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2월 24일부터 시작한 SBS 수목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이민정의 출산 후 복귀작이라는 것과 정지훈, 오연서, 김수로, 김인권, 최원영, 이하늬, 라미란 등의 탄탄한 배우 라인업과 역송체험이라는 판타지를 들고 로코물 + 복수 + 휴먼이 적절하게 섞인 이야기를 풀어내 화제를 모았다. 물론 현재 시청률 면에서는 상대 드라마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완결이 기대되는 드라마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드라마의 원작이 바로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이라는 일본 소설이다.

 

 

 

드라마는 소설의 기본적인 틀(설정)만 가져갔을 뿐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재해석 된 듯 하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에는 로맨틱 코미디스러운 부분은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드라마에는 생략된 주요 인물이 하나 더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소설은 드라마보다 훨씬 진중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송체험'에 관한 이야기는 때때로 만들어지곤 했다. 산 자는 절대 알 수 없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곳의 존재, 죽음 이후의 세계 등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있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죽었던 사람이 다시 현세로 돌아온다는 설정은 꽤나 매력적인 듯 하다. 한동안 재미있게 봤던 미드 <드롭 데드 디바 Drop Dead Diva>도 마찬가지로 역송체험 관련 드라마였다. <드롭 데드 디바>에는 역송하게 된 인간을 케어하기 위해 수호천사가 등장했고, 최첨단 시스템의 저승이 등장했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에서도 최첨단 중유(저승)가 등장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아사다 지로의 상상력은 꽤나 발칙하고 즐겁다. '관공서'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망자들이 모이는 곳, 제복 차림의 직원의 친절한 안내, 그곳에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카드에 따라 분류된 후 할당된 강의실에 들어가 '강습'을 받는 것(자신의 인생을 납득하는 과정), 불교의 다섯가지 계율에 따른 강의실 분류법, 죽기 전에 어떤 죄를 지었든간에 책상 위 빨간색 반성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죄를 면제받아 모두 극락으로 갈 수 있는 것, 재심의를 요청하면 역송체험을 할 수 있는 것까지. 뭐하나 새롭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모든 시스템은 낯설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신선했다.

 

아시다시피 여러분이 계시는 이곳은 현세와 내세의 중간 단계, 흔히 저승이라고 하는 중유(사람이 죽은 후에 다음에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 중유의 기간은 칠칠일, 즉 49일이다.)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은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언젠간 극락왕생하시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생전의 행동을 제대로 심사해서 강습을 받고, 반성을 통해 중립적인 영혼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모든 사무와 실무 절차를 처리하는 곳이 바로 여기지요. 옛날에는 여기를 '중유청'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국제화 시대라서 '스피리츠 어라이벌센터(SpiritsnArrival Center, 영혼도착소)', 약칭 SAC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49쪽)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의 저승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곳이 아니다. 죽게 되면 SAC까지는 사라수 가로수길이 펼쳐져 있고, 도착하는 순간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상쾌한 바람이 시원한 그런 곳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생전의 일을 반성하면 거의 모든 이들이 극락왕생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굉장히 유들유들한 곳이고 말이다. 하지만 쓰바키야마 과장은 당신들은 정말로 현세에 미련이 없는가? 그렇게 간단한 인생이었나? 자기만 그렇게 극락으로 가 버리면 끝이란 말인가! (69쪽) 라고 외친다. 생각해보면 버튼 하나를 눌러 자신의 삶의 모든 잘못이 리셋되어 극락왕생할 수 있다면 나같아도 버튼을 누르고 훌훌 털어버릴 것 같은데, 쓰바키야마 과장은 자신의 어린 아내와 이제 8살 된 아들, 치매에 걸린 늙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발길을 뗄 수 없었다. 그래서 '리라이프 메이킹 룸(Relife Making Room)'에서 역송체험 가능 티켓을 받아 자신의 가족들 곁에 돌아가 그들이 살 길을 마련해 주려 한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의 또 다른 주인공인 다케다 이사무라는 야쿠자는 누군가의 대신 총을 맞아 억울하게 죽었다. 조촐하지만 자신의 곁에 남아 있는 꼬붕(부하)들이 걱정돼 역송체험을 하게 됐다. 마지막 주인공은 네기시 유타라는 어린 꼬마(고작 8살 정도밖에 안 되는)인데 무슨 이유가 있어서인지 꼭 역송체험을 해야 한다고 해 역송체험을 하게 됐다. 결국 세사람은 7일간(장례식을 제외하고 남은 4일간) 역송체험을 하게 됐는데, 가장 중요한 주의사항은 3가지다. 제한시간 엄수, 복수 금지, 정체의 비밀 유지. 정체가 탄로나면 안되기 때문에 죽을 당시의 본인과 정 반대되는 이미지의 몸을 받아 역송체험을 하게 되는데, 머리가 벗겨지고 퉁퉁한 쓰바키야마 과장은 39살의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했고, 몸집이 꽤 있던 야쿠자 다케다는 마르고 지적인 대학교수로, 남자아이 유타는 여자아이 렌코짱으로 변신했다. 이들에게는 역송기간동안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환생가방이 하나씩 주어졌다. (역송체험에서 사실 가장 부러운 건 환생가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들이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컨트롤 하는 관리자이자 네이게이터 역할을 해주는 '마야'까지 배정받고 나면 본격적으로 역송체험이 시작된다. 셋은 각자가 원했던 일들을 4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루고 돌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삶에 남겨둔 '미련'에 관한 이야기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인가. 자신은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몸이 가루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정의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말 그대로 몸이 가루가 되고 나서 겨우 깨달았다. 일을 핑계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들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피와 살을 물려 받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피와 살을 물려준 자식의 고통도 눈치채지 못했다. 즉, 자신은 돈을 버는 기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174쪽)

"우린 모두 쓰바키야마 과장님을 존경했었지. 그분은 매장 과장의 거울 같은 사람이었어. 나는 물론이고 마카미 부장님과 여사원들, 파견직원들, 거래처의 담당자들까지 모두 쓰바키야마 과장님을 좋아했지. 그래서 과장님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매출목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하고 싶었어. 우리가 과장님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니까. 백화점맨의 공양은 그것밖에 없지 않을까?" (278쪽)

저승에서 역송체험을 권하지 않는 이유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쓰바키야마 과장은 역송체험을 통해 가족에 대한 자신의 피끓는 사랑을 느끼기도 했지만, 몰랐어도 좋을 법한 이야기도 알게됐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너무 일에만 미쳐 있었던 본인을 뒤돌아보게 됐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이들의 마음도 듣게 됐고, 그렇지만 자신의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됐으며, 완벽하게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게 됐다. 역송체험의 순기능이었다고나 할까. 미련을 완전히 털어버렸다. 그런데 다케다와 유타의 경우는 조금 복잡해진다.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도 역송체험을 통해 미련을 떨쳐냈다. 다케다는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유타는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됐다. 그로 인해 무언가를 잃었지만 꽤 후련해 보였다.

 

비밀을 갖는 건 나쁜 일이 아니지만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 괴롭다는 것이다. 아마 어른들은 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사람의 인생에는 괴로운 일만 있는 게 아닐까? (253쪽) 

이 세상에 100가지 사랑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중 아흔아홉 가지는 가짜예요. 그것들은 모두 자신을 위한 사랑이니까요. 난 그 100가지 중에 하나밖에 없는 지짜 사랑을 했어요.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랑이에요.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필요 없어요. 돈도, 자존심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조차도 필요 없어요. (310쪽)

안녕이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안녕이란 말을 할 수 있는 이별은 정말로 슬픈 이별이 아니다. (421쪽)

 

주옥같은 문장들이 가득가득 들어 있는 책은, 역시 아사다 지로라는 말을 생각을 하게 했다. 그의 세심한 시선은 읽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니까. 미련이라는 것은 죽어서까지도 따라가는 아주 몹쓸 것이긴 하지만, 그 미련들에게도 결국 끝이란 존재한다. 그렇기에 역송체험을 한 후 돌아온 이들은 꽤나 행복한 기억들을 안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정리가 곧 미련을 터는 것이니. 혹여 저승에 가더라도 굳이 역송체험을 선택해 마음의 정리를 하는 의지를 보이지는 말자. 아무리 생각해도 망자가 너무 적극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설사 마음이 굉장히 편해지는 일이라도 말이다. 나는 미련을 터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련다. (역송체험 위험해 위험해..)

 

 

참, 쓰바키야마의 아빠로 나오는 '할아버지' 역할이 가장 좋았는데 쓰다보니 그에 대한 이야기는 한 글자도 적지 않았더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정의롭고 남을 위하는 사람은 축복받아야 마땅하거늘, 인지상정이 되어 안타까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을 남긴다. 책의 '울컥'을 담당했던 할아버지가 등장인물들 중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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