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퍼온글] [영화] 여인의 향기




맹인 퇴역장교 프랭크 슬레드는 철학과 시를 아는 지적인 사람이지만 약간 괴팍한 면모를 갖고 있다. 함께 사는 조카들은 프랭크를 무서워하고, 평소 프랭크는 항상 혼자다.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이 돌아오고 프랭크의 가족은 그를 빼고는 모두 여행을 떠난다. 프랭크는 가족들에게 말도 하지 않고 훌쩍 뉴욕으로 떠나는데, 추수감사절동안 프랭크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맡았던 가난한 모범생 찰리는 그 엉뚱한 여행의 동반자가 된다.
그러나 프랭크의 여행의 목적은 자살. 그는 인생의 무의미함을 이기지 못하여 죽으러 떠난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그의 여행길에는 호화로운 만찬과 고급스러운 술, 여자가 있다. 찰리는 프랭크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영화로 알파치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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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런두런,,새벽의 방랑자가 되어 버렸다..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알라딘 서재 돌아다니는 재미는 쏠쏠하다..나와는 다르게 그 소설을 본 사람들,,나와 비슷하게 봤다는 느낌들,,처음 들어본 소설인데 읽게 만드는 설득력의 글들,,오래전부터 잊고 있던 소설을 상기시켜주는 글들,,보다 다양한 소설과 느낌들이 이 알라딘 마을엔 넘쳐난다..내가 이 소설을 아직도 몰랐다니,,하고 놀라는 것도 잠시 이 소설은 정말 읽어 볼만하겠구나 하는 느낌들이 생긴다..영화 또한 내가 본 영화에 대해 남들이 가졌던 생각들을 보며 내가 놓친 부분들을 챙길수도 있다..그리고 내가 아직 못본 영화를 보고 싶게끔 써주시는 분들에겐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호밀밭의 파수꾼인가,,그 소설을 봤을때 영화를 싫어하는 주인공이 난 무척이나 이해가 안됐고,,또한 일부 일본 소설이나 소설에서,,tv보는걸 싫어하는 걸 드러내는 장면은 항시 이해가 안됐다..그런데,,내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생각하면,,사람들은 다양하는 것이다..사회시간에 한두번쯤은 들었던,,사람들마다의 다양성,,그 다양성으로 사회는 더욱 즐거울수 있다는거,,,물론 보편적인 정서라는게 있어,,무조건적으로 튈수 만은 없겠지만,,나와는 다른 별개의 사람들이 존재하고,,그 생각들을 흩뿌려 사회는 발전하고 양분화도 가능한 것이다..없어져야 할 편견과 흑백논리는 고사하고,,그저 앞일 챙기기 바쁜 현대인의 삻은 그래서 더욱 삶에 대해 생각하고,,이해하려는 포옹력 또한 갖춰야 하는 것이다.무조건적인 반응속에 냉랭한 기운만이 감도는,,골목마다의 삶은 또 이어진다..구렁이 담넘어가듯 현실을 살아갈때도 있고,,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태엽감는 새가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하루를 깨우듯,,반복적인 일상에 지쳐 쉬고 싶을 때가 많다..숙면이라는거,,휴식이라는거,,그래서 사람들은 그 시간을 좋아한다..나 또한 지금 가장 좋아하는걸 말해보라면,,자는거,,먹는거,,쉬는거,,학교 파하는거,,내 자유시간을 가지는거,,라고 말할 정도로 온전한 쉼의 세계를 좋아한다..한때 느리게 사는법,,아침형 인간,,선물같은 삶을 사는거,,폰더씨처럼 위대한 삶을 사는거,,고래를 칭찬하듯 칭찬하는 삶을 사는거,,치즈를 옮기는 쥐의 노련함처럼,,설득의 심리학처럼 설득에 안 넘어가는거,,살아있는 동안 해 봐야 할 49가지를 해 보는거,,3분동안의 할수 있는 삶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거,,이런 삶을 표현한 책들을 보면서 감응했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그러나 어찌어찌 하루가 지나고,,그 다음,,그다음이 흐르면,,금새 난 제자리로 돌아온다..작심삼일이 내 특기이듯,,그렇게 삶의 모습에 갑갑할 때가 많다..박지윤의 하늘색 꿈을 들으며 그 가사에 상당히 공감했다..세상사에 시달려가며 자꾸 흐려지는 내 눈을 보면 이미 지나버린 나의 어린시절 꿈이 생각나..이 부분,,눈이 흐려지는거,,점점 나도 이 세상사라는걸 느끼게 되는거 같다..이영애의 소설에서 이영애가 읽은 책중 무소유라는 책을 언급한게 있는데..나 또한 그 책을 보며,,공수레 공수거인 삶에서 왜 이리 사람들은 소유하려는 집착과 소유하려는 욕심이 가득한지 많은 생각을 했었다..오히려 없으면 편한 것들을 가슴속에 담아서 그 기억이나 편린들이 가슴을 찌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때론 물질적인게 고통이 되듯,,뭐 하나를 소유하기 위해선 또 그만큼의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된것이다..그러나 세상은 정말 가진자의 세상이다..예를 들어 휴대폰이 있고,,컴퓨터가 있고,,돈이 있고,,권력이 있고,,지식이 있고,,유머가 있고,,모든게 가득차 있어야 세상을 살수 있으니,,이 모순덩어리의 세상은 참 아이러니의 천국이다..나도 때론 동심으로 돌아가듯 아무것도 모르고 행동하는 어린이의 모습으로 살고 싶을때가 있다..그리고 자연속에서 공기를 마시고,,명상을 하고,,잡생각을 떨쳐버리는 자연인이 되보고도 싶다...그러나 현실에 도태된 이런 생각들은 그저 생각일뿐,,이뤄지기가 힘들다..난 아직 겁쟁이 이고,,세상물정 모르는 까마득한 미성숙의 청년인것이다..거진 비가 내리고,,삶이 무지개처럼 빛나는,,그런 흐린뒤 맑음의 정신으로 살고 싶다..많은 사람들이 거듭 말하는 좋은 일이 있으면,,나쁜일도,, 비온뒤에 땅이 굳고,,흐른뒤엔 날이 개고,,햇빛이 비치는 그런 삶속에,,또 다시 내 잡생각들은 계속된다..새벽이 되니 글에 센티멘탈 해진것 같다..그래도 글을 남기는건 내 생각을 남기는 것이기에 언제나 쓸때마다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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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행복한여행자 > 사랑의 진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은 분명 소설인데 철학에세이 같기도 하고 심리학 같기도 하다. 스토리만 생각한다면 진부하기 그지 없는 남녀간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부터 친밀해짐, 그리고 배신에 의한 이별 정도이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각각의 사랑의 흐름을 따라 담담하게 그러나 매우 통찰력있게 사랑을 서술하고 있다.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유머스러워 실소하듯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책이었다. 매우 가볍게 읽히기도 하지만 지적인 긴장감으로 깊이있는 사유또한 할 수 있는 매력있는 책이다.

작가의 나이 25살에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젊음의 열정과 유머와 다소 시니컬한 철학적 물음들이 그의 천재성을 뒷받침 하고 있다.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듯 사랑이란 감정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신의 깜짝 쇼 처럼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통제가 불능한 일이다 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렇듯 사랑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아이러니한 모든 감성과 이성을 샅샅이 살펴내는 그리고 사랑은 또다시 지속되는 모순임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이책은 연애중인 사람에겐 무릎을 치면서 읽게될 많은 공감의 부분이 존재할 것이다. 철학의 사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쾌한 독서가 될것이다. 오래간만에 즐거운 책읽기가 되었으며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게 되는 또 한권의 책이 될것 같다. 사랑에 대해 정확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경험에 의한 적당한 지혜는 얻게 되리라 생각되어 진다. 삶이 그렇듯 사랑은 또다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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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내가없는 이 안 > 경고! 지금 웃는 게 다가 아닙니다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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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뭐랄까...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한마디로 이렇다. 대학 다닐 때 3년 동안 농촌활동을 다녀오면서 매번 느끼던 나의 누추함이 더욱 남루해진 옷을 껴입고 패션쇼라도 하듯 멋들어지게 걸어오는 걸 봐야 하는 난처함이다. 띠용,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지면서, 네가 도대체 뭐라고 그렇게 고개 쳐들고 있나, 하는 자책하는 심정이 든다는 거다. 그런데 그 움츠러들고만 싶은 느낌이 들어 난처해하고 있는 내 앞엔 진짜로 웃기는 리마리오 같은 인물이 더듬이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어쩌랴, 웃었다 정신 차렸다, 다시 참을 수 없는 웃음을 뿜어야 하는, 이 해괴한 느낌을 마구 간질이듯 주입하는 소설이다, 이거다.

땅을 파봐라, 그곳에 네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을 테니... 뭐 온통 시멘트 천진데 어떻게 하냐고? 아 그럼 철물점서 망치라도 사서 깨보라 이 말이다, 그 밑에 뭐가 있겠냐고? 이런 답답한 친구 같으니...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

아니 이 뜬금없는 뒤통수 때리는 소리는 뭔가? 갑자기 작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옴짝달싹못하고 선 내가 망치를 들고 있는 모양이 아닌가. 작가는 정말 땅이라도 파서 이런 씨감자 같은 글들을 틔워내는 모양이다. 현실을 등돌리지도 않으면서 머릿속에 온통 본드를 불어넣어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몽롱해 있는 듯한 그의 이 소설들은 그 정체가 대단히 궁금하다. 그의 소설에는 3류 매춘의 선두주자인 보도방을 운영하는 새파랗게 젊은 놈이 나오고, 이리저리 모아놓은 아이들이 코묻혀서 벌어오는 돈을 갈취해 상납하는 앵벌이들이 나오고, 이제 좀 제집처럼 드나들던 감옥살이에서 벗어나보려다가 우연히 의도하지도 않은 본드를 다시 불게 된 잡범 출신이 나오고, 이 죄많은 세상 주님만 섬기면 된다는 신앙으로 똘똘 뭉친 최순덕이가 나오고, 기가 막히게도 검은 소에게서 정자를 받아 아이를 낳은 감자 같은 여자가 나온다.

도대체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책의 앞날개를 본다.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이 작가는 이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인생들을 어디서 다 긁어왔을까 싶다. 문체를 말하자면, 이 역시 소설이라는 테두리를 뛰어넘고 메롱, 혀를 쑥 내밀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액자소설의 형식은 너무 클래식한 편이라 말할 계제도 아니고, 랩 형식으로 후렴구까지 넣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노래를 하는 것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형식은 물론, 경찰서에 끌려서 취조실에서 작성하는 듯한 형식, 경건한 성경과 같은 편집과 문어체 옷을 입혀 신앙의 맹목성을 꼬집는 형식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발칙하고도 다양한 형식들은, 마치 처음 보는 열대지방 과일을 보며 사먹을까 말까 생각하게 하는 느낌마저 준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거다. 나처럼 별로 웃지 않는 사람이라도 웃을 수 있게 하는 리마리오 같은 기이한 이 소설의 유머 뒤에,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 탄산음료 마실 때 톡하고 쏘는 것만 있던가. 체면을 생각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그 이후의 꺼억 하고 올라오는 트림이 민망하기만 한데, 꼭 그짝이다. 단편 <버니>에서 여자를 사는 남자들의 종류를 이야기할 때 남자도 아닌 내가, 성매매를 해본 적도 없는 내가, 그 참을 수 없는 트림으로 눈물이 다 났다. 거기 그런 남자들이 나온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남자들은 별말 없이 여자와 우직하게 자고 일어나는데, 꼭 배운 놈들 가진 놈들이 별걸 다 캐묻는단다. 혹은 기자랍시고, 작가랍시고, 감독이랍시고, 그들의 아픔을 쪽쪽 빼먹어 자기의 양분으로 채우고 나면 조용히도 아니고 요란스럽게도 여자를 산단다. 얼마나 기똥찬 상품을 내놓으려고 그럴까 싶은 이맛살 속에 괜히 신맛이 올라오고 가슴이 아파 죽겠는 거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온 길에는 그런 기막힌 과오가 없는지 슬그머니 뒤돌아보고 싶은 거다. 네가 뭘 얘기해주고 싶다고 농촌활동 가서 어깨에 힘을 주나 말이다.

리뷰다운 글이 아니라서 마지막으로 덧칠을 해보려 한다. 이기호의 소설은, 푸하하 웃고 나서 돌아서려는데 돌연 가슴속 서늘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서늘함의 정체가 뭔지 아는가. 바로 내 속에 숨겨둔 위선을 소라속 파먹듯 쏙 빼내어 조롱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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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내가없는 이 안 > 죽음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삶의 욕구
명랑
천운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명랑>을 표제작으로 내세운 이유가 무얼까, 잠시 생각했다. 이전에 발표한 작품집의 성격에서 크게 차별되지 않는 단편을 굳이 고른다면 <명랑>일 것이라 짐작이 되지만 이것도 사실 내가 읽은 <바늘>에 한해서다. 나는 그의 첫 번째 단편집 중 표제작인 <바늘>만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읽었으므로 다들 강렬한 감각을 모체로 한다는 그의 이전 작품들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바늘>이란 단편 하나만 읽고도 나는 작가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그 동아일보의 소설을 읽은 후로 내게 소설의 연이 없었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좀 불행한 일이었다...

나는 하얀 가루약 명랑을 수시로 입에 쏟아붓는 할머니와 독기와 순한 천성을 나란히 품은 백수 손녀, 그리고 뼈빠지게 일하면서 간헐적인 애증을 뿜어대던 어머니의 이야기 <명랑>이 오히려 다른 작품들보다 느리게 내 속에 걸어들어왔다. 작가가 유독 사람의 '몸'에 집착을 한다는 말을 어느 인터뷰에서 본 기억이 있지만, 나는 오히려 물컹하게 살아 있는 '몸'보다는 '삶과 죽음'을 집요하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목소리에 더 탐이 났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죽음으로 걸어가는 인물들을 설정하고도 그 안에서 미치도록 벌떡이는 삶의 의욕을 이야기한다. <그림자 상자>에서는 자기만 쏙 빼놓고 이민을 가버린 가족의 냉정한 꼬리를 밟고 서서 죽도록 식탐을 하는 한 여자가 나온다. 그녀의 살은 포화상태로 쪄 있어 그녀는 아침마다 코르셋 같은 강력한 속옷으로 마치 자살의 욕구와 같은 마구 비어져 나온 살집들을 꼭꼭 집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매일같이 꿈 속에서는 예리한 칼날을 자신의 살 속에 꽂아넣어야 한다는 당위에 시달리며 실제로 자신의 배꼽을 지워줄 칼을 찾아나선다. 굳이 배꼽을 지워야 하는 건, 출생으로 필연되어진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일 터.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녀가 칼을 꽂아줄 남자를 물색하여 간곡히 부탁하길 "나는 당신이 내게 찌르고 떠나면 구조대에 전화를 할 거야.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거든."이라고 몇 차례나 언급한다.

젖꼭지 모양의 멍게 돌기를 오도독 씹어 새곰한 맛을 먹는 여자들의 이야기 <멍게 뒷맛>도 죽음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삶의 의욕을 읽어낼 수 있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옆집 사는 아름다운 여자는 한차례 푸닥거리를 당하고 나면 어김없이 바다냄새를 멍게 속에 담아서 들고 들어온다. 하지만 그 멍게를 나눠먹는 '나'라는 인물은 그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에 우악스런 남편의 주먹이 날아가길 간절히 원하는 추악한 질투의 화신일 뿐이다. 그녀 남편의 더러운 욕구와 동질일 듯싶은 '나'의 미칠 것 같은 질투가 그녀를 실상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에도, 그녀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멍게를 함께 나눠먹으며 말한다. "멍게를 먹으면 살고 싶어져요,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급기야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늙은 할머니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살던 아버지의 너절하지만 끈질긴 삶의 의욕이 등장한다. '나'는 마누라 없이 늙은 어머니와 조용히 나이를 먹던 남자의 아들이다. 어느 날 할머니의 죽음을 맞은 아버지는, 흰머리 뽑아주던 마누라 죽은 늙은 남편처럼 헐렁한 추리닝 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데 한밤중에 할머니 묘를 휘적거리며 찾아가는 아버지의 뒤를 밟으며 혹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던 아들은 아버지의 울부짖음의 실체를 보고는 헛웃음을 짓는다. 아버지의 절규는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집착. "귀신님들, 나와서 내 관절염 좀 가져가시오. 너무 아파. 난 죽기 싫어요, 엄마. 나 데려가지 마요." 쇼핑중독으로 그 과잉된 집착의 물꼬를 트던 아버지는 드디어 새로운 반쪽을 찾으면서 그토록 갈망하던 삶 속에 안정된 착지를 한다.

<모퉁이>와 <세 번째 유방>은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두 사람의 삶으로 가지를 친 연작인 것 같다. 여기서도 나는 묘한 빛을 발하는 생명에 대한 집착을 느꼈다. <모퉁이>에서는 엄마 뱃속의 동생이 칠삭둥이로 죽고 만다. 할머니의 미신 속에서 그 근거는 '내'가 태중에 새끼를 갖은 고양이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엄마 뱃속의 동생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던 혼잣말을 기어이 현실화해낸 것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딛고 과거의 막을 접고 새로운 막을 펼치는 모양새가 아닌가. 더구나 그 어린시절의 '나'는 성숙한 여인이 되어 실연을 당했을 즈음에도, 내 무릎의 핏자국을 핥아주는 개를 키우게 되면서 죽음의 욕구가 피어오르던 음습한 다락방을 떠나게 된다.

<세 번째 유방>에서는 어린시절의 '내'게 아낌없이 젖무덤을 넘겨주어 놀이터 삼게 한 할머니의 죽음과 새로운 애인을 만나 떠나려는 여자의 죽음 앞에 선, 한 남자가 나온다. 그는 얼토당토않게도 그 둘의 죽음 앞에서 새롭게 들어설 삶을 탐한다. 봉긋 솟은 젖꼭지를 마치 다른 삶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인식하는 그 남자는 자신이 칼을 댄 여자의 죽음 앞에서도 "그런데 다음 문은 어디로 통하는 문인 거지?" 하고 묻는다.

사실 이야기를 좀더 하고 싶지만, 접을란다. 어차피 나는 내 눈에 들어온 부분만 집중해서 실타래를 푸는 것이라 작가의 모든 단편 이야기를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 하지만 나머지 단편들, <늑대가 왔다> <입김> 등의 단편도 너무 훌륭하다. 오히려 표제작이 다른 단편들에 비해 그 빛이 약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늑대가 왔다>에서는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천덕꾸러기 소녀가 자신의 퍼즐 속에서 살아 일어선 늑대를 쫓아 죽음을 맞고, 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마지막 장면은 질투가 날 정도로 고혹적이다. 또한 냉정하기 짝이 없는 생(生)이란 놈에게 밀리다 밀리다 결국 추락하고 마는 한 추레한 남자의 이야기 <입김>도 이 정도의 코멘트라도 하지 않으면 섭섭할 정도. 

작가 천운영의 단편집은 처음 접했지만, 눈밭의 선혈처럼 다가왔다. 표현이 잔혹한가, 그렇다면 이보다 선명하고 강렬한 표현을 찾지 못해 조금 촌스럽지만 굳이 들이대고야 마는 내 표현력의 한계를 안타까워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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