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작가는 무거운 작가이다. 주제도, 문체도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무겁게 다가온다. 소설도 그러하니 에세이를 집어들었을 때도 기분을 가볍게 날아가게 해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 무게의 중량이 우울과 절망에 빠지게 하진 않는다.
그래서 차분하게 작가의 감성에 잠시 들어가보려 했는데 한 문장이 평소 내 독서의 기질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것이다”

김애란작가의 문장이라면 평생 살 내 집은 아니더라도 조금 오래 내 집처럼 머물 수 있는 전세 정도로 환영이다:) 내 삶은 누구에게나 비극이지만 남의 인생은 희극이라 외로운 사람들에게 가장 따듯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작가이니까. 위로를 딛고 내 삶을 찾아 나서게 해줄 수 있을테니까.

‘맛나당‘은 내 어머니가 20년 넘게 손칼국수를 판가게다. 우리 가족은 그 국숫집에서 8년 넘게 살았다. 머문 기간에 비해 ‘맛나당‘이 내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그곳에서 내 정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때론 교육이나 교양으로 대체 못 하는, 구매도 학습도 불가능한 유년의 정서가. 그 시절, 뭘 특별히 배운다거나 경험한단 의식 없이 그 장소가 내게 주는 것들을 나는 공기처럼 들이마셨다. - P10

파라솔 모양의 아니 불不 자가 완전完全함 앞에 붙어, 완전함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풍경을 그려본다. - P99

글을 쓸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 - P124

그날, Y에게 준 엽서 속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나니.
Y의 이름과 더불어 서명을 부탁한 내게, K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구를 직접 써준 거였다. 언젠가두보가 쓴 저 곡강을 두고 학생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단순히 ‘꽃잎이 떨어진다‘ 라고 생각하는 삶과 그렇게 떨어지는 꽃잎 때문에 ‘봄이 깎인다‘라고이해하는 삶은 다르다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봄이 아닌 여러 개의 봄을 만들어주며 이 세계를 더풍요롭게 감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 P250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있다. - P252

얼마 전 ‘미개未開’라는 말이 문제 돼 그 뜻을 찾아봤다. 사회가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 이라는 뜻이 먼저등장했지만 그 아래 ‘열리지 않은‘이란 일차적인 뜻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262

이 경사傾瀉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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