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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책의 배경인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겐 사막저편에 존재하는 너무나 막연한 나라니까. 그저 가끔 TV를 통해 스치듯 보게 되는 것이 전부인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이미지의 나라라는 것 정도? 그리고 대부분의 중동국가들이 그러하듯 종교적인 이유로 여인들이 온몸을 천으로 감고 다녀야 하는 답답함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게 내가 아는 이란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이였다. 그런데 이 책으로 인해 이란이라는 나라는 불쑥 내 옆으로 다가왔고,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돋구었다.  

이 책의 배경은 1970년대로, 구소냉전시대의 영향으로 여러가지 사상들이 부딪히던 혼란스러운 시절로 사랑스럽지만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그 시절의 우리네를 보는 것과 같은 이란의 고단한 역사와 삶은 이 책의 이야기가 사막 저편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벌어지는 이웃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비밀경찰 시라크에게 쫒기는 그 시대의 신념가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모습들과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서도 계속되는 사람들에 사랑과 질곡한 인생살이는 어찌나 우리 부모님들의 삶과 닮아 있던지!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 읽자마자 당장 이란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고, 내가 가진 이란에 대한 지식들이 얼마나 알량하고 형편없는 것들이였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내가 그랬듯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이란의 모습과 많이 다른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의 미덕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책은 아름답고 애닮으며 재미있기까지 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17살의 “나”라는 사람이다. "나"의 17살이라는 나이는 모호하다.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년도 아닌, 사춘기라는 터널 끝에 위치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이 아니기에 부모님의 의견을 거스르지 못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진학해야 했으며, 소년이 아니기에 눈떠버린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으로 가슴 아파해야 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혼란스러운 자아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나” 파샤의 이야기는 이렇게 상징적으로 당시 이란에 모습과 맞물려 결코 가볍지 않은 이란의 역사와 그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쉽게 찬찬히 풀어나가고 있다.

"나" 파샤는 너무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마치 우리 옆집에 사는 평범한 17살처럼 말이다. 다만 사는 곳이 이란이라는 것과 나라에 대해 입을 잘못 놀이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며칠 뒤에 불구가 되어 나타나는 시절에 산다는 것이 우리 옆집의 아이와 다를 뿐이였다. 아, 우리나라의 인권에 대한 인식도 이 이야기의 배경과 같은 1970년대로 요사이 회귀하려 하고 있지? 어쩌면 조만간 이 책에 나오는 1970년대 이란과 너무나 닮았던 우리나라 독재권력의 모습과 그 편집증적인 상황들을 다시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면 이 책의 내용이 더 절실하게 와닿겠지. 물론 절대 그런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쨋던지간에 이런 평범한 소년 파샤가 첫사랑에 빠져버렸는데, 이름은 자리요 약혼자가 있는 아름다운 처녀였다. 17살 혈기왕성한 청년이라면 그녀의 약혼자와 그녀의 집안에게 파샤의 절친한 친구인 아메드가 그랬던 것처럼 한번 덤벼들어 볼 법도 한데 그럴수조차 없었다. 하필이면 그녀의 약혼자가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는 멘토인 닥터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말 못할 사랑에 빠진 파샤의 가슴은 점점 썩어 문드러져만 간다. 그런데 이런 파샤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오니 바로 그 멘토인 닥터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다가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닥터의 부재로 사랑이 싹트던 자리와 파샤에게 크나큰 충격과 상처로 다가오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만든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변명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꼭 이루어져야만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파샤와 자리의 사랑이 이 책의 결말 이후에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슬픈 첫사랑의 이야기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둘의 가슴에 담긴 사랑이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기에, 별을 닮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다. 

책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낯설었던 이란이라는 나라를 내 옆으로 찰싹 끌어다 놓았으니까. 사실 그동안 은근히 중동 출신쪽의 작가들에 책을 기피해 왔는데, 그것은 내가 우리나라 소설을 피했던 이유와 같았다. 지나온 세월이, 그리고 지금 지나가고 있는 시간이 참 슬프고 힘들기 때문이였다. 현실의 삶에서 잠깐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는데, 책에서조차 현실의 각박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소설에 대한 부정적인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거부감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었고, 이제는 중동쪽의 이야기에 대해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읽게 된 테헤란의 지붕은 내 첫번째 중동소설로써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다. 부디 앞으로도 이 책의 작가 마보드 세라지의 책을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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