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카와 슌타로의 초기 시 부터 최근까지 작품을 선별하였다. 인터뷰 한 편을 포함한 산문도 세 편 실려있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작품을 한 권으로 개괄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읽었을 때, -스스로도 놀랄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 시라는 장르의 난해함과 번역시의 한계 때문에 항상 시를 감상할 때는 느슨한 마음을 갖는다. 이 책에서 내 마음에 남는 단 한편의 시만 만나더라도 좋겠다는 그런 마음 말이다.
그런데 참, 이 책은, 참... 첫 장 '한국의 독자들에게'의 첫 문장부터 이렇게 마음에 꽂힐 수가 없었다.
'시를 번역하면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詩」다. 시를 번역해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다.'
-p5
<두 개의 여름> 다니카와 슌타로 글/ 사노 요코 그림
다니카와 슌타로의 작품은 쉽다. 쉽게 읽히고 맑다. 쉬운 단어 선택과 명료한 표현으로 천진무구한 시상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림책 작품도 많다. 국내에서는 사노 요코와 함께 작업한 그림책들이 가장 친숙할 것이다.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 사노 요코.
"산다는 건 뭘까?"
"죽을때까지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한다는 거야. 별 대단한 거 안해도 돼."
<사는 게 뭐라고>
내 상식은 나한테밖에 통하지 않는다.
(p90)
문득 돌아보니 나는 요즘 시대에 완전히 뒤처져 있었다.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나도 끝났다. 이 시대에서는 더 이상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이를 어쩌나. 하지만 내 심장은 아직까지 움직이고, 낡아빠진 몸으로도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이를 어쩌나. Y씨, 미안해요. 나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말았어요. 내다 버리세요.
(p145)
<죽는 게 뭐라고>
나는 항암제를 거부했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불쾌한 1년이라니. 연명하더라도 불쾌한 1년을 보내야 한다면 그 편이 더 고통스럽다. 아까운 짓이다. 가뜩이나 노인이 된다는 건 장애인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p18)
다니카와 슌타로와 사노 요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초 신타.
뭔가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이 닮았다. 다니카와 슌타로와 사노 요코가 부부이니(였으니) 초 신타는 이들의 예술적 자손같다고 해야할까.
다니카와 슌타로는 시, 소설, 그림책, 시놉시스, 애니메이션 주제가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31년 생의 작가에게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는 감상이 든다는 건 정말 엄청난 것이 아닐런지.
<이십억 광년의 고독>의 역자는 '다니카와 슌타로를 생각하면, 시인 천상병이나 박재삼이 떠오(p241)'른다고 한다. 그래서 읽어보렵니다-
아,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딱 하나 아쉬웠던 점.
원문이 없다. 읽을 수 있건 없건 시는 원문이 같이 있어야 한다. 시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