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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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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이 책의 배경인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겐 사막저편에 존재하는 너무나 막연한 나라니까. 그저 가끔 TV를 통해 스치듯 보게 되는 것이 전부인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이미지의 나라라는 것 정도? 그리고 대부분의 중동국가들이 그러하듯 종교적인 이유로 여인들이 온몸을 천으로 감고 다녀야 하는 답답함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게 내가 아는 이란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이였다. 그런데 이 책으로 인해 이란이라는 나라는 불쑥 내 옆으로 다가왔고,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돋구었다.  

이 책의 배경은 1970년대로, 구소냉전시대의 영향으로 여러가지 사상들이 부딪히던 혼란스러운 시절로 사랑스럽지만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그 시절의 우리네를 보는 것과 같은 이란의 고단한 역사와 삶은 이 책의 이야기가 사막 저편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벌어지는 이웃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비밀경찰 시라크에게 쫒기는 그 시대의 신념가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모습들과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서도 계속되는 사람들에 사랑과 질곡한 인생살이는 어찌나 우리 부모님들의 삶과 닮아 있던지!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 읽자마자 당장 이란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고, 내가 가진 이란에 대한 지식들이 얼마나 알량하고 형편없는 것들이였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내가 그랬듯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이란의 모습과 많이 다른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의 미덕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책은 아름답고 애닮으며 재미있기까지 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17살의 “나”라는 사람이다. "나"의 17살이라는 나이는 모호하다.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년도 아닌, 사춘기라는 터널 끝에 위치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이 아니기에 부모님의 의견을 거스르지 못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진학해야 했으며, 소년이 아니기에 눈떠버린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으로 가슴 아파해야 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혼란스러운 자아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나” 파샤의 이야기는 이렇게 상징적으로 당시 이란에 모습과 맞물려 결코 가볍지 않은 이란의 역사와 그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쉽게 찬찬히 풀어나가고 있다.

"나" 파샤는 너무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마치 우리 옆집에 사는 평범한 17살처럼 말이다. 다만 사는 곳이 이란이라는 것과 나라에 대해 입을 잘못 놀이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며칠 뒤에 불구가 되어 나타나는 시절에 산다는 것이 우리 옆집의 아이와 다를 뿐이였다. 아, 우리나라의 인권에 대한 인식도 이 이야기의 배경과 같은 1970년대로 요사이 회귀하려 하고 있지? 어쩌면 조만간 이 책에 나오는 1970년대 이란과 너무나 닮았던 우리나라 독재권력의 모습과 그 편집증적인 상황들을 다시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면 이 책의 내용이 더 절실하게 와닿겠지. 물론 절대 그런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쨋던지간에 이런 평범한 소년 파샤가 첫사랑에 빠져버렸는데, 이름은 자리요 약혼자가 있는 아름다운 처녀였다. 17살 혈기왕성한 청년이라면 그녀의 약혼자와 그녀의 집안에게 파샤의 절친한 친구인 아메드가 그랬던 것처럼 한번 덤벼들어 볼 법도 한데 그럴수조차 없었다. 하필이면 그녀의 약혼자가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는 멘토인 닥터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말 못할 사랑에 빠진 파샤의 가슴은 점점 썩어 문드러져만 간다. 그런데 이런 파샤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오니 바로 그 멘토인 닥터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다가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닥터의 부재로 사랑이 싹트던 자리와 파샤에게 크나큰 충격과 상처로 다가오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만든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변명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꼭 이루어져야만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파샤와 자리의 사랑이 이 책의 결말 이후에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슬픈 첫사랑의 이야기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둘의 가슴에 담긴 사랑이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기에, 별을 닮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다. 

책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낯설었던 이란이라는 나라를 내 옆으로 찰싹 끌어다 놓았으니까. 사실 그동안 은근히 중동 출신쪽의 작가들에 책을 기피해 왔는데, 그것은 내가 우리나라 소설을 피했던 이유와 같았다. 지나온 세월이, 그리고 지금 지나가고 있는 시간이 참 슬프고 힘들기 때문이였다. 현실의 삶에서 잠깐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는데, 책에서조차 현실의 각박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소설에 대한 부정적인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거부감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었고, 이제는 중동쪽의 이야기에 대해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읽게 된 테헤란의 지붕은 내 첫번째 중동소설로써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다. 부디 앞으로도 이 책의 작가 마보드 세라지의 책을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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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d 상징 하우스 오브 나이트 1
P. C. 캐스트 지음, 이승숙 옮김 / 북에이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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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상상속의 이미지나 전설들에 대해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고 종종 매혹되곤 한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으며,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할 것들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바로 이런 대표적인 매혹의 대상 중 하나가 요즘 가히 붐이라 불릴정도로 대중매체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는 뱀파이어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젊은과 아름다움 그리고 위험한 매력을 동시에 내뿜고 있다. 그리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마음씨를 갖고 있기에 현대에 사는 우리는 자꾸만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현실로 꺼내오고 있다. 

우리가 단순히 뱀파이어들에게 매혹되고 있는 것은 이런 표면적인 이유외에 또다른 내면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현대사회가 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이런 욕망을 갖게 한 문제들 중에 하나는 이 책의 주인공 조이가 갖고 있던 문제와 같다. 바로 인간소외현상이다. 현대사회의 인간소외현상은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갈망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문제 속에는 조이처럼 긍정적인 해결책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종종 잘못된 쪽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 잘못된 방향으로의 발전에 서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종교에 광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참 재미있었다. 은연중에 현대사회의 인간소외현상의 내면에 파고든 광적인 종교문제를 꼬집으며, 그런 멍청한 문제들을 자신의 소외감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며 매달리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를 잘 그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곧 우리는 이런 인간의 모습들에서 우리가 자랑하는 멋진 현대사회의 모습이 피를 먹는 괴물이라는 존재들보다 더 괴물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이런 은근한 비꼼의 미학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요소중에 하나지만, 사실 이 책은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뱀파이어 소설들처럼 10대 여주인공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이 소설이 기존의 소설들과 다른 조금 특이한 점은 피가 흥건한 으스스한 이야기나, 러브스토리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우정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건강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춘기 10대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기에 러브스토리는 빠질 수 없는 감초처럼 등장하지만 그 러브스토리가 이야기의 전체에 그 축을 담당하고 있을만큼의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꽤 신선했다. 게다가 아직은 여자주인공의 나이가 16살이라는 점도 러브스토리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16살은 아직 트와일라잇 시리즈처럼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 하기엔 조금 어린감이 있으니까.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의 주인공들은 10대이다. 그래서 가끔은 어리석지만 용감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 속에서 이 책의 주인공들은 내적, 외적으로 성장해간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10대들의 모습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고, 다른 소설들처럼 과장되지 않게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은 이 책의 공동작가 중 하나가 이제 갓 10대를 지난 여성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요소들이 한국번역본에서는 노숙한 단어들의 사용으로 묻혀지는 감이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중간중간 매끄럽지 못한 번역 역시 이런 아쉬움을 더 해주었다.  

하으스 오브 나이트 시리즈는 총 10권이라는 거대한 시리즈다. 그 중에 이 상징편은 겨우 이야기의 도입부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등장한 기묘한 사건들을 앞으로 진행될 시리즈에 대한 포석으로 깔아 독자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돋군다. 그리고 주인공 조이의 러브스토리도 이런 흥미로운 요소중에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은 이 시리즈의 강점으로 작용하겠지만 한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이 시리즈가 처음에는 5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점이다. 첫 시리즈 출판 후 독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시리즈의 5편을 더 기획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늘어난 시리즈가 드라마나 소설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선례를 보지 못했기에 앞으로 이시리즈가 중심축을 잃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런 내 염려가 단순한 내 기우였음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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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맞추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김용택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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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보고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읽기 딱 안성맞춤일 것 같은 화사한 표지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펴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이 교사생활을 한 작가의 경험에 대한 짤막한 에세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창가의 토토같은 이야기를 조금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고 살짝 의외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책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기에 읽어나가는데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사실 이 책의 구성은 조금 특이했다. 저자 자신이 시인이기에 책의 곳곳과 이야기 중간중간에 시가 등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은 짤막한 글들이 그 사이에 존재하기도 했다. 시집과 에세이집 중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이 책에 대한 간략한 요약으로 적당할 것 같다.  

모든 글은 자신의 모든 경험에 대한 출력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란 자신이 삶을 살면서 느꼈던 감정, 기억에 대한 모든 것들을 총칭한다. 이 책 역시 작가의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 자신의 평생에 삶과 그 주변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서는 30년을 넘게 교직생활을 한 사람답게 그리고 평생을 향촌에 몸담은 사람답게, 그가 쓴 글에는 사람의 향기와 그 뒤에 숨겨진 흙내음이 났다. 그리고 작가가 시인이라는 점 때문이였을까? 유난히 촉촉한 그 글들이 마치 봄비처럼, 매마른 내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나 역시 시를 써본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강제에 의해 억지로 썼었다. 억지로 만든 각자의 개인문집에 강제로 써내야 했던 것은 꽤 고역이였고, 그렇게 담임선생님과 함께 했던 1년간은 내게 지옥으로 기억 되어 있기에 시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내게 무리였다. 후에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시의 맛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내게 조금 불편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의 내용이 내 예상과 달랐던 것에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현직 담임선생님이였던 사람의 이야기가 시와 함께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작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책을 읽는 독자도 자신의 경험안에서 책을 읽게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이런 내 기억과 감정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였다.  

하지만 작가의 제자들에 대한 애정어린 글을 읽으며, 내가 걱정한 불쾌감보다는 오히려 그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당돌함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게 되었다. 그리고 내 어린시절을 더듬어 보게 되었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능청맞은 어른이 되어 있지만 나에게도 저렇게 어린 시절이 있었으니 뭔가 공감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릴 때는 나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저렇게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을테지. 그러나 어른이 되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순간 어린시절의 재기발랄한 순수함을 잃어 버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피카소 역시 다른 모든 이들처럼 어린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 않던가?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한 아이들이 후에 이 책을 읽으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싶다.  

이 책은 작가가 평생을 몸담은 교직생활을 정리하며 그간에 쓴 글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새로 추가도 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책 전반에 약간의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그 쓸쓸한 기운이 묘하게 지금 우리를 찾아오고 있는 봄날이라는 따스한 분위기와 어울려서 신기했다. 아이들의 재기발랄한 글들 때문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의 촉촉한 시 때문이였던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섬진강 유역의 포근하고 흙내음 나는 삶이라는 것이 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글도 좋았지만 작가의 제자들에 짤막한 글들 역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았던 이 책이 이번 봄날 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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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극장>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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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동생이였다. 일문과에 다니는 동생이 이 책을 보더니 내가 엔도 슈사쿠책을 읽는다는게 의외라는 말을 했다. 나는 엔도 슈사쿠라는 사람이 유명한 작가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기에, 동생의 의문에 대해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책 날개에 있는 작가의 간단한 이력을 보고서야 동생이 왜 내가 엔도 슈사쿠의 책을 읽는것을 그리 신기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었다. 엔도 슈사쿠는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순문학으로 유명한 작가였기 때문이였다. 기독교라면 되도록 멀리 두고 싶어하는 내가 기독교 색채로 유명한 작가의 글을 읽는다고 했으니, 동생에게는 참으로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엔도 슈사쿠가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작가라는 배경지식과 선입견으로 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굉장히 실수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종교적 성향과는 거의 무관하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가 일본사람으로써 일본인의 전통적인 사상과 그들의 내면에 더 중점을 두고 집필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기존의 자신에 대한 딱딱한 순문학 작가의 이미지를 이 책에 실린 유머러스한 이야기들로 완화시키고 싶다고 집필의도를 밝혔다고 하니, 기존에 그의 작품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생각일랑은 접고 이 책을 대하기 바란다. 나는 다행히도(?) 그의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으니 이 책의 이야기 그 자체로 엔도 슈사쿠를 대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12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책의 왠지 옛스러운 분위기에서 살짝 엿볼 수 있듯이, 이 단편소설들의 배경은 정확하게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가지 소재들을 살펴볼 때 현재가 아니라 과거 30~40년전으로 느껴진다. 작가의 연배로 볼 때 이런 배경의 이야기들이 그에게는 더 잘 쓸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선택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담긴 단편들로서도 그 배경의 안에 있었기에 각각의 이야기들이 가진 맛을 더 잘 살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유머러스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배꼽을 잡게 하지만 이야기의 끝맛 어딘가에선 살짝 씁쓸함이 감돌기도 했다. 그 씁쓸함이 대체 뭘까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실한 과거의 향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현대인의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위로하고 그 시대를 공유하며 함께 한바탕 웃어주게 만드는 이야기들이기에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옳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또 엔도 슈사쿠의 대작가다운 면모가 엿보이는 깔끔한 글쏨씨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개중에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단편으로는 "우리들은 에디슨", "하지 말지어다", "동창회" 이 세가지로 꼽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엔도 슈사쿠에게 제일 감탄한 점은 생활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작가의 관찰력으로 발굴해내고 그것을 꼼꼼히 다듬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였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쳐버릴 사소한 소재들이 엔도 슈사쿠의 손을 빌어 재탄생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감동을 주었다. 이런것이 엔도 슈사쿠가 이 책을 통해 묻고 말하고자 했던 일본인의 내면에 담긴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문화를 살펴보면 헐리우드처럼 거대하지도 휘향찬란하지도 않지만, 곁에 있는 소재를 찾아 작지만 큰 힘을 내도록 재탄생 시키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내가 이 책에서 저 세가지의 단편을 선택한 것은 그 이야기들이 재밌고 가슴에 와 닿기도 했지만,  아주 사소한 소재들을 제법 묵직한 힘을 가진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에 대해 감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일본쪽 책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일본의 기존 작가들에게 느낀 점이 있다면 그들이 약간의 마초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이번에 유모아 극장을 통해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동안은 이런 살짝 불편한 느낌이 무엇인지 몰라 꽤 난감했다. 이제 그 감정의 정체를 알았으니 좀 더 편하게 일본작가들의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엔도 슈사쿠가 이미 나이가 지긋한 시기에 이 책을 집필했고, 굴곡많은 앞선 시대를 산 사람이기에 마초적인 느낌이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엔도 슈사쿠라는 작가가 내 마음에 들고 멋져보였던 것은 작가 자신이 보다 대중들 곁으로 편안히 다가가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였다. 이런 작가가 일본에 있었다는게 참 부러웠고, 엔도 슈사쿠를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어서 참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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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즌 파이어 세트 - 전2권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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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배경으로 펼쳐진 숲 한가운데 한 소년이 서 있다. 소년을 둘러싼 새하얀 눈이 너무 밝아서 배경이 어둠이라는 것은 찬찬히 책 표지를 살펴보고 난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숲은 눈으로 반사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년이 자신의 빛으로 숲을 밝히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홀로 서 있어 외로워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신비스러워 보이는 소년의 뒷모습에 호기심이 당겼다. 그래서 기꺼의 소년의 뒷모습을 따라 그가 이끄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겨울의 깊은 밤, 혼자 집을 지키던 더스티는 전화 한통을 받게 된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노라며 그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달라고 부탁하는 알 수 없는 소년의 전화. 더스티는 황당한 장난전화라 치부하고 넘기려 하지만, 소년에게서 2년전 갑작스레 사라진 오빠 조쉬의 흔적을 느끼게 되면서 더스티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년을 찾아 깊은 밤 숲속을 달려 나가게 되고 그렇게 소년과 더스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소년과 더스티는 서로 갈등하고 엇갈리지만 단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둘 모두 자기자신이 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였다. 소년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괴로워하며, 더스티는 사라져버린 오빠 조쉬의 뒷모습만을 쫒으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억누른다. 사실, 소년과 더스티는 자신들의 두려움이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인정해버리면 자신들이 진짜라고 믿는 모든 것들이 변해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두려움을 자신들의 속안에 감추어 안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그 고통들은 둘을 잇는 매게가 되어 주고 서로를 신뢰하게 만들어 준다. 

둘이 서로를 믿고 느끼게 되며 각자가 스스로의 모습을 어렴풋이 깨달아 갈수록, 둘을 둘러싼 상황은 긴박하게 변해간다. 소년을 뒤따르는 이상한 소문들과 위험한 사람들은 점점 소년과 더스티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그 고통들은 둘이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깨달아야 하는 두려운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과 더스티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고 한단계 성장을 하며 서로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들은 이제 각자의 미래를 향해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가야 했기에, 둘의 헤어짐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였으리라. 그들은 이미 서로에게 과거라는 꿈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처음에 소년은 마치 더스티의 자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스티가 스스로 깨닫지 않으려 애쓰고 있던 자기 내면의 이야기들을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소년은 더스티의 자아라기보다 더스티의 잃어버린 오빠 조쉬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만남부터 마지막 헤어짐까지 소년은 줄곧 더스티를 보호하며, 더스티와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마지막으로 둘이 헤어질 때 소년이 더스티에게 한 말, 그리고 그 직후에 조쉬가 나타났다는 정황들은 이런 내 심증에 무게를 더해 주었다. 소년은 어쩌면 자신이 죽으려고 시도한 순간 조쉬의 영혼과 만나고 그 순간부터 더스티와의 만남동안 그는 잠시 조쉬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한참을 그 여운에 잠겨있었다. 사실 나는 소년과 더스티가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랬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이 본디 지나간 것을 다시 되돌리거나 멈출 수 있는게 아니니까. 이제 막 그 순리를 배운 소년과 더스티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저 안타깝고 섭섭해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만날 수 없었기에 더 아름답고 기억에 남을 결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내 스스로의 설득도 내 안의 쓸쓸한 마음에는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그 쓸쓸한 이야기의 여운이 내안에 남아 빙빙 맴돌고 있다.  

이 책을 쓰는데 작가가 2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난 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사람의 가슴을 깊게 파고 들었다. 그동안 팀 보울러의 책들이 재미있다는 평을 듣긴 했지만, 성장소설이라는 장르에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그의 이야기와 만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였다. 그와의 만남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재밌었고, 감동적이였으며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렇게 기분좋고 감동스러운 첫 만남을 싫어할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 그래서 앞으로 되도록 빠른 시간내에 팀 보울러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만날 그의 이야기를 기약하며 이 이야기의 여운을 내안에 담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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