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다른 사람’의 흡입력을 잊지 못한다. 그때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하나....조금은 친절했던 ‘다른 사람’의 전개와는 다르게 살짝 난해하거나 두 번 읽어봐야 숨어있는 은유적인 장치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단편은 좀 어려웠다. 한창 흥미진진하게 빠져들다가도 해결하지 못한 결말을 섬뜩하게 마주하면 뒤의 친절한 작품해설을 보며 이해하려는 노력도 들여야 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남성독자들에겐 (폭력과 무능함의 단계를 넘어서는) 깊은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남자캐릭터는 비중도 없거너 이미 너무 쉽게 결론이 나와 버리는 평면적인 인물들이다. 여성의 서사를 위해 깔아버리는 배경이 아니라 조금 더 비중 있게 다뤄 주길 바라면 작가의 개성을 포기하라는 요구인가...
사인본을 예약 구매해서 받아보고 한참이 지나서야 목차를 펼쳐보니 이미 읽은 단편이 3개나 있었다. 내가 그동안 독서를 그렇게 열심히 해왔나 싶었다. 7편 중 거의 절반이 봤던 작품이라니.
얼마 전 씨네21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로 컬럼을 기고한 걸 본적이 있어 테일러의 팬이라는 짐작은 했는데, 표제작 화이트호스가 그렇게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소설을 보고서야 알았다. 백마라니, 대체 강화길작가의 ‘백마’는 어떤 모습의 ‘백마’일까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내게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그 ‘백마’라는 인상이 좀 더 깊게 남았다.(다시 읽어야 겠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미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아티스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의 타이틀을 두 번이나 거머쥔 아티스트. 실패하지 않는 장기간의 음악 커리어와 같은 규모의 수많은 남성편력과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는 헐리우드의 셀러브리티. 그런 점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존재감은 ‘화이트 호스’뿐만 아니라 ‘오물자의 출현’에서도 안착한 느낌이다. 김미진이 좀 지적으로 모자란 이미지였다면 테일러는 항상 도덕적으로 모자란 대중의 평이 따라다녔으니까.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강화길작가는 여성이 혐오하는 것을 쓰는데 자신의 커리어를 바치고 있다는 느낌도, 테일러와 비추어 보면 테일러 역시 혐오스러울 정도의 여성들이 혐오하는 ‘짓’들을 자신의 커리어를 깎아내는 데 헌신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리뷰에 테일러 스위프트이야기를 길게 남기는 건 이 소설 전반에 흡수된 그 미국가수의 분위기 때문이자 작가가 다시는 그렇게 길게 쓰지 않겠다는 작가의 말에도 차지하는 분량이 커서인데, 나는 그냥 개인적으로...... 빨리 강화길작가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늪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난 케이티 페리의 팬이라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피상적인 페미니즘운 그냥 본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편파적인 당위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것보다 힘든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이 여자 때문에 미칠 것 같은가. 왜 그때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가. - P73
오래전, 이 길 양쪽으로 폐가가 늘어서 있었다. 군데군데 점집이 있었다. 늙은 점쟁이들은 칠이 벗겨진 녹슨 철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액운을 점쳤다. 그들이 진심을 감추는 순간은 돈을 들고 찾아오는 파리한 얼굴들을 마주할 때뿐이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마음에 품은 희망을 누군가에게 들켜야만 하는 사람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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