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소굼 > 올드보이...





출처:트라우마.

//5월 11일에 올드보이 DVD 일반판이 출시 된다. 하지만 기대했던 오대수 피겨는
추첨을 통해서 준단다. -_-그렇다면...
일반판 완전 보류. 10월의 감독판이나 기다리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소굼 > 오늘 온 DVD...토토로 외



누나가 돈을 보태줘서 지브리 애니 2개와 살인의 추억 일반판 구매.
왜 살인의 추억 DVD나올 때 몰라가지고-_- 특별판을 놓쳤을까...
이제 한 줄은 다 채웠고...전용 수납장을 하나 구하던지 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선인장 > 여자도 없고, 정혜도 없는-<여자, 정혜>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자라난 고향 읍사무소 직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거기에서 눈빛이 고운 순경(경찰이 아니라 반드시 순경이어야 한다) 하나 만나,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5일마다 한번씩 열리는 장터를 구경 삼아 다니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업고 온 시골사람들의 잡일을 거들며,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아무런 변화도 없이, 가슴 떨림 같은 건 하나도 없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이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나의 생각일 뿐. 나는 이런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고, 이런 삶을 추구할 이유도 없다. 어느 날 문득 그저 삶이 지루하다고 여겨질 때, 더욱 지루하고 더욱 단조로운 삶 속에 나를 던져두고, 그런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공상이 빠질 뿐이다.

여자, 정혜라... 처음 이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무슨 제목을 이렇게 선언적으로 지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 폭력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단 네 글자의 제목에 등장인물을 규정하고, 영화의 내용을 규정하고, 관객들의 독법을 규정해 버리는 영화... 그래서 내용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어떤 내용인지, 그 영화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막상 본 영화는 그 내용 그대로 흘러갔고, 그 느낌을 그대로 강요하고 있었다.

# 여자는 없다

깨끗하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 식물들을 키우고, 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데려와 하루하루 마음을 붙이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섬세하게 살아가고, 소녀시절에 겪었던 성폭력으로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타인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정혜의 일상을 보면서, 나는 "여자"의 삶이란 이렇게도 피상적으로만 그려지는구나, 생각했다. 소장을 제외하고는 여자들뿐인 우체국에서의 시간, 그저 불평뿐인 옆집 여자와의 관계, 그녀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모의 투덜거림. 정혜의 일상이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지면 그려질수록 나는 영화속 여자들의 관계가 못마땅했다. 정혜와 소통하는 유일한 사람인 엄마는 이미 죽은 사람. 더욱이 엄마란 존재는 여자가 아님을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 명확히 학습받아 오지 않았던가.

카메라가 정혜의 얼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이 영화는 여자로부터 멀어졌다. 그건 영화가 여자로서의정혜의 모습을 나쁜 의도로 왜곡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상투적인 장면으로만 정혜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다. 켜켜이 모인 일상들이 한 존재의 뚜렷한 성적 자의식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영화는 지루해진다. 누군가의 삶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삶에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을 때, 그 영화의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 정혜>는 그 선언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이해가 보이지 않는다. 성적인 학대와 그 학대의 경험으로 인한 소외, 스스로 닫아버린 마음의 문과 세밀한 여성의 일상. 그 일상의 결들은 층층이 모여 새로운 의식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줄거리에 갇혀 지루하게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지루하고 도식적이다.

# 정혜는 없다

영화를 보고 종로길을 걸어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나는 함께 영화를 본 동료에게 물었다. 자기는 저렇게 살지 않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 평론가는 총각김치마저도 주문해 먹는 그녀의 일상이 특별하다고 말했지만, 이십대 후반을 넘기고 혼자 사는 여자라면 정혜의 일상이 전혀 새롭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혼자 사는 여자들은 대부분 홈쇼핑이나 백화점 지하에서 밑반찬을 해결하고, 김밥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애용한다. 친구들 대부분은 시집을 가, 주말이라고 해도 특별히 할 일이 없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방보다는 거실에서 생활한다. 깨워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알람을 두 개쯤 켜놓는 건 예사다.

카메라가 아무리 정혜의 얼굴에 가까이 가도, 나는 정혜라는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트라우마는 소설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설정이고, 그 트라우마를 간직한 그녀의 삶은 평범하고 평범하다. 평범한 삶을 가까이서 지켜볼 때 느껴지는 낯설음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정혜를 알아갈 수 없었고, 정혜의 속깊은 울음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의 파장을 경험하지 못했다.

보편적 여성으로서의 삶도, 특별한 존재 정혜로서의 삶도, 명확하지 않은 이 영화. 그래서 나는 정혜의 분노에 동감하지 못하고,  황정민의 정혜씨,라는 마지막 대사에 조금도 설레지 않는다.

어떤 영화속 인물에게 너는 왜 이렇게 답답하냐고, 너는 왜 싸우지 못하느냐고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여자 정혜>가 그 제목에 어울리는, 그러면서도 그 제목이 강요하고 있는 이해의 폭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조금 더 치밀하게 여자의 일상과 정혜의 자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감당하지 못할 크나큰 상처를 안고도,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남들은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상과 자신과의 사이에 작은 균열이 생김을 감지한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은 정혜의 얼굴이 아니라 정혜와 정혜의 일상 사이에 존재하는 그 작은 균열이다. 그 균열이 조금씩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낼 때, 관객은 특별한 한 여자, 정혜의 삶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선인장 > 사랑, 진실 혹은 거짓-영화 <클로저>

사랑은 숙명이 아니다. 사랑은 매순간의 선택이다. 그래서 거부할 수도 있다.

흔히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말한다. 상대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이기 때문에. 영화 <클로저>는 그 순간에 개입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제는 타이밍이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언젠가 이별을 고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사랑은 책임이라고. 문제는 사랑했던 순간이 아니라, 그 사랑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이라고. 새로운 사랑에 빠졌던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다. 그 때 나는 어렸고, 아주 오랫만에 나를 다시 찾아온 새로운 사랑에 마냥 설레였을 뿐이니까.

그러나, 아주 짧은 시간 그 사랑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나는 타인과 나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진실의 허상을 깨닫는다.

한 소설가는 내게 말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선택과 배제를 내포하는 것이라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 순간, 내 삶에 작은 경계가 만들어진다고. 그리고 생은 선택과 배제의 연속이며, 관계 역시 그런 것이라고. 우연히 내게 전해진 그 말이 오래오래 기억나는 건,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히 사랑할 수도 있었을 댄에게 이별을 고하는, 알리스가 너무 예뻤다. 거짓을 말할 수 없고, 진실은 상처가 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그 사랑에게 안녕을 고하는 알리스의 영특함. 사랑에 대해 쓰디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이 영화는, 어쩌면 거짓으로 상처를 주고, 진실은 감추고자 하는 우리네 사랑방식보다 훨씬 근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선인장 > 진심으로 묻고, 간절히 기다리면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말아톤>



 
#1.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다. 슬픈가? 기쁜가? 화가 나는가? 겁이 나는가? 초원이처럼 감정을 나타내는 카드 중 한 장을 골라야 한다면, 나 역시 머뭇거릴 테다. 슬프기도 할 테고, 화가 나기도 할 테고, 겁이 나기도 할 터이니. 그러니 애초에 감정에 말을 붙이고, 어떤 감정이라고 결정하고, 그 감정을 표현하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래서 초원이는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고, 말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라고. 거대한 벽 앞에서 쏟아지는 장대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끝내 하지 않았던 말을,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후, 겨우 뱉어낸다.
 
어린 초원의 몸으로 쏟아지는 장대비, 운동장 한 켠에서 손바닥으로 받아내는 빗방울, 그리고 병원 앞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조금씩 다른 초원이 감정의 결들이다. 나는 그저, 초원이 몸으로 쏟아지는 빗방울이 아플까, 시원할까, 따뜻할까, 생각하며 슬프고, 기쁘고, 화가 나고, 겁이 나는 초원이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하여 자폐아가 아니라, 자개아라는 조승우의 표현은 그럴 듯 하다. 초원이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두어준 상투적인 틀속에 자신의 감정을 규정하지 않을 뿐이니.   

# 2. 초원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초코파이로 어린 초원이를 유인하여 정상에 오른 엄마는 초원이의 가슴에 손을 대로 말한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고. 초원이 가슴도, 엄마 가슴도, 콩닥콩닥 뛴다고. 그러니 너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아찔하게 높은 산 정상 위에서 어린 초원이와 엄마가 도시를 내려다 볼 때, 나는 처음으로 꼬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운동장 백 바퀴를 다 뛴 초원이 코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다 댈 때, 나는 처음으로 초원이가 부러웠다.
 
콩닥콩닥 가슴이 뛰어던 때가 언제였나? 내 심장의 떨림으로 온 몸으로 느꼈던 때가 도대체 언제였나?
뛰는 게 좋으냐는 엄마의 질문에, 엄마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좋다고 말했던 초원이는, 운동장 백 바퀴를 뛰고 난 후, 몸이 하는 말을 듣는다.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그 심장의 떨림 앞에서 좋으니, 싫으니,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연 좋아할까, 싫어할까, 궁금해 하는 건 더더욱 의미가 없다.
 
그러니 초원이는 우리와 다르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의 의미를 알아버린 사람이니까. 자신의 몸과 자신의 마음이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있으니까.

 
# 3. 엄마가 동물원에서 내 손 놨지? 그래서 초원이 잃어버렸지?
 
사람이 사람을 만나 어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관계가 언젠가 어떻게 끝나리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처음 손을 잡는 순간, 언젠가 손을 놓아야 하는 상황이 오리라 미리 염려한다. 손을 놓아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중요한 건 손을 놓는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왜 손을 놓느냐는 이유일 텐데, 나는 끝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손을 놓으면, 나는 초원이처럼 달릴 수 있을 텐데, 나는 어리광만 부리고 있다가, 끝내 상대가 손을 놓게 만든다. 달려나가는 상대의 손을 먼저 놓아주면 좋을텐데, 나는 끝까지 그의 손을 붙들고 있다가, 결국은 그를 버리고 만다.
 
엄마가 자신을 손을 놓을까 두려워 달리기를 시작했을지도 모를 초원이는, 달리기 위해 엄마의 손을 먼저 놓는다. 그리고 달리는 도중에 수많은 사람들의 손과 만난다. 잠깐의 스침이 전부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손들. 저마다 다른 감촉과 다른 사연을 담고 있을 손들.
 
어쩌면 관계는 손을 잡고 있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리라. 손을 놓아주고,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 그는 겅중겅중 뛰어와 새로운 나와 새로운 그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반갑게 눈인사 한 번 나눌 수 있다면 그 뿐.


 # 4. 사십이 일구오 점 킬로미터

영화 <말아톤>을 보고 와서, 나는 오래오래 울었다. 극장에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 이유는 술 때문이었을까. 나는 직업훈련을 맡는 초원이의 지루한 시간들이 슬펐고, 만 원에서 사천 원을 빼면, 육천 원이라는 초원이는 힘없는 읊조림이 슬펐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는 말을 내뱉는 초원이. 셈을 확인하는 엄마의 재촉에 아랑곳하지 않다, 엄마가 없을 때에야 비로소 계산을 하는 초원이. 그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슬픔이 아니라, 어떤 순간들을 긍정하게 만드는 슬픔이었다.

어릴 적 동물원에서의 일을 가슴에 또렷하게 품고서도, 그 기억을 뱉어내기까지 초원이에게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더디고 느리지만, 가슴 속에 명징하게 품고 있는 그 많은 것들. 진심으로 묻고 오래 기다린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초원이의 대답들.

그래서 마라톤은 초원이에게 던져진 그 많은, 어리석은 질문들에 대한 초원이의 진정한 대답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나뭇잎, 달리는 초원이의 몸을 물들이는 석양, 살랑살랑 세상을 움직이는 바람, 그리고 타인을 향해 뻗어진 그 많은 손들의 감촉. 좋으니, 싫으니? 기쁘니, 슬프니?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초원이는 이렇게 다양한 결을 가진 대답을 전한다.

그러니, 진심으로 물었다면, 오래오래 기다리자. 언젠가 그는 온 마음을 담아, 명징한 몸의 언어로 대답할 것이다.

-----------------------------------------------------------------

오래 기다리던 <말아톤>을 보았다. 김미숙의 연기에 대한 호평도 많았지만, 그의 연기와 그의 역할은 지나치게 전형적이었다. 배우 조승우가 얼마나 이쁜 사람인지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건 조승우에 대한 내 편애와는 무관한 평가이다.) 장애를 앓는 초원이를 연기하는 그의 몸이 어찌나 이쁘던지, 뒷자리에서 열심히 조승우에게 반응하는 짜증스런 관객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조승우 팬들을 위한 써비스 같은 마지막 장면은, 조승우라는 배우의 매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는 사람을 완전 무장해제시키는, 그래서 몇 시간쯤 행복하게 만드는 그 웃음이라니... 곳곳에서 훌쩍이던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르는 게 충분히 이해되는 그 얼굴이라니... 그 사진을 올려, 여기 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으나, 찾지 못한 관계로, 대신 올리는 근사한 조승우 사진 한 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