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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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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알라딘 신간평가단의 소설파트로 처음 활동하면서 내가 직접 추천 목록에 집어 넣었던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공포나 호러쪽은 취향이 아니지만, 궁금증이 가득 피어오르는 책소개를 읽으면서 내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책은 그렇게나 활발했던 호기심을 단순히 잠재워주지도, 그렇다고 명확한 답을 내주지도 않은 채 그렇게 끝이 났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몰락한 귀족의 대저택이 주는 스산함은 익히 영화를 통해 접해왔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 많은 방, 집안 곳곳의 낡은 바닥, 깨끗하게 정돈되기 힘든 구석구석들까지. 공간이 너무 넓으면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죽어있다고 봐도 다르지 않을테니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작가 세라 워터스는 그 공간을 잘 활용했고, 역시나 그런 스산한 집안 곳곳에서 그시대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초자연적 현상들이 일어났다.

 

책을 읽는 내내 긴장을 해야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기 힘들었고, 등장하는 인물들 중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이는 없나 확인해야 했으니까. 심리적으로는 굉장히 핀치에 몰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또 화자인 닥터 패러데이의 시각으로는 그것이 다 전달이 되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자주 끊어봐야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 앞부분을 자꾸 들춰봐야 했다. 진득하게 앉아 책을 한 번에 읽었으면 그 느낌은 어땠었을까..하는 아쉬움도 약간은 남는다)

 

젠트리라는 사회 고위 계급, 그들만의 세상이 따로 펼쳐져 있고 다른 계급은 얼씬도 못하게 하는 그들의 폐쇄성이 소설을 한층 어둡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폐쇄성이라는 것은 곧 새로운 것의 유입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이 가진 위험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법이니까.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대저택을 지키는 것만이 몰락했으면서도 여전히 젠트리라는 계급을 지닌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을 테니 말이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채 목숨을 잃어갔는데도 불구, 그 존재는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명확한 답을 내주지 않은 채 소설이 끝났다는 처음의 이야기는 이것을 뜻한다. 이것이 내게는 혼란을 더욱 자초하는 일이 되었다. 다만, 제목인 '리틀 스트레인저'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 어린 시절 유모였던 엄마를 따라가서 봤던 그 대단하고 거대한 헌드레이즈 홀을 사랑했던 열살 소년, 그 소년이 의미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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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
생 텍쥐페리 지음,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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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의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의 1번으로 출간되어 현재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인디고의 아름다고운 고전 시리즈의 시작이자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보게 됐다. 초판 발매가 2006년이고, 현재 26쇄를 찍어냈으니 명색이 스테디셀러라 이름 붙여도 될 듯하다. 9년이라는 시간이 새삼스럽다만, 내년이면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도 10년을 맞이하게 된다.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의 <어린왕자>를 처음 봤을 때, 당시 굉장히 새로운 시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러스트와 동화를 합쳐 '소장하고 싶은 동화책'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말이다. 동화책은 어린이들이 보는 책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었을 때, 그 타깃을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돌려서 어린이가 아니어도 동화책을 집어들게끔 만들었다. 또한 살면서 다 잊어버린 고전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도 만들어 냈고 말이다. (지금까지 나온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는 총 23권이다.)


사실 올해 들어 어린왕자를 꽤 자주 만나게 되는 듯 하다. 인디고에서는 지난 4월, 불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새롭게 끝내 영문판 어린왕자 <The Little Prince>를 출간했었다. 그리고 이미 그때 <어린왕자>를 한 번 후루룩 살펴본 바 있다. (블로그에 리뷰도 썼다) 그리고 이제 곧 <어린왕자> 영화도 개봉한다. 프랑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데, 캐릭터의 목소리를 맡은 배우진이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OST는 한스짐머가 맡았다고 하는데, 어린왕자라는 컨텐츠에 애니메이션, 배우들, 그리고 음악까지. 영화를 보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이 영화는 보러 가기로 했다. 영화 속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조종사이자 화자인 '나'가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옆집에 살고 있는 소녀에게 자신이 젊었을 적 사막에서 추락했을 때 만난 어린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로- 조근조근하지만 마음을 울릴 것만 같아서 기대중이다.

 

외로움을 잘 타는 어린왕자는, 친구도 없이 홀로 자신의 행성 안에 갇혀 있다시피 한다. 그게 그 어린왕자의 존재 이유이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인 어린왕자에겐 버티기 힘든 외로움만이 남을 뿐이다. 늘 혼자 지내왔기에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툴다. 그리고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상처 받는다. 어려서 모르는 것도 많고 깨닫는 것도 많지만 새삼 아픈 것도 많다. 게다가 처음 본 조종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대뜸 말하는 순수함을 지녔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왕자의 아이같은 모습은 꼭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 느낌이다. 어린왕자가 이해할 수 없어하는 다른 행성들의 어른들의 모습들을 모두 이해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어린왕자가 되고 싶은 어른아이들.


영화의 티저에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아이의 말에 늙은 조종사는 이렇게 말을 한다.

"어른들도 누구나 처음엔 아이였단다 그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해"

누구나 아이였기에 아이들을 이해하기도 하고, 이제는 아이가 아니기에 이해할 수 없기도 한, 어른이 되었어도 놓고 싶지 않은 그 무엇.

어린왕자는 그것을 두드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렸으나, 여전히 아이이기를 바라는 어른들에게-

이 책은 동심과 함께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 전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 속 어린왕자의 죽음은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영원히 그 상태로의 기억으로 남아 아이이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마도 어른들 마음 속의 어린왕자는 영원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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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 완결판
리처드 바크 지음, 공경희 옮김, 러셀 먼슨 사진 / 현문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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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표지는 빛을 받으면 더 파랗게 빛나는 듯 했고, 아래쪽 띠지가 은빛으로 반짝여 마치 바다를 연상시키는 듯 했다. 그 위에 하얗게 그려진 갈매기는 왜인지 내가 아는 그 조나단일 것만 같은 확신도 들었고 말이다. 굉장히 오랜만에 <갈매기의 꿈>을 읽어봤다. 오랜만에 새로 출간된 <갈매기의 꿈>이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완결판'이라는 세 글자에 눈이 더 갔기 때문이다. '내가 읽었던 게 끝이 아니었나?'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속 내가 읽었던 그 조나단의 이야기가 끝이 아니었다니. 대체 뭐가 더 있는 거지? 궁금증은 얼른 책 속으로 나를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고작해야 대여섯살 정도였을까. 우리 엄마도 여느 엄마들처럼 딸에게 백과사전을 비롯한 '전집'을 안기기를 좋아했고, 그 전집들 틈바구니에서 조나단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 기억은 어느정도 왜곡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하면서도 확실한 것은 내가 <갈매기의 꿈>을 어렸을 때 읽어본 적이 있다는 것!!) 조나단의 일명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이 무모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읽었던 <갈매기의 꿈>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조나단이 왜 그런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던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대에 읽는 <갈매기의 꿈>은 되게 낯설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조나단의 행동이, 그리고 작가가 조나단에게 부여하고 싶어했던 행동이, 그리고 땅에 있는 갈매기들의 행동들이 말이다.

 

조나단은 평범하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는 갈매기로 등장한다.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를 외치며 혼자 고군분투 하던 갈매기였고, 자신의 '앎'의 욕구에 충실한, 인간이었다면 그 끈기와 정신력으로 뭔가 일을 내도 열 번을 냈을 법한 주인공이다. (요즘 말로 하드캐리라고 하지)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이 내용 안에는 조나단의 실패와 좌절, 포기가 모두 드러난다. 조나단은 여러 번 비행에 도전했고, 여러 번 실패했다. 그리고 마지막 실패 즈음에는 비행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도 했다. 다른 갈매기들이 손가락질 하며 하지 말란 짓을 왜 자신이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괴감도 함께 느끼며, 그들이 하란대로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내용이 그를 대변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다시 비행에 나선다. ㅡ비행이라는 것은 꿈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비행에 집착하는 조나단의 모습은 꿈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꿈이라는 것은 이룰 수 있기에 꿈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불가능하기에 꿈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불가능에 도전해 성취하는 것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그 경우의 수가 적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사람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겨내야 하고, 불가능에 한 발자국 다가가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에게 그런 두려움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공부하기를 원하고 좀 더 나은 비행을 찾아내기를 원할 뿐.

 

갈매기들은 그런 조나단을 추방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했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모습은 인간세계의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룰 아니던가. 그렇기에 <갈매기의 꿈>은 판타지를 보여준다. 비행을 통해 지구상에서 사라져 다른 어딘가로 날아가 자신과 비슷한 갈매기들 속에서 좋아하는 것을 연마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100%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배움을 가르치는 설리번과 챙이 전하는 이야기는 결코 가상현실에서 던져지고 말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의 누군가를 일깨우는 일침들이라고 할까. 

 

ㅡ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은 이번 생과 똑같아. 한계도 똑같고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도 똑같지. (57쪽)

ㅡ 생각만큼 빨리 날려거든, 어디든 가려거든 자네가 이미 도착했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네. (71쪽)

 

목표를 정해놓고 자신이 도착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행동의 시작이라는 듯한 뉘앙스의 챙은 '아, 맞아! 나는 완벽하고 한계가 없는 갈매기야!'(71쪽)라고 외치며 비행을 성공해내는 조나단을 보며 '일종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 비해 3장과 4장은 조나단이 신격화 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달려간다. 조나단이 추방당했던 곳으로 돌아가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을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보이면서 그들의 꿈을 이끌어내던 초반과는 달리- 조나단이 사라진 이후 갈매기 집단이 보이는 조나단 신격화 되는 과정은 새삼 뜨끔해지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꿈이라는 것은 자신이 이룰 수 없을 때 신격화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듯한. 원래의 <갈매기의 꿈>이라면 위에서 이야기했던 초반의 이야기까지가 책의 끝이다. 신격화된 조나단, 그리고 변질된 그의 정신이 작가가 덧붙인 4장에 나타난다. 그의 꿈은 누구나 이룰수 있던 것에서 누구나 이룰 수 없는 것으로 성스러워졌으며, 신격화가 시작된 후엔 갈매기들은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는 신이 된 조나단을 숭배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른 조나단인 앤서니의 등장으로 희망을 보여주며 작가는 끝을 맺었다.

 

글쎄. 정확하게 작가가 의도했던 것들이 무언지는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조나단의 이야기를 온전히 느끼기엔 내가 꿈이 없는 젊은이 중 하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남겨두었다. 세상 속에는 수많은 조나단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꿈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세상을 꿈을 이룬 자들만이 이끌어나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꿈을 이룬 자들이 또다른 이들을 이끄는 좋은 선순환이 계속되는 때가 온다면, 사람들은 진정으로 행복해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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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교양 수업 - 내 힘으로 터득하는 진짜 인문학 (리버럴아츠)
세기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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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세상에 들고 나올 때 언급했던 "애플은 언제나 리버럴아츠와 테크놀로지가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해왔다.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항상 리버럴아츠와 테크놀로지의 갈림길에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리버럴아츠'라는 단어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건 동의한다 해도 그가 말한 내용들 중 무언가에 대해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던 내게 리버럴아츠라는 단어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단어일 뿐이다. 그래서 눈이 갔다. 리버럴아츠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인문학을 스스로 터득한다'라고 이야기 하는 이 책이 말이다.


인문학으로의 회귀,라면서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제목들, 그리고 인문학 관련 서적들이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고전들을 굳이 찾아 보지 않는다. 이렇게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서적들을 뒤져보며 그것들에 대한 대강의 지식만 알고 넘어가는 식인 것이다. 소위 말하는 '얕고 넓은 지식'들만 원하는 세상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잘난척 하기 위해, 있어 보이기 위해서. 하지만 책에서 저자는 이런 지식들은 쓸모없는 지식이라 단언한다. 이런 지식들을 백날 천날 머리 속에 집어 넣어봐야 시간이 지나면 스르르 흘러나가 버려 쓸모없는 것이 된다고 말이다. 직접 자기 스스로 생각하면서 터득해야 한다고 말이다.


'통찰력과 직감에 따라 본질을 파악하는 사고방식과 스스로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힘'(9쪽)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리버럴아츠이며, 이것은 '마음을 지닌 지식', '감성이 뒷받침하는 살아있는 지성'(12쪽)을 가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누군가 떠먹여주는 얕고 넓은 지식보다는 하나의 문제를 곱씹어가며 통찰하고 이해해서 제것으로 만든 뒤 다른 것들(다른 분야일 수도 있고, 같은 분야의 어떤 것일 수도 있고)와의 연계를 통해 스스로 지식을 축적해 나가도록 돕는 것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를 반증하듯, 책은 기존의 인문학 책들처럼 어떤 책들을 소개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소개한다기 보다는 그 책을 통해서 책의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보여준다. 하나의 책을 받아들일 때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이 그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말이다. 자연과학의 경우야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그가 이루어낸 (혹은 발견한) 업적들에 대한 생각들을 전하는 것이었다면, 철학쪽에서는 여러 책들을 한꺼번에 언급하며 이 책과 저 책 사이의 연결고리들을 찾아보고 계속 연결지어간다. 아무래도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보니 '흥미롭다'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내가 실제로 읽었을 때도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책들을 넘기게 됐다.


사실, 기존의 책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책이다. 책들을 선택하고 소개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비슷한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책에 대한 자세한 언급과 그 배경 지식을 줄줄 나열하지 않는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자신이 책을 읽고 정리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책들을 엮어나갈 뿐이다. 이것이 기존과 조금은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교양, 즉 리버럴아츠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무경계, 무장르의 횡단적 공통점이다. (23쪽) ​장르를 파괴하고 오간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요즘 학교에서는 교과서간의 합동수업을 통해 조금씩 변화를 꾀하고 있다.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아이들에게 틀을 깨는, 편견을 벗어던지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기존의 관성에서 다른 것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는 관성을 벗어나는 다른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그 다른 눈을 찾는 것은 어느것도 아닌 자신으로부터 존재하고 말이다. 인문학에서 감성을 찾아 기술과 결합시킨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시기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다른 무엇도 아닌 '스스로 생각하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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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안녕 - New Edition
황경신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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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같은 제목의 <슬프지만 안녕>이 출간된 지 딱 10년 만이다. 리뉴얼 되었다고는 하지만 전혀 새로운 느낌이 나는 것은, 내가 이전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무언가 많이 고쳐졌다는 느낌이 들어서일 수도 있고.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2006년에 출간 된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느낌과 책 표지의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읽어보고 싶었을 뿐.

 

 

 

<슬프지만 안녕>은 짧은 17개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 이야기는 이제 막 꽃 피운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고, 덤덤하지만 아픈 '이별 이야기'이기도 하다. 혹은 사랑과 이별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뭔가 세련된 느낌을 받았던 책 표지와는 다르게 내용들은 꽤나 아날로그적이다. LP판, 타자기, 낡은기타, 오래된 카페, 기차도 잘 서지 않는 기차역 등. 그렇게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닌 이야기들은 한사코 안녕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인생이 언제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듯,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도 만남과 이별을 한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것은 나의 풍경 속으로 잠시 들어왔다가 사라진, 당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라고. 이 이야기들은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누군가에게는 자세히 들춰보고 싶은 그런 이야기들이기도 한 것이다. 소소하지만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자세히 보면 알고싶은. 책을 펼치면 보게 되는 첫 번째 이야기부터 그랬다. 이 이야기는 내가 가장 상큼하게 읽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왜인지 모르게 내용이 따스한 느낌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해서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의 제목은 '녹턴'.


그림을 그려보자면 이렇다. 커피숍 앞 레코드 가게.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가 며칠 째 와서 레코드 가게의 주인에게 말을 건다. 무관심한 듯 책을 읽던 레코드 가게의 주인과 무언가 말을 걸고 싶어하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한달 후 레코드 가게 문은 닫혀 있는데 이번엔 그 앞에 서 있는 한 여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 여자를 발견한 예전 그 여자아이가 마주한다. ㅡ장면으로 치면 고작 2~3장면 밖에 되지 않았을 장면이다. 아마도 작가는 커피숍에 앉아서 봤던 몇 장면만으로 이야기에 살을 붙였던 게 아닌가 싶다. '나의 풍경으로 들어왔다 사라졌다'라는 작가의 말을 자꾸 곱씹어보면, 자신이 스쳐갔던 지켜봤던 풍경 속에서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몇 장면으로 이루어진 스톱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자신의 마음을 숨길 줄 모르는 여고생의 순수함과 지나간 사랑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 그리고 그 어른들에게 순수한 여고생이 던지는 "그 정도만 사랑했다는 거예요, 결국" 이라는 촌철살인의 멘트까지. 자신들의 흘러간 사랑에 대한 존중과 미련을 한데 묶어 시간 속에 날려버린 어른들의 모습은 따뜻했고, 여자아이의 일방적인 고백은 데이트로 승격하여 보는이를 웃음짓게 해서 이 이야기가 좋다. 쇼팽의 녹턴의 부드러움을 닮은 그런 이야기.

 

 

또 다른 이야기들 중에서는 '장밋빛 인생'이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좋다. '선배'라 칭하는 사람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글 속에 등장하는 카페 '장밋빛 인생'. 잠시 쉬어갈 곳이 필요했던 화자인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이 카페는 조금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앉고 걷고 춤추고 가끔은 웃는 인형 '마리'가 있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폴라로이드 사진에는 찍히는 1인 밴드 '폴'이 있다. 보이지 않는 손님들이 가득하기도 한 조금은 낯설고 이세계가 아닌 듯한 느낌의 공간. "다들 믿고 싶은 겁니다. 세상 어딘가에 장밋빛 인생이 있다는 걸 말이죠." 란 이야기를 해 주는 주인이 있는 카페 '장밋빛 인생'. 왜인지 이 세상에는 없는 듯 하지만  하나쯤은 존재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특별한 느낌이 나기도 하는 이 소설에서 적어두고 싶은 구절을 발견해 적어 놓는다.


인생이란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후환들과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아름다움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러나 어떤 노래는, 그토록 단단한 시간의 벽에 균열을 만들어 우리를 다시 한 번 불안하고 서러운 그 시절로 몰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157쪽)

 

 

 

 

 

 

 

남자사람친구를 오랫동안 짝사랑하다가 그 마음에 안녕을 고하는 이야기도, 크리스마스에 겪었던 짧은 스침에 대한 이야기도,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자신들이 예상하는 끝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만남조차 하지 않고 이별을 하는 이야기도,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한 듯한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도, 대학교때 자신을 좋아해주던 후배 아이와의 이야기도, 유화라는 기생과 관련된 이야기도. 과하지 않고 조용조용하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감정들도 격하지 않고, 그 감정들의 들뜸이나 아픔이 깊게 전해지지도 않는다. 딱 그정도. 책 속에는 슬프지만 안녕을 고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깊이만 등장한다.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깊이 공감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하기 힘들지만, 그들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통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를 되새기는 그런 책.


만남보다 이별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아마도 날씨가 쌀쌀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 속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후회와 미련이 담겨있는 것들이 더 잘 와닿는 건 계절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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