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차의 캘리툰
박솔빛 지음 / 경향BP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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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카툰과 캘리가 만났다니까 쉽게 볼 수 있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 요즘엔 이런 저런 생각 할 필요없이 그냥 가볍게 책을 읽고 싶었다. 밖에 나가지 않는 이상 집안은 더우니까(에어컨은 전기세가 감당 안돼!). 뭐 내가 좋아하지 않고 꼭 녹아버릴 것 같은 그런 계절이 돌아온 탓이다. 그래서 그 가벼움에 어울릴 것 같은 책이라 선택했다. 왜인지 그림체가 낯이 익었고, 그림체가 퍽 귀여웠으며, 캘리그라피까지 함께 있다고 하니 이 어찌 좋지 않으랴.

<비차의 캘리툰>은 '비차'라는 닉네임을 쓰는 박솔빛 작가의 소소한 일상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거기엔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작가의 캐릭터, 그 위에 덧붙여진 말풍선, 주변에 쓰여진 캘리그라피, 한 장으로 끝나지 않고 주욱 연결되는 꽤 긴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참 일상적인 이야기가 적혀 있어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도 든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후배, 채소 그득한 식탁, 모기를 잡아보자, 자신과 닮은 친구, 귀여운 아빠, 졸업, 길치, 좋아하는 노란색, 잘 꺼지는 쥐삼냥육 핸드폰, 수업시간, 기말고사, 시험, 고양이를 키우는 이유, 어렸을 때 키웠던 꼬꼬 이야기 등등 일상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풀어냈다. 그래서 내게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는 '나 자신의 행복'이다. 그러니 바람 빠지는 웃음만을 선사하는 한없이 가벼운 내용들만 있는 건 아니란 소리다. 고등학교때 겪었던 남자학우의 언어폭력을 문득 떠올리면서 했던 생각을 담담히 써내려가며 '그 상처에 지지 않고 지금, 여기, 꿋꿋한 당신 스스로가 얼마나 대단한지(85쪽)'라고 이야기 한다. 손목에 잔뜩 상처를 가졌던 옛 친구에게 '너를 아껴. 내가 아끼는 너를 네가 아꼈으면 좋겠어(113쪽)'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수능을 준비하며 틈틈히 우울했던 기억에 대해선 '지금 네 노력이 보잘 것 없다는 게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166쪽)'라며 과거의 자신에게 글을 쓰기도 했다. YOLO에 대한 생각이나 촛불을 들었던 이유, 살충제계란이나 생리대 파문 등등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작가가 청춘이니 청춘다운 고민도 들어 있다. 어버이날 선물을 사들고 내려가지 못하면서 전화로 거짓말을 하는 청춘 '하고 싶은 말은 삼키고 거짓말이 익숙해진다(15쪽)', 진로를 앞두고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청춘의 고민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 쏟아내기 두렵다(345쪽)' 같은 것들. 그 사이사이 괜찮아, 잘 하고 있어 같이 자신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하는 이야기들도 함께 들어 있다. 비록 무거운 이야기지만 피식 바람빠지는 웃음들 사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 그리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내내 무거운 느낌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비차의 캘리툰> 속엔 작가 비차의 생각이 가득하다. 그 생각에 동의를 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살아가는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고민이 누군가의 고민과 비슷하다는 걸 느낄 때 묘한 안심을 하게 되거든. 귀여운 그림들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은 진중하지만 무겁지 않다. 행복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은 즐겁기도 하면서 현실 속 우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가볍기를 기대했지만 가볍지 않아 좋았던. 비차 작가의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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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잡학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속뜻 사전 잘난 척 인문학
이재운 지음 / 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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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의 역사를 지나온 한반도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까지는 한자를 썼다. 우리의 소리를 표현할 우리만의 문자가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도 우리는 한글보다는 한자를 더 자주 썼다. 사대부의 말도 안되는 억지 덕분이었는데, 뭐 자세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한글이 만들어진 후에도 사용할만큼 오래토록 써 온 한자투는, 완전히 한글로 글을 쓰고 이해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일제의 조선어말살정책 등으로 남은 일본어의 잔재 또한 굉장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까지도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호구'라는 단어가 있다. '호구+고객'이라는 합성어 '호갱'이란 단어도 이제는 모르는 이 없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여러가지 변형도 하고 참 익숙한 단어인 '호구'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모두 뉘앙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외국인이나 혹은 어린 아이들이 뜻을 물어본다면? 많은 이들이 대답할 수 없을 거라 확신한다. 찾아보면 우리주변엔 이런 류의 단어들이 많다. 익숙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것,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잘못 알고 있는 것, 일상생활에서는 딱히 필요없는 것. 이런 단어들의 속뜻을 알려주는 책이 여기 있다. 바로 <우리말잡학사전>이다. 

위에서 언급한 '호구'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 호구(虎口)는 글자 그대로 범의 아가리라는 뜻이지만, 그보다는 바둑 용어로 널리 쓰인다. 바둑에서 얘기하는 호구란 상대편 바둑 석 점이 이미 포위하고 있는 형국을 가리킨다. 그 속에 바둑돌을 놓으면 영락없이 먹히고 말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상대방의 먹잇감이나 이용감이 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쓴다 해도 비어나 속어의 느낌으로 쓰고 있다. (511쪽) (책은 이보다 조금 길지만 서평이니 아주 살짝 요약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호구'는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하고 있다. 바둑 용어라는 이야기도 아래쪽에 함께 설명하고 있긴 한데, 사전으로만 뜻을 찾아본 사람들은 호구라는 단어가 바둑 용어에서 유래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연결되어 생각하지 않던 것들을 연결시키는 것- <우리말잡학사전>이 다른 사전들보다 특별하게 갖고 있는 색다른 지점이다.

책 속에는 총 1045개의 단어가 담겨 있다. 본뜻이라는 부분에는 어원을 비롯, 단어의 유래와 바뀌기 전에 쓰였던 뜻을 담았고, 바뀐 뜻에는 현재 쓰이는 통상적 뜻을 담았다. 예시도 2개씩은 적어두어 어떤 식으로 쓰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책은 가나다 순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순우리말부터 합성어, 한자어, 고사성어, 관용구, 일본에서 온 말, 외래어에 은어까지. 찾아보기는 단어를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일단 책을 읽기 전에 찾아보기에서 단어들을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순우리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순우리말이라고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얼른 단어 옆에 적힌 페이지로 달려가 이유를 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대꾸하다, 서울, 스승, 앙갚음, 황소가 순우리말이라는 것을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또한 한자어와 우리말을 함께 쓰면서 생기는 동어반복 글자(기간이라는 한자와 동안이라는 우리말이 합해진 '기간동안'. '~기간에' 혹은 '~동안' 둘 중 하나만 적어야 한다.)라든지,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자어('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할 때의 '심심'이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심심하다'의 뜻이 아닌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가 매우 깊음을 일컫는다.)라든지, 잘못 쓰고 있는 한자어('우이를 잡다'의 경우 어원을 잘 몰라 '우위'로 잘못 쓰이기도 한다.) 등등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뀐 뜻을 설명하면서 함께 적어놓는다. <우리말잡학사전>이 잘못 알았던 말이나 뜻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작가는 '우리말 우리글로 우리 생각을 표현해보자는 희망을 담아' <우리말잡학사전>을 펴냈다. 처음 발간한 지는 햇수로 22년, 3번의 증보판으로 26쇄나 찍었다. 그리고 2018년 4번째 증보판을 발간했다. 우리글을 좀 더 제대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책 속에 그득그득 담겨 있다. 1000개가 넘는 단어가 담겨 있는데도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몰라도 상관 없지만 알면 더 재미있는 <우리말잡학사전> 속 우리말들. 정말 사전처럼 곁에 두고 손때를 잔뜩 묻히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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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때문에 - 대인관계를 결정하는 언어의 메이크업
김인희 지음 / 청년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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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과 관련된 속담 중 생각나는 속담을 말하라."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열에 여덟 정도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를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오래된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선조들도 말이 갖고 있는 힘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는 뜻이다. 물론 말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상시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말을 뱉는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을 비롯한 여기저기에는 남을 헐뜯는 말들이 산재해있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도 말로 상처 입히고 상처 받는다. 그렇기에 '말에도 메이크업이 필요하다'라는 책의 카피를 봤을 때, 이건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말, 내 말의 문제점, 가슴을 흔드는 말, 얼굴보다 더 중요한 말의 메이크업. <말 한마디 때문에>는 크게 4가지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인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혹은 직장생활에서 말을 잘못해 가까웠던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상황들을 이야기한다. 작가가 이 주제에서 가장 자주 언급한 내용은 악의 없이 내뱉는다고 생각하나 결국 무의식의 반증인 '말실수'에 대한 내용이다. 두번째인 '내 말의 문제점'에서는 말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잘못이나 고마움에 대해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습관, 잘못에 대한 핑계를 대는 습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목소리와 말의 빠르기 등 '말'을 이루고 있는 주변까지 언급하며 자신의 문제점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세번째 '가슴을 흔드는 말'은 소통, 경청, 진심어린 공감, 칭찬, 좋은 말, 정확한 문맥 파악 등 타인과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비법을 전달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 '얼굴보다 더 중요한 말의 메이크업'에서는 쿠션 말 같은 화법에 대한 조언이 담겨 있다. 화법을 메이크업에 비유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 화법은 이런 메이크업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메이크업 용어에 훨씬 익숙한 여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화법은 단연 YES-THEN 화법이었다. YES-BUT 화법보다 좀 더 긍정적인 화법인데, 나의 평소 말투와는 많이 달라서 (화법 특유의 나긋나긋함이) 만약 이 화법을 내게 적용시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다보면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모든 문제점을 남이 아닌 나에게서 찾는다는 것을. "말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내 의도를 정확하게 잘 전달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상대가 내 말을 오해해서 받아들인 게 아니다. 내가 제대로 내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21쪽)" 이 문장들만 봐도 그러하다. 작가는 주변을 바꾸는 것보다 자신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고 이야기 한다. 문제를 나 자신에게서 찾기보다 남에게서 찾는 것이 쉽고 편하긴 하지만, 나 자신을 바꾸지 않고 그럴듯 하게 꾸미기만 한다면 불현듯 자신의 무의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말실수로 이어지고,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라. 그러면 최선의 것이 돌아오리라. -M.A 베레 (167쪽)"라는 말이 있지만, 물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메이크업을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나 스스로의 만족감을 충족하기 위해서 메이크업을 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117쪽)"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 유명한 유재석과 이적의 <말하는대로>라는 노래처럼, 말습관 고치기는 결코 남을 위해서만은 아님을 우리 모두 안다. 그러니 이젠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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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해서 좋다 - 작지만 깊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왕고래 지음 / 웨일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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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형이다. 엄마와 아빠의 혈액형이 모두 A형이라 내가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 혈액형의 선택지는 A형과 O형 2개 뿐이었다. 퍽 단순하게 물려받은 것 뿐인데 누군가에게 내 혈액형을 밝히면 "소심하죠?"라는 말이 자연스레 따라 붙는다. A형=소심, 마치 이것이 공식인 것처럼. 언젠가부터는 AAA형(트리플 에이형)이란 단어가 생기며 '소심의 끝판왕'을 일컫고 있다. 사람들은 재미로 그런다지만, 정작 소심한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부터도 말이다.

서평의 처음부터 '소심'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소심해서 좋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소심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가끔 봐 왔지만, '소심해서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나왔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번에 처음 봤다.) 기존에 보던 책들과는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왜인지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하여 마주하게 된 책은 파랑파랑하고 분홍분홍했다. 뽕뽕 구멍이 뚫린 파랑색 겉표지, 그리고 일러스트가 그려진 분홍색 속표지. 파랑색 겉표지를 벗겨내면 분홍색 표지 속 숨겨진 일러스트가 드러난다. 오, 신기하다. 그렇지만 그 뿐, 나는 책의 처음 프롤로그를 읽어갔다.


나는 소심하다. 좋게 표현하면 내성적이고 더 좋게는 내향적이다. 심리학은 이런 내 성향과 호기심을 담기에 적합했고, 나는 고민의 답을 얻기 위해 긴 시간을 몰두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심을 대범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정확히는 바꿔야 할 이유를 못 찾았다. (6쪽)


작가는 프롤로그에서부터 밝힌다. 자신은 '소심인'이며, <소심해서 좋다>는 작가가 '소심인'이라 칭한 이들의 시선과 일상을 담아낸 책이라고 말이다. 맞다. 이 책은 '소심인'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신의 흑역사를 대방출하면서 소심인에 대한 설명을 돕기도 하고, 소심인의 유형을 분류해 놓기도 하며, 소심한 이들만이 이룰 수 있는 역사를 설명하기도 하고, 너무도 간단하지만 그만큼 쉽게 간과해버리는 처방전도 내어놓는다. 그러니까 이 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소심인 셀프(+주변) 관찰 보고서'다. 누군가에게는 몸을 휘감는 맞춤옷처럼 느껴지고 누군가에게는 향신료 강한 외지 음식처럼 낯설게 다가오는(7쪽).

좋은 게 좋은 거지, 사람은 두루두루 친한 게 좋아 등등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대범하기를 강요한다. 유연함이 사회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심인들에게 그런 유연함을 가장한 관계맺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소심해서 좋다>는 그 사회 속 소심인들의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다. 대범한 척 연기를 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성향대로 소심하게 있어도 되는 건지 고민이 될 때, 여기서 작가의 경험들이 빛을 발한다. 현재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는 이런 에피소드들을 착실히 모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소심인(작가 본인)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주변의 소심인인 A씨는 이 상황에선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해준다. '말을 놓는 것에 관하여', '소심한 회의에 대범인이 낄 때', '솔직함에 대한 강요', '개인의 업무공간', '프리라이더의 이해' 등등 작가가 골라내 들려주는 상황들은 현실성 100%라 묘하게 공감이 간다.

또한 작가가 심리학 공부를 해서인지 몰라도, 소심인을 설명할 때 심리학적인 용어와 사례들로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심리적 안녕감이라든가, 사회적 순응 실험이라든가, 각성 이론이라든가. 에세이인 듯 에세이 아닌 에세이 같은 너랄까. 중간중간 심리학을 이용해 소심인의 이해를 돕는 작가의 글쓰기는 소심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내게는 흥미로운 감이 더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기회는 자신감보다 지속적인 노력과 닿아 있는 게 아닐까, 되물었다. (30쪽)

겹겹 흑역사를 쓰며 알게 된 건 '일상의 담담함'이다. 삶엔 드라마와 엔딩이 있지만, 일상엔 없다는 것. 일상의 길고 반복적인 흐름은 어느 한 지점이 반짝거리거나 일그러진다고 해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내일이 올 뿐이다. (32쪽)

소심하기 때문에 늘 소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뭔가를 드러낼 만큼의 분위기가 있다면 그것에 기대어 잠시나마 다른 옷을 입어보는 것도 괜찮다. 힘이 빠지는 만큼 빼보는 경험이 즐겁다. 그리고 다시, 내 고향으로 돌아와도 된다. 대범함과 소심함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 오른손잡이의 왼손 같은 거니까. (88쪽)


책을 읽고 있자니 나는 소심한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소심하다 생각해 왔었는데, 막상 책 속의 이야기를 보니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근데 또 다른 이야기를 보면 이건 또 내 얘기같고. 하지만 '대범함과 소심함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 오른손잡이의 왼손 같은 거'라는 작가의 말에 힘입어 나는 소심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결론을 수줍게 내렸다. 뭐 소심인이면 어떻고 소심인이 아니면 어떤가. 나는 나니까. 소심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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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급주의 - 따뜻하고 불행한
김이슬 지음 / 책밥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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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초록색인 표지, 거기에 초록색과는 보색인 빨간색으로 쓰인 글씨 '취급주의' 네 글자. 온라인 서점에서 보는 것처럼 글씨가 눈에 잘 띄는가 하면, 아니다. 실물로 책을 보면 많지도 않은 글씨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자신의 제목을 알려주는 것조차 참 불친절한 이 책은 뭐랄까, 조금 특별하고 이상한 책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평범하지 않다고 표지부터 소리 지르고 있으니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다. 책 소개글에서 읽은 문장 때문이었다. '그녀의 잠꼬대'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글의 묘한 울림 때문이었다.


엄마. 
엄마는 왜 자면서 끙끙 앓아? 
“꿈에서도 엄마라서 그래.” 
어떤 대답엔 물기가 어려 있다. (118)


막상 읽어보면 너무도 평범한 글이라서 나의 선택에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 글로 인해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왜인지 책에는 이 글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 알 수 없는 아련함, 훅 다가오는 뭉클함 같은 것들이 들어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모두 읽어보니, <취급주의>에는 생각과는 좀 다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한 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작가의 마음 속 우울의 한 켠을 본 것 같다'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마음 속 한 켠의 우울이라 적어놓으니 되게 심각한 느낌이 든다. 그건 아니다. <취급주의>는 대체적으로 조금은 담담하고, 그러면서도 조금은 날카롭다. 내가 처음에 느꼈던 엄마를 보는 따뜻한 시선은 변함이 없었고, 엄마와 엄마의 엄마(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따뜻했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박힐법한 툭툭 뱉어 놓은 글조각들도 있었고, 맘 먹고 풀어놓은 과거의 덩어리들도 있었다.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이렇게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가의 마음 속 우울의 한 켠을 본 것 같다'라고 정리한 이유는, (책을 모두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작가가 풀어놓은 과거의 덩어리들이 꽤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재혼, 아빠라는 존재의 부재, 그로인한 알 수 없는 결핍같은 것들ㅡ아마도 조금씩 작가의 마음을 갉아먹었을 스며들었던 아픔. 이끼가 피어나는 지하방, 늘 넉넉치 않은 살림, 엄마의 관절염, 결막염과 안구건조증ㅡ작가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던 녹녹치 않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의 한숨.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우울함의 얼만큼은 책 속에 그대로 드러냈다. 언젠가 작가가 온 몸으로 경험하고 통과해 낸 그 과거를, 이제는 조금 객관적으로 전달하면서 '그땐 그랬지' 퍽 담담하게. 읽다보면 그 담담함이 오히려 독자를 작가의 과거속에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책 속에서 작가가 꽤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음에도 책을 덮고 나서는 작가 마음 속 우울의 한켠이 생각나는가 보다 나는 생각했다.


지구의 꽃말. (28)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 사는 집.
우리가 외로운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혼자라는 온도. (64)
혼자를 견디는 것의 온도는 늘 이렇다. 춥고 서늘하다.
혼자를 이기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지만 그 주변을 배회하는 외로운 입자들이 모조리 먹어치워 버린다.

별일 없이 산다. (123)
한 달 치 일기를 한꺼번에 쓴다.
지루하다.
지루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 말한 적은 없다.

깨끗한 우울. (231)
그냥 마셔요.
죽지 않아요.


하지만 책 속 여기 저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작가는 글을 잘 쓴다. 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 좋은 책인가 아닌가를 '얼마나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이 많은가'로 구분한다. <취급주의>는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공감과 깨달음, 피식 웃을 수 있는 작은 유머까지. 거기다 "시간은 새살을 돋게 하는 약이라기보단 흉터를 가릴 수 있는 밴드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101)" 라든가, "굳이 있는 것들 때문에 나는 많이 아팠다. 굳이 있어서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당신들 또한 그렇다. (176)", "남겨지는 건 원래 그리도 묵묵한 것이냐고. (217)" 등등 제목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욱 이어가는 와중에 등장한 공감 가는 문장들까지. 앞에서 언급한 우울들은 중간중간 박혀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특히나 '안경을 벗어두는 버릇'은 작가와는 다른 이유였지만 내가 특히 공감한 글이었으므로 따로 적어둔다.


안경을 벗어두는 버릇. (94)
도리어 선명하지 않아 좋은 순간들이 분명 있으니까. 
나는 흐릿한 세상 속에서 좀 더 자유롭다.
선명함에 지치기 시작한 건 선명한 것들과 마주하고 난 후부터였다.

나는 안경을 벗어 내 눈을 가린다.
꽁꽁.
나는 좀 더 용감해지고 좀 덜 상처받는다.

안경 안 쓰면 불편하지 않아? 많이들 묻는데,
“선명하지 않아서 더 좋을 때가 있는 거야.”가 언제나 내 답이다.


상처 많은 사람이니 '함부로 건들지 마시오' <취급주의>인가 했더니,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사용설명서 같은 <취급주의>였다. 내가 아직도 한심한가?라고 되묻는 작가의 글에서 한심하지 않다고 말해주길 원하고 있다고 느꼈다면 그건 조금 많이 나간걸까. 꽈악 안아주고 싶은 작가의 안아주고 싶은 책이다. 마치 어린왕자의 투덜쟁이 장미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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