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전제들이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전개되는 내용 역시 합리적인 근거라기 보단 개인적 판단(을 가장한 소망)이나 유추에 가깝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렸다는 뜻이다. 


에로티즘은 작가가 개진하는 ‘금기와 위반에 대한 고찰‘을 다루기 위한 수단일 뿐.

어쨋든 기본적인 전제부터 납득하지 못했기에 시작지점부터 엇갈린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완독하고나서야 깨달은 것은 이 내용들이 그럴듯하지만 애초에(나 같은 사람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사드를 읽으련다.

















워크룸프레스의 <불가능>과 <에로스의 눈물>.

<불가능>을 읽고 나니 역시나 내가 작가에 대해 단단히 오해했음을 알았다. 나는 그의 글을 이해할 수 없었다. 흠… 내가 뭘 읽은 걸까…


<에로스의 눈물>은 바타유의 에로티즘에 관한 미학적 관점이라는 시각에서 보니 좀 더 쉬웠다. 물론 비교적으로 그랬다는 것이고, 이 책이 에로티즘의 기원과 역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시나 작가의 주관성으로 빚어낸 자신만의 에로티즘의 기원과 역사로 이해했다. (현재라면 검열당할만한 엄청난 자료들이 그대로 실려있다. 심장조심ㄷㄷ)



그래, 그냥 사드를 읽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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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 디플롯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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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술술 읽혀서 걱정스러울 정도다. 이렇게 쉽게 읽어내려가도 되는걸까. 이 책을 여러 필독서 중 하나로 주워 넘기려는 알량한 내 마음이 수치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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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생자를 비난하는 태도는 성 학대 희생자들이 극복해야 하는 만만찮은 장애물이다. 법과 여론은 계속해서 희생자의 순결 뿐 아니라 성격과 처신에 도덕적 무게를 둔다. 피의자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고소인에게 질문한다.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가? 왜 이런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희생자가 어떻게 행동하지 못했든 책임이 있다고 비친다. 그들의 몸은 의문의 여지 없는 진실을 내놓으리라 기대된다. 희생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존의 강간에 대한 예측에 딱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까지) 성폭행의 심각성, 의학적 검진이 주는 수치심(때로는 고통도), 희생자가 강간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이렇게 예측했다. - P118

이런 관점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돌아다닌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법학 교과서에는 이런 신화들이 가득했다. 가장 흔한 신화는 "흔들리는 칼집에 칼을 꽂을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다시 말해서, ‘진짜‘ 저항은 항상 효과가 있다." 페니스는 무기로 비유되고, 질은 수동적인 그릇이다. ‘흔들리기만‘ 해도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자신의 미덕에 대한 공격에 맞서 싸우지 못한 여성은 묵인했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동의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 P120

취약성은 ‘상처‘를 뜻하는 라틴어 vilnus에서 왔다. 취약하다는 것은 상처나 피해를 받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지각이 있는 존재는 모두 취약하다. 우리가 유한한 수명과 몸을 가진 생명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의존성 때문이기도하다. - P136

크렌쇼는사람마다 취약성은 다양하며, 그중 일부는 고유하지만(피부색·젠더·장애·섹슈얼리티 등), 또 어떤 것은 외부적이거나 상황에 따른 것(감옥이나 군대 병영, 슬럼가에 사는 경우 등)이다. 이런 다양한 취약성들은 얽혀 있으며 상호적으로 강화한다. 그들이 소유한 특정한 특성 특징 · 정체성이 그 자체로 사람들을 더 또는 덜 취약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힘의 위계질서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적·경제적·정치적·공간적 체계로 인해 취약해진다. 취약한 사람들은 누군가에 의해 ‘상처 입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 P138

식민주의적 편견은 싱의 강간과 살해에 쏟아진 국제적인 관심을 뒷받침했다. 서구 매체는가해자들을 "후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문화"에 속한 자들로 그려내어 "유색인 남성으로부터 유색인 여성을 구하는 백인남성"에 대한 서구의 집착에 기여했다. 무엇보다도 사회학자 포울라미 로이초두리 Poulami Roychowdhury가 지적했듯이, 싱의 남자친구는 벌거벗겨지고 다리가 부러질 만큼 심하게 구타를 당한 후 길가에 버려졌다. 그러나 로이초두리는 건조하게 말했다. "백인 남성들은 유색인 남성으로부터 유색인 남성을 구할 생각이 없다. " - P276

남성들이 연령과 사회적 계층에 관계없이 강간을 저지른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프랑스에서는 이민자 남성들에게만 관심이 쏟아졌다. 반면 백인·중산층·이성애 남성들은 프랑스 여성의 보호자로 그려졌다. ‘다른‘ 민족 집단은 열등하다고 여겨지고, ‘문명화된‘ 성적 관행에 동화되지 못하고 성적표현에 대한 자기들의 ‘타고난 본능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 P302

전시 강간은 남자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거기에는 적의 남성성에 대한 모욕으로서의 상징적 가치가 담긴다. 인류학자 비나 다스 Veena Das의 말에 따르면, 여성의 몸은 "남성들이 서로 소통하는 기호"가 된다." 여성의 강간은 ‘남자들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고 여자들은 그 대가로 돌봄을 제공해준다‘는 ‘젠더 계약‘ 불문율을 지키는 데 명백히 실패한 남성 동료들에게 내려지는 징벌이다.  - P325

트라우마 개념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문화권 증후군이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어도, PTSD와 RTS는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트라우마 개념이 여기저기에서 강간 희생자에게 적용되면서 네 가지 중요한 효과가 발생했다. 그것은 강간 희생자들의 학대 이후 처신에 영향을 미쳤고, 희생자의 병리화를 이끌었으며, 치료 체제에 영향을 주고, 결국 권력의 위계질서를 공고히 했다. - P382

샌데이와 왓슨프랭크, 헬리웰은 강간이 구조적으로 불평등할 때 많이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낮은 수준의 군사화와 높은 수준의 성 평등, 여성의 경제력이 비교적 강간수준이 낮은 공동체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이 책의 결론 중 한가지를 지적한다. 즉 성 학대는 불평등과 남성성의 맥락 안에서조장된다는 것이다. - P398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불일치 · 저항·선동이 아니다. 공동체의 연대와 상호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통합과 합의의 명목으로 차이와 불일치를 억누르는 것이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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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십 년간, 페미니즘 사상 중 어떤 흐름은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을 ‘생존자‘라 부르는 쪽을 선호한다. 나는 이 어휘를 쓰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생존자‘ 같은 꼬리표는 정체성을 공격 ‘이전‘과 ‘이후‘에 기반한 것으로 구성하여, 성폭력 희생자가 가해자의 행동의 관점에서(다시 한번) 스스로를 규정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이는 자율성, 개인의 자유, 자기 결정권에 대한 미국적 이데올로기에 젖은 개념이다. (선한) ‘생존자‘와 (나쁜) ‘가해자‘ 간의 엄격한 이분법 때문에 많은 ‘가해자‘들이 성 학대의 ‘생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희생자‘ 꼬리표 또한 나름대로 위험할수 있다. 동정심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희생자‘는 여성화되며, 도덕적으로 나약하고 (미국의 신자유주의 담론에 따르면) ‘잘못된 선택‘이나 ‘생활방식의 실수‘
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는다. - P47

우리에게 자율성 (특히 희생자를 비난하는 결과로 귀결되곤 하는 ‘서구적‘ 강박)이 있다고 믿기보다는, 이 책은 삶에서 우리 모두가 타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장소·물건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된다. 초국가적 · 교차적 접근을 포용함으로써 이 책은 지식을 탈식민화하는 정치적 과업에 기여하고자 한다. - P48

수치는 개인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시기, 지리적 장소, 무수히 많은 권력의 제도적 체제에 깊이 뿌리박힌 사회적 감정이다. 그것은 광범위한 젠더와 인종, 민족성, 종교, 성적 지향, 연령, 세대를 포함하여 다양한 교차적 자아들을 통해 굴절된다. 수치는 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 식민주의,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하여 지배의 관계들을 통해 심어지기 때문에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 P64

성 학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성 학대 희생자가 경험하는 수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이 죽음보다나쁘다는 관점을 강조함으로써 수치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핍스가 지적하듯이, "우리가 없애려고 하는 성적 차이를 생산할 위험"은 없을까?" 다시 말해서, 성 학대가 희생자생존자에게 수치를 안기는 방식에 관심을 쏟음으로써, 여성의 굴욕과 취약성에 대한 생각을 재각인할 위험이 있다. 여성과 다른 소수 집단에 대한 남성의 권력 개념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희생자 생존자의 수치를 당한 몸과 마음은 의존성과 행위성 부족의 관점에서만 흔히 생각된다. 그들은 온정주의적 반응을 끌어낼 수도 있다. ‘희생자‘는 남성이나 특권을 더 가진 여성들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약한 존재다. - P85

그렇기 때문에 수치에서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볼 필요가 있다. 수치는 피해를 경험한 쪽이 아니라 가한 쪽의 것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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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도입부가 장점이자 단점이다.

주인공 유니스에 이입해서 비밀을 고수하려는 그의 심리에 동조하지 않는 이상, 추리 소설로서 전개는 밋밋하다. 시작하자마자 이미 결론을 알아버린만큼 어떻게 그 사건까지 진행되는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되는 속도감은 더딘편이라 긴장감은 크지 않고, 무채색같은 주인공에 비해 강렬한 개성을 가진 주변인물들한테 시선이 분산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을 문맹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본다면 나름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문자를 상실했다는 것은, 세상을 보고, 대상을 이해하고, 가치관을 확장하는 이 모든 사고 능력의 기능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스펙트럼의 한정성이랄까, 어쩌면 낮은 해상도의 시각으로 주변을 보는 것과 같으려나.)

이 소설에서 문맹이란 단순히 사회에서 습득하는 한 가지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총체적인 문제임을 드러낸다.

이는 인간으로서 의미조차 상실할수도 있음을, 그러한 공포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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