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해서 좋다 - 작지만 깊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왕고래 지음 / 웨일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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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형이다. 엄마와 아빠의 혈액형이 모두 A형이라 내가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 혈액형의 선택지는 A형과 O형 2개 뿐이었다. 퍽 단순하게 물려받은 것 뿐인데 누군가에게 내 혈액형을 밝히면 "소심하죠?"라는 말이 자연스레 따라 붙는다. A형=소심, 마치 이것이 공식인 것처럼. 언젠가부터는 AAA형(트리플 에이형)이란 단어가 생기며 '소심의 끝판왕'을 일컫고 있다. 사람들은 재미로 그런다지만, 정작 소심한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부터도 말이다.

서평의 처음부터 '소심'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소심해서 좋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소심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가끔 봐 왔지만, '소심해서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나왔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번에 처음 봤다.) 기존에 보던 책들과는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왜인지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하여 마주하게 된 책은 파랑파랑하고 분홍분홍했다. 뽕뽕 구멍이 뚫린 파랑색 겉표지, 그리고 일러스트가 그려진 분홍색 속표지. 파랑색 겉표지를 벗겨내면 분홍색 표지 속 숨겨진 일러스트가 드러난다. 오, 신기하다. 그렇지만 그 뿐, 나는 책의 처음 프롤로그를 읽어갔다.


나는 소심하다. 좋게 표현하면 내성적이고 더 좋게는 내향적이다. 심리학은 이런 내 성향과 호기심을 담기에 적합했고, 나는 고민의 답을 얻기 위해 긴 시간을 몰두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심을 대범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정확히는 바꿔야 할 이유를 못 찾았다. (6쪽)


작가는 프롤로그에서부터 밝힌다. 자신은 '소심인'이며, <소심해서 좋다>는 작가가 '소심인'이라 칭한 이들의 시선과 일상을 담아낸 책이라고 말이다. 맞다. 이 책은 '소심인'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신의 흑역사를 대방출하면서 소심인에 대한 설명을 돕기도 하고, 소심인의 유형을 분류해 놓기도 하며, 소심한 이들만이 이룰 수 있는 역사를 설명하기도 하고, 너무도 간단하지만 그만큼 쉽게 간과해버리는 처방전도 내어놓는다. 그러니까 이 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소심인 셀프(+주변) 관찰 보고서'다. 누군가에게는 몸을 휘감는 맞춤옷처럼 느껴지고 누군가에게는 향신료 강한 외지 음식처럼 낯설게 다가오는(7쪽).

좋은 게 좋은 거지, 사람은 두루두루 친한 게 좋아 등등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대범하기를 강요한다. 유연함이 사회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심인들에게 그런 유연함을 가장한 관계맺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소심해서 좋다>는 그 사회 속 소심인들의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다. 대범한 척 연기를 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성향대로 소심하게 있어도 되는 건지 고민이 될 때, 여기서 작가의 경험들이 빛을 발한다. 현재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는 이런 에피소드들을 착실히 모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소심인(작가 본인)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주변의 소심인인 A씨는 이 상황에선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해준다. '말을 놓는 것에 관하여', '소심한 회의에 대범인이 낄 때', '솔직함에 대한 강요', '개인의 업무공간', '프리라이더의 이해' 등등 작가가 골라내 들려주는 상황들은 현실성 100%라 묘하게 공감이 간다.

또한 작가가 심리학 공부를 해서인지 몰라도, 소심인을 설명할 때 심리학적인 용어와 사례들로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심리적 안녕감이라든가, 사회적 순응 실험이라든가, 각성 이론이라든가. 에세이인 듯 에세이 아닌 에세이 같은 너랄까. 중간중간 심리학을 이용해 소심인의 이해를 돕는 작가의 글쓰기는 소심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내게는 흥미로운 감이 더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기회는 자신감보다 지속적인 노력과 닿아 있는 게 아닐까, 되물었다. (30쪽)

겹겹 흑역사를 쓰며 알게 된 건 '일상의 담담함'이다. 삶엔 드라마와 엔딩이 있지만, 일상엔 없다는 것. 일상의 길고 반복적인 흐름은 어느 한 지점이 반짝거리거나 일그러진다고 해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내일이 올 뿐이다. (32쪽)

소심하기 때문에 늘 소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뭔가를 드러낼 만큼의 분위기가 있다면 그것에 기대어 잠시나마 다른 옷을 입어보는 것도 괜찮다. 힘이 빠지는 만큼 빼보는 경험이 즐겁다. 그리고 다시, 내 고향으로 돌아와도 된다. 대범함과 소심함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 오른손잡이의 왼손 같은 거니까. (88쪽)


책을 읽고 있자니 나는 소심한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소심하다 생각해 왔었는데, 막상 책 속의 이야기를 보니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근데 또 다른 이야기를 보면 이건 또 내 얘기같고. 하지만 '대범함과 소심함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 오른손잡이의 왼손 같은 거'라는 작가의 말에 힘입어 나는 소심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결론을 수줍게 내렸다. 뭐 소심인이면 어떻고 소심인이 아니면 어떤가. 나는 나니까. 소심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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