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삶과 풍모에 대해 수많은 목격과 증언에 의해 연상할 수 있는 책이다. 그는 풍채가 일단 좌중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이 말과 행동과 글에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에 비방은 들었을지언정 위선이라곤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대표 선비로서 그 사상이나 풍류나 실천이나 여실히 그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누구나 귀감으로 삼을 만한 바가 있다. 유교의 정수를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은 연암의 집안이 대대로 그 가르침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유교란 새로워짐에 있지 고루한 데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한결같이 대의와 본분에 충실하고자 한 것은 근본에 힘써야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암이 말년에 지방의 수령으로 일한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치란 수령의 존재를 알지 못할 정도로 편안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연암의 학문은 어디까지나 임금을 도와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고 그것은 오늘날의 지식인들 역시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다. 유교의 폐단도 있겠지만, 연암이라는 한 사람에게 구현된 유교는 결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집 안에 개를 기르지 못하게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하지만 기르면 잡아먹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게 낫다." 우리 집안에서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말씀을 좇아 개를 기르지 않는다. 언젠가 타던 말이 죽자 아버지는 하인에게 분부해 장정들을 모아 묻어주게 하였다. 그러나 하인들은 공모하여 말고기를 서로 나누어 가졌다. 그 사실을 안 아버지는 다시 문하에 있던 사람에게 명하여 살과 뼈를 잘 수습하여 묻어주게 하였다. 그리고 그 하인의 볼기를 치게 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과 짐승이 비록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이 말은 너와 함께 수고하지 않았느냐? 어찌 차마 그럴 수가 있느냐?" 마침내 그 하인을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그 하인은 문 밖에서몇 달이나 대죄한 다음에야 비로소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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