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딸 - 가깝고도 먼 사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심리학
이우경 지음 / 휴(休)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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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에서 '보여지는' 아빠와 딸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의하면 '딸바보' 쯤이 아닐까 생각한다. 프레디(Friendly+Daddy)라는 단어가 친근해질 정도로 TV 속 아빠들은 권위는 내려놓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편안한 아빠, 친구같은 아빠,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아빠 등으로 포지션을 바꿨다. 옛날처럼 밥상을 엎는다거나 굉장히 무뚝뚝하다거나 하는 아빠들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요즘에는 친근한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의 정서가 다른 아이들보다 안정적이라는 결과도 나오고도 있다. 아빠들은 변화하고 있고 사회적 상황도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친근한 관계라고 단순하게 정의하기엔 '아빠와 딸'의 관계는 복잡하다. 아무리 TV에 행복한 아빠와 딸의 모습, 친근한 모습들이 비춰진다해도 일상적으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이야기하기엔 힘든 것은, 관계라는 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라온 환경, 살고있는 실생활을 고려해야만 하고, 그것들은 TV에서 보여지는 것들보다는 훨씬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관계 손상의 핵심에는 대부분 어머니, 아버지가 있다. 모성 신화가 워낙 강한 탓에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도처에 넘쳐난다. 반면 아버지와 딸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드물고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가 근래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재조명되면서 이에 대한 콘텐츠도 늘고 있는 추세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딸들의 무의식에 여러 형태로 자리잡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관계심리학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p. 7)


<아버지의 딸>은 결핍이 있는 딸들에게는 사실 마음 속 한 켠에 아버지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위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서로간의 관계를 맺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식으로든 아니면 나쁜 식으로든, 어떤 방향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전제가 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자립할 때까지 적어도 15~18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좋든 싫든 함께 있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그를 훌쩍 넘는 시간동안 관계를 맺는다면 영향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다. 세상엔 굉장히 여러가지 형태의 가정(집)이 있다. 태어나기 전 혹은 어렸을 때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집, 아빠가 너무 바빠 관계를 가질 시간이 없었던 집, 능력이 없는 아빠라 힘들게 살아야 했던 집, 폭력 혹은 주정뱅이 아빠라 역시나 힘들게 살아야 했던 집 등 각자의 집에 계신(혹은 계시지 않는) 아빠들의 캐릭터는 굉장히 다양하다. 이렇게 몇 개의 부류로 나누기 힘들만큼 말이다. 이보다 더 다양한 집들의 더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받은 영향이란 것 또한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여러가지 여성들의 상황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1번 챕터는 자신이 왜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풀어내고 싶었던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고, 마지막 6번 챕터는 어떤 식으로 용서와 화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폭력적인 아빠의 아래에서 자란 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알파걸로 살고 있는 딸은 어떤 아버지를 품고 있나? 세상에 있는 모든 유형의 여자들을 다룰 수는 없었지만, 많은 종류의 여성들을 다루었다. 가명으로 등장하는 누군가도 있긴 했지만, 누군가의 사연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저자는 그 상황 속의 여자들은 어떤 행동을 해 왔고 그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떡하니 내놓았다. 하지만 그런 진단(?)은 모두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한 발구름판일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에게 구원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각자의 존재에 대해 깊이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자기가 지지 않는 책임을 상대가 대신 질 수는 없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백마를 마련하고 그 위에 올라탈 수 있어야 한다. (p. 199)


책이 쓰인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안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고해보고, 그 관계 속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괴로운 이유를 제대로 찾아 그 원인을 제거하는 데 있다. 더 나은 삶, 좀 더 편안한 마음의 삶을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군다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와 그 행위를 해야한다는 것에 있어 더욱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힘이 드는지 그 이유를 주변에서 나에게서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어딘가 모르게 자리잡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도 있다는 얘기라는 이 책.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쌓이는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에 대한 생각까지 하게 하는 책.


사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해보게 됐다. 과연 나에게도 아빠에 대한 마음이 한 켠에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 20년이 넘는 시간, 거의 3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아빠를 떠나본 적이 없는 내게도 아마 그녀들과 비슷한 마음이 어느 하나쯤은 있을 텐데- 비슷하다 생각한 것이 있는 것 같기도 없는 것 같기도. 다만, 마지막으로 저자가 언급한 작가의 이야기를 남긴다. <아버지의 딸>의 궁극적인 목표 같기도 한 이 문장,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듯 하다.


작가 사라 메이트랜드의 말이 기억난다.

"나는 아버지의 딸이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p.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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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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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에게도 동화가 필요하다. 물론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서 어른들도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너무나 울림이 커서 너무나 좋아서 크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법- 그래서 나는 정적이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류의 이야기들을 보고, 읽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흔히 '막장'이라고 이야기하는 요소들도 나오지 않고, 독특하지만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가볍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뭐랄까,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드라마로 예를 들자면, (한국 드라마는 특성상 에피소드 형식으로 끝나는 드라마가 없어 선뜻 비교를 하기 힘들지만)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정도. 느낌이 확 오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가능성을 위해서 주인은 여기에서 기다립니다. 보관가게는 기다림이 일이니까요.
분명 이곳은 모두가 돌아올 장소입니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장소입니다. (p.55)


<심야식당>과 <하루 100엔 보관가게>는 비슷한 점이 꽤 있다. 일단 꽤 오랜 시간동안 가게가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아는 사람만 찾아온다는 특징이 있고,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는 것도 닮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주인'. <심야식당>의 주인인 마스터는 요리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하루 100엔 보관가게>의 주인 기리시마는 물건을 맡기는 사람의 '사연을 들어줌'으로써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둘의 다른 점은 '마스터'는 무언가를 한다는 것, '기리시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 


아, <하루 100엔 보관가게>가 어떤 곳인지 설명을 하지 않았구나. 포렴(일종의 걸어둘 수 있는 천막)에 '사토(설탕)'이라고 적혀 있는 것만이 유일하게 표식인 간판도 없는 가게다. 어떤 물건이든 이 곳에 맡길 수 있다. 주인에게 맡길 때 보관료는 100엔.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도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보관료는 100엔만 받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주인 기리시마는 손님의 목소리를 기억해뒀다 그 사람이 맡긴 물건을 찾아다 주곤 한다. 왜 기리시마의 눈이 멀었는지 비극적인 이야기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이는 사실 소설의 내용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기리시마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보관가게를 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5개가 등장하는데, 이 이야기들은 느슨하면서도 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옴니버스 식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다. 앞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뒷쪽의 이야기에 잠깐 나오기도 하고, 그 사람이 맡긴 물건만 등장하기도 한다.  책의 시작은 기리시마가 왜 '보관가게'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각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화자는 보관가게에 있는 '사물'들이다. 때론 맡겨지러 오는 '사물'이 화자이기도 하다. 사물이 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물건을 맡기는 사람의 생각이나 주인의 세세한 행동패턴까지는 알 수 없다. 사물이라는 것이 누군가가 옮겨주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주 한정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껄끄러운 면이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레짐작하는 사물들의 생각이 참으로 순수하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직접 듣지 않아도 어찌되었든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들에서 추론할 수 있으므로 불편한 것도 없다.


늘 동경만 했던 달린다는 일. 그게 이루어졌다. 아스팔트가 기분 좋다. 돌아가는 바퀴가 기분 좋다. 바람을 느낀다. 바람은 물색이다. 왠지 그런 느낌이다. 나도 물색이다. 나와 바람은 하나가 된다. 달리는 건 짱이야. 이건 상상 이상이다. 아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지금 빛나고 있다. 지금까지 인생 중에서 가장 빛나고 있다. (p. 69)


<하루 100엔 보관가게>를 쓴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물을 통해서 비춰지는 이야기들이 상세하면서도 눈앞에 바로 그려질 수 있듯이 서술한다. 하지만 시나리오와 다른 점은 좀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인데,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감각이 참 잘 섞여서 예쁘게 다가온 단락이 바로 위의 단락이다. 이야기의 화자였던 '자전거'가 길을 달리면서 느꼈던 기분을 서술했던 부분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해지는 느낌. 바람이 물색이라니, 굉장히 예쁘지 않은가.


책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책 <어린왕자>가 있는데, 여러가지 의미로 꽤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어린왕자의 해석은 퍽이나도 예뻐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옮겨본다.


소설 속에서 어린왕자는 여우로부터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배웠다.
보관가게의 주인은 눈이 보이지 않는 만큼 소중한 것만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마음의 눈을 갖고 싶다. (p. 186)


참 독특한 이야기였다. 수수께끼 풀이 같은 단어와 알쏭달쏭한 표현, 마법 같은 혼잣말.

어른의 마음과 어린이의 마음이 교차했고, 그러면서도 일정한 질서 혹은 음악 같은 리듬이 있는 문장이었다. (p. 226)


몇 개 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속에서 보관가게의 주인 기리시마는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보관되어 있던 물건들도 함께 나이가 들었다. 여전히 문을 열고 보관하러 오는 이를 기다리는 일을 하는 기리시마지만 말이다. 아래는 그가 '어쩌다 보관하게 된' 고양이가 책의 마지막에 뱉은 이야기다. 이렇게 같이 살고 있는 생물조차 편안한 곳이라면, 여전히 이 시간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장을 덮으며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인지 기리시마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


주인이 있는 세계에 와보니 이곳은 실제 세계보다 조금 더 아름다웠다.
매우 평화롭다. 주인도 행복하다는 걸 알고 나는 안심했다.
여기에서 기다린다. 나도 주인도 기다린다.
기적을 기다린다. (p.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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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걸 Dream Girl -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이보라의 뷰티 컬러링북 드림 걸 컬러링북 시리즈
이보라 지음 / 이덴슬리벨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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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일은? 자기 얼굴에 화장하는 것, 자기를 꾸미는 것, 그리고 그를 셀카로 남기는 것. (마지막꺼는 선택적이지만) 뭐 이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자기애가 강하고 자신을 꾸미는 데에 욕망이 있는 기본적 성질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화장이 서툴러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이것저것 발라보곤 하는데 (얼굴이 일종의 스케치북인 거다) 여자라면 누구나 다 그러지 않을까. 화장은 하지 않더라도 모자를 쓰는 법을 연구한다거나 앞머리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본다거나 그 어떤 것이 되었든지간에 자신을 꾸미는데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것은 꽤 본능적이고, 재미있는 놀이이며, 잘 질리지도 않는다.


그런 여성의 마음에 꼭 드는 컬러링북이 나왔다. 기존의 컬러링북들은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어 어떤 모양과 패턴, 기하학적 무늬들이 주를 이뤘다. 컬러링북 열풍에 발맞춰 여러 종류의 패턴들이 가미된 그림들이 등장했지만, 다들 비슷했기 때문에 단조롭다는 평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컬러링북은 좀 다르다. 우선 표지에 나와 있듯 여자의 일러스트가 전면배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일러스트로 이루어진 컬러링북은 어린시절 인형 옷 갈아입히기나 공주님 색칠하기 같은 묘한 향수도 가져다 주면서, 꼭 잘 칠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조차도 이 책을 보자마자, "어머, 이건 꼭 칠해야해!"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컷을 칠해 봤지만 딱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없는 것 같다. 아쉽게도 말이다.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내 성에는 안 차는 느낌. 색을 섞어도 진하게 칠해도 역시나.. 그래서 미술감각에 대한 내게 조금은 회의감도 느꼈던 게 사실... 그래도 작품을 하나 끝내면 속이 다 후련하다. 그 작품이 잘 칠해졌든 안 칠해졌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온전히 '내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되는 그 순간 때문에 나는 또 색칠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원하는 대로 여자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바꿀 수 있는 메리트가 있는 컬러링북.

생각보다 쉽지는 않겠지만 생각보다 재미있는 컬러링북을 찾는다면 <드림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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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당신
장하오천.양양 지음, 신혜영 옮김 / 이야기나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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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이 말이 언제부터 우리들의 사이에 와서 박혔을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꽤 오래전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늘 미래를 불안해 하고, 앞을 두려워하곤 하니까. 일어나지 않은 미래일 뿐이라고 이야기해도 정해져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쉽게 떨칠 수 없다. 어느 영화처럼 내가 가야할 길이 정해져 있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마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테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고, 사람들은 어찌되었든 해답을 얻으려고 발버둥친다. 남들보다 빨리 앞서나가 누구든 우러르길 바라기도 하고, 뒤쳐지는 것을 끔찍히 싫어하기도 한다. 그래서 해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한다.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앞만 보고 살아가기. '내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라는 말을 하는 어른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데, 그 분들도 모두 뒤쳐지기 싫어서 앞만 보고 달려갔던 사람들이다. 미래와 하릴 없이 싸우다 좋은 시절을 다 보낸 뒤 내뱉는 회한.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현재를 열심히, 그렇게 불투명한 미래와 싸우다보면 듣고 싶은 말이 있다. 현실과 싸우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인데, 선택을 하면서도 불안감은 지울 수 없다. 한 번 뿐인 인생, 선택이 모든 것을 갈라버리니 말이다. 그 때 지금 너는 잘하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괜찮다'는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사실 단어 자체에는 아무 힘도 없다. 지나가다 사람이 넘어지기만 해도 다가가 '괜찮으세요?'하고 물어볼 수 있을만큼 흔한 단어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듣느냐에 따라 말의 힘이 달라지듯, 너무나 힘들게 앞만 보며 달려가는 누군가에게 '너는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라고 말해준다면 안도와 함께 눈물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벅찬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점점 더 힘들어 지는 지금의 우리에게 '너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다. 괜찮다'라고 이야기 해 주는 책. 너와 비슷한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고 많으니, 너 혼자 뒤쳐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위로해 주는 책. 사실 책은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그저 자신이 살아가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적어놓은 것 뿐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우정, 사랑,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는 이가 자신과 비슷했던 혹은 공감할 수 있는 사연들 속에서 위로를 얻는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웨이보라는 중국판 트위터에서 3억뷰를 달성했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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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어 다행이에요 마음을 전하는 작은 책 시리즈
호시바 유미코 지음, 최윤영 옮김, 후쿠이 유키 그림 / 인디고(글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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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의 "마음을 전하는 작은 책" 시리즈의 7번째인 <당신이 있어 다행이에요>란 책은 솔로인 나에게는 조금 버거운 책이 아니었나 싶다. 한 글자 한 문장 모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읊은 책이라서다.​ 사랑을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사랑이 싫은 것도 아니지만, 일단 현재 솔로인 내게는 버겁다는 얘기다. (사랑을 하지 않을 때의 나는 한없이 건조한 여자라서...라나 뭐라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세상 모든 것이 그 사람에게 맞춰 바뀌는 경험을, 아마 사랑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테다. 그 사람이 내 세상의 중심이 되어서 내 삶이, 생각이, 마음이 그 사람을 향해 따라가는 경험 말이다. 착한 사람을 만난다면 온 세상 만물이 착하게 느껴질테고, 긍정적인 사람을 만난다면 나도 긍정적으로 바뀌는 경험. 물론 나쁜 여자 혹은 나쁜 남자를 만나 고생하면서 세상이 우울해지는 경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랑'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변하니 대상의 성격이나 성질 따위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당신이 있어 다행이에요>는 그렇게 '사랑에 빠진' 화자가 등장한다. 곁에 있는 사람으로 인해서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얼만큼 행복한지를 간단하게 적어놓은 책.


'작은 책'이라는 시리즈 이름이 붙은 만큼 책의 내용은 작다. 하지만 '작음'으로 갈무리 할 수 없을만큼의 아기자기함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현재 진행형의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잔뜩 들어있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한정으로 폭풍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괜찮다. 아쉬우면 이 책을 읽는 솔로들도 연애를 하면 되는 거니까.(라고 말은 쉽게 해 본다. 정작 나조차 연애는 못하고 있으면서...ㅋ)

 

 

 

 

 

 

인생에게 무엇을 기대할지가 아니라
인생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인생은 언제나 당신 앞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요.

 

 

 

 

내 사과를 받아주고
나를 이해해 주는 당신이 고마워요.

 

 

신기해요.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좋은 날이 될 거라고
믿게 돼요.

 


나와 다른 당신의 모습도 좋아요.
나도 모르게 폴짝폴짝 뛰고 있네요.
아무래도 나 당신을 닮아가나 봐요.

 


다른 건 바라지 않아요.
그저 당신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작가는 옆에 있으면 있을수록, 가까워지면 질수록,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게 되는 사람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살아가면서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선물들을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선물이라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 '용기', '정직함' 등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하는 듯 하다) 그러니 주변의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주는 선물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했다.


이 책은 사랑하면서 느끼게 되는 소중한 마음들을 나열하고 있다. 당신이 내게 주었든 내가 당신에게 주었든 사랑하면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되고, 그 영향을 받아서 더 행복해지는 것. 그리고 사랑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선물이라고 끝을 맺는 이 책은 사랑의 감정을 다시 되새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 사랑하고 나서 생기는 나태한 마음,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이 사람을 왜 사랑하게 됐더라.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사람의 어떤 점이 좋아서라기보다 그냥 좋아진 건데' 같은 생각이라도 괜찮다. 그저 곁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오늘 내 곁에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자 가장 큰 일이 아닐른지.


동화책같은 순수한 마음들이 담긴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동안 말하지 못한 내 마음이야." 라는 오글거리는 대사들도 함께 적어서-

(물론 말로 못하니 적는다는 얘긴데 말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직접 해줘도 좋을 듯)

함께 있음이 즐겁고, 내 삶에 당신이 있어 다행이라는 책 제목은

받는 이의 입장에서 얼마나 기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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