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마, 니들 얘기야 - 잊힌 룸펜 흙수저와 문화자본가로 전락한 좌파 대안연구공동체 작은 책 - 인문학, 삶을 말하다
장의준 지음, 대안연구공동체 기획 / 길밖의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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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고 많이 배워서 똑똑하고 잘난 줄 알았는데, ‘잘남’이란 내가 배운 정의도 아니었고 위계는 배움의 순위가 아니라 가짐의 순위라는 것을 깨닫고는 배운 지식을 전부 세상을 향해 빈정대는 폭언으로 쏟아내는 유약하고 빈약한 영혼의 울림.
서문에 쓴 ‘병신’이란 단어 사용에 대한 지적을 향한 자기 변호는 처절하게 옹졸할 뿐더러 아집을 신조로 포장하려는 궁색한 변명이다. 그 꼴이 참으로 우습지만 그래도 그게 ‘똑똑함’이라고 착각하고 있겠지.
그래도 몇 가지 남의 지식을 요약해 놓은 수고가 있으니 별점 하나 더.

그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가치‘는 ‘합리‘였다. 반면, 그가 보기에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는 비합리였다. 즉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굴복하는 것이 합리로 통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 P10

있는 자를 위한 의미를 지켜 주는 것은 우파이데올로그의 과제이며, 없는 자를 위한 의미를 제시해 주는 것은 좌파 이데올로그의 과제이다. 그리고이는 곧, 좌파들이 없는 이들이 겪고 있는 의미의 부재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좌파 이데올로그들은 없는 자들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일에 실패했다. - P16

알튀세르의 어휘로 말해 이데올로기는 주체를 호명 interpellation 한다. 상황은 이렇다. 인간 주체는 자신이 항상 중립적이며 자유롭고 객관적인 인식을 하고 있고, 그렇기에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사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인간 주체는 자신의 믿음과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 주체는 계급 관계 속에서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알 수 없으며 바로 이러한 무지로 인해 주체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며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호명한다는 것은 이렇게 이데올로기를 통해 주체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 P72

달리 말해서 현대인들은 문화산업에 의해서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총체적인 물화 속에 빠져들게 되며 반성 능력과 비판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반성과 비판 능력을 상실한 개인은 지배 체제에 보다 더 잘 흡수되고, 보다 더 잘 통합될 수 있도록 길들여진다. 요컨대 문화산업의 궁극적 효과는 바로 체제에 저항하지 않는 개인들을 길러 내는 것, 체제에 철저하게 순응하는 개인들을 키워 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문화 산업은 모든 반항의 씨앗을 사전에 미리 차단하면서도 대중의 즐김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 P75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집권세력에 대한 저항 자체가 유흥이나 오락거리, 즉 ‘동의‘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대중은 체제에 저항한다고 믿는 가운데 실제로는 체제에될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산업은 체제에도전하려는 욕망을, 체제에 반항하려는 욕망을 북돋고 자극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렇게 자극된 대중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욕망은 일종의 사이비 욕망, 즉 환상일 뿐이다. 실제적인 저항의 계기는 오락으로서의 사이비 저항을 통해, 체제 순응적 저항을 통한 대리만족을 통해 미리 차단된다. - P77

그에 의하면 상류계급 내에서 취향이 갈라지는이유는 바로 이러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소유 비율 때문이다. 연극 관람에 관련된 취향을 예로 들어보자. 문화자본을 더 많이 가진 상류 계층 구성원들(전문직 종사자, 대학 교수, 언론인)은 대개 아방가르드 작품을 관람하는 경향이 있으며 멜로드라마를 얕잡아 본다. 반면 경제자본을 더 많이 가진 상류 계층구성원들(기업 임원, 자영업자)은 대개 멜로드라마를 높이 평가하며 아방가르드 작품을 개밥의 도토리취급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사회에서 좌파와 우파의 대립은 문화자본 세력과 경제자본 세력 간의 대립으로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 P89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선물을 받는사람은 거기에 답례해야만 한다는 부채의식을 갖게된다. 이런 부채의식은 선물을 주는 사람에 의해 요구되거나 강제된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는 사람이 저절로 혹은 자발적으로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부채의식은 자발적인 감사나 자발적인 순종의 논리로나타나게 된다. - P93

플로베르뿐 아니라 마네, 조이스, 프루스트 등과 같은 모더니즘 예술가는 모두 특권 사회계층 출신이다. 브루디외에 의하면 그들이화상들의 요구나 시장의 요구를 거절하며 물질로부터 초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물질적 필요와 편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P101

한국 문화장의 문화자본은 좌파 이데올로그들이독점하고 있다. 알라딘이나 교보문고 웹 사이트의 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을 검색해 보면 좌파 이데올로그들이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한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자본 독점 현상은 연예계에서도두드러지게 관찰된다. 연예인들이 좌파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자기선전을 하는 것은 문화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장점으로 작용하는 반면, 우파적 성향을 갖 - P105

그렇다면누가 체제의 정당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바로 좌파 이데올로그들이다. 피지배계층은 그들의 계급적 조건으로 인해 반체제적 성향을 가질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은 반체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체제의 유지 및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입장, 좌파적이라고 자처하는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앞에서 19세기 후반에 사회주의자들이 시도했던 사회주의 문화운동이 사실상 노동자들을 부르주아 문화에 통합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자본주의자체를 증진시킴과 동시에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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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 - 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
김예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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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성이 지적장애가 있을 경우,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순종과통제에 익숙한 생활을 해온 경우가 많고, 협소한 인간관계를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조금만 잘해주는 사람(특히 비장애인)이 나타날 경우 쉽게 친밀감을 드러내기도합니다. 가해자의 돌봄에 길들여진 지적장애인은 가해자로인한 착취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혼란스러워합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자라왔기에 애정과 관심을 받으려고원치 않는 성적인 관계에 끌리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인 관계에 실제로 나가게 되면 이것을 성범죄로 인식하기보다는 애정관계로 인식하여 그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가족들로부터도 고립시키고 자신이 연락을 피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큰 심리적 압박이 된다는 것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령 문자메시지를 통해 나눈 대화에서 피해자가 먼저 연락하거나 애정표현을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애정관계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이 힘의 불균형을 반드시 수사과정에서 고려해야 합니다. - P40

장애인은 소수자일 수는 있지만 ‘약자‘로 불릴 이유는 없다. 사람의 얼굴이 제각기 다르듯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모두 다르다. ‘약자‘라는 말로 납작하게 표현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와줘야 하는 장애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감탄하고 배우고 싶은 한 사람으로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실천해보면 어떨까. - P86

장애인이라서 비장애인들의 대상이 될 이유는 전혀 없다는 내 속마음이 아이에게 얼마나 전달되었을까. 누군가 데리고 나와줘야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공원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는 비장애인 중심의사회에서 객체나 대상이 되는 삶이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P93

정말 아이에게 한 행동이 학대인 줄 몰랐다면 다른 사람이있을 때도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가 같은 잘못을한 경우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아무 일도 아닌 듯넘어가면서,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죽일 듯이 몰아세운다. 결국 본인도 아는 것이다. 이게 학대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정말 학대인 줄 모르고 행하는 사람은 오히려 외부의 개입이 수월하다. 아이가 자신을 화나게 하면 아이의 뺨을 때리고, 사장이 자신을 화나게 하면 사장의 뺨을 때리는 사람은분노조절장애 등 신경정신과적 진단을 받고 사회적 관리의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은 상대를 봐가면서 선택적으로 분노한다. 결국 ‘몰라서‘ ‘훈육하려고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가하는비열한 폭력이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합당한 벌을 받아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P140

민감할수록 잘 자라는 말의 씨앗
언어에는 힘이 있다. 말이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서, ‘어떤 언어를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비장애인을 ‘정상인‘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분은 장애인권 교육을 접해본 적이 별로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곱추(꼽추의 규범표기)는 지체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아이들이 대번에 물었다. "엄마 곱추가 뭐예요?"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 P161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깟 작은 말, 사소한 표현이 뭐가 그리 대수냐며 "네 앞에서는 무슨 말을 못하겠다"라는 사람도 만난다. 언어의 민감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은 상대방을 판단하기위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언제 화가 나고 언짢고 불쾌한지 찾아내고 그 이유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오히려언어에 대한 민감함이 생각의 변화를 일깨우는 선생님 역할을 해준다. - P163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언론에서도더는 ‘처녀작‘ ‘여선생‘ 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첫 작품 ‘선생님‘이라는 표현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성 중립적 표현을 입에 붙이려고 노력하는데, 관용적으로 굳어진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꿔 부르는 연습, ‘아빠다리‘ 대신 ‘나비다리‘ 라고말하는 연습이 쉽지만은 않다.
줄임말이 편하기는 하지만 불편해도 줄이지 않고 쓰는 표현들이 있다. 남녀노소‘라는 말 대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이라고 표현하니 더 의미가 명확하고 좋았다. 같은 의미로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 이라는 말이 길어도 함부로 ‘국민‘이라는 단어로 줄여 쓰지 않는다. ‘국민‘이라는 말을 뜯어보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의미가 좁아지는데 그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권리의 영역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미등록 이주민도, 난민으로 와서 낯선 땅에 정착한 사람도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헌법에서 집요하게 반복하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람‘이나 ‘인간‘으로 바꾸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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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9
넬라 라슨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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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레드필드는 시카고의 호텔에서 옛 친구인 클레어 캔드리를 우연히 만난다. 클레어는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백인 외모에 가까운 혼혈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디선가 나타난 백인 고모들에 의해 시카고를 떠난 클레어는 백인 행세를 하는 흑인, 소위 말하는 패싱‘을 하는 흑인으로 살아왔다. 클레어는 아이린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아이린은 ‘패싱‘을 하는 클레어의 행동이 마땅치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클레어의 성화에 못 이겨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클레어의 집에서 만난 백인 남편 존 벨루는 인종차별주의자였고, 흑인을 조롱하거나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린과 클레어의 만남은 불쾌한 기억만 남김 채 2년의 시간이 흐른다.
2년 뒤 아이린이 사는 뉴욕으로 찾아온 클레어는 다시 아이린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완벽한백인 행세를 함으로써 자기 자신(흑인)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못한 내적 갈등과 가식적인 삶으로 빌어진 고립감이 클레어의 마음속에 자리해 아이린과의 인연을 계속해서 갈망했던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고야 마는 클레어의 성격 탓에 아이린은 클레어를 자신이 속한 흑인사회에 소개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이린의 남편 브라이언과 클레어의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아이린은 클레어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카드를 쥐고 있었지만, 클레어가 남편 존 벨루에게 흑인임이 들통나 이혼을 하게 되면 브라이언과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갈등만 깊어진다. 그러던 중 아이린이 흑인 친구와 동행하는 길에 존 벨루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존 벨루로부터 자신이 ‘패싱‘을 했다는 오해를 받고 조롱을 당하면서 아이린은 존 벨루에게 넌지시 클레어의 정체성을 암시하는 말을 남긴다. 이후 아이린, 클레어, 브라이언이 함께 한 흑인들의 사교 파티에서 존 벨루가 들이닥쳐 클레어를 위협하며 궁지로 몰아가는 중 클레어는 건물 창 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해 버린다.

‘패싱‘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도 없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백인 외모처럼 보이는 흑인이라면 ‘머라이어 캐리‘정도만 알고 있었다. 백인처럼 보이는 본인의 외모를 부정하고 까맣게 태닝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흑인이라고 말하는 그 가수를 보며, 혼혈들은 전부 흑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산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보면서 인종차별이나 흑인 인권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하는 건 좀 과할 듯하다. ’패싱‘이 만연하던 시절, 흑인이나 혼혈들이 가졌던 복잡한 심리상태, 스스로 느꼈던 자기모순에 대한 자괴감을 묘사하는 심리소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불행한 삶으로 인해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복잡한 심리를 표현한 대부분의 외국어 소설들이 그렇듯이 번역에도 꽤 많은 어려움이 보인 것도 아쉬웠다.

"클레어, 너 그런 생각 해본 적 있니?" 아이린이 물었다. "주님의 사랑이 의과 자비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불행과 지독한 학대가 용인되는지?
그것도 늘 가장 열렬한 신자들에 의해서 말이야."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클레어가 외쳤다. "그것이, 그들이 오늘의나를 만들었어. 왜냐하면, 당연히 난 도망가기로, 자비의 대상이나 골칫거리, 심지어는 경솔한 함의 딸이 아닌,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게다가 난 욕심이 없지 않았어. 나는 내가 못생기지 않았고, 백인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았지. 린, 너는 모를 거야, 사우스사이드에갈 때면 내가 얼마나 너희 모두를 미워하다시피 했는지. 너희들은 내가갖고 싶었지만 결코 가질 수 없던 것들을 다 가지고 있었어. 나는 그것들을 다 가지고 그보다 더 많은 것들까지 갖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점럼 굳혀갔지. 내 심정을 이해하겠니, 이해할 수 있겠어?" - P37

그리고 그녀의 분노와 의구심에는 또다른 감정, 다른 질문이 섞여있었다. 왜 자신은 그날 얘기하지 않았을까? 벨루의 맹목적인 증오와 혐오 앞에서 왜 자신의 혈통을 숨겼을까? 그가 자기주장을 펼치고 그릇된 생각을 맘껏 떠들도록 왜 내버려두었나? 어째서 자신을 그런 고통에 방치한 클레어 켄드리 한 사람 때문에 자신의 인종을 방어할 기회를 놓쳤을까?
아이린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통감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녀도잘 알 듯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그녀는 모든 대답을 알고 있었고,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그녀는 클레어를 배신할 수 없었고, 모욕당한 사람들을 대변하듯 보이는 위험마저 감수할 수 없었다.
그들을 대변함으로써 결국 클레어의 비밀을 폭로할 수 있다는 두려움때문이었다. 그녀는 클레어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그녀는 클레어가버렸으나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그 인종이라는 끈에 묶여 있었다. - P71

"당신 그 여자를 만나려는 건 아니겠지?" 그가 물었다.
그의 말이 사실상 질문이라기보다 경고에 가깝다는 걸 아이린은 알아차렸다.
그녀는 앞니를 지그시 물었다. 잇새로 흘러나오는 그녀의 말투에는약간의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브라이언, 나도 그 정도 바보는 아니야. 어떤 남자가 처음 본 자리에서 날 깜둥이라고 불렀다면 그건 그 사람 잘못이지만, 그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건 내 잘못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아."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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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뜨 1 창비세계문학 81
샬롯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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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여지가 없었으므로 나는 자립해야 했다. 원래 독립적이거나 활동적인 성격은 아니었으나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독립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 되었다. - P54

오해를 받는데도 화가 안 나고 오히려 안심이 되는 수도 있다. 제대로 이해받지 못할바에야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정직한 사람이 우연히 가택침입자로 오인된다면 당황하기보다는 오히려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 P151

나는 소위 건전하다는 이 저녁수업이 주로 ‘지성‘을 억누르고 ‘이성‘에 굴욕감을 주고, 그럼으로써 ‘상식‘에게 약을주기 위한 것임을 곧 알게 되었다. ‘상식‘은 느긋하게 그 약을 소화시켜 최대한 잘 성장해야 했다. - P179

그런 재앙을 일으켜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화가 나지도않았을뿐더러 그녀를 떠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녀만큼 가벼운 멍에를 씌우고 끌기 쉬운 마차를 끌게 하는 고용주도 없었다. 그녀의 원칙을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근본적으로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의 체제가 내게 해를 끼친 것도 없었다. 그녀는 만족할때까지 그 체제로 날 요리하겠지만, 나올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거지가 지갑이 없어 도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인도 없고 사랑도 기대하지 않는 나의 가난한 마음은 염탐당해도두려울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뒤돌아서 도망쳤다. 마침 그 순간난간을 타고 달려내려가던 거미처럼 재빨리 소리없이 계단을 따라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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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창비세계문학 16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이한정 옮김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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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사회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이다.
자신을 지배자로 착각한 교수가 아내 이쿠코를 자신의 제자 키무라를 촉매제로 이용해 쾌락을 즐기려 했지만 이를 역으로 조종한 이코쿠에게 죽임까지 당하는 이야기.

‘알고 보면 여자가 더 밝힌다지’라는 남자들의 구시대적인 선입견을 작품에 주입한 고상한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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