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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매트릭스2에 매혹적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메로빙지언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그는 진실에 대한 힌트라며 묘한 말들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늘어놓는다. 물론 그의 말이 진실에 대한 중의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주인공 일행은 물론이고 영화의 관객들까지 알고 있지만, 그런 느긋한 말장난을 하는 메로빙지언의 태도는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모두의 짜증을 불러 일으킨다. 급기야 그의 아름다운 아내 페르세포네까지도 짜증을 내며 이런 말을 내뱉는다. "그놈의 헛소리, 지겨워 죽겠어요" 나도 영화를 보며 전적으로 그녀의 말에 동감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종종 이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처음엔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을 보고, 이 책이 에세이쪽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에세이를 읽을 생각이 없었기에 이 책에 거의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곧바로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책에 대한 책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으랴? 어쩌면 이 책이 앤 패티먼의 책이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천사의 게임같은 느낌의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생 그 자체가 책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니까.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표지에 은근하게 배어있는 연두빛과 펜으로 날렵하게 스케치한 부엉이 그림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표지의 부엉이와 책 사냥꾼이라는 이미지 덕분에, 마치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도 들었다.

책의 시작은 다른책의 인용구에서 출발한다. 책에 대한 책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는 책의 시작으로써는, 책 속 화자의 말처럼 모든 것의 적절한 시작으로 느껴졌다. 그런 적절한 시작처럼 적절히 평탄한 삶을 이 책의 화자가 살았다면, 화자 그 자신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비록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의 아드레날린은 솟구치지 않겠지만. 하지만 화자는 그런 평탄한 보편적인 삶이 아니라, 쫒김과 쫒음의 대상으로써,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책 사냥꾼이였고, 덕분에 내 아드레날린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심심찮게 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으레 이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필연적으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듯이, 이 책의 화자도 그런 함정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빠지게 되고 이야기는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얼핏보면 이 책은 진부한 영웅담일지는 모르겠지만, 책 사냥꾼이라는 독특한 직업과 그 직업의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계가 이 책을 평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그러나 너무 기대를 했기 때문이였을까? 아니면 작가의 데뷔작이기 때문이였을까? 분명 재미는 있으되, 의외로 여기저기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이 제2회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에 이의는 없다. 분명 열심히 노력해서 잘 쓴 책이고, 작가가 소설을 쓰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재미도  담뿍 담겨져있다. 재미만으로 치자면 이 책에 그다지 불만을 가질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외적인 부분에서 약간의 아쉬움과 조금의 짜증이 남았다. 이런 섭섭한 마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작가의 문장이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문장들은 작가의 스타일이기 때문이였는지, 혹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일부러 길게 늘려서 쓴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이가 너무 길어서 숨이 가빴다. 심지어는 (내가 직접 세어봤는데)한 문장이 17줄의 분량으로 씌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이 소설에서는 한문단이 한문장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철학적인 탈을 쓴 듯한 그 문장들이 결국은 단 한마디의 짧은 문장으로 압축된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나 인셉션에서 줄기차게 말한 바로 그 주제, 과연 진실이란 무엇이느뇨?로 말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선 이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완독한 지금까지도 매트릭스의 메로빙지언이 재주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이제는 메로빙지언과 오랜 세월 부부로 지낼 수 밖에 없었던 페르세포네가 측은하게 느껴질 정도다.

또한 문장의 길이 외에도 문장자체가 모호하게 취하고 있는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문장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이렇다. 그 사실은 이랬지만, 이랬을수도 있고, 저랬을수도 있고, 그랬을수도 있고, 어쩌구 저쩌구했을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러쿵 저러쿵 했을수도 있다. 나는 이런 작가의 문장 스타일에서 자신의 쓴 문장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처음에는 이것이 이 책의 화자가 가진 소심한 내면의 세계를 은연중에 드러내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맨끝에 씌여진 작가의 말을 읽으며 이런 글의 태도가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적잖은 실망을 했다. 나는 소설가는 사기꾼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단 소설가만이 아니라 모든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 역시 사기꾼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사실에 가까운 거짓말을 뻔뻔하고 당당하게 늘어놓는 사기꾼. 그래서 보다 완벽해 보이는 허구로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즐거움과 감동을 줘야 하는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을 것 같은 소극적인 태도를 지닌 사기꾼에게 과연 몇명의 사람들이 기꺼이 속아 넘어가줄까? 처음엔 이런 문장의 느낌도 꽤 신선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반복된다면 정말 곤란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더욱더 재밌을수도 있었을 것을 문장들의 이런 삐걱거리는 앙상블로 그 재미를 깍아먹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으며 매트릭스와 인셉션 얘기를 했는데, 그건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이 영화화 되어도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 사냥꾼이라는 굉장히 독특한 소재와 그런 그들이 한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배신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꼭 여느 스파이영화들처럼 긴박하고 매력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물론 메로빙지언을 떠올리게 하는 애매모호하며 길디긴 문장들을 각색한다면 더 멋진 영화가 되겠지만. 어쩌면 영화에서는 그런 길디긴 문장들을 대사화 할 수 없으니 이 책의 진가는 영화화 책을 때 더 폭발적으로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 한것은 온전히 재미만을 위해서 이 책을 선택한다면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만약 매트릭스의 메로빙지언에 팬이라면 더욱더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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