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별 볼일 없는 작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는 초보적인 레파토리는 비슷할 것이다. 뭔가이슈가 되는 주제나 단어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를 배껴오는 것으로 글머리를 시작한다. 주제와 유사한 과거의 사례나 신문기사를 인터넷에 검색하여 자료를 긁어 모으고 편집하여 분량을 확보한다. 논점에서 벗어난 소재라 할지라도 아주 미세한 정도의 교집합이 존재하면 주제와 개연성을 무시하고 일단 가져와서 억지스럽게 끼워 맞춘다. 분량은 어마어마한 수치의 폭격으로 채울 수 있다. 통계적인 수치를 디자이너의 능력을 빌려 그래프로 나타내고한 자 한 자 읊어대기까지 하면 피상적이고 보나 마나 한 책을 완성할 수 있다.
점점 분량이 늘어나면 흡족해지지만 정작 이야기의 중간을 넘어가 자신이 써야 하는 주제에 대해 제대로 된 안목을 가지고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 시작부터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체적인 과거 사례와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왔지만,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문장으로 결론에 이르려 애쓰거나 앞으로 생각해 볼 문제라며 미래 독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할 수 있는건 결국 디자인과 편집에 공을 들여 표지를 예쁘게 뽑아내는 것이지만 이건 저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분야는 아니다.


그냥 공짜로, 전자책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도정도로 괜찮다.

미국 의학협회는 의료 종사자들의 악수를 금기한 바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의 통계에 따르면, 병원에 입원한 환자100명 중 4명 정도가 의료 종사자의 손을 통해 옮겨진 세균에 감염되는데, 이로 인한 사망자만 연간 7만 5000명이었다. 병원의환자와 의료 종사자가 인사한다고 악수하다가 죽는 사람이 매년 7만 5000명이라는 건, 병원 외에 일상에서 악수하다가 손을 통해옮겨진 세균에 감염되어 병에 걸리거나 죽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매년 10만여 명이 악수 잘못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셈이다.
이건 미국만의 숫자니까, 전 세계로 확장시키면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악수 때문에 죽는 것이다.

1979년 동독 수립 30주년 행사에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의 형제 키스 장면은 역사적장면 중 하나다. 1989년 동독 수립 40주년 행사에선 고르바초프가 호네커와 형제 키스를 나눴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재했던196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의 냉전시대 때 사회주의 국가 정상들끼리 나눈 사회주의 형제 키스나 포옹 사진이 꽤 남아 있는데, 이것이 광고에 패러디되어 쓰이기도 했다.

우린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초연결 시대에 단절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사람과의 연결에서 오는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 감정 소모, 피로에 대한 거부다. 하루종일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도,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다.

불편한 소통 대신 편한 단절

이제는 더이상 사람이 사람을 직접 보며 감시하고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기술적 진화와 산업적 진화 때문이다.
우리의 사무실 공간이나 일하는 방식은 우리가 임의로 정한 게 아니다. 기술적·산업적 진화에 사회적 진화가 더해져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기계공학자이자 산업공학자엔지니어 프레드릭 테일러 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는 ‘과학적 관리법 Scientifie Management‘을 창안해 공장 개혁과 경영 합리화에 큰 기여를 했다. 그에 의해 완성된 테일러리즘 Taylorism(1904)은 사무실 공간 설계를 할 때, 업무의 효율적진행과 함께 쉬운 감시 감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 책상들이 직급별로 일렬로 배치된다. 동일공간 내에서 가장 많은 책상을 밀집시켜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초기 사무실은 대부분 이런 형태였다.

코로나19는 누굴 만나고, 어떤 모임에 나가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등 평판 관리와 투명성에 대한 자각에 좀더 눈뜨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낯선 상대의 호의나 오지랖에 대해 더 경계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행동에서도 남들이 알았을 때 문제가 될 것에 대해 더 조심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받고, 뇌물 주고받고, 짬짜미로 계약하는 것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관성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이것이 문제라는 자각이 부족했던 이들도 생각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접대 없이는 비즈니스가 안 된다는 한국적 마인드를 깨는 데 사회적 투명성과 함께 언컨택트 트렌드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직접 대면하면서 몰래 하던 것과 달리, 언컨택트의 방식으로 하게 되면 근거가 다 남는다. 가장 대표적인 언컨택트가 캐시리스 다.

여전히 이런 구조를 유지하는 업종들도 있다. 사실 사람들이 앉아 있을 때 그들을 감시 감독하고 제어하는 것이 훨씬 쉽다. 사무실 내의 모든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한눈에 파악하기도 쉽다. 현대적 사무실의 책상과 의자 배치는 이런 의도가 담긴 채 만들어졌고, 이 방식은 전 세계 기업의 사무실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 1960년대 독일식 사무 공간‘이라는 뜻의 뷔로란트샤프트 Bitrolandschetit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유행했는데, 파티션도 일부 도입되고 프라이버시 보호에도 신경 쓰는 등 테일러리즘의관료적이고 감시 감독하는 환경에서 조금 벗어나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 들어 개방된 공간에서 벗어나 파티션도 많아지고, 아예 독립적인 칸막이로 나눠진 구조가 확산되었다. 1990년대 들어 컴퓨터가 사무실 책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사무 공간 구조도 변화하게 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개성적이고 독특한 사무 공간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더 보편화되면서, 매일 출근하는 게 아니다 보니 상시적 자기 책상이 있는 사무 공간에서공용으로 쓰는 사무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대학들은 그동안 오프라인에서 넓은 캠퍼스와 수많은 건물을 지으며 부동산 가치를 자산으로 삼고, 스포츠팀을 운영하며, 수익사업과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대학이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대학의 비즈니스를 위해 학생들이 존재하는 건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학의 중심이 교육이 되기 위해선 오히려 온라인 기반의 비대면 모델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미네르바 프로젝트 Minerve Project의 설립자이자 CEO인 벤 넬슨 Ben Neson이 미네르바 스쿨을 만들기 위해 가졌던 문제의식이라고 밝힌 내용들이다.

비대면 주문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 비대면이라는 것은 사람은 빠지지만 그 자리에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가 들어간다는 것을의미한다. 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야 경쟁력을 가지는 시대에선 중요한 자원이 된다.

중요한 건 이들 모두 AI 스피커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개인화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결국 이들의광고 수익은 우리의 사생활이자 개인정보를 활용해 얻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로 인해 벌었지만 우리에게 나눠주진 않는다. 엄밀히 말해 여기서 우린 데이터 노동을 했다. 우리가 뭘 샀는지, 뭘 봤는지, 뭘 좋아하는지, 뭘 관심 있어 하는지등 데이터의 흔적을 남겼고, 그 과정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래서 이런 데이터 노동에 대해 수혜를 본 기업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된다.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데이터 노동의 가치를 더 인정해줘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지만, 기업으로선 이런주장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기존에 공짜로 활용하던 우리의 사생활과 데이터 노동에 돈을 지불하기 시작하는 건 그들로선 끝까지저항해서라도 버틸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건 기업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다.

사회 양극화, 경제 양극화는 단지 부자와 서민의 차이가 커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 불평등의 심화를 얘기하고, 중간계층이 사라지는 것을 얘기한다. SF영화에서 다룬 미래 사회의 모습에서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만든 사회적 신분에 따른 거주 지역의 분리다.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계층은 대부분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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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다른 사람’의 흡입력을 잊지 못한다. 그때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하나....조금은 친절했던 ‘다른 사람’의 전개와는 다르게 살짝 난해하거나 두 번 읽어봐야 숨어있는 은유적인 장치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단편은 좀 어려웠다. 한창 흥미진진하게 빠져들다가도 해결하지 못한 결말을 섬뜩하게 마주하면 뒤의 친절한 작품해설을 보며 이해하려는 노력도 들여야 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남성독자들에겐 (폭력과 무능함의 단계를 넘어서는) 깊은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남자캐릭터는 비중도 없거너 이미 너무 쉽게 결론이 나와 버리는 평면적인 인물들이다. 여성의 서사를 위해 깔아버리는 배경이 아니라 조금 더 비중 있게 다뤄 주길 바라면 작가의 개성을 포기하라는 요구인가...

사인본을 예약 구매해서 받아보고 한참이 지나서야 목차를 펼쳐보니 이미 읽은 단편이 3개나 있었다. 내가 그동안 독서를 그렇게 열심히 해왔나 싶었다. 7편 중 거의 절반이 봤던 작품이라니.

얼마 전 씨네21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로 컬럼을 기고한 걸 본적이 있어 테일러의 팬이라는 짐작은 했는데, 표제작 화이트호스가 그렇게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소설을 보고서야 알았다. 백마라니, 대체 강화길작가의 ‘백마’는 어떤 모습의 ‘백마’일까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내게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그 ‘백마’라는 인상이 좀 더 깊게 남았다.(다시 읽어야 겠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미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아티스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의 타이틀을 두 번이나 거머쥔 아티스트. 실패하지 않는 장기간의 음악 커리어와 같은 규모의 수많은 남성편력과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는 헐리우드의 셀러브리티. 그런 점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존재감은 ‘화이트 호스’뿐만 아니라 ‘오물자의 출현’에서도 안착한 느낌이다. 김미진이 좀 지적으로 모자란 이미지였다면 테일러는 항상 도덕적으로 모자란 대중의 평이 따라다녔으니까.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강화길작가는 여성이 혐오하는 것을 쓰는데 자신의 커리어를 바치고 있다는 느낌도, 테일러와 비추어 보면 테일러 역시 혐오스러울 정도의 여성들이 혐오하는 ‘짓’들을 자신의 커리어를 깎아내는 데 헌신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리뷰에 테일러 스위프트이야기를 길게 남기는 건 이 소설 전반에 흡수된 그 미국가수의 분위기 때문이자 작가가 다시는 그렇게 길게 쓰지 않겠다는 작가의 말에도 차지하는 분량이 커서인데, 나는 그냥 개인적으로...... 빨리 강화길작가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늪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난 케이티 페리의 팬이라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피상적인 페미니즘운 그냥 본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편파적인 당위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것보다 힘든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이 여자 때문에 미칠 것 같은가.
왜 그때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가. - P73

오래전, 이 길 양쪽으로 폐가가 늘어서 있었다. 군데군데 점집이 있었다. 늙은 점쟁이들은 칠이 벗겨진 녹슨 철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액운을 점쳤다. 그들이 진심을 감추는 순간은 돈을 들고 찾아오는 파리한 얼굴들을 마주할 때뿐이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마음에 품은 희망을 누군가에게 들켜야만 하는 사람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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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獨 GO DIE - 이기호 한 뼘 에세이
이기호 지음, 강지만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기호작가 마니아로서 지금은 서점에서 구입 할 수 없는 책을 중고서점을 통해 구입하고 탐독하였다. 이 시대의 최고의 묵직한 유머리스트답게 짧고 굵은 메시지나 유쾌한 웃음이 만선하여 정박한 느낌이다.
하지만 에세이답게 몇가지 반론하거나 대변해 주고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은’으로 불리는 원로 작가의 설화는 풀지 않겠지만, 장애체험의 의의와 목적이 체험당사자들에게 미치는 인식의 변화, 인권감수성의 변화를 설명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이기호작가의 의도만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될 일인 것 같다.

2천5백 원담배 한갑에 세금이 천백 원, 아내에게 받은 돈으로 나는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다한다. 내가 낸 세금으로 보건복지가족부 에선 출산 장려 정책을 세우고, 그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다. 담배 피우면 일찍 죽는다고, 건강 해친다고 잔뜩 겁을 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 담배를 팔아 출산 장려 정책을 세우는 것은, 마치 흡연자들로 하여금 어떤 부당한 식민 통치를 당하고 있다라는 자괴감을 갖게 해준다. - P23

모두 흡족한 얼굴들이다. 통과를 허락받은 자의 얼굴엔 남모를 자부심 같은 것도 엿보인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주차차단기라는 것은, 타인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를드러내주기 위한 장치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대기업사원들이 점심시간마다 목에 전자칩이 내장된 사원증을 자랑스럽게내걸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원증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백수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원증이 명함이 되고, 주차차단기가 아파트 시세를 좌우하는 세상이다. - P33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5

작가란 마치적십자 회원과도 같은 것이어서, 언어에는 국경이 있지만, 세계관에는 국경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날것의 인간을다루는 장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국경은 무의미하다. 문학에서 국경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상품과 정치의 시각으로 예단하려는 분들뿐이다. - P53

자식 낳고 제일 조심해야 할 게 뭔지 알아? 자식핑계로 욕심 늘리는 거래. 그게 바로 자기를 잃어버리는 첫걸음이래. - P135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모든 렌즈들은 관찰이 아닌, 감시로 그 역할들을 바꿔나갔다. 사실, 그건 렌즈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눈이 관찰이 아닌 감시 쪽으로 변해갔기 때문에, 자연스레 렌즈 또한그 시선을 따라온 것이다. - P155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는 어쩔 수 없는 필연의 세계이자, 결정론의 세계이다. 모든 것이이미 태어날 때 결정되어 있다는 인식. 그러나 많은 생물학자들은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유전자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고, 그것들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환경이라고 주장한다. 즉,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라 할지라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씀. 그것은 나름 우리에게 힘이 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웬일인지 그리 위로가 되진 않는다.
자꾸 우리 환경 또한 필연적으로, 결정론적으로 굳어져만 가고 있다는 생각, 재단사 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 어려워졌다는, 조금 씁쓸한 생각. - P223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몸담았던 조직은 노동의 질보다는, 노동의 충성심을 더 높이 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조직들 또한 그것을 더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거대한 병영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 P226

내 청춘의 대부분을 흘려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웠다. 등록금과 세월을 바친 만큼, 내 지식이, 내 의식이 한 뼘쯤이라도 성장했는가, 자문해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만다. 내 공부라는 것이, 학문에 온전히 바쳐진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둔한 머리로 대학원에 진학한 것 역시 돌아보니,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두려움과, 사회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하길 바라는 욕망, 그 마음이 늘 학문보다앞섰다. 그러니 근래 말이 많이 나오는 학력 위조에 대해서도 나는그리 할 말이 없다. 졸업장을 갖는다 해서 학력 위조에서 자유로운가? 너는 그래 대학을 나온 사람으로서, 얼마나 대학을 나온 사람처럼 행동했는가? 대학에선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그 질문들에 대해나는 묵묵부답,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다. 결과의 위조 못지않게, 과정의 위조 역시 우리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사항이다. - P228

독서는 하나의 읽는 행위이지만, 그것은 또한 누군가와의 대화 행위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16세기 사람이든, 19세기인물이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밀담을 나누는 것, 그래서 그 안에서작자와 나 사이의 차이와 합일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독서 경험이다. 한데, 그 책들을 누군가 골라주면, 대부분의 경우 대화가 아닌, 강요가 되고 만다. 그러니 우리는 책을 고를 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실패 또한 하나의 대화이니, 그것이 타인의 강요보다는 훨씬 낫다. 실패들 많이 하시길. - P268

장애인 체험 학습이란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안대와 지팡이를 주고 몇백 미터쯤 걸어보게 하거나, 짝을 이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것이 주종을 이루는 프로그램이다(때가 되면 정치인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함께 체험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에서는, 이런 체험 학습을통해 현재 장애인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그들의 이동권이 얼마나 열악한지, 일깨워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장하는 것은 그들 자유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 실제 장애인들이 그런 행사를 어떤 기분으로 바라볼까, 한번쯤 깊이 생각해봤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몇백 미터나, 반나절로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의 고통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뿐이다. 체험의 속성이란 것이 그렇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듯한 포즈이지만, 최종 기착지는 결국 자기 자신이 되고 마는 것. 아이들에게안대를 주고, 결국 자기 두 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체험학습. 이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농활 한번 다녀와서 농민의 현실을 다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니 체험 학습이란, 어쩌면 포즈 학습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요즘 시대에 그것보다 더 훌륭한 가르침 또한없으니. - P286

내가 저 영화 원작 소설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영활 보고 내가 상상한 거하고 다르면 어떡해. 친구의 반응은 좀 예민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활자를 보면서 우리가 마음속으로 품었던 상상과 전혀판이한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
사실, 그것은 영화 제작자의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어찌 보면 활자가 불러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상상이, 시각화라는 편협하고 왜소화된 감각으로 재편될 때 벌어지는, 별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 P87

아버님은 입이 짧은 탓에 어머님이 하신 음식외엔 결코 수저를 대지 않는 분이시다. 어머님이 주말마다 내려가서국이다 찌개다 이것저것 해놓고 온다지만 여름이다 보니 채 이틀도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후엔 주로 라면을 끓여 어머니가 담근치와 함께 드신다고 했다. 글쎄 큰일이구나, 식당에 나가 이것저것사드시라고 해도 맛없다는 말만 하니, 어머님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나는, 그건 다 어머니 잘못이라고, 어머니가 아버지 식성을 그렇게 만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이 싫진 않았는지 어머니는 내게 이런말을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아무것도 남긴 게 없는 거야. 나 죽으면 그저 먼저처럼 끝날 거 같고, 그래, 내 한사람만은 나를 기억하게 해야지, 한 사람만은 내가 해준 밥을 기억하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었더니, 그게 그렇게 됐네..
나는 괜스레 마음이 조금 울컥해졌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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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작가는 무거운 작가이다. 주제도, 문체도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무겁게 다가온다. 소설도 그러하니 에세이를 집어들었을 때도 기분을 가볍게 날아가게 해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 무게의 중량이 우울과 절망에 빠지게 하진 않는다.
그래서 차분하게 작가의 감성에 잠시 들어가보려 했는데 한 문장이 평소 내 독서의 기질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것이다”

김애란작가의 문장이라면 평생 살 내 집은 아니더라도 조금 오래 내 집처럼 머물 수 있는 전세 정도로 환영이다:) 내 삶은 누구에게나 비극이지만 남의 인생은 희극이라 외로운 사람들에게 가장 따듯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작가이니까. 위로를 딛고 내 삶을 찾아 나서게 해줄 수 있을테니까.

‘맛나당‘은 내 어머니가 20년 넘게 손칼국수를 판가게다. 우리 가족은 그 국숫집에서 8년 넘게 살았다. 머문 기간에 비해 ‘맛나당‘이 내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그곳에서 내 정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때론 교육이나 교양으로 대체 못 하는, 구매도 학습도 불가능한 유년의 정서가. 그 시절, 뭘 특별히 배운다거나 경험한단 의식 없이 그 장소가 내게 주는 것들을 나는 공기처럼 들이마셨다. - P10

파라솔 모양의 아니 불不 자가 완전完全함 앞에 붙어, 완전함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풍경을 그려본다. - P99

글을 쓸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 - P124

그날, Y에게 준 엽서 속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나니.
Y의 이름과 더불어 서명을 부탁한 내게, K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구를 직접 써준 거였다. 언젠가두보가 쓴 저 곡강을 두고 학생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 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고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만들어주며 이 세계를 더풍요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 P250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있다. - P252

얼마 전 ‘미개未開’라는 말이 문제 돼 그 뜻을 찾아봤다. 사회가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 이라는 뜻이 먼저등장했지만 그 아래 ‘열리지 않은‘이란 일차적인 뜻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262

이 경사傾瀉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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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PD를 형이라 부르고, 회계 팀 신유리 대리를 누나라고 부르는 조연출의 태도만은 나날이 더욱 거슬렸다. 친구처럼 지내라는 PD의 말에도 불구하고 호재가 꾸준히 조연출을연출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이제 겨우 입사 1년 차 새내기인 탓도 적지 않았다. 호재는 자꾸 일이 꼬이는 게 조연출 탓인 것 같아 그를 앉혀 두고 조직의 말단으로 사는 데 유용한 충고와 유의미한 지적을 조목조목 일러주고 싶었다.
알량한 인정에 기댔다가 배신당하고 상처 입는 쪽은 계약직인 너일 거라고, 월말에 메일로 지출 경비 내역을 주고받는게 고작인 신유리 대리에게 누나라고 부르는 건 공적 영역을무시하는 자만한 태도로 비칠 수도 있다고, 아니면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고. - P57

호재가 그들의 처지를 몰라서 빈정거리는 건 아니었다. 정규직 전환으로 통하는 기회는 요원하고 기회의 유무조차 회사의 대내외적 사정에 따라 임의로 주어졌다. 인내와 끈기를장점으로 부각하는 이력보다 임기응변과 변통에 능한 이력이훨씬 나았다. 정규직에게 바라는 게 충성을 드러내는 인내라면 계약직에게 바라는 건 야망 없는 열정이었다. 회사는 그들이 남아 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다 자란 아들처럼 마땅히 떠나 주길 바랐다. - P58

호재는 자신이 혼자나 다름없고, 누구나 어른이 되면 다 혼자가 될 텐데, 그렇게 보자면 나는 미래를 앞당겨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 P27

"재수 없는 날에는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호재가 말머리를 돌렸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본 적도있었는데 거듭 이유를 찾아봐도 답은 명백했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연히 불행한 건지, 당연히 불행한 건지." - P69

저마다 감내해야 하는 부당함과감수해야 하는 위기가 달랐다. PD는 그 부당함을 호재를 통해서 실감했고, 조연출을 통해서 위기감을 잊었다. 조연출은그 모든 불안을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잠재우는 듯했다. 미래에 거는 기대가 없는 호재는 그 모든 불안과 부당함과 위태로움을 무심하게 견뎠다.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 P62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호재는 고모부에 대해선 몇 가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상의 호의를 부끄러워서 거절하고 두 번째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 거절은 겸허한 자세에서 비롯하는 예의이니 그에 대한 치하로 주어지는두 번째 기회는 사뭇 거창할 거라는 기대 때문에 스스로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사람, 삶의 호시절을 꿈꾸다가 주말마다 로또에 낙첨하길 반복하면서 첫 번째 기회가 언제였는지 울분에 차서 되짚는 사람, 절망과 비관에 빠진 자신이 부끄러워 술에 취해 낙관과 호언을 내지르다 지쳐 잠드는 사람.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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