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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딸 - 가깝고도 먼 사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심리학
이우경 지음 / 휴(休) / 2015년 5월
평점 :
요즘 TV에서 '보여지는'
아빠와 딸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의하면 '딸바보' 쯤이 아닐까 생각한다. 프레디(Friendly+Daddy)라는 단어가 친근해질 정도로 TV 속
아빠들은 권위는 내려놓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편안한 아빠, 친구같은 아빠,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아빠 등으로 포지션을 바꿨다. 옛날처럼 밥상을
엎는다거나 굉장히 무뚝뚝하다거나 하는 아빠들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요즘에는 친근한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의 정서가 다른
아이들보다 안정적이라는 결과도 나오고도 있다. 아빠들은 변화하고 있고 사회적 상황도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친근한 관계라고 단순하게
정의하기엔 '아빠와 딸'의 관계는 복잡하다. 아무리 TV에 행복한 아빠와 딸의 모습, 친근한 모습들이 비춰진다해도 일상적으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이야기하기엔 힘든 것은, 관계라는 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라온 환경, 살고있는
실생활을 고려해야만 하고, 그것들은 TV에서 보여지는 것들보다는 훨씬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관계
손상의 핵심에는 대부분 어머니, 아버지가 있다. 모성 신화가 워낙 강한 탓에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도처에 넘쳐난다. 반면
아버지와 딸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드물고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가 근래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재조명되면서 이에 대한
콘텐츠도 늘고 있는 추세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딸들의 무의식에 여러 형태로 자리잡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관계심리학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p.
7)
<아버지의 딸>은 결핍이 있는 딸들에게는 사실 마음 속 한 켠에 아버지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위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서로간의 관계를 맺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식으로든 아니면 나쁜 식으로든, 어떤
방향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전제가 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자립할 때까지 적어도
15~18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좋든 싫든 함께 있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그를 훌쩍 넘는 시간동안
관계를 맺는다면 영향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다. 세상엔 굉장히 여러가지 형태의 가정(집)이 있다. 태어나기 전 혹은 어렸을 때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집, 아빠가 너무 바빠 관계를 가질 시간이 없었던 집, 능력이 없는 아빠라 힘들게 살아야 했던 집, 폭력 혹은 주정뱅이 아빠라
역시나 힘들게 살아야 했던 집 등 각자의 집에 계신(혹은 계시지 않는) 아빠들의 캐릭터는 굉장히 다양하다. 이렇게 몇 개의 부류로 나누기
힘들만큼 말이다. 이보다 더 다양한 집들의 더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받은 영향이란 것 또한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여러가지 여성들의 상황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1번 챕터는
자신이 왜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풀어내고 싶었던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고, 마지막 6번 챕터는 어떤 식으로 용서와 화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폭력적인 아빠의 아래에서 자란 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알파걸로 살고 있는 딸은 어떤 아버지를 품고 있나?
세상에 있는 모든 유형의 여자들을 다룰 수는 없었지만, 많은 종류의 여성들을 다루었다. 가명으로 등장하는 누군가도 있긴 했지만, 누군가의 사연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저자는 그 상황 속의 여자들은 어떤 행동을 해 왔고 그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떡하니 내놓았다. 하지만 그런
진단(?)은 모두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한 발구름판일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에게 구원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각자의 존재에 대해 깊이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자기가 지지 않는 책임을 상대가 대신 질 수는
없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백마를 마련하고 그 위에 올라탈 수 있어야 한다. (p.
199)
책이
쓰인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안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고해보고, 그 관계 속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괴로운 이유를 제대로 찾아 그 원인을 제거하는 데 있다. 더 나은 삶, 좀 더 편안한 마음의 삶을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군다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와 그 행위를 해야한다는 것에 있어 더욱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힘이 드는지 그 이유를 주변에서 나에게서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어딘가 모르게 자리잡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도 있다는 얘기라는
이 책.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쌓이는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에 대한 생각까지 하게 하는
책.
사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해보게 됐다. 과연 나에게도 아빠에 대한 마음이 한 켠에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 20년이 넘는
시간, 거의 3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아빠를 떠나본 적이 없는 내게도 아마 그녀들과 비슷한 마음이 어느 하나쯤은 있을 텐데-
비슷하다 생각한 것이 있는 것 같기도 없는 것 같기도. 다만, 마지막으로 저자가 언급한 작가의 이야기를 남긴다. <아버지의 딸>의
궁극적인 목표 같기도 한 이 문장,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듯 하다.
작가
사라 메이트랜드의 말이 기억난다.
"나는 아버지의 딸이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p.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