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선인장 > 진심으로 묻고, 간절히 기다리면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말아톤>

#1.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다. 슬픈가? 기쁜가? 화가 나는가? 겁이 나는가? 초원이처럼 감정을 나타내는 카드 중 한 장을 골라야 한다면, 나 역시 머뭇거릴 테다. 슬프기도 할 테고, 화가 나기도 할 테고, 겁이 나기도 할 터이니. 그러니 애초에 감정에 말을 붙이고, 어떤 감정이라고 결정하고, 그 감정을 표현하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래서 초원이는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고, 말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라고. 거대한 벽 앞에서 쏟아지는 장대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끝내 하지 않았던 말을,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후, 겨우 뱉어낸다.
어린 초원의 몸으로 쏟아지는 장대비, 운동장 한 켠에서 손바닥으로 받아내는 빗방울, 그리고 병원 앞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조금씩 다른 초원이 감정의 결들이다. 나는 그저, 초원이 몸으로 쏟아지는 빗방울이 아플까, 시원할까, 따뜻할까, 생각하며 슬프고, 기쁘고, 화가 나고, 겁이 나는 초원이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하여 자폐아가 아니라, 자개아라는 조승우의 표현은 그럴 듯 하다. 초원이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두어준 상투적인 틀속에 자신의 감정을 규정하지 않을 뿐이니.

# 2. 초원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초코파이로 어린 초원이를 유인하여 정상에 오른 엄마는 초원이의 가슴에 손을 대로 말한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고. 초원이 가슴도, 엄마 가슴도, 콩닥콩닥 뛴다고. 그러니 너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아찔하게 높은 산 정상 위에서 어린 초원이와 엄마가 도시를 내려다 볼 때, 나는 처음으로 꼬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운동장 백 바퀴를 다 뛴 초원이 코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다 댈 때, 나는 처음으로 초원이가 부러웠다.
콩닥콩닥 가슴이 뛰어던 때가 언제였나? 내 심장의 떨림으로 온 몸으로 느꼈던 때가 도대체 언제였나?
뛰는 게 좋으냐는 엄마의 질문에, 엄마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좋다고 말했던 초원이는, 운동장 백 바퀴를 뛰고 난 후, 몸이 하는 말을 듣는다.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그 심장의 떨림 앞에서 좋으니, 싫으니,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연 좋아할까, 싫어할까, 궁금해 하는 건 더더욱 의미가 없다.
그러니 초원이는 우리와 다르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의 의미를 알아버린 사람이니까. 자신의 몸과 자신의 마음이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있으니까.

# 3. 엄마가 동물원에서 내 손 놨지? 그래서 초원이 잃어버렸지?
사람이 사람을 만나 어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관계가 언젠가 어떻게 끝나리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처음 손을 잡는 순간, 언젠가 손을 놓아야 하는 상황이 오리라 미리 염려한다. 손을 놓아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중요한 건 손을 놓는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왜 손을 놓느냐는 이유일 텐데, 나는 끝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손을 놓으면, 나는 초원이처럼 달릴 수 있을 텐데, 나는 어리광만 부리고 있다가, 끝내 상대가 손을 놓게 만든다. 달려나가는 상대의 손을 먼저 놓아주면 좋을텐데, 나는 끝까지 그의 손을 붙들고 있다가, 결국은 그를 버리고 만다.
엄마가 자신을 손을 놓을까 두려워 달리기를 시작했을지도 모를 초원이는, 달리기 위해 엄마의 손을 먼저 놓는다. 그리고 달리는 도중에 수많은 사람들의 손과 만난다. 잠깐의 스침이 전부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손들. 저마다 다른 감촉과 다른 사연을 담고 있을 손들.
어쩌면 관계는 손을 잡고 있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리라. 손을 놓아주고,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 그는 겅중겅중 뛰어와 새로운 나와 새로운 그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반갑게 눈인사 한 번 나눌 수 있다면 그 뿐.

# 4. 사십이 일구오 점 킬로미터
영화 <말아톤>을 보고 와서, 나는 오래오래 울었다. 극장에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 이유는 술 때문이었을까. 나는 직업훈련을 맡는 초원이의 지루한 시간들이 슬펐고, 만 원에서 사천 원을 빼면, 육천 원이라는 초원이는 힘없는 읊조림이 슬펐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는 말을 내뱉는 초원이. 셈을 확인하는 엄마의 재촉에 아랑곳하지 않다, 엄마가 없을 때에야 비로소 계산을 하는 초원이. 그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슬픔이 아니라, 어떤 순간들을 긍정하게 만드는 슬픔이었다.
어릴 적 동물원에서의 일을 가슴에 또렷하게 품고서도, 그 기억을 뱉어내기까지 초원이에게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더디고 느리지만, 가슴 속에 명징하게 품고 있는 그 많은 것들. 진심으로 묻고 오래 기다린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초원이의 대답들.
그래서 마라톤은 초원이에게 던져진 그 많은, 어리석은 질문들에 대한 초원이의 진정한 대답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나뭇잎, 달리는 초원이의 몸을 물들이는 석양, 살랑살랑 세상을 움직이는 바람, 그리고 타인을 향해 뻗어진 그 많은 손들의 감촉. 좋으니, 싫으니? 기쁘니, 슬프니?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초원이는 이렇게 다양한 결을 가진 대답을 전한다.
그러니, 진심으로 물었다면, 오래오래 기다리자. 언젠가 그는 온 마음을 담아, 명징한 몸의 언어로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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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리던 <말아톤>을 보았다. 김미숙의 연기에 대한 호평도 많았지만, 그의 연기와 그의 역할은 지나치게 전형적이었다. 배우 조승우가 얼마나 이쁜 사람인지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건 조승우에 대한 내 편애와는 무관한 평가이다.) 장애를 앓는 초원이를 연기하는 그의 몸이 어찌나 이쁘던지, 뒷자리에서 열심히 조승우에게 반응하는 짜증스런 관객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조승우 팬들을 위한 써비스 같은 마지막 장면은, 조승우라는 배우의 매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는 사람을 완전 무장해제시키는, 그래서 몇 시간쯤 행복하게 만드는 그 웃음이라니... 곳곳에서 훌쩍이던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르는 게 충분히 이해되는 그 얼굴이라니... 그 사진을 올려, 여기 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으나, 찾지 못한 관계로, 대신 올리는 근사한 조승우 사진 한 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