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지루했다. 150페이지를 넘겨야 하지만 50페이지를 넘겨서도 소설에 빠져들지 못했다. 그냥 넘겼다. 넘기다 딴생각이 자꾸만 들어 다시 돌아와 읽기도 여러번 했다. 화자가 남자였구나. 문체에서 화자가 여자라는 선입견이 들었나보다. 그리고 후반부로 접어들어 이제 좀 만 더 넘기면 되겠구나 싶을 때 그 조금이 너무 순식간에 넘겨졌다.
이탈리아에서 건축을 공부한 친구가 떠들어대는 혁명이, 화자가 촛불을 보며 느끼는 무료함이, 죽은 dd가 죽은 애인이었다는 점이, 빈티지를 ‘살리며’ 진공관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아무 의미 없을 것 같던 여사장의 한마디가. 그 사장의 이름이 여소녀였기에 주는 반전이었고, 그가 d를 음향기기, 진공관을 빌어 무료함에 경각심을 일깨워준 인물이라는 점에 반전은 배가됐다.
소설을 너무 잘 엮었다. 이런 구상이라니. 한국인이라면 누가 가슴한켠이 아려오고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을 것인가.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사람들’이 너무 비유적이었다면, 황정은은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직설법을 너무나 고급스럽게 짜냈다.

재정비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자들의계획에 따르면 여소녀 자신과 같은 기술자들이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콘텐츠였으나…… 기술자이자 상인인 그들모두 결국은 세입자이며… 세가 오르면 특별히 영세한업체가 많은 이 상가에서 상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일격이 될 수도 있었다. 여소녀는 생각했다.
상가가 사는 거지 내가 사는 것은 아니지.
무릎에 펼쳐진 신문이 바람에 부풀었다. 여소녀는 신문을 두번 접어서 조금 더 자세히 읽고 싶은 기사를 위로 오게 해두었다. 세운상가 활성화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본문에 다섯차례나 언급된 재생이라는 말이 여소녀는 마음에 걸렸다. 무엇을 재생한다고?
왜?(94p)

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겹만을 남겨둔 채 체공하고 있었지 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
내게는 그것이 없어.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114p)

조짐은 늘 있다고 박조배가 말했다.
조짐?
d는 박조배를 돌아보았다. 매연 때문에 눈이 몹시 뻑뻑했다. 유사시라는 말은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때라는 뜻인데 비상한 일은 늘 일상에서 조짐을 보이게 마련이라고박조배는 말했다. 갑자기……라는 것은 실은 그다지 갑자기는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불시에……라는 것은 내 생각에……… 우리가 모르는 척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 일상을 말이다.
일상에 조짐이 다 있잖아. 전쟁을 봐라. 맥락 없는 전쟁이없고…… 방사능도 마찬가지, 원전이라는 조짐이 있으니까 유출도 있는 거잖아. 지금도 그렇다. 내게는 언제나 지금이 그래…… 지금은 꼭 전간기 같다. 1차대전과 2차대전, 두개의 거대 전쟁 사이에 조짐이 아주 충만했지. 그런조짐을 느껴. 세계가 곧 한번 더 망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는데 그게 굉장히 확실하다. (129p)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때……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그것이 따로 있다면, 이렇게 끝날 조짐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 이어지고 있다. 조짐도 무엇도 없이 이것은 이렇게 이어진다. 박조배는 금방이라도 세계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d는 의아했다. 망한다고?
왜 망해,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채 이어질 뿐. (134p)

이 오디오가 이제 좀 특별해졌느냐고 여소녀는 물었다.
같은 모델이라도, 그 기기를 다룬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고 여소녀는 말했다. 세상에 그거 한대뿐이니까, 빈리지를 고치려는 사람들은 고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린다고 말하지.
눅눅한 바람이 수리실 안으로 불어 들었다. 비가 들이치자 여소녀는 창을 닫았다.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유리 벌브 속에 불빛이 있었다. d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그 투명한 구球를 잡아보았다. 섬뜩한 열을 느끼고 손을 뗐다.
쓰라렸다.
d는 놀라 진공관을 바라보았다. 이미 손을 뗐는데도 그얇고 뜨거운 유리막이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 통증은 피부를 뚫고 들어온 가시처럼 집요하게 남아 있었다.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여소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척 뜨거우니, 조심을 하라고.(145p)

서수경과 나는 1996년의 고립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않았다. 각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말이다. 그 고립의 기억은 잊혀지지는 않고 다만 묻혀 있다가2008년 6월 10일, 광화문 대로에 명박산성이 등장했을 때와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남일당 건물이 불타오르기시작했을 때 구체적으로 환기되었다.(187p)

재산 손괴 장면은 종종 인명 손실 장면보다도 효과가 강하지. 왜냐하면 그 장면에 대한 이입이 훨씬더 쉬우니까. 왜 그게 더 쉬운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금 여기서는 그게 더 쉽고, 뭐가 더 쉬우면 쉬운 쪽으로되어간다. 뭐가 그렇게 되기 쉬우면 뭐는 곧 그렇게 되지여기서는. 그렇지,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툴을 쥐지 못한 인간 역시 툴의 방식으로...(189p)

이렇게 가정해볼까. 아버지가 말하는 권위는 곧 힘이고힘이란 곧 누군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누가 들을까 두려워 급하게 자식의 입을 틀어막게 만든 힘, 그는 그런 힘을 경험했고 그것이 힘이라는 것을 알며 힘이란 곧 그게 되었다. 그게 없음을 그는 혐오한다. ‘권위 없음‘을 혐오한다. 누구도 ‘권위 1없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므로 그는 자신의 ‘권위 없음상태를 두려워한다. 그가 누군가의 ‘권위 없음‘을 비난할때 그에게는 그것을 하는 ‘권위‘가 있으므로 그는 힘없음을 힘껏 혐오한다.....
(222p)

내가 왜 그랬지?
김소리는 수년 동안 자신에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는 데 그는 어땠을까? 그도 그렇게 했을까? 그에게도 그 질문이 있었을까? 바르고 옳게 행동했다는 생각에 그런 질문조차 없지는 않았을까? 그는 김소리에게 부끄러움을가지라고 말했지만 당시에 김소리가 가진 것은 수치심이었고 경멸감이었지. 그는 김소리에게 어른을 요구했지만그 자신도 김소리에게는 어른이었으면서, 그는 김소리의아무것에도, 김소리의 어른 됨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비난만 하고 갔어. 그의 어른 됨은 김소리를 관찰하고 김소리를 판단하고 사후에 다가와 비난할 때에만 유용하게게 작동했는데, 어른 됨이 그런 것이라면 너무 편리하고 야비하지 않나. (240p)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설치된 2711개의 추모비들은, 콘크리트 관 같은 형태를 하고 저마다의 높낮이로 가지런하게 도열되어 있었는데 나치에 희생된 동성애자 추모관 은 그 열에서 내던져진 한개의 덩어리로, 핍박과 말살을 목적으로 분리된 전체에서 다시 분리된 한 조각으로, 다소 엉뚱하게 공원 가장자리에 꽂혀 있었으며 그 존재 양상은 내게 격리와 배제의 반복으로 보였고 서수경에게는독자성/가시성으로 보였다.(249p)

우리가 무슨 관계인가.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마중 가는 사람, 20년째 서로의귀가를 열렬히 반기는 사람, 나머지 한 사람이 더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을 매일 상상하는 사람, 서로의죽음을 가장 근거리에서 감당하기로 약속한 사람, 우리는우리의 관계를 묻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에게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친구‘나 ‘친척‘이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이 가장 간단하고 간편하기 때문은 아니고 그것이 우리 이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260p)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뭘까? 그것은 생각일까? 사람들이 자기 상식을 말할 때 많은 경우 그것을 자기 생각이 라고 믿으니 그것은 생각일까. 아니야 common sense니까 시계에 대한 감이잖아. 그것이 그러할 것이라는 감感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해제를 쓴 정화열 선 생은 상식을 ‘사유의 양식‘이라고 칭하며 그것을 ‘감각에 바탕을 둔 사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 그에 따르면 상식, 또는 공통감sensus communis 이란 아무래도 ‘생각‘인 모양이고, 다시 그를 인용하자면 서수경에게 적용되었다는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본래의 상식, 즉 사유의 한 양식이라기보다는 그 사유의 무능에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상식을 말할 때 어떤 생각을 말하는 상태라기보다는 바로 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역시 생각은 아닌 듯하 다…… 우리가 상식적으로다가,라고 말하는 순간에 실은얼마나 자주 생각을…… 사리분별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상식, 그것은사유라기보다는 굳은 믿음에 가깝고 몸에 밴 습관에 가깝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건 상식이지,라고 말할 때 우리가 배제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일까.(265p)

한 사람이 말 하는 상식이란 그의 생각하는 면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않는 면을 더 자주 보여주며, 그의 생각하지 않는 면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당신은 방금 너무 적나라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266p)

서수경과 나는 그런 질문을 가진 뒤에야 비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맹인이 사용하는 글자를 점자라고 칭하는 것처럼 비맹인이 사용하는글자를 일컫는 말이 있으며 그 말이 묵자墨字라는 것을 그때에서야. 묵자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언어/도구이며, 벽이며 간판이며 각종 게시판의 공지사항이며 약병에 붙은라벨에 적힌 안내문과 주의사항과 경고와 지금 이 문장과 롤랑 바르뜨와 생떽쥐뻬리와 한나 아렌트와 라울 힐베르크의 책에 잉크로 인쇄된 것들이 모두 그것에 해당하고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세계의 기본적인 전제라는 것도 우리는 그때에 알았다.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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