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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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철학은 태양과 바다, 돌과 바람 속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그의 철학은 필연적으로 시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세계의 본질과 교감하며 자라난 사유이기 때문이다. 카뮈의 철학은 역사의 테두리를 넘어서 세계 그 자체를 바라본다. 역사는 세계에 비하면 허약하고, 덧없는 한 순간에 불과하다.

세계에 대한 깊은 사랑은 그를 역사에 맞서도록 만들었다. 카뮈는 자유를 위한 투쟁이 예술가의 몫임을 확신했다. 예술가는 세계의 얼굴을 본다. 그 얼굴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성을 넘어선 그곳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을 만들었고,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결박당한 영웅은 세계를 사랑했기 때문에 고통을 감내했다. 카뮈는 자신을 그 종족의 후예로 여겼다. 아름다움이 모욕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던 그는 끝까지 저항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철학은 단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버틴다는 것은 단순한 인내를 넘어선다. 그것은 삶에 대한 태도이고, 세계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다. 정오의 태양과 여름의 대지를 가슴에 품은 카뮈는 대지와 바다와 결혼한 인간이었다. 그의 철학은 초인적 의지에서 태어났다. 초인은 돌을 깎아 길을 내고, 바람 속에서 우뚝 서는 존재다. 그것은 투쟁과 아름다움의 결합이며, 세계의 얼굴을 응시하는 인간의 최후의 모습이다.

이 에세이는 읽히기 위해 존재한다. 마치 세계가 읽히기 위해 존재하듯이, 이 글은 세계를 향한 사랑과 사색의 결과물이다. 카뮈가 세계를 읽었듯이, 이 글은 독자를 세계의 본질로 이끈다. 세계의 얼굴이 이 글에 스며있다. 그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담아낸 선언이다.

무지의 인정, 광신의 거부, 세계와 인간의 한계, 사랑받는 얼굴, 그리고 아름다움,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인들에게 합류하는 진영이다. 어떤 면으로는, 미래 역사의 의미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와 종교재판 간의 투쟁 속에 있다. 맨손의 예술가들이 치러야 할 대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어둠의 철학은 빛나는 바다 저 너머로 산산이 흩어질 것이다. 오, 정오의 사상이여, 트로이 전쟁은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으니! 다시 한번, 현대 도시의 끔찍한 성벽들이 무너져 내리며 ‘바다의 고요처럼 평온한 영혼’, 헬레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리라.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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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난드로스 희극
메난드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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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희극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메난드로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은 아리스토파네스의 고희극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연다. 메난드로스의 신희극은 단순히 웃음과 풍자를 넘어 인간의 일상과 보편적 감정을 탐구하며, 이후 서양 문학 전반과 현대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그리스 문학이 호메로스 이후 비극과 희극의 장르를 통해 인류사에 남긴 깊은 족적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메난드로스의 희극은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문명이 헬레니즘 시대에 접어들며 나타난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스 사회는 농경과 상업, 나아가 약탈 경제를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를 영위했다. 전쟁과 평화는 이들의 주요한 주제였고, 이는 초기 그리스 문학에 깊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제국으로 향하던 그리스가 좌절을 겪고 헬레니즘 시대로 접어들면서, 문학과 예술의 중심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신희극은 폴리스의 공동체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과 감정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새로운 경향은 메난드로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며, 그의 유려한 문체와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은 당대 사회적, 문화적 전환을 문학적으로 구현해낸다.

메난드로스는 폴리스의 공동체주의 문화에서 중앙집권적 체제의 개인주의 문화로의 변천을 희극 속에 반영했다. 그의 희극은 정치적 참여를 강조하던 고희극의 메시지에서 벗어나, 인간 보편적 정서와 일상의 고민을 담아낸다. 이는 당시 독자들에게 신선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주의적 전환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공동체와의 연결은 점차 희미해지고, 넓어진 세계 속에서 개개인은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는 역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난드로스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메난드로스의 작품은 일상의 인물들과 그들의 감정을 희극의 중심으로 소환한다. 이를 통해 그는 단순히 웃음을 넘어, 인간 경험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탐구하며 일상 세계를 확장하는 문학적 과업을 수행한다. 그의 희극 속 인물들은 영웅적이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메난드로스는 왜소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진 나약함과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며, 그리스 희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메난드로스의 신희극은 단순한 시대적 산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문학적 혁신이다. 정치적 풍자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과 보편적 감정에 다가선 그의 작품은 현대 독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과 탐구를 통해 희극의 지평을 넓혔다. 메난드로스는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찾으라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의 문학이 가진 가장 큰 가치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 멋진 주연을 벌여야 해요, 아버지.
그리고 여자들은 밤새도록 시중을 들어야 해요.
-그 반대로 해야지. 여자들은 마시고 우리가
밤새도록 일해야 해. 내가 지금 가서
너희들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겠다.
-그렇게 하세요. (관객에게) 현명한 사람은
어떤 일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돼요.
끈기와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어디 있겠어요!
내가 바로 그 진리의 살아있는 증거라오.
세상에 누구도 가능하리라고 믿지 않던 결혼을
나는 하루 만에 이루어냈으니 말이오. (‘심술쟁이‘中에서)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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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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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8-241212

이 책은 여인들을 중심으로 한 세 편과 신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인들의 연대를 통해 당시 사회를 풍자한 세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여인들의 성 파업으로 종전을 이끌어내는 <뤼시스트라테>, 남자들의 감시와 구속을 불러온 에우리피데스를 처벌하기 위한 여인들의 비밀 회동을 다룬 <데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들>, 그리고 여성들이 주권을 차지하여 그리스 정치와 사회를 개혁하는 <여인들의 민회>. 이들 작품은 모두 여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 그리스 사회의 현실과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디오뉘소스가 저승으로 내려가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의 가상 경연을 벌이는 <개구리>와, 부의 신과 가난의 신이 논쟁을 벌이며 인간 사회의 문제를 조명하는 <부의 신>, 이들 작품은 인간적인 신들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는 점에서 돋보인다.

이들 희극은 하나같이 기발한 상상력과 논쟁을 통해 현실을 희극적인 방식으로 냉철하게 인식하도록 돕는다. 비극과 희극의 경연을 통해 폴리스를 이끌어간 대중지성의 향연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희극에서는 코로스나 배우가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걸고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공감대를 크게 형성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연극이라는 공연 예술은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집단지성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희 소원이 이루어지면, 내 장담하건대, 너희에게 조금도 덕이 안 돼. 부의 신이 시력을 회복하여 자신을 똑같이 분배한다면, 세상에 예술과 기술에 종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부의 신> 中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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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17 : 동남아시아 - 시즌 2 지역.주제편 먼나라 이웃나라 17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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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역사 복습 겸해서 역시 만화로 된 동남아시아 편을 읽었다. 지명이나 인명 등의 표기가 좀 다르기는 해도 내용은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몇십만 명씩 학살되는 건 보통인 듯한 동남아시아 역사가 가슴 아팠지만, 지리적 이점을 살리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와 민족이 공존하는 실험장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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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 제4권 부패와 자각의 시대 - 믿고 보는 신일용의 인문교양 만화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4
신일용 지음 / 밥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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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한 부패와 군부 쿠데타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민주화 시위 등 각성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선거로는 바꿀 수 없는 정치의 한계도 엄존한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와 닮았나 싶은 자괴감과 동질감도 있는 반면 어쩌면 이렇게 우리와 다른가 싶은 놀라움과 이질감도 있다. 동질적인 문화와 민족을 가진 우리 시각으로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지만 식민 피지배 경험이나 그 후의 세계 정세를 같이 겪으면서 생긴 운명 공동체의 느낌도 있다. 동남아를 알기 위해서는 힌두교,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보다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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