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결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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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루에도 수십권이 쏟아지는 책들 사이에서 유독 이 책이 내 눈에 띈것은 표지 때문이였다. 딱 보기에도 익살맞아 보이는 타이포와 일러스트는 이 책의 내용을 쉽게 짐작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의 앞뒤 표지에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 이 책에 대한 칭찬들 역시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쾌한지 입을 모아 칭찬하고 있었다. 때마침 이런저런 우울한 일들이 겹쳐져 유쾌한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이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마치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책을 흝어보던 중 이 책의 작가 존 케네디 툴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깜짝 놀라 버렸다. 자신이 열심히 집필한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출판사들에 보내는 족족 퇴짜를 맞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의 지속적인 불화로 심한 우울증과 편집증에 빠져들다 못해, 1969년 그는 32년의 생을 스스로 끊어 버렸던 것이다. 즉, 이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되어버린 셈이였다.  

이런 존 케네디 툴의 이야기에서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그렇게 생을 마감한 그의 작품을 불화가 깊었던 그의 어머니에 손을 통해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존 케니디 툴의 사후, 무려 11년동안이나 그의 작품들을 거부했던 세상에 그의 작품을 인정받게 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펼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아들에 작품은 세상에 인정을 받게 되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한다. 어쩌면 그의 작품은 그가 살던 시간보다 11년후의 세상에서 더 각광 받을 수 있는 작품이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런 집념이 나를 무엇보다도 이 책으로 이끌었다. 어떤면에선 이 책 자체의 유쾌한 이야기보다 더 그의 어머니에 아들에 대한 신념과 사랑이 더 마음에 끌리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난 책이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다. 이 두가지 책의 장점과 단점은 거의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재밌지만 그들만의 리그에 중점을 둔 유머라는 것, 바로 양키쎈스가 흠씬 배어나오는 유머라는 것이다. 이 특유의 유머가 잘 맞는 사람들에겐 정말 이 책의 소개문구대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이 책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다가오겠지만, 만약 맞지 않는다면 읽는게 정말 곤욕일 것이다. 내 경우엔 반반이였다. 어차피 이 책은 그들에게 제일 잘 통하는 유머와 말잔난을 추구하고 있으니, 그들의 언어인 영어로 읽어야 비로소 제대로 읽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런 내 마음이 썩 애매모호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무한도전을 보는 외국인들이 이런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선 정말 탑쇼프로지만, 외국인들이 보기엔 분명 잘 이해되지 않고, 이상하게 보일테니 말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사방팔방으로 퍼져있고, 서로 이런저런 인연으로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게다가 모두들 쉽게 표현하기 힘든 성격들을 지녔다. 그 중에서도 제일가는 사람은 주인공인 이그네이셔스인데, 그는 정말 비호감의 결정체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며 대체 이런 요상한 주인공을 비롯하여 그 주변 인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에 빠져야 했다. 결국 나중에는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자고 마음먹어서야 보다 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 자체가 너무나 미국적인 색체가 강하고, 내가 향유한 문화와 시대도 공간도 많이 동떨어져 있기에 쉽게 이해하기 힘든 벽을 마침내 인정하고 마음편히 웃어넘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나중에 이와 동시대를 공유한 책들로 보충하면 되리라. 그렇게 속편히 마음먹기로 했다. 

만약 이 책의 저자가 그렇게 급하게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이 책을 더 쉽게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책의 맨 끝부분에서 암시한 것처럼 이 책의 후속작이 세상에 탄생했을 것이고, 이 책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좀더 긍정적이였으리라는 미련이 남기 떄문이다. 어쩌면 이 책의 시작을 맛깔나는 작가의 들어가는 말로 시작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여러모로 존 케네디 툴의 죽음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또한 그의 죽음이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썩 가볍지 않았다. 만약 그가 생존한 작가였더라도 퓰리처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런 여러가지 생각들 덕분에 책의 제일 첫장에 있는 추천사를 즐겁고 훈훈한 마음으로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미처 이해하지 못한 미국식 유머의 즐거움 만큼을, 그의 작품을 발굴하고 인정받을 수 있게 노력한 어머니의 모정에서 느껴지는 감동으로 채우며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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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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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이라.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꼬르륵이였다. 배가 고파서 나는 소리가 꼬르륵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배고픔을 다룬 이야기이니, 분명 상큼발랄한 내용은 아닐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펴자마자 이 이야기는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가 대놓고 못을 박으며, 그 먹거리가 귀한시절 추억에 얽힌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지금으로치자면 일종의 불량식품들에 대한 추억들이였는데, 이 이야기들이 은근히 즐거웠다. 이런 작가의 이야기들을 읽노라니,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스며나왔다. 지금처럼 모든게 풍요롭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정겨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없는 사람이 어디겠는가만은. 이런 작가와의 동질감들 덕분에 이윽고 나는 르 클레지오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에텔이라는 여성이다.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20살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며,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삶이 모여, 다시 역사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반복되는 잘못된 역사속에서 자꾸만 망각하는 진정한 배고픔이 무엇인지 말하고자 한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만족은 에텔이 처한 궁핍함을 너무나 잘한다. 에텔이 겪은 처참한 식민지배 시대도 겪었고, 그녀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동족상잔의 뼈아픈 전쟁도 겪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야기 속의 그녀가 처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쉽게 공감이 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이야기의 배경인 프랑스처럼 괴로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여 과거로 보내지 못하고, 그 고통스러운 역사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현실에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더 이 작품이 쉽게 이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들을 무서워한다. 그동안의 내 경험들로 미루어보건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록 내 짧고 비루한 경험들을 토대로 만든 이론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를 하는 것을 보면 꽤 일반화가 된 의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도 쉽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이 책에 첫페이지를 넘길때까지 두려움에 휩싸여있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런 내 두려움은 괜한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은 결코 어렵지 않다. 물론 초반에는 주인공의 어린시절에 대한 낭만적이고 살짝은 몽환적이기도 한 묘사 때문에 조금 난해하기도 했지만, 곧 주인공의 사춘기시절이 도래하면서 문장들은 점점 현실적이고 간결하게 변해갔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쉬워지는 문장들 속에 존재하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간들은 뒤로 갈수록 늘어났지만,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을 이만큼 마음편하고 담백하게 읽을 수 있었기에 나는 몹시 만족했다. 게다가 광풍에 휩싸인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전제척으로 무겁지 않고, 오히려 어떤부분에선 담백하기까지 했던 것도 마음에 들었다.  

책의 역자 후기를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2004년작 아프리카인과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인은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재구성한 소설로, 전반적인 주제는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과 거의 비스하다는 이야기에 그 책에 흥미가 동한다. 자고로 고스톱 패도 서로 짝을 이뤄야 점수가 크게 나는 법! 이 두개의 소설이 합쳐지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날지, 그리고 과연 르 클레지오는 같은 주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게다가 이 이야기 전에 집필했으니, 이 이야기에 대한 원형을 거기서 찾을 수 있지도 않을까? 벌써부터 그 미지의 작품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부디 그 작품도 허기의 광시곡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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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19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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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만의 신간!!!!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너무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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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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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2에 매혹적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메로빙지언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그는 진실에 대한 힌트라며 묘한 말들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늘어놓는다. 물론 그의 말이 진실에 대한 중의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주인공 일행은 물론이고 영화의 관객들까지 알고 있지만, 그런 느긋한 말장난을 하는 메로빙지언의 태도는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모두의 짜증을 불러 일으킨다. 급기야 그의 아름다운 아내 페르세포네까지도 짜증을 내며 이런 말을 내뱉는다. "그놈의 헛소리, 지겨워 죽겠어요" 나도 영화를 보며 전적으로 그녀의 말에 동감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종종 이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처음엔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을 보고, 이 책이 에세이쪽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에세이를 읽을 생각이 없었기에 이 책에 거의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곧바로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책에 대한 책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으랴? 어쩌면 이 책이 앤 패티먼의 책이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천사의 게임같은 느낌의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 그 자체가 책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니까.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표지에 은근하게 배어있는 연두빛과 펜으로 날렵하게 스케치한 부엉이 그림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표지의 부엉이와 책 사냥꾼이라는 이미지 덕분에, 마치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도 들었다.

책의 시작은 다른책의 인용구에서 출발한다. 책에 대한 책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는 책의 시작으로써는, 책 속 화자의 말처럼 모든 것의 적절한 시작으로 느껴졌다. 그런 적절한 시작처럼 적절히 평탄한 삶을 이 책의 화자가 살았다면, 화자 그 자신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비록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의 아드레날린은 솟구치지 않겠지만. 하지만 화자는 그런 평탄한 보편적인 삶이 아니라, 쫒김과 쫒음의 대상으로써,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책 사냥꾼이였고, 덕분에 내 아드레날린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심심찮게 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으레 이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필연적으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듯이, 이 책의 화자도 그런 함정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빠지게 되고 이야기는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얼핏보면 이 책은 진부한 영웅담일지는 모르겠지만, 책 사냥꾼이라는 독특한 직업과 그 직업의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계가 이 책을 평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그러나 너무 기대를 했기 때문이였을까? 아니면 작가의 데뷔작이기 때문이였을까? 분명 재미는 있으되, 의외로 여기저기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이 제2회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에 이의는 없다. 분명 열심히 노력해서 잘 쓴 책이고, 작가가 소설을 쓰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재미도  담뿍 담겨져있다. 재미만으로 치자면 이 책에 그다지 불만을 가질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외적인 부분에서 약간의 아쉬움과 조금의 짜증이 남았다. 이런 섭섭한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작가의 문장이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문장들은 작가의 스타일이기 때문이였는지, 혹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일부러 길게 늘려서 쓴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이가 너무 길어서 숨이 가빴다. 심지어는 (내가 직접 세어봤는데)한 문장이 17줄의 분량으로 씌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이 소설에서는 한문단이 한문장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철학적인 탈을 쓴 듯한 그 문장들이 결국은 단 한마디의 짧은 문장으로 압축된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나 인셉션에서 줄기차게 말한 바로 그 주제, 과연 진실이란 무엇이느뇨?로 말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선 이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완독한 지금까지도 매트릭스의 메로빙지언이 재주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이제는 메로빙지언과 오랜 세월 부부로 지낼 수 밖에 없었던 페르세포네가 측은하게 느껴질 정도다.

또한 문장의 길이 외에도 문장자체가 모호하게 취하고 있는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문장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이렇다. 그 사실은 이랬지만, 이랬을수도 있고, 저랬을수도 있고, 그랬을수도 있고, 어쩌구 저쩌구했을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러쿵 저러쿵 했을수도 있다. 나는 이런 작가의 문장 스타일에서 자신의 쓴 문장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처음에는 이것이 이 책의 화자가 가진 소심한 내면의 세계를 은연중에 드러내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맨끝에 씌여진 작가의 말을 읽으며 이런 글의 태도가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적잖은 실망을 했다. 나는 소설가는 사기꾼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단 소설가만이 아니라 모든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 역시 사기꾼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사실에 가까운 거짓말을 뻔뻔하고 당당하게 늘어놓는 사기꾼. 그래서 보다 완벽해 보이는 허구로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즐거움과 감동을 줘야 하는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을 것 같은 소극적인 태도를 지닌 사기꾼에게 과연 몇명의 사람들이 기꺼이 속아 넘어가줄까? 처음엔 이런 문장의 느낌도 꽤 신선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반복된다면 정말 곤란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더욱더 재밌을수도 있었을 것을 문장들의 이런 삐걱거리는 앙상블로 그 재미를 깍아먹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으며 매트릭스와 인셉션 얘기를 했는데, 그건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이 영화화 되어도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 사냥꾼이라는 굉장히 독특한 소재와 그런 그들이 한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배신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꼭 여느 스파이영화들처럼 긴박하고 매력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물론 메로빙지언을 떠올리게 하는 애매모호하며 길디긴 문장들을 각색한다면 더 멋진 영화가 되겠지만. 어쩌면 영화에서는 그런 길디긴 문장들을 대사화 할 수 없으니 이 책의 진가는 영화화 책을 때 더 폭발적으로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 한것은 온전히 재미만을 위해서 이 책을 선택한다면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만약 매트릭스의 메로빙지언에 팬이라면 더욱더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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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심장부에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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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문득, 작년 이맘때즈음 읽었던 이승우의 "한낮에 시선"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어쩌다보니 그 당시에 그 책을 삼분에 일 정도 읽은 시점에서 시력교정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수술 전까지 책을 완독할 생각이였는데, 상황이 뜻대로 흐르지 않은 덕분에 꽤 기분나쁜 통증과 함께 어둠속에서 가족들과 떨어진 채 귀로 들리는 소리에 의지해 삼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미련과 이미 읽은 부분들에 내용들이 종종 맴돌곤 했다. 한낮의 시선은 주로 자신의 내면에 대한 독백형식의 이야기들이였기에, 어둠속에 갇혀 있어야 했던 당시의 내 상황과 교묘하게 맞물려 내 머리속과 마음에 한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그런데 거의 1년만에 그 책과 비슷한 서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을 만나게 되고보니, 사람과 사람간의 인연뿐만 아니라 책과 사람간의 인연도 참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런데 이 책의 읽기 위해 첫페이지를 펼치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목차가 없었다. 이 세상에 목차가 없는 책도 있던가. 안네의 일기에도 있는 목차가 왜 없지? 보통 표지와 목차로 대략적인 책의 느낌을 파악하며, 책을 읽을 준비를 하는 내게 이건 허를 찔린 느낌이였다. 게다가 왠지 황량하고도 꽉 막혀버린 표지의 이미지와 까칠한 재질의 표지재질은 이 책이 결코 녹록치 않으리라는 느낌을 주었다. 아니나다를까, 이 책은 정말 읽기에 만만치 않은 책이였다. 이 책은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마그다의 100센트 독백형식으로만 이루어졌으며, 이야기의 흐름과 공간이 그녀의 심리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그녀가 지금 하는 말이, 그녀가 지금 묘사하는 풍경이 언제 어느때 일어난 것인지, 사실인지, 혹은 또다시 반복되는 그녀만의 상상인지, 주의깊게 읽고 살펴보아야 했다. 그러다 결국 이런 그녀 이야기 지쳐버렸고, 그녀의 이야기들을 꼼꼼히 따지며 그녀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이야기에 흐름을 쫒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덕분에 이후로는 보다 마음 편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지만, 마그다와 이 책을 오롯이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책의 뒷맛처럼 아직까지도 씁쓸하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마그다는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황량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무관심한 아버지에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관심을 둔 것은 하인의 아내인 안나였을 뿐이다. 그녀는 언제나 거친 농장일과 흑인하인들 속에서 백인이자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고립된 존재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진하게 배어나오는 그녀의 고독감을 왠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눈수술로 인해 어둠 속에서 삼일을 보내야 했던 그때의 나는 꽤 고독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랄까. 옆에 가족들이 있었지만, 나 혼자만 어둠속에 있다는 그 괴리감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에겐 비록 삼일의 시간이였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마그다는 평생을 그 괴로움 속에서 보내야 했다. 결국엔 벌레를 자신의 친구삼아 자신의 고독을 위로하면서까지 말이다. 

   
  우리는 베란다에 나란히 앉아 마지막 석양을 바라보고 별이 뜨기를 기다리며, 때때로 핸드릭이 강 너머에서 서툴고 부드럽게 기타줄을 튕기는 소리를 듣는다. 어느날 밤 대기가 유달리 잠잠하던 때, 그가 연주하는 <깃털로 가득한 손>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바람이 그 희미한 소리를 실어 가 버린다. 우리는 저마다의 행성에 사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행성에, 그들은 그들의 행성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구절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이 책을 통털어 아마도 내가 가장 잘 이해한 구절이 이 부분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그다의 모든 마음과 이 책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마그다는 깃털로 가득한 손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아버지의 애정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혹은 그녀가 호감을 갖고 있던 핸드릭에게 저 기타연주처럼 부드러운 사랑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람은 이런 그녀의 소박한 바람은 한순간에 저멀리로 실어가 버린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처럼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의 제일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고독을 말하고 있지만,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문장 하나하나는 모두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이 아름답다는 표현이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책에 존재하는 모든 문장들이 결코 아름다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은 않지만, 그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뜻과 의미는 모두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기분이였다. 물론 보통의 예술작품들처럼 쉽게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긴 했지만, 그 예술작품들이 주는 그 자체에서 받는 그런 감동을 이 책의 문장들을 통해 받았다.

존 맥스웰 쿳시의 작품을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그의 소설을 읽어 볼 생각이긴 했지만, 하필이면 그의 소설 중, 제일 난해하다고 평가받는 이 책을 통해서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 까탈스러운 책에서조차 그의 문장은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 그의 다른 소설들에서는 얼마나 멋들어지게 존재할지 궁금하다. 그렇기에 조만간 그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 그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 참, 이 난해한 소설을 번역할 엄두를 내주신 번역가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소설이 J.M 쿳시의 두번째 소설임에도 이렇게 오랜 세월뒤에 번역된 까닭이 이 책의 첫문단만 읽어도 쉽게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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