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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 완결판
리처드 바크 지음, 공경희 옮김, 러셀 먼슨 사진 / 현문미디어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파란 표지는 빛을 받으면 더 파랗게 빛나는 듯
했고, 아래쪽 띠지가 은빛으로 반짝여 마치 바다를 연상시키는 듯 했다. 그 위에 하얗게 그려진 갈매기는 왜인지 내가 아는 그 조나단일 것만 같은
확신도 들었고 말이다. 굉장히 오랜만에 <갈매기의 꿈>을 읽어봤다. 오랜만에 새로 출간된 <갈매기의 꿈>이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완결판'이라는 세 글자에 눈이 더 갔기 때문이다. '내가 읽었던 게 끝이 아니었나?'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속 내가
읽었던 그 조나단의 이야기가 끝이 아니었다니. 대체 뭐가 더 있는 거지? 궁금증은 얼른 책 속으로 나를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고작해야 대여섯살 정도였을까. 우리 엄마도 여느
엄마들처럼 딸에게 백과사전을 비롯한 '전집'을 안기기를 좋아했고, 그 전집들 틈바구니에서 조나단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
기억은 어느정도 왜곡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하면서도 확실한 것은 내가 <갈매기의 꿈>을 어렸을 때 읽어본 적이 있다는 것!!)
조나단의 일명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이 무모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읽었던 <갈매기의
꿈>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조나단이 왜 그런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던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대에 읽는
<갈매기의 꿈>은 되게 낯설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조나단의 행동이, 그리고 작가가 조나단에게 부여하고 싶어했던 행동이, 그리고 땅에
있는 갈매기들의 행동들이 말이다.
조나단은 평범하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는 갈매기로 등장한다.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를 외치며 혼자 고군분투 하던 갈매기였고, 자신의 '앎'의 욕구에 충실한, 인간이었다면 그 끈기와 정신력으로
뭔가 일을 내도 열 번을 냈을 법한 주인공이다. (요즘 말로 하드캐리라고 하지)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이 내용 안에는 조나단의 실패와 좌절,
포기가 모두 드러난다. 조나단은 여러 번 비행에 도전했고, 여러 번 실패했다. 그리고 마지막 실패 즈음에는 비행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도 했다.
다른 갈매기들이 손가락질 하며 하지 말란 짓을 왜 자신이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괴감도 함께 느끼며, 그들이 하란대로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내용이 그를 대변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다시 비행에 나선다. ㅡ비행이라는
것은 꿈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비행에 집착하는 조나단의 모습은 꿈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꿈이라는 것은 이룰 수 있기에 꿈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불가능하기에 꿈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불가능에 도전해 성취하는 것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그 경우의 수가 적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사람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겨내야 하고, 불가능에 한 발자국 다가가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에게 그런 두려움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공부하기를 원하고 좀 더 나은 비행을
찾아내기를 원할 뿐.
갈매기들은 그런 조나단을 추방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했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모습은 인간세계의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룰 아니던가.
그렇기에 <갈매기의
꿈>은 판타지를 보여준다. 비행을 통해 지구상에서 사라져 다른 어딘가로 날아가 자신과 비슷한 갈매기들 속에서 좋아하는 것을 연마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100%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배움을 가르치는 설리번과 챙이 전하는 이야기는 결코 가상현실에서
던져지고 말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의 누군가를 일깨우는 일침들이라고 할까.
ㅡ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은 이번
생과 똑같아. 한계도 똑같고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도 똑같지. (57쪽)
ㅡ 생각만큼 빨리 날려거든, 어디든
가려거든 자네가 이미 도착했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네. (71쪽)
목표를 정해놓고 자신이 도착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행동의 시작이라는 듯한 뉘앙스의 챙은 '아, 맞아! 나는 완벽하고 한계가 없는 갈매기야!'(71쪽)라고 외치며
비행을 성공해내는 조나단을 보며 '일종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 비해 3장과 4장은 조나단이 신격화 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달려간다. 조나단이 추방당했던 곳으로 돌아가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을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보이면서
그들의 꿈을 이끌어내던 초반과는 달리- 조나단이 사라진 이후 갈매기 집단이 보이는 조나단 신격화 되는 과정은 새삼 뜨끔해지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꿈이라는 것은 자신이 이룰 수 없을 때 신격화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듯한. 원래의 <갈매기의 꿈>이라면 위에서 이야기했던
초반의 이야기까지가 책의 끝이다. 신격화된 조나단, 그리고 변질된 그의 정신이 작가가 덧붙인 4장에 나타난다. 그의 꿈은 누구나 이룰수 있던
것에서 누구나 이룰 수 없는 것으로 성스러워졌으며, 신격화가 시작된 후엔 갈매기들은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는 신이 된 조나단을 숭배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른 조나단인 앤서니의 등장으로 희망을 보여주며 작가는 끝을 맺었다.
글쎄. 정확하게 작가가 의도했던 것들이 무언지는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조나단의 이야기를 온전히 느끼기엔 내가 꿈이 없는 젊은이 중 하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남겨두었다. 세상 속에는 수많은 조나단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꿈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세상을 꿈을 이룬 자들만이
이끌어나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꿈을 이룬 자들이 또다른 이들을 이끄는 좋은 선순환이 계속되는 때가 온다면, 사람들은 진정으로 행복해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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