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십 년간, 페미니즘 사상 중 어떤 흐름은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을 ‘생존자‘라 부르는 쪽을 선호한다. 나는 이 어휘를 쓰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생존자‘ 같은 꼬리표는 정체성을 공격 ‘이전‘과 ‘이후‘에 기반한 것으로 구성하여, 성폭력 희생자가 가해자의 행동의 관점에서(다시 한번) 스스로를 규정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이는 자율성, 개인의 자유, 자기 결정권에 대한 미국적 이데올로기에 젖은 개념이다. (선한) ‘생존자‘와 (나쁜) ‘가해자‘ 간의 엄격한 이분법 때문에 많은 ‘가해자‘들이 성 학대의 ‘생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희생자‘ 꼬리표 또한 나름대로 위험할수 있다. 동정심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희생자‘는 여성화되며, 도덕적으로 나약하고 (미국의 신자유주의 담론에 따르면) ‘잘못된 선택‘이나 ‘생활방식의 실수‘ 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는다. - P47
우리에게 자율성 (특히 희생자를 비난하는 결과로 귀결되곤 하는 ‘서구적‘ 강박)이 있다고 믿기보다는, 이 책은 삶에서 우리 모두가 타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장소·물건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된다. 초국가적 · 교차적 접근을 포용함으로써 이 책은 지식을 탈식민화하는 정치적 과업에 기여하고자 한다. - P48
수치는 개인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시기, 지리적 장소, 무수히 많은 권력의 제도적 체제에 깊이 뿌리박힌 사회적 감정이다. 그것은 광범위한 젠더와 인종, 민족성, 종교, 성적 지향, 연령, 세대를 포함하여 다양한 교차적 자아들을 통해 굴절된다. 수치는 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 식민주의,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하여 지배의 관계들을 통해 심어지기 때문에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 P64
성 학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성 학대 희생자가 경험하는 수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이 죽음보다나쁘다는 관점을 강조함으로써 수치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핍스가 지적하듯이, "우리가 없애려고 하는 성적 차이를 생산할 위험"은 없을까?" 다시 말해서, 성 학대가 희생자생존자에게 수치를 안기는 방식에 관심을 쏟음으로써, 여성의 굴욕과 취약성에 대한 생각을 재각인할 위험이 있다. 여성과 다른 소수 집단에 대한 남성의 권력 개념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희생자 생존자의 수치를 당한 몸과 마음은 의존성과 행위성 부족의 관점에서만 흔히 생각된다. 그들은 온정주의적 반응을 끌어낼 수도 있다. ‘희생자‘는 남성이나 특권을 더 가진 여성들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약한 존재다. - P85
그렇기 때문에 수치에서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볼 필요가 있다. 수치는 피해를 경험한 쪽이 아니라 가한 쪽의 것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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