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정의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미국의 오랜 SF 창작 전통이나 

일본의 방대한 구미 SF 번역의 역사에 비하면

국내의 SF 소설계는 창작이나 번역 양쪽 모두에서

SF 창작의 여명기였던 1940~50년대 수준을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솔직한 현실입니다. %EC%96%91


시공사 그리폰북스에서 시작된 본격적인 국내 SF 총서의 번역 역사가

(고려원에서 출간했던 책들은 정식 판권 여부가 의심스러우므로 제외하겠습니다)

열린책들의 경계문학 시리즈와 행복한책읽기의 Happy SF 시리즈, 

오멜라스 클래식 시리즈,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을 거쳐

최근에는 폴라북스의 세계의 문학 시리즈와 아작의 SF 시리즈로 면면하게 이어지고는 있지만,


한 시리즈가 채 50권을 채우지 못했을 정도로 얇은 국내 SF 구매층의 수요로 인해

국내 SF 번역계는 사실상 한 세대 전의 그리폰 북스 시절에서 

그다지 많이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EA%B1%B0%EB%B6%81%EC%9D%B4



최근 활발하게 SF 소설들을 번역, 출간하고 있는 아작의 책들을 보면

새로 출간되는 신간의 절반 가량이 과거에 국내에 번역된 바 있는 고전 SF 의 재간들이고,

(< 중력의 법칙 >, < 우주복 있음, 출장가능 >, < 별의 계승자 >, <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등)

앞으로 출간할 예정작들도 절반 가량을 고전 SF 작품들의 재간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 < 개는 말할 것도 없고 >, < 둠스데이 북 >, < 낙원의 샘 >, < 라마와의 랑데뷰 >, < 스페이스 비글 > 등 >

(이런 사정은 환상문학전집과 세계의 문학 시리즈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EA%B7%A4 )


출간된 직후에 즉시 구입하지 않으면

상당한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열악한 국내 SF 번역물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1980~90년대에 출간되었던 SF 고전들의 복간이 매우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세계의 SF계는 날마다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진보해 나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SF 번역계는 여전히 빅 3를 비롯해 이미 그랜드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역사적인 거장들의 한 세기 이상 지난 고전적인 작품들을 

2번, 3번에 걸쳐 재간하는데 많은 자원을 투여하고 있다는 점이

SF 팬의 입장에서는 다소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이 솔직한 사실입니다. %ED%86%A0%EB%A7%88%ED%86%A0



이런 상황이다보니

2015년에 과학소설 전문 출판사의 기치를 들고 의욕적으로 출간한 신생 출판사인 아작

과거 명작들의 복간과 함께

현대 SF계의 화제작과 문제작들을 집중적으로 번역, 발간하고 있는 것은

SF 팬의 입장에서 두손을 들고 적극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EB%8F%8C%EA%B3%A0%EB%9E%98


아작의 출간작들과 출간 예정작들의 리스트를 살펴보면

그동안 르귄을 제외하고는 국내 SF 출판계에서 일정부분 소외되었던

여성 SF 작가들의 패미니즘 SF 작품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끄는데,


코니 윌리스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집들과 < 혁명하는 여자들 > 등의 출간은

비채에서 발간된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들과 함께

한국 패미니즘 SF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EB%AF%B8%EC%86%8C


동시에 아작은 현재 구미 SF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최신 SF 작품들도 속속 출간하고 있는데,


그중의 한 작품이 바로 

앤 레키의 < 사소한 정의 >입니다.  %EB%B6%81



열렬한 SF 독자였지만 작가로써의 데뷔는 2013년에야 이루어진

앤 레키의 장편 데뷔작인 < 사소한 정의 >

옥타비아 버틀러의 지도를 받으며 6년에 걸쳐 최고를 거듭한 끝에 발표되었는데,


발간되지마자 휴고상과 네뷸러상, 로서크상, 아서 C 클라크 상 등

SF 계의 유명상들을 거의 석권함으로써 일약 최고의 화제작이 된 작품입니다. %ED%8A%B8%EB%A1%9C%ED%94%BC



소설이 주무대로 삼는 라드츠 우주의 중심에는

3천년에 걸쳐 끊임없이 정복과 확장을 거듭해 온 라드츠 제국이 있고,

그곳을 복제를 통해 수 천개의 몸으로 분열해 존재하며 3천년 간 제국을 지배해 온

절대군주 아난더 미아나이가 다스리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브렉

2천년 전에는 인간이었지만 라드츠 제국에 정복되어 병합당한 후

2천년 동안 거대한 병력수송선의 저장고에 냉동 상태로 비축되었다가 되살아나

함선의 일부 중에서도 한 부분인 '보조체'로 존재하다가

함선의 파괴로 홀로 자아를 얻고 방랑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와 우연히 만나 같이 길을 가게되는 세이바든

1천년 동안 동결되어 있다가 되살아난 존재로


과거의 정체성이 불안정한 이 둘이 라드츠 우주를 배경으로 펼치는 여정이

이 소설의 기존 줄거리입니다.



사실 위의 설정들을 읽어보시면 금방 아시겠지만,

기존의 고전 SF들과는 아주 다른 복잡한 정체성과 설정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여기에다가 패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작가답게 

작품 속의 모든 대명사를 '그'가 아닌 '그녀'로 지칭함으로써

성과 인종, 연령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로 500쪽이 넘는 긴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갑니다.


고전 SF들의 인과론적인 우주관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이나 주인공이 전생에 탱크였던 < 유리감옥 >

사람보다 돌고래와 원숭이가 더 많이 등장하는 < 스타타이드 라이징 > 같은

현대적인 SF 작품들에서 마주 혼용되어 등장하는 정체성의 문제는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난해한 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대 SF 창작계의 과학적 상상력이 어디까지 진화되어 나아갔나를 확인하고 싶으신

진지한 SF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일독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A%B7%A4



앤 레키의 라드츠 우주 시리즈는

이 작품이 이은 < 사소한 칼 >과 < 사소한 자비 >가 이어서 발표되었고,

올해 새로운 작품이 추가로 발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도 2부인 < 사소한 칼 >이 곧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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