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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이방인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을 예전에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새롭고 낯설고 기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소설 특유의 서술 방식 때문인 것 같다. 분명히 일인칭 관점의 소설인데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을 잘 알 수 없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건조하고 생경하게 느껴지는 뫼르소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뫼르소가 주변인들에게 다정하고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며 주변인들 역시 뫼르소가 과묵하지만 친절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 뫼르소가 어떻게 살인을 한 것일까. 아니 그의 우발적 살인은 어떻게 명백히 고의적이고 비인도적인 살인으로 둔갑했을까. 그거야말로 중대한 문제 아닐까. 그 문제의 원인이 과연 뫼르소에게 있을까, 아니면 사법 체계에 있을까. 이미 독자는 화자가 사형 선고를 받을 범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화자가 잘못된 판결마저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은 크나큰 정념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수수께끼 혹은 진실에 도달하게 한다.
그 개인은 단지 정직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죽을 것이며, 바로 그 점에서 사형은 자살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이 때의 자살은 죽음보다는 삶에 가깝다. 삶의 방식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뫼로소의 생애는 외형적으로 사형으로 마감되겠지만 그런 마감을 자초한 것은 그의 삶의 방식이고 그런 삶의 방식은 사형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화가 되어 부활할 것이다.
항고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사형 선고를 받은 뫼르소를 찾아온 사제는 항고의 조건은 오직 구원자의 얼굴을 바라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뫼르소는 오직 자신에게 남아 있는 삶의 시간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것만이 진실이고 진리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진리를 붙들고 있는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마침내 해방된 엄마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할 권리가 없듯이, 마침내 감옥과 사형으로부터도 해방된 뫼르소를 위해 사제는 필요 없다. 자신이 자신의 사제가 되어 그는 단두대에 설 것이다. 그리고 증오의 함성으로 그를 맞아 줄 사람들이 많으면 덜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든 그 여름의 그 신기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비워 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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