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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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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이번에도 알게 됐다. 나는 문학의 깊이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사실 많은 작가군을 아는 것도 아니고, 작가를 생각해서 찾아보는 스타일도 아니고, 책을 읽는 스타일 같은 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보니 신간평가단을 해 오면서 만난 책 속 작가들은 낯선 이름들 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번 <오에 겐자부로>도 마찬가지다. 이땐 내가 주목신간 추천을 건너 뛴 바람에 어떤 종류의 새책들이 있는지도 전혀 살펴보지도 못했던지라, 만남부터 당황스러웠다. 700쪽 되는 책이 두 권이나 배달이 됐으니 말이다. (시스터 캐리도 오에 겐자부로도 첫인상은 '겁나 두껍다'부터 시작했다.) 문학상을 받았다고 챙겨보는 편도 아니고, 고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오에 겐자부로'라는 이름을 모르는 게 어찌보면 당연했다. 알고보니 굉장한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60년동안이나 꾸준하게 글을 써왔고,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일본 내에서 우익들의 지나친 활동에 반대하고, 자신의 개인적 경험들을 녹여낸 작품들을 썼으며, 굉장히 깊이가 느껴지는 소설들을 많이 쓰신 분이라고 한다. 깊이라고 이야기해 봤자 나는 그 분의 최신작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어떤 느낌일지는 감이 잡히지는 않지만, 철학과 시를 좋아하며 굉장히 관념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쉽게 읽히고 생각하면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점점 곱씹을거리들이 많아지는 소설인 듯 하다. 하지만 이 <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초기작품부터 모아져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관념적이라기보다는 주제가 쉽게 드러나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놀랐던 건 소설들의 주제들보다는 그 소설들이 언제 등장했느냐의 이야기였다. 대학생때 썼던 글이 상을 받게 되면서 대학생때 이미 진로가 결정됐던 오에 겐자부로. 별 뜻 없이 쓴 소설이었다고 본인이 회고했으니, 그렇게 대단한 소설은 아니겠지?란 생각을 하면서 읽어봤는데 이게 웬걸. 참신했다. <기묘한 아르바이트>라는 소설인데 등장인물의 개백정이라는 직업도 그랬고, 대학병원에서 실험용으로 기르던 개를 죽이려고 개백정을 고용했다는 설정도 그랬다. 개 150마리를 죽이는 '기능적인 비열함'도, 개백정이 '독극물을 쓰지 않고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에 대한 자부심'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으면서 그 아르바이트에 비관적인 느낌을 쏟아내는 대학원생의 캐릭터도, 그로인한 소설 속 잔인함들도. "우린 개를 죽일 생각이었지. 그런데 도리어 우리 쪽이 살해 당한 셈이네." 같은 이야기들은 꽤나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저자 후기에서 저자는 이 이야기는 본인이 초등학교 3학년때 겪었던 일과 친구가 해 줬던 이야기를 이중구조로 써보고 싶었으나 잘되지 않아서 <사자의 잘난 척>이 나오게 됐다는 얘기도 전했다.

 

한 남자가 거의 50년이라는 세월동안 글을 썼다면 처음과 끝의 글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가 구분해 놓은 후기 파트는 내게는 어려운 소설들이었다. 글 속에 내포하고 있는 뜻이 있는 것 같은, 한국말을 보고 있는데도 한국말 같지 않은 글이었달까. 예를 들면 이런 것. "개체를 초월한 그리고 개체를 품은 [나의 영혼]의 빛의 군집을 향하여 하 마리의 반딧불이로서 빛을 발하면서 날아간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나의 삶이 있는 거다. 이런 건 벌써 아주 이전부터 [나의 영혼]에 연결되는 자신이 알고 있었고, 그 이상의 것은 [나의 영혼]의 외부 개체로서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나의 영혼]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네 / 그러나 [나의 영혼]은 기억한다' 라는 시를 이렇게 해석하는 소설이라니. <불을 두른 새>라는 단편은 기본적으로 두줄의 시구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 에세이 형식같기도,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과 자신의 교감이 이야기도 다루기 위해 이 시구를 꺼내든 듯 했다. 이야기가 어렵다기 보다는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의 수준이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듯 싶었다. 후기의 소설들은 대체로 그러했다. 초기의 슉슉 잘 읽히며 스피드하던 글들은, 나이가 들고 (역자의 후기로 짐작하건대) 굉장히 많은 책을 읽은 후 바뀌었다. 그리고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조금 힘든 글들이었다.

 

<오에 겐자부로> 단편집은 바로 이 점이 흥미롭다. 80이 넘은, 글솜씨와 명성을 모두 가진 노작가가 이제 그만 글을 그만 쓰고 싶다면서 자신의 문학인생을 정리하면서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직접 자신이 여기 저기에 실었던 원고들을 복사해서 쌓아두고, 그 많은 단편 소설들 속에서 본인이 가장 괜찮다 생각하는 작품들을 추려내서, 다시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다시 쓰는(거의 내용들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지만) 번거로움까지 마다하면서 만든 책. 더불어 그때 그 작품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혹은 어떻게 쓰고 싶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간혹 등장한다. 저자의 후기가 일종의 비하인드 스토리인 셈이다. 원래 작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늘 재미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좀 더 소설이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에 나는 이런 후기들을 환영하는데, 여기 그 후기가 있어 이건 이것대로 내 취향저격 포인트.

 

어려운 글들이라 느끼는 것들은 그 후기들로나마 친근하게 다가오니 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를 모르는 이들이 처음 보기에 딱 좋은 책 같다. 선입견을 없앨 수도 있고, 작가의 처음과 끝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점차 난도를 올려가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왔다갔다 하며 읽고 싶은 제목들을 골라 읽었던 내가 처음부터 읽어내려갔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그렇다. 더군다나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작가가 직접 선별했다는 것이 의의가 있는 듯 하다. 그 많은 단편들 중 23편만 추려내는 작업이 어디 쉬웠겠는가. 이 책은 '작가 인증 단편'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테니. 최근의 글보다는 초장기의 글들이 다가가기 편한 것을 보니, 나의 소설보는 안목은 아직 멀었나보다..싶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면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두꺼운만큼 책의 할 도리를 다하는 아주 야무진 책 같다, <오에 겐자부로>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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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마지막 주목신간을 쓰는 게 벌써 4번째다. 13기부터 16기까지 많은 책들을 훑어봤고, 한 달에 2권씩 꼬박꼬박 만나봤다. 이번에 소설파트로 옮겨서 생각지도 못한 소설들과의 만남에 약간 낯설고 힘들기도 했지만, 생각외로 고전들을 많이 읽게 된 16기이기도 했다. 벌써 6개월이 그렇게 또 흘렀나보다. 마지막 주목신간 페이퍼를 쓸 때면 왜 그리 아쉽기만 한지.... 더구나 이번에는 책들이 두껍다는 이유로 자주 기한을 어겨서 마음 속 한 구석 죄책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도 하는 페이퍼다.

 

슬프지만 이쯤에서 각설하고, 16기의 마지막 주목신간을 꼽아본다. 꽃피는 3월의 소설계는 어떤 새 책들이 등장했나. 이번에도 내가 선택한 책들은 선정되지 않을 것만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지만, 주목신간은 꽤나 열심히 작성해 보는 걸로!

 

 

 

 

 

 

집 떠나 집 _ 하유지 (은행나무)

청년들의 현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는 이야기. 읽다보면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는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잡아 끌었다. 주인공인 '동미'가 일하게 되는 카페 이름이 '모퉁이'인 것도 마음에 든다. "일상의 사소한 길목에서 마주치는 외로움들에게 귀를 기울이다"라는 출판사 서평이 참 기대되게 만드는 책. 내가 겪는, 내 또래들이 겪고 있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마음 속 외로움을 어떻게 꺼내 풀어냈을지 기대가 되는 책.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하니 더더욱 기대가 된다.

 

 

 

 

 

 

비극 숙제 _ 엘리자베스 라벤 (문학동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면서도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참고했다고 하니, 콜라보 아닌 콜라보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굉장히 궁금해지는 책이다. 기본 줄기는 괴테인데 그 외의 것들은 셰익스피어라고 하니 말이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소년들의 미완숙한 행동들과 알비노 소년이 갖고 있는 희귀함, 비극적으로 달려가고야 마는 주인공의 이야기까지. 이제껏 익숙한 스토리작법이겠지만, 이제껏 본 적없는 스토리일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 책이다.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 _ 요슈타인 가아더 (현암사)

한 소년이 엄마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친숙한 플롯에 '책 속의 책'이라는 흥미로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개정판이라고 하는데, 개정판 이전의 책도 읽어본 적 없으니 내게는 새로운 책일 터. 성장소설 좋다. 더군다나 이 책은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지 않은가.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라. 52장의 카드와 빵집과의 관계는? 잘 그려지진 않지만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은 느낌은 물씬든다.

 

 

 

 

 

 

괜찮아 사랑이야 1 _ 노희경 (북로그컴퍼니)

배경으로 조인성, 공효진, 성동일 등의 배우들이 열연한, 어른이지만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 모이는 정신과를 배경으로 사랑이야기를 펼치며 이해와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던 드라마가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어머, 이건 꼭 봐야돼!!!라는 생각에 적어놓는다. (부디 다른 이들도 이 책을 찜꽁 해주었기를.) 노희경 작가의 섬세한 글은 그것이 대사로 누군가를 통해 내뱉어졌을 때와 내가 직접 읽었을 때의 간극이 있는 드문 작가다. 무언가 그들이 아닌 내가 직접 읽었을 때의 느낌이 더 좋다고나 할까. 드라마와 다를 부분은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같기만 한 것은 아닐테니 기대가 된다. (2권은 그래서 언제 나온다구요?ㅠ)

 

 

 

 

+++

4월. 2016년이 왔소!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시간 참 빠르다.

16기의 마지막도 이렇게 알차게 보내놓았으니, 이제 서평들만 열심히 쓰면 되겠다. 하하하.

절대 밀리지 말고 제대로 써 내야지!!!!

(다짐 다짐 또 다짐한다.)

 

아직 마지막 인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 페이퍼를 쓰려면 2달은 더 있어야 할 테니까. 그래도 주목신간을 작성하는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아쉬워지기는 한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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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캐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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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느끼는건데,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물론 돈이라는 것이 그저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면 그것에 목 매달 일도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수단은 바로 종이쪼가리에 불과하지만 화폐일 때의 '돈'이다. 돈을 쫓는 것을 허상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를 쫓는 것을 '나쁘다' 손가락질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상은 눈앞에 있으나 잡을 수 없는 존재를 허상이라 한다. 그렇다면, 눈앞에 잡을 수 있는 것을 잡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것을 과연 허상을 쫓는 것이라 손가락질 하면서 나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 내게 '시스터 캐리를 세 단어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나쁜년과 도시와 욕망을 꼽겠다. (그래서 서평의 제목도 그렇게 지었다) 그 첫 번째인 나쁜년 이야기부터 해 볼까. <시스터 캐리>는 이미 100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다. 현재와는 많이 다른 가치관 속에서 태어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읽어봐도 소설의 주인공인 '캐리'는 나쁜년이란 소리를 들어도 싼, 기회주의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시대상으로 보면 더 나쁜년이겠지만 말이다.) 자신에게 더 나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기회주의자인 캐리. 이는 현재 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가 즐겨 보는 드라마에서는 (특히 막장드라마라 일컫는 드라마들에서는) 너무도 흔하게 쓰이는 스토리 기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겐 꽤나 익숙한 패턴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나자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옮겨가며 버려버리는, 나쁜 년의 전형적인 이야기.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나쁜년이라고 매도하기엔 그녀의 행동들 모두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동거했던 드루에와는 결혼만 전제로 하지 않았을 뿐 애인 사이였기에 지금의 관점으로 보자면 나쁠 것 없는 동거였고, (지금의 관점이라는 전제가 꼭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뉴욕으로 건너가 함께 했던 허스트우드는 그가 유부남인 걸 알고서는 나름 그 관계를 끊었었기 때문이다. (후에 허스트우드의 속임수로 함께 뉴욕에 건너가게 된 건 차치하고 말이다.) 나쁜년이 되는 건 배우로 성공하고 나서 허스트우드를 찾지 않은 것 정도랄까. 하지만 그와 결혼으로 묶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도의적이 아닌 책임은 질 필요가 없으므로 이 또한 벗어날 수 있는 변명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캐리는 의도하지 않은 나쁜년이었던 것이다. 지나고 나니 나쁜년이 되어 있는 조금은 슬픈 인생.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현재 성공해서 자신의 인생을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두번째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도시'이다. 우리나라의 경공업 붐이 일었을 당시가 그랬듯,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여자들의 가장 손쉬운 취업루트인 공장에 캐리 또한 취업해서 일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과는 다른 삶이란 것에 치를 떨며 좀 더 손쉽게 자신의 꿈을 이뤄줄 이를 찾는다. 이를테면 요즘말로 취집이라는 것으로. (취집이라기보다는 동거이지만 어찌됐든) 그 과정에서 막연한 동경만을 가지고 상경한 이들이 겪는 아픔들을 소설은 잘 보여준다. 환상과 현실과의 경계를 처절하게 무너뜨리면서도 모든 것이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이것이 1900년대의 미국의 참모습이다' 알려주고 있다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근무환경은 열악했고, 그에 비한 주급은 형편 없었고, 그럼에도 각자가 가진 꿈을 잊지 못해 현실에 얽매이고, 그렇게 스러지는 젊은이들을 말이다. 도시는 화려함으로 중무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모습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시스터 캐리>의 주목해야할 '도시'이다.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자연주의 소설의 대표격으로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하니, 책에서 보여지는 뒷골목은 1900년대의 모습과 가장 비슷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욕망. 책 속에선 대표적으로 캐리의 욕망만을 집중 조명하지만, 그녀의 주변인들 또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능력이 없으면 자신이 꿀 수 있는 만큼의 꿈만 꿔야 하는데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캐리는 늘 큰 꿈을 꾸는 게 문제였다. 그 꿈은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캐리를 짓눌렀고, 그녀는 철저히 그 욕망만을 쫓았다. 그런데 그 욕망을 좇은 결과가 나름 썩 괜찮았다. 그것이 반전이라면 반전. 권선징악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난 결말이 당시에는 찬반 논란이 극명히 일어났다고 하는데, 현실의 눈으로 보자면, '나쁜년이 더 잘되는 법이다'. 아주 슬프게도 이 말은 진리가 되어 가고 있는 듯 하고 말이다. 착하게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뒤로 밀쳐지는 것에 소리지르지 않으면 누구든 '얘는 호구구나' 생각하고 짓밟기 일쑤인 세상에서는 나쁜년이 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캐리는 원치 않게 나쁜년 소리를 들었고, 운빨에 의한 거지만 어찌됐든 욕망의 성취도 이뤄냈다. 더이상 주급에 어쩌지 못하는 위치가 아닌 게 되었고, 캐리는 결국 자신이 꿈꿨던 도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 한다. 그녀에게 손톱만큼의 도의적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은, 그녀가 지금껏 함께 해왔던 이들에게 그다지 애정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이 없을만큼 자신의 위치에서 또다른 욕망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욕망이 나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한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욕망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니까. 그 속에서 자신을 잃느냐 잃지 않느냐는 그 욕망을 따라가는 사람의 몫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잘못을 저질렀다면 손가락질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에 반해 떳떳하다면 손가락질 받는다 해도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캐리는 모든 선택에 있어 수동적이었을지언정, 직접적인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 후자 쪽인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휘둘렸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에게 떳떳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욕망을 이야기함에 있어 후회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하고 회상할때 나오는 후회. 그 후회 대신 <시스터 캐리>는 캐리의 또다른 몽상으로 마무리를 맺는다. 혼자가 된 그녀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고는 하나, 앞으로 그녀에게 펼쳐질 날들이 꽤나 분홍빛이기에 외려 그녀의 인생에 나쁠 것은 없어보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마 그녀는 후회라는 것조차 하지 않고 또다시 앞으로 나아갈 듯 하다. 평평한 시대에 툭 던져진 예쁜 자갈돌같은 그녀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를 나쁜년이라 욕하는 사회만이 남을테지. 여전히 도시는 화려하다. 캐리처럼 큰 꿈을 가지고 상경하는 이들이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들이지만 그럼에도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는 건, 100년 전의 시대 상황으로 읽는 것보다 현재의 시대상황으로 읽는 것이 더 흥미롭게 읽히는 <시스터 캐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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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6-04-0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보고 조금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나쁜년이 도시에서 욕망하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저는 사실 마지막에 약간 배드 엔딩으로 끝날 것 같았는데, 캐리가 그냥 성공하고 끝나는 거더군요. 그래서 당대에는 나쁜X가 나오는 나쁜책으로 치부받았는지도 모르지만요. 아무튼 저도 캐리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에는 또 너무 가혹한 것 같기도 합니다. 허스트우드도 어느 정도는 그렇고요. 그래서 둘다에게 약간 연민이 느껴졌는지도...리뷰 잘 읽었습니다.

도토리냥 2016-04-02 04:03   좋아요 0 | URL
제목이 너무 직관적이죠?ㅋ 그런데 이런 저런 제목들을 다 갖다 붙여 봤자 제가 느낀 그대로 쓴 게 아닌, 뭔가 그럴듯하게 꾸민듯한 느낌이 자꾸 들어서 세 단어를 적었습니다.

저도 캐리가 성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당대에는 큰 이슈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나쁜년인데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성공하느냐, 허스트우드만 불쌍한 것 아니냐 등등의 이야기였겠죠. 하지만 지금은 2016년이고, 나쁜년이 되어 성공하라고 부추김을 당하는 시대이다 보니 캐리의 행동이 영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서평의 포커스가 그쪽으로.. 서평은 제가 가장 중점적으로 느낀 부분들 위주로 쓰는 스타일이라서요~

댓글 감사합니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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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부터 시작한 SBS 수목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이민정의 출산 후 복귀작이라는 것과 정지훈, 오연서, 김수로, 김인권, 최원영, 이하늬, 라미란 등의 탄탄한 배우 라인업과 역송체험이라는 판타지를 들고 로코물 + 복수 + 휴먼이 적절하게 섞인 이야기를 풀어내 화제를 모았다. 물론 현재 시청률 면에서는 상대 드라마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완결이 기대되는 드라마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드라마의 원작이 바로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이라는 일본 소설이다.

 

 

 

드라마는 소설의 기본적인 틀(설정)만 가져갔을 뿐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재해석 된 듯 하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에는 로맨틱 코미디스러운 부분은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드라마에는 생략된 주요 인물이 하나 더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소설은 드라마보다 훨씬 진중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송체험'에 관한 이야기는 때때로 만들어지곤 했다. 산 자는 절대 알 수 없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곳의 존재, 죽음 이후의 세계 등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있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죽었던 사람이 다시 현세로 돌아온다는 설정은 꽤나 매력적인 듯 하다. 한동안 재미있게 봤던 미드 <드롭 데드 디바 Drop Dead Diva>도 마찬가지로 역송체험 관련 드라마였다. <드롭 데드 디바>에는 역송하게 된 인간을 케어하기 위해 수호천사가 등장했고, 최첨단 시스템의 저승이 등장했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에서도 최첨단 중유(저승)가 등장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아사다 지로의 상상력은 꽤나 발칙하고 즐겁다. '관공서'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망자들이 모이는 곳, 제복 차림의 직원의 친절한 안내, 그곳에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카드에 따라 분류된 후 할당된 강의실에 들어가 '강습'을 받는 것(자신의 인생을 납득하는 과정), 불교의 다섯가지 계율에 따른 강의실 분류법, 죽기 전에 어떤 죄를 지었든간에 책상 위 빨간색 반성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죄를 면제받아 모두 극락으로 갈 수 있는 것, 재심의를 요청하면 역송체험을 할 수 있는 것까지. 뭐하나 새롭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모든 시스템은 낯설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신선했다.

 

아시다시피 여러분이 계시는 이곳은 현세와 내세의 중간 단계, 흔히 저승이라고 하는 중유(사람이 죽은 후에 다음에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 중유의 기간은 칠칠일, 즉 49일이다.)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은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언젠간 극락왕생하시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생전의 행동을 제대로 심사해서 강습을 받고, 반성을 통해 중립적인 영혼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모든 사무와 실무 절차를 처리하는 곳이 바로 여기지요. 옛날에는 여기를 '중유청'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국제화 시대라서 '스피리츠 어라이벌센터(SpiritsnArrival Center, 영혼도착소)', 약칭 SAC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49쪽)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의 저승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곳이 아니다. 죽게 되면 SAC까지는 사라수 가로수길이 펼쳐져 있고, 도착하는 순간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상쾌한 바람이 시원한 그런 곳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생전의 일을 반성하면 거의 모든 이들이 극락왕생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굉장히 유들유들한 곳이고 말이다. 하지만 쓰바키야마 과장은 당신들은 정말로 현세에 미련이 없는가? 그렇게 간단한 인생이었나? 자기만 그렇게 극락으로 가 버리면 끝이란 말인가! (69쪽) 라고 외친다. 생각해보면 버튼 하나를 눌러 자신의 삶의 모든 잘못이 리셋되어 극락왕생할 수 있다면 나같아도 버튼을 누르고 훌훌 털어버릴 것 같은데, 쓰바키야마 과장은 자신의 어린 아내와 이제 8살 된 아들, 치매에 걸린 늙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발길을 뗄 수 없었다. 그래서 '리라이프 메이킹 룸(Relife Making Room)'에서 역송체험 가능 티켓을 받아 자신의 가족들 곁에 돌아가 그들이 살 길을 마련해 주려 한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의 또 다른 주인공인 다케다 이사무라는 야쿠자는 누군가의 대신 총을 맞아 억울하게 죽었다. 조촐하지만 자신의 곁에 남아 있는 꼬붕(부하)들이 걱정돼 역송체험을 하게 됐다. 마지막 주인공은 네기시 유타라는 어린 꼬마(고작 8살 정도밖에 안 되는)인데 무슨 이유가 있어서인지 꼭 역송체험을 해야 한다고 해 역송체험을 하게 됐다. 결국 세사람은 7일간(장례식을 제외하고 남은 4일간) 역송체험을 하게 됐는데, 가장 중요한 주의사항은 3가지다. 제한시간 엄수, 복수 금지, 정체의 비밀 유지. 정체가 탄로나면 안되기 때문에 죽을 당시의 본인과 정 반대되는 이미지의 몸을 받아 역송체험을 하게 되는데, 머리가 벗겨지고 퉁퉁한 쓰바키야마 과장은 39살의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했고, 몸집이 꽤 있던 야쿠자 다케다는 마르고 지적인 대학교수로, 남자아이 유타는 여자아이 렌코짱으로 변신했다. 이들에게는 역송기간동안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환생가방이 하나씩 주어졌다. (역송체험에서 사실 가장 부러운 건 환생가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들이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컨트롤 하는 관리자이자 네이게이터 역할을 해주는 '마야'까지 배정받고 나면 본격적으로 역송체험이 시작된다. 셋은 각자가 원했던 일들을 4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루고 돌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삶에 남겨둔 '미련'에 관한 이야기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인가. 자신은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몸이 가루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정의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말 그대로 몸이 가루가 되고 나서 겨우 깨달았다. 일을 핑계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들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피와 살을 물려 받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피와 살을 물려준 자식의 고통도 눈치채지 못했다. 즉, 자신은 돈을 버는 기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174쪽)

"우린 모두 쓰바키야마 과장님을 존경했었지. 그분은 매장 과장의 거울 같은 사람이었어. 나는 물론이고 마카미 부장님과 여사원들, 파견직원들, 거래처의 담당자들까지 모두 쓰바키야마 과장님을 좋아했지. 그래서 과장님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매출목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하고 싶었어. 우리가 과장님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니까. 백화점맨의 공양은 그것밖에 없지 않을까?" (278쪽)

저승에서 역송체험을 권하지 않는 이유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쓰바키야마 과장은 역송체험을 통해 가족에 대한 자신의 피끓는 사랑을 느끼기도 했지만, 몰랐어도 좋을 법한 이야기도 알게됐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너무 일에만 미쳐 있었던 본인을 뒤돌아보게 됐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이들의 마음도 듣게 됐고, 그렇지만 자신의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됐으며, 완벽하게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게 됐다. 역송체험의 순기능이었다고나 할까. 미련을 완전히 털어버렸다. 그런데 다케다와 유타의 경우는 조금 복잡해진다.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도 역송체험을 통해 미련을 떨쳐냈다. 다케다는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유타는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됐다. 그로 인해 무언가를 잃었지만 꽤 후련해 보였다.

 

비밀을 갖는 건 나쁜 일이 아니지만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 괴롭다는 것이다. 아마 어른들은 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사람의 인생에는 괴로운 일만 있는 게 아닐까? (253쪽) 

이 세상에 100가지 사랑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중 아흔아홉 가지는 가짜예요. 그것들은 모두 자신을 위한 사랑이니까요. 난 그 100가지 중에 하나밖에 없는 지짜 사랑을 했어요.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랑이에요.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필요 없어요. 돈도, 자존심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조차도 필요 없어요. (310쪽)

안녕이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안녕이란 말을 할 수 있는 이별은 정말로 슬픈 이별이 아니다. (421쪽)

 

주옥같은 문장들이 가득가득 들어 있는 책은, 역시 아사다 지로라는 말을 생각을 하게 했다. 그의 세심한 시선은 읽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니까. 미련이라는 것은 죽어서까지도 따라가는 아주 몹쓸 것이긴 하지만, 그 미련들에게도 결국 끝이란 존재한다. 그렇기에 역송체험을 한 후 돌아온 이들은 꽤나 행복한 기억들을 안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정리가 곧 미련을 터는 것이니. 혹여 저승에 가더라도 굳이 역송체험을 선택해 마음의 정리를 하는 의지를 보이지는 말자. 아무리 생각해도 망자가 너무 적극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설사 마음이 굉장히 편해지는 일이라도 말이다. 나는 미련을 터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련다. (역송체험 위험해 위험해..)

 

 

참, 쓰바키야마의 아빠로 나오는 '할아버지' 역할이 가장 좋았는데 쓰다보니 그에 대한 이야기는 한 글자도 적지 않았더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정의롭고 남을 위하는 사람은 축복받아야 마땅하거늘, 인지상정이 되어 안타까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을 남긴다. 책의 '울컥'을 담당했던 할아버지가 등장인물들 중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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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툽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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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툽>이란 생소한 단어가 제목인 파울로 코엘료의 새 책이 출간됐다. 이렇게나 낯선 '마크툽'이란 단어에 대해서 본문에서는 마크툽은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다. (30쪽)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렇게 기록되어 있던, 이미 예전부터 내려오던 그런 이야기들이라고. 작가노트에서 파울로 코엘료는 '마크툽'에 대해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마크툽은 교훈집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책이다." ​굉장히 폭넓은 정의이지만, 둘의 이야기 모두 맞다. <마크툽>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두 삶의 벽 앞에서 답을 찾고 있을 누군가에게, 미리 그 벽을 다녀간 누군가가 전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책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우리나라에서도 알아주는 인기작가이다. 그가 쓴 여러 책들은 베스트셀러이다 못해 스테디셀러 반열에도 올랐으니 말이다. 그의 대표작은 역시나 <연금술사>겠고 말이다. (<브리다>, <불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도 즐비하지만 다 설명하지는 않을테니 패스) 그는 유명한 소설가이지만, 가끔씩 우화집을 들고 오기도 한다. 2013년에 출간됐던 <마법의 순간>이 그렇고, 이번 <마크툽>이 그렇다.

<마크툽>은 브라질 신문 '일루스트라다 지 라 폴라 지 상파울루 Illustrada de la Folha de Sao Paulo'에 매일 연재한 글 중 선별하여 묶어서 출간된 책이다. 개인적으로 파울로 코엘료가 스승에게 받은 가르침 그리고 친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인상 깊은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교훈집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책'이란 설명은 그렇기에 가능하다. 앤서니 멜로는 자신의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내가 하는 일은 직조공이 하는 일과 같다. 직조된 면과 아마포의 품질이 좋은 것은 나 때문이 아니다." 나도 동감이다. (저자노트, 13쪽) 책을 읽다보면 많이 익숙한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그 모든 것을 저자 본인이 직접 겪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앤서니 멜로의 서문을 인용한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마크툽> 속에 수록되어 있는 글들은 많은 부분 독자가 무릎을 탁 칠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읽기 쉽게 한 작가의 공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에 대한 이야기도 중간중간 많이 등장하기에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 본문에 등장하는 게 신이든 스승이든 그 깨달음을 얻는 데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진리만 추구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절대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해만 계속 쳐다보는 사람이 결국엔 눈이 멀 듯이 말이다. (27쪽)

 

인생은 사이클 경주와 비슷하다. 이때 목표는 각자 개인의 전설을 완수하는 것이다. (중략) 각자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경주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고독과 미지의 커브 길에서 튀어나오는 뜻밖의 사건들, 사이클이 유발하는 물리적 어려움과 맞서야 한다. 그러다보면 그렇게 수고하고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정말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렇다. 수고할 가치가 있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174쪽)

 

꿈을 좋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오래된 습관들을 버려야 하며, 어려움과 실망을 겪을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대가는 개인의 전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치르게 되는 대가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218쪽)

 

위의 이야기들은​ 내가 무릎을 탁 쳤던 이야기들 중 몇 개만 추린 것이다. (아래의 이미지들을 찍은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책임을 회피하면 안된다는 것을 태양을 바라보면 눈이 부신 것에 비유하는 것은 되게 쉽고 새로웠다. 인생을 경주와 비교했던 글도 그렇다. 무엇보다 '그렇다. 수고할 가치가 있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유독 눈길이 갔다. 경주가 마음대로 가지 않는다고, 혹은 자신보다 앞서 달리는 이들이 있다고 의욕을 놓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수고할 가치가 있으니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말이다.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굉장히 높은 우리나라에겐 누군가가 꼭 해줬으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골라봤다.

 

 

이야기 몇 개만 봤는데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지 않나?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해서 무엇 하겠느냐? 절대 걱정하지 마라. 걱정할 시간에 너의 운명과 네가 갈 길에 주의를 기울여라. 너에게 맡겨진 빛의 검을 잘 다루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배워라. 친구들, 스승들, 적들이 어떻게 분투하는지 잘 살펴보아라." (130쪽) "우리는 비웃음과 무관심 밑에 우리의 선한 행동들을 감춘다. 마치 사랑이 연약함과 동의어인 것처럼." (253쪽) 스승님이 이야기해주는 것들은 직접 말을 전해 듣는 느낌이 들고, 화가 파블로 피카소나 작가 쇼펜하우어, 작곡가 넬슨 모타 등의 유명인들의 일화를 소개받을 땐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도 든다. 중간 중간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오게끔 하는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훈계하거나 교훈들을 모아놓았다는 느낌보다는 누군가가 이미 겪은 그 많은 것들을 정리해서 적어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물론 신과 관련된 신실한 이야기들도 많이 등장하므로, 누군가를 믿고 있는 이들이 읽는다면 더없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크툽>의 표지에도 속지에도 '열쇠'가 그려져 있다. 그 의미가 아마도 잠겨 있는 자물쇠를 풀수 있는 열쇠를 이 책 속의 이야기들에서 찾으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앞으로 나아가기 벅찰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당연한 결정임에도 고민하게 될 때 들춰보며 누군가의 경험들을 발판 삼아 자신만의 열쇠를 찾으라는. 가끔은 너무 당연한 것도 잊어버리거나 지나칠 때가 있으니 말이다. 결국 자신의 자물쇠에 맞는 열쇠는 자신만이 만들 수 없으므로, 열쇠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 이야기들은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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