있어 반가웠다. 드디어 뭔가 아는 작가가 나왔구나ㅎㅎ

역시나 냉철한만큼 예리하게 파고드는 글에 매혹된다. 
















<나의 쓰지 않은 책들>

조지 스타이너의 책 중 그나마 가장 접근성이 좋았던 책. 에세이 형식을 띄고 있어서 심리적 장벽이 낮은 편이지만, 작가의 명민함과 예리함, 폭넓은 지식과 독창적 사고는 여전하다.
















<인간이라는 직업> 고통에 대한 숙고


‘다만 고통에서 뭔가 얻어내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얘기다! 에밀 시오랑이 한줄기 빛을 던져준다. “고통은 눈을 뜨게 하고, 고통이 아니었다면 인식하지 못했을 것들을 보도록 도와준다. 그러니 고통은 오직 앎에 쓸모 있을 뿐이며, 앎을 벗어나면 실존을 악화하는 데만 쓸모가 있을 따름이다”라고.’

p70


출생시 탯줄이 목에 감기는 사고로 뇌성마비를 갖게 된 작가 알렉상드르 졸리앵. 질식사는 면했지만 극심한 장애로 유아기부터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요양 시설에서 지냈다. 태어나서 단 한 순간도 어려움이나 문제에 부딪히지 않고 지나간 적이 없었다는 그. 삶에 대한 열정과 깊은 고찰이 그의 생생한 목소리로 가슴 깊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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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하고 수다스럽고 지독하게 유식하다.


오랜 동안 품절되어서 더 궁금했던 책이다. 이전 번역본은 <우울증의 해부>.

현대 의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자기 계발 등등 모든 분야의 서적이 차고 넘치는데 오래전 출판된 이 책이 왜 그토록 궁금했겠나. 솔직히 작가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 작가 소개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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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1599년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Christ Church College)에 연구조교(scholar)로 임용된 이후 가난하지만 한가로운 이 자리를 죽을 때까지 지켰다. 일생 동안 여행도, 결혼도 하지 않았고, 어떤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달성하지도 못했다. 오직 옥스퍼드 대학이 제공하는 학문적 분위기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었던 희귀한 장서들 속에 파묻혀 지극히 단조로우면서도 행복한(?) 일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게으름을 피운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희랍과 로마의 고전을 읽고 연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문학상의 한 장르를 개척하였다. 결과 개인 로버트 버턴에게는 물론, 후세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즐거움과 교훈을 주는 『멜랑콜리의 해부』라는 방대한 불멸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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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이 분과 사랑에 빠졌다.

사랑스럽기 그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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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번역판이 드디어 나왔다.

작가에 대한 첫 인상은 예상 밖이었다. 마치 고독이 사무쳐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대는 사람 같았다. 

혼자서도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오히려 혼자가 더 편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 말이다. 물론 그 상대가 자신과 동등하거나 우월해서 지적인 대화가 가능할 그런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게 -엄청난-문제라서 그렇지.

그래서 이 고독은 채워질 수 없고 근원적인 결핍과 공허함을 일으킨다. 로버트 버턴의 '멜랑콜리'란 바로 이 심연에서 발현한 것이 아닐까.


왜 이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 본론으로 들어가는 데만 전체 분량의 1/4 정도를 할애한다. 

작가는 자칭 데모크리토스의 아들이라 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아니라 키케로의 제자(추종자) 같다. 글의 어조는 대체로 솔직한 편이고 글 사이사이, 곳곳에 유머를 잊지 않고 있다. 때론 자신을 한껏 낮추다 못해 자기 비하적일 때도 있지만, 그런 한편으론 위대한 성인의 아들을 자처할 정도로 자신감과 해박함을 과시한다. 어쨌거나 위트와 냉소, 겸손과 자만 사이를 오가는 글의 기저에는 고독이 짙게 깔려있음을 숨기지는 못한다.


한 페이지당 위인 두서너 명은 기본적으로 인용한다. 적절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지식의 과용(?)이지 싶다. (이른바 과시욕이라는 게 너무 유식한 작가에겐 과시가 아니라 일상생활인 건가 싶기도???) 뭐, 결과론적이긴 해도 이 책에서 인용된 덕에 세상에 나오거나 생명이 유지되는 글도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 자체만 놓고 보자면 호기심이 점점 사라지게 만든 이유가 된다. 유명인들의 권위에 기대서야 본인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면 굳이 작가의 책을 찾을 이유가 없고, 아전인수식의 인용이 잦은 점은 분명 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나도 명언 한 줄 찌끄려 보련다.

'남의 명언에 밑줄 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로버트 버턴의 멜랑콜리(우울증)에 대한 정의, 진단, 치료 방법 모두 다 틀렸다.

그리고 모두 다 맞았다. 그의 멜랑콜리는 지극히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므로.
















초판 디자인이 작품을 더 잘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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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버턴의 개인적 멜랑콜리가 아닌, 우울증에 관한 책 중에서 내게 도움이 된 몇 권을 추가해 본다.















<자살의 이해> 

개정판이 나왔다. (얘도 개정판 표지 왜 이럼;;;)
















<자살백과> 

인생의 어느 한 때 너무 힘들어서 이런 분야 책을 엄청 많이 읽었더랬다. <자살백과>를 읽다보면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이 옅어지게 된다는... 신기한 독서 경험을 했었다.
















<한낮의 우울>은 아직 완독을 못했다.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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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남성상을 단 한번도 구현해 낸 적 없는 한국 남성은 자신의 실패를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탓으로 돌렸고 이를 반복해왔다.


권력의 지배자(지배체제)가 필요로 하는 남성성을 강요받은 한국 남성들은 많은 문제에 맞닥뜨렸다. 그때마다 '간단하게' 여성에게 분풀이를 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책임을 회피해왔다. (지배체제가 시선을 돌리게 만든 것도 있다.) 이에 따라 갈등은 심화되었고 누적되어 왔다.

결국 현대에는 스스로 문제를 직면할 기회도, 바로잡거나 정당화할 근거도 놓친 채로 '억울한 남자들'만 남았다.


애초에 한국 남성들이 꿈 꾸는(회복되길 바라는) 아버지 세대의 가부장제 노스탤지어는 단 한 번도 실현된 적 없는 환상이다. 이들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조차 제대로 누려본 적 없는 망상에 불과함을 철저히 외면한다. 근거는 없고, 실체는 무시한다 -그리고 이것을 반복 재생산한다.


한국 남성들이 이런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건 이 책의 별점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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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전제들이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전개되는 내용 역시 합리적인 근거라기 보단 개인적 판단(을 가장한 소망)이나 유추에 가깝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렸다는 뜻이다. 


에로티즘은 작가가 개진하는 ‘금기와 위반에 대한 고찰‘을 다루기 위한 수단일 뿐.

어쨋든 기본적인 전제부터 납득하지 못했기에 시작지점부터 엇갈린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완독하고나서야 깨달은 것은 이 내용들이 그럴듯하지만 애초에(나 같은 사람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사드를 읽으련다.

















워크룸프레스의 <불가능>과 <에로스의 눈물>.

<불가능>을 읽고 나니 역시나 내가 작가에 대해 단단히 오해했음을 알았다. 나는 그의 글을 이해할 수 없었다. 흠… 내가 뭘 읽은 걸까…


<에로스의 눈물>은 바타유의 에로티즘에 관한 미학적 관점이라는 시각에서 보니 좀 더 쉬웠다. 물론 비교적으로 그랬다는 것이고, 이 책이 에로티즘의 기원과 역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시나 작가의 주관성으로 빚어낸 자신만의 에로티즘의 기원과 역사로 이해했다. (현재라면 검열당할만한 엄청난 자료들이 그대로 실려있다. 심장조심ㄷㄷ)



그래, 그냥 사드를 읽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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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생자를 비난하는 태도는 성 학대 희생자들이 극복해야 하는 만만찮은 장애물이다. 법과 여론은 계속해서 희생자의 순결 뿐 아니라 성격과 처신에 도덕적 무게를 둔다. 피의자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고소인에게 질문한다.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가? 왜 이런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희생자가 어떻게 행동하지 못했든 책임이 있다고 비친다. 그들의 몸은 의문의 여지 없는 진실을 내놓으리라 기대된다. 희생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존의 강간에 대한 예측에 딱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까지) 성폭행의 심각성, 의학적 검진이 주는 수치심(때로는 고통도), 희생자가 강간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이렇게 예측했다. - P118

이런 관점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돌아다닌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법학 교과서에는 이런 신화들이 가득했다. 가장 흔한 신화는 "흔들리는 칼집에 칼을 꽂을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다시 말해서, ‘진짜‘ 저항은 항상 효과가 있다." 페니스는 무기로 비유되고, 질은 수동적인 그릇이다. ‘흔들리기만‘ 해도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자신의 미덕에 대한 공격에 맞서 싸우지 못한 여성은 묵인했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동의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 P120

취약성은 ‘상처‘를 뜻하는 라틴어 vilnus에서 왔다. 취약하다는 것은 상처나 피해를 받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지각이 있는 존재는 모두 취약하다. 우리가 유한한 수명과 몸을 가진 생명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의존성 때문이기도하다. - P136

크렌쇼는사람마다 취약성은 다양하며, 그중 일부는 고유하지만(피부색·젠더·장애·섹슈얼리티 등), 또 어떤 것은 외부적이거나 상황에 따른 것(감옥이나 군대 병영, 슬럼가에 사는 경우 등)이다. 이런 다양한 취약성들은 얽혀 있으며 상호적으로 강화한다. 그들이 소유한 특정한 특성 특징 · 정체성이 그 자체로 사람들을 더 또는 덜 취약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힘의 위계질서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적·경제적·정치적·공간적 체계로 인해 취약해진다. 취약한 사람들은 누군가에 의해 ‘상처 입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 P138

식민주의적 편견은 싱의 강간과 살해에 쏟아진 국제적인 관심을 뒷받침했다. 서구 매체는가해자들을 "후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문화"에 속한 자들로 그려내어 "유색인 남성으로부터 유색인 여성을 구하는 백인남성"에 대한 서구의 집착에 기여했다. 무엇보다도 사회학자 포울라미 로이초두리 Poulami Roychowdhury가 지적했듯이, 싱의 남자친구는 벌거벗겨지고 다리가 부러질 만큼 심하게 구타를 당한 후 길가에 버려졌다. 그러나 로이초두리는 건조하게 말했다. "백인 남성들은 유색인 남성으로부터 유색인 남성을 구할 생각이 없다. " - P276

남성들이 연령과 사회적 계층에 관계없이 강간을 저지른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프랑스에서는 이민자 남성들에게만 관심이 쏟아졌다. 반면 백인·중산층·이성애 남성들은 프랑스 여성의 보호자로 그려졌다. ‘다른‘ 민족 집단은 열등하다고 여겨지고, ‘문명화된‘ 성적 관행에 동화되지 못하고 성적표현에 대한 자기들의 ‘타고난 본능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 P302

전시 강간은 남자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거기에는 적의 남성성에 대한 모욕으로서의 상징적 가치가 담긴다. 인류학자 비나 다스 Veena Das의 말에 따르면, 여성의 몸은 "남성들이 서로 소통하는 기호"가 된다." 여성의 강간은 ‘남자들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고 여자들은 그 대가로 돌봄을 제공해준다‘는 ‘젠더 계약‘ 불문율을 지키는 데 명백히 실패한 남성 동료들에게 내려지는 징벌이다.  - P325

트라우마 개념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문화권 증후군이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어도, PTSD와 RTS는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트라우마 개념이 여기저기에서 강간 희생자에게 적용되면서 네 가지 중요한 효과가 발생했다. 그것은 강간 희생자들의 학대 이후 처신에 영향을 미쳤고, 희생자의 병리화를 이끌었으며, 치료 체제에 영향을 주고, 결국 권력의 위계질서를 공고히 했다. - P382

샌데이와 왓슨프랭크, 헬리웰은 강간이 구조적으로 불평등할 때 많이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낮은 수준의 군사화와 높은 수준의 성 평등, 여성의 경제력이 비교적 강간수준이 낮은 공동체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이 책의 결론 중 한가지를 지적한다. 즉 성 학대는 불평등과 남성성의 맥락 안에서조장된다는 것이다. - P398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불일치 · 저항·선동이 아니다. 공동체의 연대와 상호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통합과 합의의 명목으로 차이와 불일치를 억누르는 것이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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