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허 문명과 고대 중구에서는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제왕들과 거눅 신화에 나오는 삼황에 대해서 배워보겠다.
삼황 오제는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최초의 왕들이다. 그들은 사실상 부족, 부락 또는 부락의 우두머리일 뿐 현대적 의미의 왕은 아니다. 또 중국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신적인 존재로서 오늘날에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을 만한 증가는 아직 없다. 전설 속에서 이들은 각기 역할을 분담하여 중국의 문명적 기반은 닦았다고 한다.
1986년 중국의 고고학자 랴오닝 성 서부 산악 지대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5000여 년 전에 대형 제단과 여신사당 적성총군등의 유적을 발굴하였다. 이 중대한 발굴은 중화 문명사를 1000여 년 앞당기고 삼황 오제의 전설에 대해서도 일차적인 증거를 제공해 주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우물이 발굴된다면 전설과 신호로만 인정되는 중국 고대 역사를 감싼 베일이 벗겨질 가능성은 충분항다. 삼황이 구체적으로 누구 인지에 대해서는 역대로 학자들마다 의견을 분분하다.
중국인들이 조상으로 받들고 있는 황제 이전에 천황시, 지황씨, 인황 씨 또는 복희 씨 신농 씨, 수인 씨라고 부르는 삼황이 있었는데 우선 삼황 가운데 수인씨는 아직 불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백성들에 처음으로 불의 사용법을 가르쳤고 음식을 찌거나 굽는 법을 전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복희 씨는 중화민족 문화의 시조이고 심황 주에 제일 빠른 삼황의 으뜸이며 성시는 충이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150년간 재위하였으며 진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는 그물을 직접 제작하여 물고기를 더욱 많이 낚게 하는 등 수렵과 목축 사냥 기술을 발달시켜 준 고마운 왕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을 신농 씨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던 농업에 관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며 여러 약초를 직접 시식해보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어 약초와 열매를 재배하고 독초를 파하게 하였다. 아울러 상업과 의약에 관한 지식도 전해주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생활을 푱요롭고 행복하게 해 주었다고 해서 이름을 일어 삼황이라고 한다.
이렇개서 중국 건설에 등장하는 제왕들과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삼황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