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하고 수다스럽고 지독하게 유식하다.
오랜 동안 품절되어서 더 궁금했던 책이다. 이전 번역본은 <우울증의 해부>.
현대 의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자기 계발 등등 모든 분야의 서적이 차고 넘치는데 오래전 출판된 이 책이 왜 그토록 궁금했겠나. 솔직히 작가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 작가 소개를 보라.
----
1593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1599년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Christ Church College)에 연구조교(scholar)로 임용된 이후 가난하지만 한가로운 이 자리를 죽을 때까지 지켰다. 일생 동안 여행도, 결혼도 하지 않았고, 어떤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달성하지도 못했다. 오직 옥스퍼드 대학이 제공하는 학문적 분위기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었던 희귀한 장서들 속에 파묻혀 지극히 단조로우면서도 행복한(?) 일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게으름을 피운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희랍과 로마의 고전을 읽고 연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문학상의 한 장르를 개척하였다. 결과 개인 로버트 버턴에게는 물론, 후세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즐거움과 교훈을 주는 『멜랑콜리의 해부』라는 방대한 불멸의 저서를 남겼다.
----
나는 이미 이 분과 사랑에 빠졌다.
사랑스럽기 그지 없구나...
-
개정 번역판이 드디어 나왔다.
작가에 대한 첫 인상은 예상 밖이었다. 마치 고독이 사무쳐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대는 사람 같았다.
혼자서도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오히려 혼자가 더 편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 말이다. 물론 그 상대가 자신과 동등하거나 우월해서 지적인 대화가 가능할 그런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게 -엄청난-문제라서 그렇지.
그래서 이 고독은 채워질 수 없고 근원적인 결핍과 공허함을 일으킨다. 로버트 버턴의 '멜랑콜리'란 바로 이 심연에서 발현한 것이 아닐까.
왜 이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 본론으로 들어가는 데만 전체 분량의 1/4 정도를 할애한다.
작가는 자칭 데모크리토스의 아들이라 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아니라 키케로의 제자(추종자) 같다. 글의 어조는 대체로 솔직한 편이고 글 사이사이, 곳곳에 유머를 잊지 않고 있다. 때론 자신을 한껏 낮추다 못해 자기 비하적일 때도 있지만, 그런 한편으론 위대한 성인의 아들을 자처할 정도로 자신감과 해박함을 과시한다. 어쨌거나 위트와 냉소, 겸손과 자만 사이를 오가는 글의 기저에는 고독이 짙게 깔려있음을 숨기지는 못한다.
한 페이지당 위인 두서너 명은 기본적으로 인용한다. 적절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지식의 과용(?)이지 싶다. (이른바 과시욕이라는 게 너무 유식한 작가에겐 과시가 아니라 일상생활인 건가 싶기도???) 뭐, 결과론적이긴 해도 이 책에서 인용된 덕에 세상에 나오거나 생명이 유지되는 글도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 자체만 놓고 보자면 호기심이 점점 사라지게 만든 이유가 된다. 유명인들의 권위에 기대서야 본인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면 굳이 작가의 책을 찾을 이유가 없고, 아전인수식의 인용이 잦은 점은 분명 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나도 명언 한 줄 찌끄려 보련다.
'남의 명언에 밑줄 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로버트 버턴의 멜랑콜리(우울증)에 대한 정의, 진단, 치료 방법 모두 다 틀렸다.
그리고 모두 다 맞았다. 그의 멜랑콜리는 지극히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므로.
+ 초판 디자인이 작품을 더 잘 표현한다.
-
로버트 버턴의 개인적 멜랑콜리가 아닌, 우울증에 관한 책 중에서 내게 도움이 된 몇 권을 추가해 본다.
<자살의 이해>
개정판이 나왔다. (얘도 개정판 표지 왜 이럼;;;)
<자살백과>
인생의 어느 한 때 너무 힘들어서 이런 분야 책을 엄청 많이 읽었더랬다. <자살백과>를 읽다보면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이 옅어지게 된다는... 신기한 독서 경험을 했었다.
<한낮의 우울>은 아직 완독을 못했다. 현재진행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