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2월,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수뇌인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크림 반도의 얄타에서 가진 회담으로 전쟁 수행과 전후 처리 문제 국제 연합 창설 등에 관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 협정에서는 먼저 국제 연합 문제로 1945년 4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의 국제 회의를 열기로 하고,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대국의 거부권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독일에 관해서는 분할 점령 · 비무장화 · 전쟁 범죄자의 처리 등이 확인되었고, 폴란드에 관해서는 선정부 수립을 소련이 지지하는 루블린 소재 폴란드 인민해방 위원회와 영국 · 미국이 지지하는 런던 망명 정부의 교섭에 맡기기로 했다.

또한 소련의 대일 참전에 관한 비밀 협정도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서, 둑일이 황복한 뒤 소련은 3개월 이내에 일본과 전쟁을 할 것이며, 그 조건으로 사할린 · 쿠릴 열도를 소련이 차지하기로 하였다.

그 밖에 장제스 정부를 유일한 중국 정부로 인정하며, 만주 철도를 중국 · 소련의 공동 관리로 한다는 결정도 있었다.

아무튼 이 얄타 회담으로 인해서 19454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도 광복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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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세계의 명시를 읽고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시 3가지를 이 곳에 쓰고 그 시를 쓴 시인에 대해서 설명해야 겠다.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한 번에 두길을 갈 수는 없는 일이어서

안타깝게 오래 선채로,

수풀 사이로 굽어져 길이 보이지 않은 데까지

한쪽 길을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똑바로 난 다른 길을,

풀이 무성하고 인적이 두물었기에

일부러 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인적이 드문 것은

두 갈래 길 모두 마찬가지였던 것을......

 

그날 아침에, 두 갈래 길은 모두 아무도 더럽히지 않고

낙엽에 덮여 있었습니다

아아, 그첫길은 다른날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길로 뻗었기에

돌아올 가망은 없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어딘가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하리

숲속에서 두 갈래로 길이 나누어,

나는 결국 인적이 드문 길을 택했었노라고

그로 인해 이렇게 모든 것이 달라져 있노라고.

 

프로스트:1874~1963

미국의 시인으로 고학으로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전원생활을 하면서 인생과 자연과 관조하는 시를 썼다. 전원주의 시인으로 불리며, 네 차례에 걸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가지 않은 길

 

보들레르

 

때로 음악은 바다처러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출범한다

창백한 별을 향해 자욱한 안개 속으로 대로 끝없는 창공 속으로

돛처럼 부푼 가슴

앞으로 내밀고

어둠에 묻혀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나는 넘는다

 

나는 느낀다, 신음하는 배의

온갖 정열적인 떨림을

순풍과 폭풍우, 그리고 그 떨림이

나를 흔든다 광막한 바다 위에서

대로 음악은 고요의 바다

내 절망의 거대한 거울

 

보들레르:1891~1867

시인이며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다. 파리에서 태어나 반항적인 기질을 갖고 자란 그는 미국 작가 애드거 앨런 포의 영향을 받아 나중에 프랑스 상징파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시집<악의 꽃>은 나오자마자 세게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근대시의 새로운 영으로 자리매김했다.

 

봄날의 그리움

 

설도

 

꽃이 피어도 함께 즐길 수 없고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수 없어라

묻고 싶네 에디에 계시는지

꽃 피고 꽃 지는 이 계절에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

그대에게 전하려 했다가

봄날의 그리움을 접으려 하니

 

바람결에 꽃은 시들고 시드는데

만남의 기약은 아득하기만 하구나

그대와 함께 사랑 나눌 길 없어

실없이 홀로 이 마음 달래본다

 

흐드러지게 핀 꽃에 마음 가눌 길 없어

한없는 그리움 늘어만 가고

날마다 방울지는 쓰라린 눈물을

살랑대는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설도:770년경~832년경

당대의 여류 시인.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아버지가 죽자, 기생이 되었다. 관기로서 기녀 생활을 했던 그녀는 여러 관리들과 문인 등을 두루 접하며 그들과 주고받은 상당수의 시문을 남겼다.

 

※정말 시내용도 그렇지만 모든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시를 쓴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란 것까지 알게 되니 정말 시에 많은 흥미가 생겼다. 정말 즐겁고 다른 사람에게도 세 개의 시와 시인을 알려줄 수 있어서도 또한 기쁘다. 정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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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실천한 기업가 아니타 로딕에 대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아니타 로딕에게 감동받은 나는 사전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아니타 로딕이란 사람을 설명하려고 한다.

◉아니타 로딕 : 나눔을 실천한 기업가(기업을 통한 공익 추구와 소비자 사회 운동을 통해 새로운 기업 윤리를 제시하였다. 인권과 반전, 환경 분야에서 활발한 사회 운동을 버렸다.)

◉고든 로딕 : 아니타 로딕의 남편

◉바디샵 : 아니타 로딕이 남편이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딸 둘과 함께 살아남으려고 차린 가게인데 성공해서 하나의 기업이 된 가게

◉화장품 용기 ;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소변을 받아오게 할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 병으로 아주 싼값에 구해온 것이다.

◉화장품 재료 : 카카오 씨앗에서 뽑아닌 기름과 자연 성분의 천연 화장품

◉루비 : 1998년에 처음 나온 풍만한 몸매의 인형 루비는 바디샵 광고의 마스코트이다.

◉동물 실험 절대 반대 : 아니타는 바디샵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토끼의 눈에 실험 물질을 집어넣고 돼지나 주의 피부의 염증을 일으키게 하는 동물 실험에 반대했다.

◉패트릭 : 1999년 아니타가 바디샴의 이념을 존중한 전문 경영인 사람이며 아니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그 뒤를 이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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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개혁 · 개방 정책은 1978년부터 시작되었다.

기존의 사회주의에 개혁 · 개방을 지향하며 부분적으로 자본주의적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먼저 농업 분야에서 개혁이 시작되었다.

중국 정부는 농업의 관리 구조나 유통 체제 등을 개선해서 경제 발전을 도모했다.

이러한 정책을 농민의 생산 의욕을 크게 고취시켰고, 중국의 농촌 경제는 오랫동안의 침체기를 벗어나 왕성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농촌의 경제 개혁이 성공을 거두자 도시의 경제 개혁도 전개되었다.

도시 경제 개혁의 중점은 기업에 있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계획 경제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계획 경제 체제 하에서는 국가가 모든 기업의 활동을 통제하기 때문에 생산에 활력이 없고 효율성이 낮다

중국을 개혁 · 개방을 하면서 이러한 계획 경제 체제하의 단점들을 개선했다

또 중국의 대외 개방은 국제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외국의 자본과 선진 기술을 대담하게 흡수함으로써 중국 국내의 경제 건설을 가속화하고 있다.

나는 이를 통해 예전의 중국에서 한 개혁과 개방정책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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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라는 이름을 가지 유대 인 소녀가 네 살 되던 해인 1933년에 독일에서는 나치스와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으며 유대 인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하기 시작하였다.

1933년에서 1939년에 이르는 동안 나치스와 히틀러는 유대인 말살 정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고 많은 독일계 유대 인들이 학살당하였다.

안네의 가족들은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 남쪽으로 옮겨 가 살았다.

밤마다 독일군 병사들이 시내를 돌며 집집마다 숨어 있는 유대인들 끌고 가서는 등급을 매겨서 사혐에 처하거나 수용소에 보내거나 하였다.

안네 프랑크는 부모와 언니 그리고 다른 4명의 유대인 가족과 함께 1942년 6월부터 1944년 8월 독일군에 의해 체포될 때까지 비밀 다락방에 숨어 지냈다.

<안네의 일기>는 바로 이 기간 동안 안네 프랑크가 숨어 지내면서 느끼고 겪었던 일들을 적은 것이다.

안네는 이 책에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의 성장, 곤경에 처해서도 꺾이지 않은 용기, 그리고 어른들 세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 등을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숨막히고 떨리는 상황을 이겨 나간 의지와 자유에 대한 희망 등이 열네 살 소녀의 순소하고 가녀린 마음과 함께 잘 나타나 있다.

1944년 8월 4일 독일 비밀 경찰에 의해 체포된 안네와 긔의 가족들은 아유슈비츠 포로 수용소로 보내졌다. 안네와 어머니, 언니는 모두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버지가 안내p가 쓴 일기를 발견하여 1947년에 책으로 펴냈다.

정말 슬픈 이야기 이지만 안네의 그 용기에는 박수 쳐주야 할 만큼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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