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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
김용진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1월
평점 :
위키리크스가 처음 세상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세계는 그야말로 벌집을 마구 쑤셔놓은 것 같았다. 대다수의 전세계 국민들은 이제까지 각 국가들이 숨겨온 정보들에 엄청나게 놀랐고, 분노했고, 재밌어하는 둥, 처한 환경과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의 반응을 내보였다. 그리고 곧 이 사태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비밀로 한 정보들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것으로 확대되어 갔다. 당시 내가 자주 다니던 한 커뮤니티에서도 이 주제를 가지고 여러 대화와 토론들이 오갔었다. 과연 그 정보들의 공개가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하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과 입장들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당시 그 커뮤니티에서 읽었던 글 중에서 내 시선을 끌었던 글이 있었다. 시간이 흘렀기에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였다. 그들이 공개하지 않는 정보라는 것이 대중들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의 기준이 그들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보자체가 그 비밀을 취급하는 계층의 이익과 비리를 유지하는데만 사용되고 대중들에겐 오히려 해를 끼칠수도 있다는 것이였다. 나는 이 의견에는 공감했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국민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으니 최소한 삼분의 일정도는 그 비밀을 통해서 나라를 위한 일들을 행하는데 쓰고자 노력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두어도 그 고양이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최소한 반토막정도는 남겨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내 희망이 얼마나 헛된 것이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김어준 총수가 뉴욕 타임즈라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이 책의 필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말을 했다. 뭐, 이미 다 짐작했던 내용인데, 새삼스러울 것이 있나요? 그 말은 맞았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이 엄청 새롭고 충격적이진 않다. 다만 모두가 짐작했던 그대로의 내용이 훨씬 더 적나라하고 낯뜨겁고 세밀하게 적혀있어서 복장을 터뜨리게 만든다. 그동안 온갖정황들을 통해서 바람핀다고 의심은 했지만, 그 장면을 내가 직접 목격하다 못해, 고생 끝에 갓 마련한 집까지 통째로 저당 잡혀 가면서까지 불륜상대에게 돈을 구해다 바쳤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이 정권과, 그 이전의 대부분의 정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그러했다는 정황들이 위키리크스와 그간의 한국 외교문서들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지니 이 책을 읽는 내내 그저 속만 타들어 갔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우리나라의 머저리같은 외교수준도 아니고,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미국에 대한민국을 가져다 받친 MB정권도 아니였다. 바로 우리나라 곳곳에 포진한 친미파였다. 그동안 내가 제일 혐오했던 것 중에 하나는 친일파였다. 나라를 팔아먹고 그 댓가로 아직도 잘먹고 잘살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하고 그런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을 옹호하는 그들이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친일성향의 인간들만큼이나 혐오스러운 인간들이 또 있었음을 새삼 일깨워줬다. 솔직히 말해서 친미성향의 사람들이 답답하긴 했지만 그다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미국과의 마찰이 생길 때마다 거리로 뛰쳐나와서 시위를 하는 노인분들을 보면서도 그분들이 겪은 시대를 생각하면 그럴수도 있다고 일면 수긍하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친일성향의 사람들의 전적이 워낙 화려하기도 했고. 그런데 아뿔사!
이 책과 위키리크스에 등장하는 일명 한국인 '정보원'들은 우리나라의 정보를 내 상상을 뛰어넘은 수준으로 미국으로 물어다 넘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은 한국의 이익을 위해서 더 미국의 큰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그러한 행동을 했다고 스스로 정당화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일파들이 과거 일본에 붙어서 우리나라를 빼먹을 때 그들이 진정 우리나라를 위해서 그러한 행동을 했는가?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을 뿐이다. 친미파에 속한 그 정보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미국에 가져다 받친 정보를 통해서 미국에서 떨어지는 콩고물들로 자신을 치장하고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려 할 뿐이다. 그러니 정권교체를 한다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반세기 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런 친미주의자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사상을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한미간의 굴욕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는 결코 끊어지지 않으리라.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은 너무나 부끄럽고 불쾌하고 괴롭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흥미롭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힘들었다. 게다가 책의 끝으로 갈수록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간의 비밀들이란, 정말이지 너무 분하고 화가났다. 위키리크스에서 폭로된 정보들로 알게된 그들의 모습은 기만 그 자체였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과 비리를 유지하는데만 극비정보를 사용했을 뿐, 그 중대사 안에서 국민들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그럴듯한 말들로 현혹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왕지사 드러나서 구린내를 폴폴 풍기고 있는 거, 이번 위키리크스 사태를 빌어서 해결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민들 몰래 자신들의 정권유지에만 전전긍긍하면서 나라의 이익을 팔아먹는 비밀외교만 하지말고, 국민들이 일을 맡긴 이상 제발 국민들에게 공개할 것은 공개하고 동의를 구할 것은 충분한 여론수렴후에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주변나라들 눈치만 보고 앉아서 바들바들 떨지말고 할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하자는 말이다. 이런게 민주주의가 아닌가! 이렇게 하지 않을바에야 뭣하러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을 뽑아서 국민들이 세금을 쥐어주고, 그들에게 국익을 위한 비밀을 영유하고 유지할 권력를 준단 말인가.
분명 지금도 어딘가에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피해 몰래 나라의 이익을 팔아먹고 자신의 몸보신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눈과 귀와 코는 열려있다. 부디 국민들은 나라의 정책들을 결정하는 분들의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걸 깨달았음 좋겠다. 그리고 영원한 비밀이 없다는 것도. 이 책과 위키리크스를 보라. 정말 영원한 비밀은 없지 않은가? 나는 이 시대를 관통하는 책중에 하나로 이 책을 꼽고 싶다. 진심으로 생각하건데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쉽고 명료하게 일반적인 언어로 쓰여있으니, 신문만 읽을 정도가 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어렵게 느껴지는 건 익숙하지 않은 직함들과 여러부서들의 명칭인데, 그 까짓것 쯤이야 몇장 좀 지나다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들 용기를 갖고 도전해보라. 국가간의 비밀이란 것의 참모습이 그대와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