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심장부에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작년 이맘때즈음 읽었던 이승우의 "한낮에 시선"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어쩌다보니 그 당시에 그 책을 삼분에 일 정도 읽은 시점에서 시력교정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수술 전까지 책을 완독할 생각이였는데, 상황이 뜻대로 흐르지 않은 덕분에 꽤 기분나쁜 통증과 함께 어둠속에서 가족들과 떨어진 채 귀로 들리는 소리에 의지해 삼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미련과 이미 읽은 부분들에 내용들이 종종 맴돌곤 했다. 한낮의 시선은 주로 자신의 내면에 대한 독백형식의 이야기들이였기에, 어둠속에 갇혀 있어야 했던 당시의 내 상황과 교묘하게 맞물려 내 머리속과 마음에 한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그런데 거의 1년만에 그 책과 비슷한 서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을 만나게 되고보니, 사람과 사람간의 인연뿐만 아니라 책과 사람간의 인연도 참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런데 이 책의 읽기 위해 첫페이지를 펼치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목차가 없었다. 이 세상에 목차가 없는 책도 있던가. 안네의 일기에도 있는 목차가 왜 없지? 보통 표지와 목차로 대략적인 책의 느낌을 파악하며, 책을 읽을 준비를 하는 내게 이건 허를 찔린 느낌이였다. 게다가 왠지 황량하고도 꽉 막혀버린 표지의 이미지와 까칠한 재질의 표지재질은 이 책이 결코 녹록치 않으리라는 느낌을 주었다. 아니나다를까, 이 책은 정말 읽기에 만만치 않은 책이였다. 이 책은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마그다의 100센트 독백형식으로만 이루어졌으며, 이야기의 흐름과 공간이 그녀의 심리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그녀가 지금 하는 말이, 그녀가 지금 묘사하는 풍경이 언제 어느때 일어난 것인지, 사실인지, 혹은 또다시 반복되는 그녀만의 상상인지, 주의깊게 읽고 살펴보아야 했다. 그러다 결국 이런 그녀 이야기 지쳐버렸고, 그녀의 이야기들을 꼼꼼히 따지며 그녀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이야기에 흐름을 쫒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덕분에 이후로는 보다 마음 편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지만, 마그다와 이 책을 오롯이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책의 뒷맛처럼 아직까지도 씁쓸하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마그다는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황량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무관심한 아버지에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관심을 둔 것은 하인의 아내인 안나였을 뿐이다. 그녀는 언제나 거친 농장일과 흑인하인들 속에서 백인이자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고립된 존재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진하게 배어나오는 그녀의 고독감을 왠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눈수술로 인해 어둠 속에서 삼일을 보내야 했던 그때의 나는 꽤 고독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랄까. 옆에 가족들이 있었지만, 나 혼자만 어둠속에 있다는 그 괴리감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에겐 비록 삼일의 시간이였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마그다는 평생을 그 괴로움 속에서 보내야 했다. 결국엔 벌레를 자신의 친구삼아 자신의 고독을 위로하면서까지 말이다. 

   
  우리는 베란다에 나란히 앉아 마지막 석양을 바라보고 별이 뜨기를 기다리며, 때때로 핸드릭이 강 너머에서 서툴고 부드럽게 기타줄을 튕기는 소리를 듣는다. 어느날 밤 대기가 유달리 잠잠하던 때, 그가 연주하는 <깃털로 가득한 손>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바람이 그 희미한 소리를 실어 가 버린다. 우리는 저마다의 행성에 사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행성에, 그들은 그들의 행성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구절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이 책을 통털어 아마도 내가 가장 잘 이해한 구절이 이 부분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그다의 모든 마음과 이 책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마그다는 깃털로 가득한 손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아버지의 애정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혹은 그녀가 호감을 갖고 있던 핸드릭에게 저 기타연주처럼 부드러운 사랑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람은 이런 그녀의 소박한 바람은 한순간에 저멀리로 실어가 버린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처럼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의 제일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고독을 말하고 있지만,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문장 하나하나는 모두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이 아름답다는 표현이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책에 존재하는 모든 문장들이 결코 아름다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은 않지만, 그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뜻과 의미는 모두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기분이였다. 물론 보통의 예술작품들처럼 쉽게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긴 했지만, 그 예술작품들이 주는 그 자체에서 받는 그런 감동을 이 책의 문장들을 통해 받았다.

존 맥스웰 쿳시의 작품을 이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그의 소설을 읽어 볼 생각이긴 했지만, 하필이면 그의 소설 중, 제일 난해하다고 평가받는 이 책을 통해서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 까탈스러운 책에서조차 그의 문장은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 그의 다른 소설들에서는 얼마나 멋들어지게 존재할지 궁금하다. 그렇기에 조만간 그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 그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 참, 이 난해한 소설을 번역할 엄두를 내주신 번역가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소설이 J.M 쿳시의 두번째 소설임에도 이렇게 오랜 세월뒤에 번역된 까닭이 이 책의 첫문단만 읽어도 쉽게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