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잘 먹는 것 - 삼시 세끼 속에 숨겨진 맛을 이야기하다
히라마츠 요코 지음, 이은정 옮김 / 글담출판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먹방부터 시작해 쿡방으로 이어지고 있는 요즘, TV를 틀면 요리하는 남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전문 셰프들'은 물론 '그냥 남자 사람들'도 말이다.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의 줄임말 요섹남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남자가 요리하는 것이 더이상 이상한 시대가 아니게 됐고, 오히려 남자가 요리하는 것을 부추기는 시대 속에 살고 있기도 하다. 내가 살아왔던 그 수 많은 날들 중에서 '요리'에 이렇게나 열광했던 적이 또 언제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먹는 것에 열광하고 있다. 하루 세끼 챙겨먹기 귀찮아 하고 어떻게 하면 밥 먹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걱정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어떻게 하면 한 끼를 잘 챙겨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시대가 도래했단 얘기다. 한 때 유행으로 지나갈지 아니면 이 트렌드가 한동안 계속될지 잘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사람들이 자신이 먹을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그 트렌드에 따라 요리에세이도 많이 등장했다. 현재 방송을 타면서 유명했던, 혹은 유명해진 셰프들이 쓴 에세이들이 말이다. 예전에 냈던 책들도 다시금 출판되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각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이 책도 그런 류가 아닐까 했다. 일본에서 유명한 푸드 저널리스트라고 했고, 트렌드에 맞춘 요리 에세이니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첫 번째 에피소드를 읽자마자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갔다. 이건 어디선가 봤던 그런 에세이가 아니었다. 섬세하면서도 특별하고 독특한 에세이였다.

 

세상에! 손가락이 또 하나의 미각이라니! 잊고 있었다. 고소한 동태전을 집어 든 것도, 부드러운 생크림 케이크의 크림을 콕 찍어든 것도 손가락이었다.

추천의 글_박미향 (한겨레신문 맛 전문 기자)

 

책의 맨 첫 에피소드. 그만큼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에피소드는 책을 읽고 있는 이가 자신의 무릎을 탁! 치게끔 만든다. 박미향 기자가 이야기 한대로 '손가락'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촉감, 그것이 또 하나의 미각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인도에 가서 밥을 먹을 때 느꼈던 그 생소하면서도 즐거운 느낌, 복숭아 껍질을 벗길 때 느껴지는 느낌. 살면서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라고 생각해본다면 아마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사용한다. 하지만 손가락 너머에서 느껴지는 촉각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 작은 차이를 발견해 내고 이야기해준다.

 

 

 

 

슬쩍 집어 먹는 건 손가락만 할 수 있다. 젓가락 같은 걸 쓰면 흥이 깨진다. 아무도 몰래 살짝 맛을 볼 수 있다.

까칠까칠, 매끌매끌, 촉촉, 서늘서늘, 미끌미끌. 손가락이라는 또 하나의 혀를 업신여길 수 없는 게 이 때문이다. (p. 18 :손가락)


 

돌은 대단하다. 돌이 아니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맛이 있따. 아니, 맛만이 아니다.

돌이 아니면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모습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분명 돌이 태고의 기억을 전해 주기 떄문일 것이다.

거칠하고 미끄럽고 차갑고 딱딱하게 닫힌 이 유기물 덩어리에는 분명히 지구의 1분 1초가 퇴적되어 있다.

주방에서 갑자기 돌을 바라보며 인간과 자연의 세월을 생각한다. (p. 252 :돌)

 

 

 

 

 

묵묵히 먹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아무 말 없이 먹는다.

맛있다, 맛없다, 조금 간이 덜 된 게 좋다, 시치미가 있으면 좋겠다,

너무 오래 조리한 거 아니냐 같은 말은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묵묵히 젓가락만 움직인다. 그러면 온몸에 만족감이 퍼지면서 안정을 느낀다.

식은 밥은 그런 것이다. (p. 76 :밥)


 

밥은 식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저금이 줄고 나서야 비로소 그 고마움을 알 듯,

무겁고 차가운 밥에는 씹으면 씹을수록 올라오는 듬직한 단맛이 난다.

밥이 식으면 쌀알 속에 숨어있는 무언가가 스멀스멀 정체를 드러낸다. (p. 77 :밥)

 

 

 

 

 

책을 일고 있노라면 금방 산 빵과 바싹 말린 양파의 맛이 떠오른다.

몇 십권, 몇 백권의 책이 가슴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맛과 냄새가 쌓여간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면 그 맛과 냄새는 어느새 확실하게 윤곽을 드러내며 이미 먹은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참으로 제멋대로고 묘하고 이상하다. (p. 57 :책)


 

어둠이 천천히, 천천히 녹아간다.

아무리 바쁜 순간이라도 촛불의 불빛을 보고 있노라면 거친 파도와 같은 일상이 순식간에 잦아든다.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갑자기 모습을 감춘다. 덤으로 열어 놓은 창문으로 여름의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 들어오면 발은 공중에 뜨고 혼은 두둥실 떠다닌다. (p.282 :촛불)


 

책에 등장하는 것들은 뭔가 대단한 요리나 레시피가 아니다. 식탁에서 너무나도 흔히 볼 수 있는 소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주인공보다는 주인공을 빛내는 데 쓰이는 재료들과 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릇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이런 게 요리 에세이야? 생각할 만큼 제목들 옆에 적힌 '소재'들을 보면 요리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것들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작가는 요리가 아닌 주변으로 물러나 있는 것들에게 온기를 나눠주며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의미들은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음에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은 것들이거나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작가가 자신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있고, 에세이라는 것이 원래 작가의 취향이 반영되는 거라지만, 그렇다기엔 작가의 취향이 나와 너무도 잘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자이기에 엄마로서 살아왔고, 그래서 주방에 있는 게 익숙하다. 그 오랜 시간동안 (딸아이의 도시락을 18년간 쌌다는 대목을 보건대 작가는 꽤 나이가 있는 듯 하다) 주방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느껴왔고,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을 땐 자연히 여러 이야기들이 잘 섞여서 등장한다. 엄마의 시선처럼 따뜻하고 여자의 섬세함, 소녀의 섬세함까지 갖출 수 밖에 없는 '나만의 공간' 주방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것들. 자신이 애정을 갖고 있는 것들의 이야기는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진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라면 몇 권이라도 더 읽을 수 있겠다 생각할 만큼.


<냉장고를 부탁해>의 털그래로 활약중인 박준우 기자는 추천의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아무 의미 없는 '먹방'과 시청률을 위하여 만들어진 '쿡방'에 정신을 놓고 있을 때, 그녀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일상의 순간들을 찾아낸다. 달콤한 꿀이 가득 차 있는 과일의 껍질을 잡아당기는 손가락, 홍차에 레몬을 담그는 단 2초의 순간, 그리고 벗기지 않은 껍질 아래 씹히는 연근에서 스며 나오는 맛처럼 말이다." 라고 말이다. 이 책은 일상에서 잊고 있었던 순간들을 기분좋게 다시 떠오르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박준우 기자가 말한 문장이지만 너무 좋아 내가 다시 쓴다)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공감이 가득하고, 더불어 읽는 내내 맛있음이 솟구치는 이 에세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의 편안함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이라는 것은 '여행자'와 '거주민'에게 와 닿는 것이 다른 법이다. 생각하는 것부터 행동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한 번 스쳐 지나가야 하는 여행자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간직하려고 애를 쓴다. 언제 다시 와 볼 지 모르니 한 번 왔을때 무언가라도 남기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아서다. 뽕을 빼자!라는 마인드는 차치하더라도.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일상이다. 매일 지나다니면서 보는 흔한 것들이고, 어떤 마음을 품기엔 생활이 팍팍하다. (왜이렇게 삶은 어디서나 팍팍한 걸까) 그래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또 다른 차이도 생긴다. 여행자는 볼 수 없는 아주 세세한 것을 거주민은 볼 수 있다는 것. 유명한 곳이 아닌 나만의 장소도 찾을 수 있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를 좋아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즐길 수도, 또 정말 아무도 모르는 괜찮은 곳을 찾을 수도.

 

그래서 여행자의 에세이와 거주민의 에세이 그것 각자의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의 사적인 도시>는 후자이다. 뉴욕에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살면서 겪었던 일들을 일기처럼 두서없이 다루고 있지만, 흔하게 봐 왔던 여행서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내게는 좀 신선한 책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녀가 블로그에 썼던 일기를 추려서 낸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이야기는 서문에 등장한다.) 자귀짚다,라는 처음 들어보는 말로 서문의 제목을 달았기에 이 말뜻이 뭔가 했더니 짐승을 잡기 위해 그 발자국을 따라간다는 뜻이란다.

 

나라는 짐승은 무슨 먹이를 찾아 어떤 발로, 어떻게 걷고 있을까. 어떤 길을 다니고, 어떤 풀의 냄새를 맡고, 어디서 물을 먹으며, 가끔씩은 멀리 보기도 할까. 실제로 원고를 읽어나가니 길고, 암담하고, 눈물나고, 때로 눈앞이 환해지기도 하는 여행이 시작된 듯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 스스로 내 발자국을 쫓는 일은 낯익기도, 낯설기도 했다. 내 안에서 이미 체화된 어떤 사실들이 꿈틀거리며 내 몸안에 자리잡기 시작한 순간이 보였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들도 있었다. 어떤 글을 쓰던 무렵 일어났던 어떤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마땅히 생각나야 하는 어떤 사실들은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찍은 발자국 사이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도 보였다. 기억이란 상실의 역사이기도 했다. (p. 10)

 

불과 어제의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무려 몇 년전의 이야기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쓴 일기같은 글 속에서 그때의 자신들을 떠올렸고, 잃어버린 기억들 사이에서 새로운 길도 발견한 듯 보였다.

 

발자국을 따라가다보니 그 짐승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발자국을 되짚는 일은 그만두고 이제 앞으로 함께 걸어나가고 싶다. (p. 11)

 

 

 

 

이 책은 그녀가 쓴 아주 사적인 뉴욕의 기록이다. 뉴욕에서 사는 사람, 일명 뉴요커로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아주 단편적이지만 또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느꼈던 뉴욕에 대한 감상을 간접 경험하는 것은 둘째로 하고, 그녀의 생각들이 하나같이 생소한 것들이어서 (그러니까 나는 느껴본 적이 없는 것들이어서) 재미있었다. 블로그에 그냥 쓴 글이었고, 그것들을 다듬었어도 여전히 연속성은 없는 글들이지만, 하나하나의 글들이 그 길이에 관계없이 흥미로운 것들 투성이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거니와, 글쓰는 방식이나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내게는 호감으로 다가와서다.  

 

 

많은 이야기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흔적 위에 다시 쓴" 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글이다. 메모아르memoir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문서- 팰림프세스트와 메모아르가 비슷한 점이 많다면서 이야기를 했던 글이다. 여기서 메모아르에 내가 꽂힌 것이다.

 

기억은 사실과는 차이가 있는, 시간을 거쳐 구성된 세계이다. 선택하고, 삭제하고, 지워지고, 다시 프레임하고, 지워졌던 것이 결국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기억의 구성 과정은 썼다 지우고 다시 쓰는 고대 문서의 형태와 닮았다. (p. 93)

 

고어 비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메모아르까지 넘어간 것인데, 팰림프세스트라는 것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문서인데다가 기억과 연관지어 이야기하니까 재미있었다. 그녀가 뉴욕에서 겪은 이야기들은 내가 겪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그게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인 것 같다.

 

 

 

사람들에게 각자만의 사적인 도시가 있듯이, 작가의 사적인 도시는 뉴욕이었다. 이 책으로 뉴욕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아주 사적인 이 기록이 뉴욕을 조금이나마 친근하게 느끼게 해 준 것만은 사실인 듯 하다. 아주 먼 나라가 아닌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게 된 느낌.

 

그녀의 기록을 보니 내 인생도 기록하면 <나의 사적인 서울> 정도의 퀄리티가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냥 재미도 없고 늘 살아왔던 도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테니까. 글쎄- 가장 사적인 것이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생각한다는 그녀의 글은 그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읽기 더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뉴욕이 특별했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p. 1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한창훈'이라는 작가를 잘 알지 못한다. 내 편협한 독서야 신간평가단 13기때부터 줄줄이 읊어왔으니 더 읊을 필요는 없겠고..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통해서 알게 되는 작가가 꽤 많은데, 아마도 '한창훈' 작가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요즘들어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왜인지 그 이유까지는 알 길이 없으나 분명한 건, 사람들이 글로써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덩달아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 책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또한 그런 책들의 종류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글 쓰는 게 좋은지, 어떤 게 좋은 글인지, 그리고 자신이 글쓰는 방법은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책. 하지만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이 책은 그저 '한창훈'이라는 사람 그 자체였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면서 책은 작가 그 자체라니 조금은 아이러니 한 듯도 하다. 하지만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작가의 말에 모두 설명되어 있다.

 

왜 쓰는가, 이런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 옳기는 하겠지마만 좋지는 않다.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 차라리 쓰고 있는 사람을 지켜보는 이가 답하는 게 더 좋다. '쟤는 아마 그것 때문에 맨날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을 거야.', 이런 답이 나올 테니까. 왜 안 좋은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니까. 왜 사는가를 물어오면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면 대부분 부끄럽고 쪽팔리니까. (p. 6)

 

왜 쓰는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던 작가의 '작가의 말'만 보고 이 사람이 굉장히 내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겨우 한 문단 읽었을 뿐인데,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다니. 이 사람 진짜 뭔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무튼. 쪽팔리다 이야기했던 작가가 그래도 자신이 왜 쓰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가장 간단한 이유는 원고료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고, 사실 쓰는 행위가 먼저라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은 뒤에 생긴다 (p. 7)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가 댄 여러가지 이유들 중에서 '주변의 기록'이라는 그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생은 여러가지 맛이 나는 요리인데, 한 가지 맛만 나면 재미없지 않겠냐며 되묻는 그의 글에서 왜인지 그의 뚝심을 보았다.

 

 

작가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크든 작든 어떤 이야기가 생기고, 그것을 글로 차분히 옮겨내면서 사람을 추억한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를, 스쳐지나갔지만 자신이 만났던 누군가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자신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꺼내 놓은 이야기들에선 작가다운 풍모도 보이지만, 그에 비해 인간적인 모습도 더러 출연한다. 작가가 소설가가 되기 전의 모습들도 보이면서 그가 겪었던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모습이 퍽 재미있다. 아무래도 에세이다 보니 그의 성격이나 말투 같은 것들이 더 잘 드러나기 마련인데, <나는 왜 쓰는가> 속 이야기들은 작가의 목소리가 더 입혀진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착각일까.)

 

첫 에피에 등장하는 동네 거지형부터 자신이 교류했던 문인들과의 에피소드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건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비춰졌던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여실히 드러났달까. 툭 던지는 말투 속에 따스함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특징도 잘 살려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그가 말하는 가족들은 모두 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들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변변찮은 시골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논다. 무릎이 까지면 자꾸 만져보고 딱지가 앉으면 그 딱지를 뜯어내며 혼자 논다. 시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p. 223)

 

그가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음에 들어 가져왔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란 가볍지가 않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농을 이렇게나 와닿게 비유하다니 말이다.

 

글쎄. 이 책은 작가의 목소리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가 쓰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들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 법한.

 

내가 쓰는 이유는 그들이 애써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당대 이야기로 그런 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p. 14)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즐겁다. 그가 가끔씩 자신의 입을 빌려 이런 이야기들을 종종 들려줬음 하는 바람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 - 열여섯 마리 고양이와 다섯 인간의 유쾌한 동거
이용한 글.사진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있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고양이의 사랑스러움. 그건 백날 입으로 이야기해 줘봤자 직접 겪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쉽게도 없고(ㅠㅠ)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친구들에게 해 봤자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자주 찾아보는데, 세상엔 길냥이들에 대한 책들도 많고 고양이들에 대한 책들도 많다. 그 중에 좋아하는 책은 이용한 작가의 책인데, 그의 책에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슬프지 않다. 아니 슬픈게 뭔가. 하나같이 '똥꼬발랄!'하게 등장한다. 난 그것이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의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은 참 따뜻하다. 그래서 더더욱 그가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고양이들은 함께 지켜보고 싶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 이용한 작가의 신간이어서 눈이 갔다. 또 어떤 고양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으려나.


이 책을 간단하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용한 작가 부부의 아들과 아기고양이들의 육아일기 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갑작스럽게 구조된 아기 고양이들과 만나게 되면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들은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세상에 많은 고양이들이 존재하고 있을 테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고양이들 (앵두, 오디, 살구 1세대부터 노랑이들, 삼순이, 또 누구더라. 고양이가 16마리나 등장해서 이름 외우는 것도 만만찮다)은 참 행복한 고양이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서 로드킬 당해죽는 고양이들은 통계도 나오지 않으니 셀 수 없을 거고, 주택가에서 강제 포획되어 죽는 고양이들 또한 통계가 없으니 셀 수 없을 것이다. 굶어 죽거나 사람이 함부로 버린 것들을 잘못 먹어 죽거나 다쳐서 죽거나 어찌됐든 인간의 세상에서 고양이들은 참으로 살기 힘들다. 고양이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마음씨 좋은 캣맘 캣대디들도 많이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들에 대한 인식은 '쥐를 잡는 동물'이라던가 '불길한 요물'이라는 인식이 대부분 아니던가.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똥꼬발랄 녀석들은 그런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애초에 고양이라면 무조건 무너지고 보는 작가에게 발견된 것도 그렇고, 첫 시작은 쥐를 잡으러 '입양 당한' 것이지만 이 녀석들에게는 뛰어놀아도 위험하지 않은 공간이 있는 곳으로(작가부부의 처갓집) 입양된 것도 그렇고, 먹을 것이 풍족하고 자신들을 아껴주는 가족들도 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고양이들이다.


그래서 그럴까. 책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대체로 나른하다. 그러면서도 개냥이의 면모를 보이며 사람을 잘 따른다. 구조했던 아이들이 아가냥들이 어른냥이 되어 제 새끼도 낳는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묘하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고양이들을 다룬 책은 앞에서 내가 이야기했다시피 많이 읽어봤는데 말이다.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다르게 좀 신선하다.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지내는 거야 특별할 것이 없는데, 그 고양이들과 함께 유대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 때문인 듯 하다.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처갓집은 '다래나무집'이라고 불리는 마당이 넓은, 장독대가 즐비한, 늘 푸르른 산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작가 부부의 아들도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아이가 고양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면서 산을 뛰어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간직하는 아빠, 엄마의 모습이 퍽이나 예뻐보였다. 아이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기를 띄우며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고양이들은 그런 아이의 곁을 지키면서 늘 함께 다니는 그 유대감 말이다.


아가냥들이 엄마냥이 될때까지의 시간이 담겨 있으니 적은 분량은 아닌데, 생각보다 '글'의 양은 적어서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가 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고양이와 아이를 찍은 사진으로 풀어내어 보는 내내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진들 아래에 작가가 코멘트 형식으로 달아놓은 글들은 위트를 담고 있어 빨리 읽히는데 다시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푸른 배경으로 인해서 눈도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말이다.


사랑스러운 책이다. 유쾌한 동거라고 적어 놓았기에 뭘까? 생각했는데, 맞는 얘기다. 유쾌하다. 즐겁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겠고, 실상 빨리 잘 읽히기도 한다. (글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책을 보고 있노라면 고양이가 사랑받는 저 집에 가면 누구라도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하게 된다. 함께 산 지 이제 2년. 고양이들은 아마 10년 이상을 함께 살 수도 있고, 혼자 독립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 할 날들 속의 더 많은 즐거움을 알고 있기에 이 책의 끝이 그저 끝이 아님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애매점 - 그가 떠난 빈 자리가 허기질 때
이박사 지음, 남달리 그림 / 51BOOKS(오일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당연히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그것은 남녀 사이 연애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계보다 더 헛헛한 느낌이 드는 건 단연 연애가 아닐까 한다. '사랑한다'는 마음을 온전히 쏟아부으며 서로에게 집중하고 알아가고 즐거워하던 시기를 함께 보내왔기 때문에 멀어지고 소홀해진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는 관계 말이다. 그래서 헤어지면 그렇게나 헛헛해지는 것이다. 늘 곁에 있던, 헤어질 때조차 너무도 같이 있는 게 당연했던 그가 그녀가 없으니 말이다.

 

이별을 요근래 하지도 않았고, 이별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시기도 아닌데 이상하게 끌렸다.

<연애매점>이라는 제목도 그랬고, 이 글귀도 그랬고.

 

너와 헤어진 후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 되어 버렸다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는 이 글귀는 그냥 읽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책을 펼치면 글자가 처음 등장하는 페이지에 적힌 글인데, 이건 이별을 한 사람들이라면 너무나도 공감하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요근래 본 드라마 중에 <후아유>라고 있었다. (뭐 청소년 드라마이긴 하지만 뭐 어떠랴) 거기서 "시간을 잘 가게 하는 방법 가르쳐 줄까?"라고 여자주인공이 묻자 남자 주인공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시간이 빠르게 흐를 때는 너랑 있을 때야." 막 사랑에 빠진 남자 고등학생이 여고생에게 던지는 사랑고백이자 돌직구였고, 저 위의 글귀와도 연관이 있지 않은가. 함께 있으면 즐거웠던 시간이 헤어지면 더디게 흘러간다. 아니 흘러간다기 보다 내가 그 사람을 잊기 위해 모든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나이는 사랑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지만,

이별하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별하고 그 시간을 견뎌내는 사이 우리는 어른이 된다.

 

 

 

간단하지만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길지 않은 이야기들 속에는 사랑과 이별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고, 그 옆에는 연필로 그린 듯한 일러스트들이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다. 가끔씩 가슴을 쿵하고 내려치는 글들이 있는데 그런 글들은 꼭 표시해 놓고 한 번씩은 옮겨 놓게 된다. 마음에 들어서 말이다.

 

이 책이 연애를 막 끝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섣불리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연애를 막 끝낸 이들에겐 어떤 위로의 글이나 말보다도 술 한잔과 시간이 약이라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과 이별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굉장히 필수적인 것이고, 그로 인해서 누군가는 즐겁고 누군가는 슬플지언정 말이다.

 

지금의 나는 위로가 필요없는데도 조금 위로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이 사랑에 아픈 누군가에게 진정한 위로를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별도 있지만

담담히 지나가는 이별도 있단다

술먹고 토해내고 싶은 상처도 있지만

따뜻한 차 한잔으로 삭히고 싶은 상처도 있는 법이고

 

그러나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단다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그러니 당신의 이별도 나쁜 이별은 아닌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