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급주의 - 따뜻하고 불행한
김이슬 지음 / 책밥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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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초록색인 표지, 거기에 초록색과는 보색인 빨간색으로 쓰인 글씨 '취급주의' 네 글자. 온라인 서점에서 보는 것처럼 글씨가 눈에 잘 띄는가 하면, 아니다. 실물로 책을 보면 많지도 않은 글씨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자신의 제목을 알려주는 것조차 참 불친절한 이 책은 뭐랄까, 조금 특별하고 이상한 책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평범하지 않다고 표지부터 소리 지르고 있으니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다. 책 소개글에서 읽은 문장 때문이었다. '그녀의 잠꼬대'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글의 묘한 울림 때문이었다.


엄마. 
엄마는 왜 자면서 끙끙 앓아? 
“꿈에서도 엄마라서 그래.” 
어떤 대답엔 물기가 어려 있다. (118)


막상 읽어보면 너무도 평범한 글이라서 나의 선택에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 글로 인해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왜인지 책에는 이 글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 알 수 없는 아련함, 훅 다가오는 뭉클함 같은 것들이 들어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모두 읽어보니, <취급주의>에는 생각과는 좀 다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한 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작가의 마음 속 우울의 한 켠을 본 것 같다'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마음 속 한 켠의 우울이라 적어놓으니 되게 심각한 느낌이 든다. 그건 아니다. <취급주의>는 대체적으로 조금은 담담하고, 그러면서도 조금은 날카롭다. 내가 처음에 느꼈던 엄마를 보는 따뜻한 시선은 변함이 없었고, 엄마와 엄마의 엄마(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따뜻했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박힐법한 툭툭 뱉어 놓은 글조각들도 있었고, 맘 먹고 풀어놓은 과거의 덩어리들도 있었다.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이렇게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가의 마음 속 우울의 한 켠을 본 것 같다'라고 정리한 이유는, (책을 모두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작가가 풀어놓은 과거의 덩어리들이 꽤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재혼, 아빠라는 존재의 부재, 그로인한 알 수 없는 결핍같은 것들ㅡ아마도 조금씩 작가의 마음을 갉아먹었을 스며들었던 아픔. 이끼가 피어나는 지하방, 늘 넉넉치 않은 살림, 엄마의 관절염, 결막염과 안구건조증ㅡ작가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던 녹녹치 않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의 한숨.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우울함의 얼만큼은 책 속에 그대로 드러냈다. 언젠가 작가가 온 몸으로 경험하고 통과해 낸 그 과거를, 이제는 조금 객관적으로 전달하면서 '그땐 그랬지' 퍽 담담하게. 읽다보면 그 담담함이 오히려 독자를 작가의 과거속에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책 속에서 작가가 꽤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음에도 책을 덮고 나서는 작가 마음 속 우울의 한켠이 생각나는가 보다 나는 생각했다.


지구의 꽃말. (28)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 사는 집.
우리가 외로운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혼자라는 온도. (64)
혼자를 견디는 것의 온도는 늘 이렇다. 춥고 서늘하다.
혼자를 이기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지만 그 주변을 배회하는 외로운 입자들이 모조리 먹어치워 버린다.

별일 없이 산다. (123)
한 달 치 일기를 한꺼번에 쓴다.
지루하다.
지루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 말한 적은 없다.

깨끗한 우울. (231)
그냥 마셔요.
죽지 않아요.


하지만 책 속 여기 저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작가는 글을 잘 쓴다. 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 좋은 책인가 아닌가를 '얼마나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이 많은가'로 구분한다. <취급주의>는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공감과 깨달음, 피식 웃을 수 있는 작은 유머까지. 거기다 "시간은 새살을 돋게 하는 약이라기보단 흉터를 가릴 수 있는 밴드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101)" 라든가, "굳이 있는 것들 때문에 나는 많이 아팠다. 굳이 있어서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당신들 또한 그렇다. (176)", "남겨지는 건 원래 그리도 묵묵한 것이냐고. (217)" 등등 제목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욱 이어가는 와중에 등장한 공감 가는 문장들까지. 앞에서 언급한 우울들은 중간중간 박혀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특히나 '안경을 벗어두는 버릇'은 작가와는 다른 이유였지만 내가 특히 공감한 글이었으므로 따로 적어둔다.


안경을 벗어두는 버릇. (94)
도리어 선명하지 않아 좋은 순간들이 분명 있으니까. 
나는 흐릿한 세상 속에서 좀 더 자유롭다.
선명함에 지치기 시작한 건 선명한 것들과 마주하고 난 후부터였다.

나는 안경을 벗어 내 눈을 가린다.
꽁꽁.
나는 좀 더 용감해지고 좀 덜 상처받는다.

안경 안 쓰면 불편하지 않아? 많이들 묻는데,
“선명하지 않아서 더 좋을 때가 있는 거야.”가 언제나 내 답이다.


상처 많은 사람이니 '함부로 건들지 마시오' <취급주의>인가 했더니,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사용설명서 같은 <취급주의>였다. 내가 아직도 한심한가?라고 되묻는 작가의 글에서 한심하지 않다고 말해주길 원하고 있다고 느꼈다면 그건 조금 많이 나간걸까. 꽈악 안아주고 싶은 작가의 안아주고 싶은 책이다. 마치 어린왕자의 투덜쟁이 장미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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