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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동생이였다. 일문과에 다니는 동생이 이 책을 보더니 내가 엔도 슈사쿠책을 읽는다는게 의외라는 말을 했다. 나는 엔도 슈사쿠라는 사람이 유명한 작가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기에, 동생의 의문에 대해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책 날개에 있는 작가의 간단한 이력을 보고서야 동생이 왜 내가 엔도 슈사쿠의 책을 읽는것을 그리 신기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었다. 엔도 슈사쿠는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순문학으로 유명한 작가였기 때문이였다. 기독교라면 되도록 멀리 두고 싶어하는 내가 기독교 색채로 유명한 작가의 글을 읽는다고 했으니, 동생에게는 참으로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엔도 슈사쿠가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작가라는 배경지식과 선입견으로 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굉장히 실수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종교적 성향과는 거의 무관하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가 일본사람으로써 일본인의 전통적인 사상과 그들의 내면에 더 중점을 두고 집필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기존의 자신에 대한 딱딱한 순문학 작가의 이미지를 이 책에 실린 유머러스한 이야기들로 완화시키고 싶다고 집필의도를 밝혔다고 하니, 기존에 그의 작품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생각일랑은 접고 이 책을 대하기 바란다. 나는 다행히도(?) 그의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으니 이 책의 이야기 그 자체로 엔도 슈사쿠를 대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12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책의 왠지 옛스러운 분위기에서 살짝 엿볼 수 있듯이, 이 단편소설들의 배경은 정확하게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가지 소재들을 살펴볼 때 현재가 아니라 과거 30~40년전으로 느껴진다. 작가의 연배로 볼 때 이런 배경의 이야기들이 그에게는 더 잘 쓸 수 있는 이야기였기에 선택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담긴 단편들로서도 그 배경의 안에 있었기에 각각의 이야기들이 가진 맛을 더 잘 살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이 책에서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유머러스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배꼽을 잡게 하지만 이야기의 끝맛 어딘가에선 살짝 씁쓸함이 감돌기도 했다. 그 씁쓸함이 대체 뭘까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실한 과거의 향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현대인의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위로하고 그 시대를 공유하며 함께 한바탕 웃어주게 만드는 이야기들이기에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옳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또 엔도 슈사쿠의 대작가다운 면모가 엿보이는 깔끔한 글쏨씨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개중에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단편으로는 "우리들은 에디슨", "하지 말지어다", "동창회" 이 세가지로 꼽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엔도 슈사쿠에게 제일 감탄한 점은 생활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작가의 관찰력으로 발굴해내고 그것을 꼼꼼히 다듬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였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쳐버릴 사소한 소재들이 엔도 슈사쿠의 손을 빌어 재탄생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감동을 주었다. 이런것이 엔도 슈사쿠가 이 책을 통해 묻고 말하고자 했던 일본인의 내면에 담긴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문화를 살펴보면 헐리우드처럼 거대하지도 휘향찬란하지도 않지만, 곁에 있는 소재를 찾아 작지만 큰 힘을 내도록 재탄생 시키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내가 이 책에서 저 세가지의 단편을 선택한 것은 그 이야기들이 재밌고 가슴에 와 닿기도 했지만,  아주 사소한 소재들을 제법 묵직한 힘을 가진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에 대해 감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일본쪽 책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일본의 기존 작가들에게 느낀 점이 있다면 그들이 약간의 마초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이번에 유모아 극장을 통해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동안은 이런 살짝 불편한 느낌이 무엇인지 몰라 꽤 난감했다. 이제 그 감정의 정체를 알았으니 좀 더 편하게 일본작가들의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엔도 슈사쿠가 이미 나이가 지긋한 시기에 이 책을 집필했고, 굴곡많은 앞선 시대를 산 사람이기에 마초적인 느낌이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엔도 슈사쿠라는 작가가 내 마음에 들고 멋져보였던 것은 작가 자신이 보다 대중들 곁으로 편안히 다가가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였다. 이런 작가가 일본에 있었다는게 참 부러웠고, 엔도 슈사쿠를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어서 참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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