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지루했다. 150페이지를 넘겨야 하지만 50페이지를 넘겨서도 소설에 빠져들지 못했다. 그냥 넘겼다. 넘기다 딴생각이 자꾸만 들어 다시 돌아와 읽기도 여러번 했다. 화자가 남자였구나. 문체에서 화자가 여자라는 선입견이 들었나보다. 그리고 후반부로 접어들어 이제 좀 만 더 넘기면 되겠구나 싶을 때 그 조금이 너무 순식간에 넘겨졌다.
이탈리아에서 건축을 공부한 친구가 떠들어대는 혁명이, 화자가 촛불을 보며 느끼는 무료함이, 죽은 dd가 죽은 애인이었다는 점이, 빈티지를 ‘살리며’ 진공관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아무 의미 없을 것 같던 여사장의 한마디가. 그 사장의 이름이 여소녀였기에 주는 반전이었고, 그가 d를 음향기기, 진공관을 빌어 무료함에 경각심을 일깨워준 인물이라는 점에 반전은 배가됐다.
소설을 너무 잘 엮었다. 이런 구상이라니. 한국인이라면 누가 가슴한켠이 아려오고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을 것인가.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사람들’이 너무 비유적이었다면, 황정은은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직설법을 너무나 고급스럽게 짜냈다.

재정비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자들의계획에 따르면 여소녀 자신과 같은 기술자들이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콘텐츠였으나…… 기술자이자 상인인 그들모두 결국은 세입자이며… 세가 오르면 특별히 영세한업체가 많은 이 상가에서 상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일격이 될 수도 있었다. 여소녀는 생각했다.
상가가 사는 거지 내가 사는 것은 아니지.
무릎에 펼쳐진 신문이 바람에 부풀었다. 여소녀는 신문을 두번 접어서 조금 더 자세히 읽고 싶은 기사를 위로 오게 해두었다. 세운상가 활성화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본문에 다섯차례나 언급된 재생이라는 말이 여소녀는 마음에 걸렸다. 무엇을 재생한다고?
왜?(94p)

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겹만을 남겨둔 채 체공하고 있었지 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
내게는 그것이 없어.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114p)

조짐은 늘 있다고 박조배가 말했다.
조짐?
d는 박조배를 돌아보았다. 매연 때문에 눈이 몹시 뻑뻑했다. 유사시라는 말은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때라는 뜻인데 비상한 일은 늘 일상에서 조짐을 보이게 마련이라고박조배는 말했다. 갑자기……라는 것은 실은 그다지 갑자기는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불시에……라는 것은 내 생각에……… 우리가 모르는 척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 일상을 말이다.
일상에 조짐이 다 있잖아. 전쟁을 봐라. 맥락 없는 전쟁이없고…… 방사능도 마찬가지, 원전이라는 조짐이 있으니까 유출도 있는 거잖아. 지금도 그렇다. 내게는 언제나 지금이 그래…… 지금은 꼭 전간기 같다. 1차대전과 2차대전, 두개의 거대 전쟁 사이에 조짐이 아주 충만했지. 그런조짐을 느껴. 세계가 곧 한번 더 망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는데 그게 굉장히 확실하다. (129p)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때……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그것이 따로 있다면, 이렇게 끝날 조짐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 이어지고 있다. 조짐도 무엇도 없이 이것은 이렇게 이어진다. 박조배는 금방이라도 세계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d는 의아했다. 망한다고?
왜 망해,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채 이어질 뿐. (134p)

이 오디오가 이제 좀 특별해졌느냐고 여소녀는 물었다.
같은 모델이라도, 그 기기를 다룬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고 여소녀는 말했다. 세상에 그거 한대뿐이니까, 빈리지를 고치려는 사람들은 고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린다고 말하지.
눅눅한 바람이 수리실 안으로 불어 들었다. 비가 들이치자 여소녀는 창을 닫았다.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유리 벌브 속에 불빛이 있었다. d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그 투명한 구球를 잡아보았다. 섬뜩한 열을 느끼고 손을 뗐다.
쓰라렸다.
d는 놀라 진공관을 바라보았다. 이미 손을 뗐는데도 그얇고 뜨거운 유리막이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 통증은 피부를 뚫고 들어온 가시처럼 집요하게 남아 있었다.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여소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척 뜨거우니, 조심을 하라고.(145p)

서수경과 나는 1996년의 고립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않았다. 각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말이다. 그 고립의 기억은 잊혀지지는 않고 다만 묻혀 있다가2008년 6월 10일, 광화문 대로에 명박산성이 등장했을 때와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남일당 건물이 불타오르기시작했을 때 구체적으로 환기되었다.(187p)

재산 손괴 장면은 종종 인명 손실 장면보다도 효과가 강하지. 왜냐하면 그 장면에 대한 이입이 훨씬더 쉬우니까. 왜 그게 더 쉬운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금 여기서는 그게 더 쉽고, 뭐가 더 쉬우면 쉬운 쪽으로되어간다. 뭐가 그렇게 되기 쉬우면 뭐는 곧 그렇게 되지여기서는. 그렇지,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툴을 쥐지 못한 인간 역시 툴의 방식으로...(189p)

이렇게 가정해볼까. 아버지가 말하는 권위는 곧 힘이고힘이란 곧 누군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누가 들을까 두려워 급하게 자식의 입을 틀어막게 만든 힘, 그는 그런 힘을 경험했고 그것이 힘이라는 것을 알며 힘이란 곧 그게 되었다. 그게 없음을 그는 혐오한다. ‘권위 없음‘을 혐오한다. 누구도 ‘권위 1없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므로 그는 자신의 ‘권위 없음상태를 두려워한다. 그가 누군가의 ‘권위 없음‘을 비난할때 그에게는 그것을 하는 ‘권위‘가 있으므로 그는 힘없음을 힘껏 혐오한다.....
(222p)

내가 왜 그랬지?
김소리는 수년 동안 자신에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는 데 그는 어땠을까? 그도 그렇게 했을까? 그에게도 그 질문이 있었을까? 바르고 옳게 행동했다는 생각에 그런 질문조차 없지는 않았을까? 그는 김소리에게 부끄러움을가지라고 말했지만 당시에 김소리가 가진 것은 수치심이었고 경멸감이었지. 그는 김소리에게 어른을 요구했지만그 자신도 김소리에게는 어른이었으면서, 그는 김소리의아무것에도, 김소리의 어른 됨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비난만 하고 갔어. 그의 어른 됨은 김소리를 관찰하고 김소리를 판단하고 사후에 다가와 비난할 때에만 유용하게게 작동했는데, 어른 됨이 그런 것이라면 너무 편리하고 야비하지 않나. (240p)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설치된 2711개의 추모비들은, 콘크리트 관 같은 형태를 하고 저마다의 높낮이로 가지런하게 도열되어 있었는데 나치에 희생된 동성애자 추모관 은 그 열에서 내던져진 한개의 덩어리로, 핍박과 말살을 목적으로 분리된 전체에서 다시 분리된 한 조각으로, 다소 엉뚱하게 공원 가장자리에 꽂혀 있었으며 그 존재 양상은 내게 격리와 배제의 반복으로 보였고 서수경에게는독자성/가시성으로 보였다.(249p)

우리가 무슨 관계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마중 가는 사람, 20년째 서로의귀가를 열렬히 반기는 사람, 나머지 한 사람이 더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을 매일 상상하는 사람, 서로의죽음을 가장 근거리에서 감당하기로 약속한 사람, 우리는우리의 관계를 묻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에게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친구‘나 ‘친척‘이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이 가장 간단하고 간편하기 때문은 아니고 그것이 우리 이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260p)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뭘까? 그것은 생각일까? 사람들이 자기 상식을 말할 때 많은 경우 그것을 자기 생각이 라고 믿으니 그것은 생각일까. 아니야 common sense니까 시계에 대한 감이잖아. 그것이 그러할 것이라는 감感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해제를 쓴 정화열 선 생은 상식을 ‘사유의 양식‘이라고 칭하며 그것을 ‘감각에 바탕을 둔 사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 그에 따르면 상식, 또는 공통감sensus communis 이란 아무래도 ‘생각‘인 모양이고, 다시 그를 인용하자면 서수경에게 적용되었다는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본래의 상식, 즉 사유의 한 양식이라기보다는 그 사유의 무능에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상식을 말할 때 어떤 생각을 말하는 상태라기보다는 바로 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역시 생각은 아닌 듯하 다…… 우리가 상식적으로다가,라고 말하는 순간에 실은얼마나 자주 생각을…… 사리분별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상식, 그것은사유라기보다는 굳은 믿음에 가깝고 몸에 밴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건 상식이지,라고 말할 때 우리가 배제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일까.(265p)

한 사람이 말 하는 상식이란 그의 생각하는 면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않는 면을 더 자주 보여주며, 그의 생각하지 않는 면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당신은 방금 너무 적나라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266p)

서수경과 나는 그런 질문을 가진 뒤에야 비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점자라고 칭하는 것처럼 비맹인이 사용하는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으며 그 말이 묵자墨字라는 것을 그때에서야. 묵자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언어/도구이며, 벽이며 간판이며 각종 게시판의 공지사항이며 약병에 붙은라벨에 적힌 안내문과 주의사항과 경고와 지금 이 문장과 롤랑 바르뜨와 생떽쥐뻬리와 한나 아렌트와 라울 힐베르크의 책에 잉크로 인쇄된 것들이 모두 그것에 해당하고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세계의 기본적인 전제라는 것도 우리는 그때에 알았다.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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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 책들을 보려 처음 시도한 책은 보르헤스의 ‘픽션들’이었다. 그리고 ‘픽션들’을 읽은 소감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고전을 읽어보았다는 만족감 외에는 재미도, 감동도 없었고 나중에 누군가 책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면 주절거릴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될까도 의문이다.
두 번째 도전한 ‘백년의 고독’은 ‘픽션들’에 비해 내용도, 문장도 지루하지 않고 환상적인 스토리에 유머러스한 풍자와 해학까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무려 완독하는데 2달이 넘는 기간이 걸리긴 했지만(안나 카레리나는 1년 가까이 봤다), 꿈을 그리는 듯한 스토리와 요절복통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리는 서사, 선형적 세계관이 아닌 순환적 세계관으로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며 성찰하게끔 하는 책의 포괄적인 주제까지, 남미문학에 대한 견해를 조금이라도 갖게 해준 독서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다만 멜키아데스의 영혼이 돌아올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아 다시 처음부터 등장인물 가계도를 그리면서 봤는데, 부엔디아 가문과 연관되어 언급되는 인물이 무려 26명이 넘었고(책 앞부분의 가계도는 너무 간략하다. 부엔디아 대령의 17명의 이복 자식들 이름이 언급되며 등장 할때는 심지어 좀 짜증이 났다), 주변의 인물이 40여명이 넘어가는 등, 완독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복잡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이 책의 최대 난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상황 속에서 다양한 등장인물 수만큼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다소 코믹한)활약이 소설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한다.

마술같은 배경속에서도 인류의 보편성은 존재한다. 우르술라와 같은 모성을 대변할 수 있는 여성과, 대를 이어가며 방탕한 성향을 대표하는 ‘아르까디오’와 역마살 낀 모험가 성향의 ‘아우렐리아노’, 사랑에 얽힌 질투, 음모, 멜키아데스의 주술적인 예언, 현자의 캐릭터, 유럽 열강의 식민지배를 상징하는 바나나공장과 대학살 등 픽션이 가질 수 있는 환상성에 현실적인 리얼리즘이 교차된, 재미까지 가미된 멋진 고전이었다.
과거 우리의 몇몇 환상이 실재가 되어가는 요즘, 마르케스의 환상도 꿈을 꾸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세상사는 그녀의 피부에서만 머물렀을 뿐, 그녀의 내 면은 모든 고뇌로부터 해방되어 있었다.(114p)

‘시간은 흐르게 마련인데, 제가 뭘 바랐겠어요’ 그가 중얼거렸다.
‘그렇긴 하지만, 그토록 빨리 흐르진 않아’ 우르술라가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사형수 감방에 있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으로부터 들었던 것과 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세월이 방금 전에 수긍했던 것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원을 그리며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한번 더 몸서리를 쳤다. (1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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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82년생 저자가 본인 앞가림이나 잘할 일이지 무슨 10살차이 나는 동생들 걱정을 그렇게 해서 화제가 되었을까 했는데 읽고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저자는 너무 일찍 나이들어버린 어린 꼰대가 아닌, 너무나 소심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예의에 어긋나는) 말을 90년대생 동생들의 입을 빌려 말한 비겁한 작자였다.

그래도 세상 너무 뒤쳐지고 말겠다 싶은 상황에 적절한 설명이 첨가된 시대상황 정리는 강추할 만 하다. 여기저기 남의 글 끌어다 자기 책을 만드는 일이야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실용적인 생활양식이니 그렇다 치고.
성실한 자료수집이 뒷받침 되어봤자 재능이 있어야만 발휘 될 수 있는 저자의 제안이나 해결책은 역시나..... 워 워........

마지막엔 결국 회사 선배님들께 감사를 표하며(꼰대의 예시를 쉽게 서치할 수 있어서 감사했나??) 충성을 마무리 하는 반사적인 처세술도 왠지 혐오스럽지만, 상사의 애정과 관심은 듬뿍 받을테니 뜻깊은 사회생활 이루 시기를.

꼰대라는 단어는 특정 설별과세대를 뛰어넘어 ‘남보다 서열이나 신분이 높다고 여기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에게 충고하는 걸, 또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자‘를 지칭한다.

80년대생 이전의 세대들이 소위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면, 90년대생들은 ‘삶의 유희‘를 추구한다.

병맛이라는 개념이 유행하게 된 이유를 완전무결함만 살아남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와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증가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과의 대담에서 리카르도 마체오Riccardo Mazzed는 소아 혐오Paedophobia 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에서 젊은이에 대한 공포는 그들을 혐오하거나 두려워한다는 뜻이라기보다, 개인의 생존도버거운 마당에 사회가 그들을 배려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곳에서 바우만은 젊은이에 대한 공포를 젊은이들을 또 다른 사회적 부담으로 여기는 시각‘이라 풀어낸다. 이미 버거운 삶을 짓누르는 불필요한 부담이나 책임을 경계하고 회피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청년의 성장이나 미래의 이익을 따지기보다. 현재의 이익만을 따지게 되었다. 기업은 청년 세대의고용보다는 본인들의 단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 선택만 할 뿐이다. 기업은 늘 조급하다. 조금이라도 속도가 떨어지면 경쟁 기업에 뒤처지거나 따라잡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점차 참을성을 잃고, 이에 따라 일종의 자비심도기대할 수 없다.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그의 저서 《뉴캐피털리즘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에서 장기적인 경영 실적보다 단기적인 성과를 원하는 일명 ‘성마른 자본Impatient Capital‘을 말한다. 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미국 연기금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1965년 46개월에서 2000년 3.8개월로 크게 줄었다. 더 빨리 더 많은 수익을 채근하는 조급한 자본은 기업조직의 체질도 변화시켰다. 의사결정이 더디고 경직된 기업은 자본의 조급함을 감당할 수 없다. 유연하고 역동적이며 빠른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1960년대 미국 자동차산업의 경우,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자동차 판매 현장까지 전달되는 데 평균 5개월이 걸렸지만, 요즘은 2주 정도로 줄었다.

대중적인 독서는 예전의 사회적 기반, 즉 독서 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소수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2017년 국회에서 발표한 <독서와 시민의 품격>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사람의뇌는 본래 독서에 적합하게 진화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독서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으로 반드시필요하지 않은 독서를 사람들이 계속하는 이유는 독서가 가져다주는 이득 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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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의 최근 단편집을 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라 그런지, 작가의 초기작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 같다. 가족과 20대 여성의 삶이 대부분의 주제라는 점이라서.
작가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구지 알아봐야할 것 까지도 없다. 중요한 건 역시나 김애란 작가의 글을 통해 투영해 낸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봐야 하니까.
아버지란 애증의 관계를 지나 증오만 남아버린 나같은 입장에서는 작가가 그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큰 흥미가 가진 않았다. 몇 몇 화자들이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에 공감하는 정도랄까. 무정하고 무책임한 아버지라는 작자들도 따스하게 감싸 안는 화자들이나, 애타게 그리워 하며 아버지를 찾아헤메는 화자들이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지나치게 혐오스럽지도, 매정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은 멀어지면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가족들은 멀어질수록 더 잊혀지지 않는 습성이라고 이해해야 하나. 어쩌면 타인이 보기엔 참으로 애석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 단련이 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는 한 인간일 뿐인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와 역할을 추궁해 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이 없는 그들의 표본을 무엇이라 생각(착각)하고 나는 아버지들을, 부모들을 그렇게 비판하려고 했던 것일까. 자식들도 하나의 인간일 뿐이고, 부모들도 그저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예의바름, 그것은 태어나내가 세상에 대해 느낀 최초의 불쾌(不快)였다. (9p)

만일 어머니가 아버지를 오늘까지만 기다리겠다고 마 음먹었다면, 아버지는 항상 그 다음날 오는 사람이었다. (11p)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도시락을 혼자 먹 어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것의 고통은 내가 혼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혼자인 것을 모두가 보고 있다는 데 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132p)

나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늘 그 자리에 있었고, 그래서 의심받지 않았다. 물론 나는나의 이력이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대단하지 않다는소리를 듣는 것은, 대단한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왠지 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148p)

내 꿈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보통 사람이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두배는 더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말이다.(148p)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180p)

하지만 그는 한자나 영어를 읽을 줄 몰랐고, 그가 읽는 신문은 대부분 구멍투성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면에선 다행이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속지 않을 수 있었다.(199p)

—그리하여 절실함은 내게 언제나 이상한 수치(羞恥)를 주 었다.(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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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죽음
에밀 졸라 지음, 이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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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꽤 오래전 출간한 책인데 한국에는 번역이 뒤늦게 된 것 같다. 이제서야 번역이 되어 소개되었지만 오래된 책임에도 현대적인 감각과 유머러스한 위트가 돋보인다. 아니, 사실 이건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란 건 인간 영혼의 순수함을 뒤집어 씌운 금전거래였다. 이런 안타까운 사회 현실에 통곡하지 않고 조소를 날려보내는 자세가 유쾌하고 재밌었으나, 그래서 나는 결혼을, 나아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고 살아가야 할지는 더 막막해 졌다. 지금도 순수함 보다는 반사적인 이해관계를 더 따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선뜻 반성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아야 겠다는 결심이 서는 것도 아니다.
에밀 졸라처럼, 이상과 괴리된 현실을 유쾌하게 조소하며 살아가고 싶다 정도....?

최근에 인간이 아직 아이를 생산하는 기계는 발명하지 못했다는, 어느 산업가의 투덜거림을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을대신해 밀을 쌓는 기계, 천을 짜는 기계 등 다양한 노동을 할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이 대단한 세기에 가담하는 대단한노동자들을 대신해 사랑까지 해줄 기계가 탄생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들이보유한 다양한 관심사를 통해 바라봐야 한다. 이 시대의 인간은 자신이 가진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늘리려는 욕구에휩싸여 주로 밖에서 생활한다. 그들의 두뇌는 계속 생겨나는 바깥 문제에 쏠려 있으며 육체는 일상적인 전투로 만성 피로 상태다. ‘사회‘라는 한창 가동 중인 거대한 기계 속에 완전히 발목이 잡혀버린 격이다. 애인이 있기는 하지만 말을 보유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다시 말해 육체 훈련용이다. 만일 결혼을 한다면 수많은 선택이 그렇듯 결혼하는 편이실용적이기 때문이고, 만일 자녀가 있다면 아내가 원했기 때문이다.

막심은 다혈질에다 좀 과격한 고집불통이고, 앙리에트는 고집불통인 남편 앞에서 이런저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바람에 오히려 상대방의 화를 돋우는 침묵의 소유자였다.

게라르 부인은 과부다. 팔 년 전에 미망인이 되었는데 남편은 법관이었다. 그녀는 상류 부르주아에 속했으며 재산이이백만 프랑을 헤아렸다. 자식은 아들만 셋으로, 남편이 사망했을 때 제각기 오십만 프랑씩 유산을 배당받았다. 냉랭하고도 엄격한 이 집안에서 아들들은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모르겠지만 돈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낭비벽을 가지고 잡초처럼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몇 년 만에 오십만 프랑을 모두 날려버렸다.

아델은 건강이 좋지 않다. 항상 기침을 달고 살았다. 밀폐된 공간인 판매대 뒤에서 늘 부동자세로 있다 보니 건강이 좋을 리가 없었다. 만나본 의사 말로는 무엇보다도 휴식이 필요하며 화창한 날에는 산책하라고 했다. 하지만 가겟세까지내며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 실천할 수 없는 처방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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