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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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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이라.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꼬르륵이였다. 배가 고파서 나는 소리가 꼬르륵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배고픔을 다룬 이야기이니, 분명 상큼발랄한 내용은 아닐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펴자마자 이 이야기는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가 대놓고 못을 박으며, 그 먹거리가 귀한시절 추억에 얽힌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지금으로치자면 일종의 불량식품들에 대한 추억들이였는데, 이 이야기들이 은근히 즐거웠다. 이런 작가의 이야기들을 읽노라니,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스며나왔다. 지금처럼 모든게 풍요롭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정겨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없는 사람이 어디겠는가만은. 이런 작가와의 동질감들 덕분에 이윽고 나는 르 클레지오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에텔이라는 여성이다.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20살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며,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삶이 모여, 다시 역사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반복되는 잘못된 역사속에서 자꾸만 망각하는 진정한 배고픔이 무엇인지 말하고자 한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만족은 에텔이 처한 궁핍함을 너무나 잘한다. 에텔이 겪은 처참한 식민지배 시대도 겪었고, 그녀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동족상잔의 뼈아픈 전쟁도 겪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야기 속의 그녀가 처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쉽게 공감이 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이야기의 배경인 프랑스처럼 괴로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여 과거로 보내지 못하고, 그 고통스러운 역사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현실에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더 이 작품이 쉽게 이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들을 무서워한다. 그동안의 내 경험들로 미루어보건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록 내 짧고 비루한 경험들을 토대로 만든 이론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를 하는 것을 보면 꽤 일반화가 된 의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품도 쉽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이 책에 첫페이지를 넘길때까지 두려움에 휩싸여있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런 내 두려움은 괜한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은 결코 어렵지 않다. 물론 초반에는 주인공의 어린시절에 대한 낭만적이고 살짝은 몽환적이기도 한 묘사 때문에 조금 난해하기도 했지만, 곧 주인공의 사춘기시절이 도래하면서 문장들은 점점 현실적이고 간결하게 변해갔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쉬워지는 문장들 속에 존재하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간들은 뒤로 갈수록 늘어났지만,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을 이만큼 마음편하고 담백하게 읽을 수 있었기에 나는 몹시 만족했다. 게다가 광풍에 휩싸인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전제척으로 무겁지 않고, 오히려 어떤부분에선 담백하기까지 했던 것도 마음에 들었다.  

책의 역자 후기를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2004년작 아프리카인과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인은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재구성한 소설로, 전반적인 주제는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과 거의 비스하다는 이야기에 그 책에 흥미가 동한다. 자고로 고스톱 패도 서로 짝을 이뤄야 점수가 크게 나는 법! 이 두개의 소설이 합쳐지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날지, 그리고 과연 르 클레지오는 같은 주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게다가 이 이야기 전에 집필했으니, 이 이야기에 대한 원형을 거기서 찾을 수 있지도 않을까? 벌써부터 그 미지의 작품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부디 그 작품도 허기의 광시곡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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